형람 성경

모세오경의 저자 문제

형람서원 2024. 3. 21.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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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오경의 모세의 저자 문제에 대해서 17세기 철학자 홉스(Thomas Hobbes, 1588-1679)와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 1677)가 의문을 제기했다. 홉스는 오경의 저자가 모세가 아니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했다. 스피노자는 오경, 열왕기하 등을 에스라가 저자일 것이라 주장했다. 그리고 프랑스 학자 아스트뤼크(Jean Astruc, 1684-1766: 루이 16세 주치의)는 오경에 내용이 중복되거나 엘로힘과 여호와(Jehovah, Yahweh)으로 불리는 것고 지적했다. 이스트뤼크는 모세가 두 자료를 활용했다고 결론했다. 아스트뤼크는 엘로힘 문서(E)와 여호와 문서(J)로 분류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아이히혼(Johann Gottfried Eichhorn, 1752-1827)은 아스트뤼크의 접근법을 더 확장시켰다. 19세기 벨하우젠(J. Wellhausen, 1844-1918: 문서설, 종교사학파)에 의해서 체계화되었다.

  • 헤르만 궁켈(Hermann Gunkel, 1862-1932)은 율리우스 벨하우젠(Julius Wellhausen, 1844-1918)의 자료비평(Source Critism)을 거부하고, 양식비평을 제안했는데, 종교사학파적 견해를 도입시킨 것이다. 벨하우젠-그라프 가설은 오경 안에 4문서들에 대한 연대를 확정했다. 오경을 JEDP 문서로 규정하고, J문서-9세기, E-8세기, D-7세기, P-6세기이다. J문서는 여호와 문서, E문서는 엘로힘 문서, D문서는 신명기문서, P문서는 제사장 문서이다. 모세오경에 준 '자료가설'(Quellenhypothese) 혹은 '문서설'은 1950년대 한국 장로교회가 나뉘는 계기가 되었다. 구약의 궁켈의 견해를 신약 분야에서 받은 위인이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이다.

오경에 대한 모세저작설에 대해서는 라이마루스(Hermann Samuel Reimarus.1694∼1768)가 역사적 신뢰성, 진실성에 대해서 문제를 제기했다. 레싱(Lessing, 1729-1781)이 '라이마루스: 유고'(Raimarus: Fragments 1774-1778)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라이마루스의 딸이 아버지의 문서 사본을 레싱에게 전달했다. 제목은 <이성적으로 신을 예배하는 사람들에게 대한 변호 또는 옹호>였다. 레싱은 출판하면서도 저자와 제목을 밝히지 않았다. 라이마루스는 비판적 이성으로 성경의 내용을 재검토할 것을 제언했다. 라이마루스는 구약과 신약에서 합리적으로 부조리하고 모순적인 내용을 제언했다. 라이마루스는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부조리가 제언했다. 라이마루스는 예수님의 기적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는 레싱과 유사한 시대에 살았다. 라이마루스의 영향은 철학자들에게 큰 반향을 주었다.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도 라이마루스의 제언에 근거해서 기독교 종교를 재구성할 것을 상상한 것으로 보인다.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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