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삼위일체에 대한 자료
조창훈 목사 페북에서
하나님은 자비하사 칼빈이 삼위일체론을 기독론적-구원론적으로 다루어 성자의 자존성을 확립하고 이단을 타파하게 하셨다
1.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성자의 자존성을 확립하고 종속설을 제거하면서 새로운 신기원을 이루었다
20세기가 시작된 이래 신학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주제는 삼위일체 교리이다. 바르트는 『교회교의학』에서 전체 신학의 구조를 삼위일체적으로 풀어갔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69.
바르트는 성령을 기독론적으로 다루었다. 그러나 칼빈은 부처와 마찬가지로 성령론을 삼위일체론적으로 이해하였다. 유태주, “칼빈이 제시한 성경의 신빙성”, 『칼빈연구 제2집』(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5), 98.
칼빈은 하나님 중심적, 그리스도 중심적, 성령 중심적이었기에, 이것은 곧 칼빈이 철저하게 삼위일체론자였음을 보여준다. I. John Hesselink, “칼빈의 신학”, The Cambridge Companion to John Calvin, 『칼빈 이해의 길잡이』, 한동수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2), 139.
필립 부틴(Philip W. Butin)은 칼빈 신학의 구조는 성부, 성자, 성자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고 본다. Philip W. Butin, Revelation, Redemption, and Response: Calvin’s Trinitarian Undersatanding of the Divine-Human Relationship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5), 21.
종교개혁자 가운데 칼빈 만큼 삼위일체 교리를 깊고 폭넓게 다룬 사람은 없었다. Philip C. Holtrop, 『기독교강요연구핸드북』, 박희석·이길상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3). 61.
종교개혁자 중에서 칼빈이 가장 삼위일체론에 관심이 있었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71.
니케아(325년) 회의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삼위일체 교리가 확정되었다. 그 이후 천년이 넘도록 주목받지 못하였다. 그런데 종교개혁자 칼빈이 여러 이단과 삼위일체 논쟁을 하면서 삼위일체에 관하여 기독교강요를 비롯한 논문에서 잘 정리하였다. 칼빈은 그 이후 삼위일체 교리에 있어서 성자의 자존성(Self-Existence)과 절대적 신성(Absolute Deity)을 주장하면서 새로운 신기원을 이루었다고 평가된다. Benjamin B. Warfield, “Calvin’s Doctrine of the Trinity,” Calvin and Augustine (Philadelphia: Presbyterian & Reformed, 1956), 189-284.
워필드는 칼빈의 삼위일체론이 기독교 교리사의 기념비적인 장을 열어놓았으며 새로운 발전이라고 주장했다.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46.
칼빈은 상호 내주 개념과 삼위일체 각 위격들의 자존성을 결합함으로써, 삼위일체론에서 종속설을 제거시켰다. Kurt Anders Richardson,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과 복음주의 신학』, 김찬영 역(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72.
노이샤텔에서 다른 개혁주의 목사들과 함께 가진 회의에서 칼빈은 "성자에게 없는 것은 성부에게도 전혀 없다"는 키릴의 가르침을 말한다. 그리고 에피파니우스를 따라서 칼빈은 자존성을 그리스도에게로 돌린다. Douglas F. Kelly, “참되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한 칼빈의 교리” A Theologocal Guide to Calvin's Institutes, 『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학』, 오창록 역(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9), 131-132.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보다 앞섰던 에피파니우스(Epiphanius)는 칼빈의 사상에 영향을 준 것이 분명하다. 그에 따르면, 삼위일체의 각 위는 완전하고 온전한 하나님이시다. 그는 종속설을 반대하여 주장하기를 삼위일체의 위격들의 존재는 ‘시작이 없고 시간을 초월하며’ 하나님 안에는 ‘먼저’ 또는 ‘나중’이 없다. Theologocal Guide to Calvin's Institutes, 『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학』, 오창록 역(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9), 131.
칼빈은 성자가 성부로부터 나오셨지만 똑같은 신성을 가지셨으며, 성부와 성자 사이를 구분하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성자와 성령의 자존성과 동등성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 후에, 세 위격이 본질상 지니고 계신 통일성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이것이 칼빈의 삼위일체론이 신론의 발전에 끼친 중대한 공헌이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52-53.
칼빈은 삼신론과 양태론을 비판하였다. 또한 동방신학의 종속설과 성부 우위설에 빠지지 않는 성경적이고, 구원론적인 삼위일체론을 확립하였다.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97.
아버지와 아들은 위격적 특성에 있어서는 구별되나 동일하시고 동등하신 분이시다. 아들은 아버지에게 종속되지 아니하신다. 아버지와 다름없이 아들은 스스로 존재하신다. 문병호, 『기독론: 중보자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604-605.
2.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서방 신학과 동방 신학의 조화를 이루었다
칼빈의 신학이 지닌 중요성과 의의는 어거스틴의 전통과 헬라교부들의 삼위일체 각 위격에 관한 부분, 특히 갑바도기아의 신학자들에게서 훌륭한 결론을 얻었다는 것이다. 두 전통 사이에서 일치점을 찾아내고, 절묘한 종합을 이루었다. T. F. Torrance, "Calvin's Doctrine of Trinity," Calvin Theological Journal 25 (1990): 165-93. idem, "The Doctrine of Trinity, Gregory Nazianzen and John Calvin" Calvin Studies V, ed., John Leith (Davidson: Davidson College, 1990): 7-19. idem, The Hermeneutics of John Calvin (Edinburgh: Scottish Academic Press, 1988).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68.
종전의 삼위일체론은 각 위격들이 성부로부터 어떻게 나오느냐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나 칼빈은 영원 발생과 발출보다 각 위격의 신성을 입증한 후에 관계성을 부각시키고자 하였다.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91.
하나님의 실체와 하나님의 위격을 칼빈이 명쾌하게 구별 한 점에서 그는 삼위일체 신학에 크게 공헌하였다. Douglas F. Kelly, “참되시며 삼위일체이신 하나님: 거룩한 삼위일체에 대한 칼빈의 교리” A Theologocal Guide to Calvin's Institutes, 『칼빈의 기독교 강요 신학』, 오창록 역(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9), 118.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보다 우리와의 관계 또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의지나 속성, 위격들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였다. 박해경,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 192.
칼빈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존재론적으로 설명하기 보다는 그의 사역을 통하여 설명하려고 하였다. 안은찬, 『칼뱅의 목회신학』(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07), 88-89.
칼빈은 새로운 삼위일체론의 패러다임을 형성하였다. 중세 서방 신학자 보에티우스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적인 본질에 대한 연구를 추구했다. 그러나 칼빈은 그보다는 하나님 안에 영원한 실재의 관계 (eternal subsistent relations in God) 에 강조점을 두었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45. 김재성은 subsistent를 본질이라고 번역하였으나, 필자는 실재로 번역한다.
칼빈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의 말을 인용한다. 칼빈에 따르면, 성경은 성부와 말씀,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구별(distinction)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규명함에 있어서 얼마나 경건하고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그 신비의 위대함(the greatness of the mystery)이 경고해 준다.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의 다음과 같은 말은 내게 대단한 기쁨을 주는 구절이다. "나는 즉시 그 셋(the three) 성서서원은 삼위, 단일성으로 인위적으로 의역하였으나 오히려 삼위를 셋으로, 단일성을 하나로 직역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
의 광채에 둘러싸이지 않고는 그 하나(the one)를 상상할 수 없다. 또한 곧바로 그 하나(the one)를 상기하지 않고는 그 셋(the three)을 인식 성서서원은 구별하다로 오역하였으나, 인식하다로 번역해야 한다.
할 수도 없다." Inst. 1.13.17. I cannot think on the one without quickly being encircled by the splendor of the three; nor can I discern the three without being straightway carried back to the one.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사벨리우스주의와 종속설에 대항하여 삼위일체 한 하나님 안에서 각 위격이 서로 동일하며, 분리되지 않고 서로 구별됨을 말하였다. 그들의 강조점은 동일실체보다는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에 강조점이 있었다. J. N. 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London: Adam & Charles Black, 1958), 264.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하나님의 동일실체보다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에 강조점을 두었다. 바실은 ousia를 보편(general 또는 universal)를 hypostasis를 개별들(particulars)로 구별하는 유비를 사용하였다. Basil, The Letters,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vol. VII, ed. Philip Schaff, Henry Wace, 2nd Series, 14 vols (Grand Rapids: Eerdmans, 1956), 771.
일반적으로 서방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본성(일체)에서 출발하고, 동방교회는 삼위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면에서 칼빈은 동방교회의 전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한국칼빈학회, 『칼빈 신학 해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35.
칼빈은 서방교회의 일반적인 전통인 하나님의 본성이라는 ‘일(一)’의 관점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三)’의 문제로 나아간 것이 아니다. 그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성경의 증거를 따라서 먼저 정리한다. 그는 성경에 경륜적으로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사역들을 살피면서, 삼위들의 단일성을 증거한다. 또한 그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수많은 비성경적인 변증을 가하는 전통을 벗어났다. 그는 삼위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호기심이나 사변이 아니라 구원론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강조하였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한국칼빈학회, 『칼빈 신학 해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44.
칼빈은 삼위에서 출발하여 한 본질에 이른다. 칼빈은 순서의 관점에서 성부를 신성의 근원으로 본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동방 신학과 관련하여”, 『칼빈 신학과 목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31.
3. 칼빈은 삼위일체론을 성경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칼빈은 삼위일체가 교회에 속하는 방어적인 교리가 아니라, 성경 자체의 가르침이라고 확신했다. 칼빈은 삼위일체론을 전개함에 있어서 성경적인 근거를 확보하려고 하였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75.
칼빈은 어거스틴의 삼위일체의 흔적에 대한 견해를 반대하였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77.
칼빈에 의하면, 인간과 자연의 유비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설명할 것이 아니라, 성경의 증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78.
칼빈은 신학 역사에서 나타나는 삼위일체에 관한 논리적이고 심리적 증거를 거부한다. 칼빈은 어거스틴의 심리적인 삼위일체론도 거부한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동방 신학과 관련하여”, 『칼빈 신학과 목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21.
James Montgomery Boice는 삼위일체에 대한 가장 훌륭한 예증을 빛, 열, 공기로 들고 있다. James Montgomery Boice, Foundations of the Christian Faith, 『기독교강요 교리설교(상)』,지상우 역(서울: 크리스챤다이제스트, 2000), 139.
그러나 칼빈은 이러한 논증을 반대하였다.
칼빈은 성경을 통하여 삼위일체를 설명하였다. 칼빈이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주석 중의 하나는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마 28:19) 세례 공식이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0.
“성부, 성자, 성자의 이름으로 세례 주라(마 28:9)는 예수님의 명령으로 한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세 인격들이 존재하는데, 그 인격들 안에서 한 하나님이 알려진다.’ ” Inst. 1.13.16. in God's essence reside three persons in whom one God is known)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창 1: 26)에서, 칼빈은 이 구절의 복수형에서 하나님의 한 존재에 하나 이상의 인격이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추론한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0.
“나는 우리가 다른 데서 읽었던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는 말씀과 같이 이 구절은 하나님 안에 삼위가 있음을 지적해 준다는 견해를 찬성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말씀하시고 복수로 계시면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Comm. Isaiah. 6:8.
삼위일체 하나님이 서로 인간 창조를 상의하신다. Comm. Genesis. 1:26.
또 칼빈에 따르면, 이사야 6:8절의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말씀은 하나님 안에 삼위가 있음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과 말씀하시고 복수로 계시면서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창세기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라고 말씀하신다. Comm. Isaiah. 6:8.
세례는 신앙의 성례전이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라는 사실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통일성(the unity of God)을 우리에게 확증해 준다. Inst. 1.13.16.
4. 칼빈은 삼위일체론을 기독론적이며, 구원론적으로 접근한다
워필드는 칼빈이 삼위일체론을 전체 구속 교리의 본질적인 기초로 삼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칼빈은 하나님의 개념 자체에 대한 활력 있고 생동감 있는 교리로서 이해하였다고 주장하면서 이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박해경,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 190.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으로 풀이되었다. 이것은 아타나시우스에게서도 보여졌으며, 서방신학과 동방신학의 삼위일체론에서 간과되어 온 문제점을 바르게 교정한 것이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69.
칼빈은 삼위일체에서 각 위격을 설명하면서 성자의 참된 존재, 영원하심, 신성을 증명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또한 칼빈의 관점은 구원론적이면서 존재론적이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구원론적인 초점을 가지고 있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그 모든 바탕에 구원론적 초점을 가지고 있다. 칼빈의 성경 주석에 나타난 교리 문제들에 정통한 루이 구마 역시 그의 삼위일체론이 구원론적 바탕에 세워졌다는 것을 확인했다.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78-179, 이오갑, "삼위일체론",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99.
칼빈은 삼위일체론을 다루는 장에서 삼위일체론과 엄밀히 관련되어 있지 않는 성육신과 관련된 것들을 많은 절에서 열심히 다룬다. 이것은 칼빈 사고에 있어서 기독론이 언제나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칼빈은 삼위일체에 관한 모든 지식은 기독론적 중재에 기초하여 얻어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한다. Kurt Anders Richardson,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과 복음주의 신학』, 김찬영 역(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72, 76.
칼빈은 삼위일체에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다룬다. 여기서 다루는 칼빈의 관점은 구원론적이면서 존재론적 접근(soteriological and ontological approach)이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48.
칼빈은 하나님이 무엇이냐?(quid sit Deus)가 아니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qualis sit Deus)가 올바른 질문이라고 말한다. T. H. L. Parker, Calvin: An introduction to His thought, 『칼빈신학입문』, 박희석 역(서울: 성약출판사, 2001), 29.
삼위일체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격과 그가 이루어 놓으신 구원의 확실성을 증거한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의 목적은 구원론적이다. 신복윤, 『칼빈의 하나님 중심의 신학』(서울: 합동신학대학원출판부, 2005), 113.
5. 칼빈은 삼위일체론을 반대하는 여러 이단들에 대항하여 반박하였다
1653년 어떤 사람이 청교도 신자인 토마스 카트라이트에게 삼위일체에 관하여 종교개혁 시대의 유명한 이들, 예를 들면 부처와 같은 이들의 작품에 대해서 질문했을 때, 그는 “만일 당신이 그들의 장점만을 취한 칼빈에 대해 관심을 기울인다면 당신은 결코 그들의 작품을 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Ronald S. Wallace, Calvin, Geneva and the Reformation, 『칼빈의 사회 개혁 사상』, 박성민 역(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1995), 322.
칼빈은 자신의 삼위일체론을 완고하고 전투적인 사람들과 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배우고자 하는 자들을 인도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Inst. 1.13.21;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85.
칼빈은 1553년 세르베투스 사건을 겪고, 1554년에 『거룩한 삼위일체에 관한 정통신학의 수호』를 썼다. 이 논문은 1559년 『기독교강요』에 다양한 방식으로 들어간다. 이오갑, "삼위일체론",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83.
칼빈은 그동안 삼위일체 논쟁에서 방어적인 입장이었다. 그러나 세르베투스 사건으로 인하여 그는 공격적으로 바뀌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온순한 사람들을 손잡고 인도하려고 했지, 고집쟁이들과 싸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조용하게 계시되어 왔던 진리를 그 완고한 자들의 악과 싸우면서 수호해야 할 것이다.” 이오갑, "삼위일체론",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83.
* 칼빈의 기독교강요에 나타난 삼위일체론 핵심요약
1. 하나님은 한 본질(essentia)안에 세 위격들(hypostases)로 존재한다. Inst. 1.13.2.
라틴교부들은 위격들이란 표현을 인격들(personas)으로 사용한다. Inst. 1.13.2.
같은 의미로 많은 사람들은 substance(실체)를 썼다. Inst. 1.13.2.
2. substistence(실재)란 표현은 위격(hypostasis)과 같다. Inst. 1.13.6.
3. 하나님의 한 본질(essentia)안에 세 인격들(personas). Inst. 1.13.16.
4. 하나님의 한 본질(essentia)안에, 세 인격들(personas) 또는 세 위격들(hypostases) Inst. 1.13.20.
결론
1. 하나님의 한 본질(essentia)안에 세 위격들(인격들, 실재들, hypostases=personas=substistences)이 존재한다. Inst. 1.13.2.
2. 성부는 순서상(in order) 제 1위이며, 모든 신성과 신격(the whole of divinty and deity)의 시작이다.
* 삼위일체론 라틴어, 영어 용어정리
필자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주석과 논문에 나타난 삼위일체와 기독론, 인간론에 관한 라틴어와 영어용어들을 아래와 같이 통일성 있게 번역하고 정리하고자 한다. 그런데 앞으로 자주 삼위일체론이나 기독론, 인간론을 다룰때 동일한 용어가 반복되므로 정리하였다.
essentia(영어 essence)는 본질로, hypostasis(복수형은 hypostases)는 위격으로, persona(복수형은 personas) , person은 인격으로, subsistentia(영어 substistence)는 실재로, substantia(영어 substance)는 실체로,
deitas(영어 deity)는 신격으로, divinitas(영어 divinty)는 신성으로, unitas(영어 unity)는 통일성으로, trinitas(영어 trinity)는 삼위일체로 번역할 것이다. 또한 영어 separated는 분리로, 영어 distinguished와 distinction는 구별로, 영어 divided, division은 분할로 번역할 것이다.
삼위일체에 관한 용어들은 성경의 증거들을 설명하기 위해 부득이 사용하지만, 견해만 일치하면 없어도 된다
1. 삼위일체에 관한 신학용어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초대교회 교부들은 이단들을 대항하여 삼위일체 교리를 확립하기 위하여 당대의 그리스 철학용어와 개념들을 빌어서 사용하는 것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 James P. Mackey, The Christian Experience of God as Trinity (London: SCM Press, 1983), 105.
터툴리안(Tertullian)이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사람이다. 그는 이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라틴어로 trinitas를 사용하였다. Louis Berkhof, The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s (Edinburgh: Banner of Truth Trust, 1937), 83.
칼빈은 삼위일체에 관한 신학용어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단자들은 ‘인격(person)’라는 말에 대하여 악담을 토하고 또한 어떤 까다로운 사람들은 그 말이 인간의 마음에서 나온 말이기 때문에 그대로 인정할 수 없다고 부르짖고 있지만, 그러나 ‘삼위가 존재한다는 것과 이 삼위의 각자가 바로 완전히 하나님이시라는 것, 그러면서도 하나님은 한 분 이상은 아니시다라’는 우리의 확신을 결코 허물어뜨릴 수 없다. 그러므로 성경이 증거하며 성경이 보증하는 바를 설명하는 데 지나지 않는 그 용어들을 부인한다는 것은 얼마나 사악한 일인가? 분쟁과 논쟁의 온상이 될지도 모르는 외래어를 유포시키는 것보다는 차라리 성경의 테두리 안에 우리의 사상과 용어를 제한시키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라고 저들은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외래어가 유포되면 우리는 말의 논쟁으로 극도로 지치게 되고 언쟁으로 진리를 상실하게 되어, 마침내는 추악한 말다툼으로 사랑을 파괴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한 마디 한 마디가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말과 다르다고 해서 모두 외래어라고 한다면, 그들은 실로 부당한 법칙을 부과하여 성경의 구조에 맞추지 않은 성경 해석을 전적으로 정죄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저들이 말하는 소위 "외래어"라는 것이, 신기하게 고안되어 미신적으로 변호되고 건덕(edification)보다는 논쟁을 일으키며 불순하고 무익하게 사용되고 또 거친 말투가 경건한 자들의 귀를 거스리게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의 단순함(the simplicity of God's Word)에서 떠나게 하는 그런 것이라고 한다면, 나는 진심으로 저들의 건전한 의견을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관하여 말할 때에도 하나님에 관하여 생각할 때와 마찬가지로 경건한 마음으로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은 언제나 어리석으며,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모두 불합리한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어떤 표준(some measure)이 유지되지 않으면 안된다. 즉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의 확실한 규범(a sure rule)을 성경에서 찾고, 마음의 생각과 입으로부터 나오는 일체의 말을 여기에 순응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해하기 어렵고 난해한 성경의 내용들을 보다 명백한 말로 설명하는 것을 누가 못하게 하겠는가? 그러나 그 설명은 성경 자체의 진리를 성실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며, 겸손하고 조심스럽게 그리고 적당한 때에 사용해야 한다. 이 일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실례가 충분히 있다. 더욱이 교회가 ‘삼위일체(Trinity)’와 ‘위(Persons)’라는 말을 전적으로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입증된 것은 바로 이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만일 어떤 사람이 이들 용어가 새로운 것이라 하여 비난한다고 하면, 그러한 사람은 마땅히 진리의 빛을 무가치하게 만든 자로 정죄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진리를 쉽고 명백하게(plain and clear) 하는 그 용어를 그는 비난하고 있기 때문이다.” Inst. 1.13.3. three are spoken of, each of which is entirely God, yet that there is not more than one God.
2. 삼위일체 용어는 부득이 사용하게 되었지만, 견해만 일치한다면 없어도 된다
칼빈은 삼위일체론에서 단어들의 중요성을 인식한다. 그러나 신학적인 용어의 한계를 인정하며, 더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사실 그 자체”(res ipsa)라고 말한다. “용어에 대한 논쟁은 그만두고 사실 자체로 들어가자” Inst. 1.13.6; 박해경,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 203.
칼빈은 삼위일체의 내용만 동의한다면, 용어나 음절에 대해서는 자유를 주장하였다. 용어 자체에 대해서 강요한다면 이것을 “학정”이라고 표현했다. 이오갑, "삼위일체론",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80.
칼빈은 삼위일체와 같은 용어들이 꼭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에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성경에 나오는 말을 한마디 한마디 따다가 만들어지 않는다고 해서 설교들을 전부 정죄한다는 것이다.” 이오갑,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97.
“그러므로 이러한 용어들이 근거 없이 경솔하게 창안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들 용어들을 배척함으로써 경솔하고 교만하다는 비난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다. 실로 나는 모든 사람들의 신앙이 성부, 성자, 성령이 한 분 하나님이시나 성자는 성부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그들 각자는 서로가 어떤 특성에 의하여 구별된다고 하는 이 한 점에 일치하게 된다면, 이 용어들은 매장시켜도 좋다고 생각한다.” Inst. 1.13.5.
칼빈은 삼위일체 용어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는다. “실로 나는 단순한 용어에 집착하여 완강하게 싸울 정도로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주 경건하게 이 문제를 취급한 고대의 교부들도 서로가 일치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그들 개인적으로도 일관된 견해를 유지하지 못한 것을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Inst. 1.13.5.
“어거스틴도 이와 같은 중대한 문제를 논하기에는 인간의 말이 빈곤하기 때문에 ‘히포스타시스(hypostasis)’라는 용어를 부득이 사용하게 되었으나 이러한 용어로는 하나님께서 어떠한 분이시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고 다만 성부, 성자, 성령이 어떻게 셋인가(how Father, Son and Spirit are three)에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 강요된 것이었다고 말하였다.” Inst. 1.13.5.
3. 칼빈은 삼위일체를 표현하는 데 “존재방식” 같은 표현을 반대한다
가이사랴의 바실과 니사의 그레고리는 성령의 위격은 단지 성부 하나님의 다른 존재 방식(mode of being)이라고 표현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이러한 설명을 반대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칼빈은 바르트도 반대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79.
칼빈은 ‘위’를 ‘실재’라는 말로 정의한다. 성부, 성자, 성령은 구별되지만, 실재하는 구별이라는 뜻이다. 칼빈은 동방교부 중에서 바실리우스와 니사의 그레고리가 ‘존재방식’으로 정의하는 전통을 따르지 않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를 따르고 있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한국칼빈학회, 『칼빈 신학 해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37, 147.
칼빈은 삼위일체에서 각 위격의 동등성을 강조한 후에 본질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칼빈은 삼위일체에 대해서 말하면서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의 말을 인용한다. 칼빈에 따르면, 성경은 성부와 말씀, 그리고 말씀과 성령을 구별(distinction)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규명함에 있어서 얼마나 경건하고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가를 그 신비의 위대함(the greatness of the mystery)이 경고해 준다. 그리고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Gregory of Nazianzus)의 다음과 같은 말은 내게 대단한 기쁨을 주는 구절이다. "나는 즉시 그 셋(the three)의 광채에 둘러싸이지 않고는 그 하나(the one)를 상상할 수 없다. 또한 곧바로 그 하나(the one)를 상기하지 않고는 그 셋(the three)을 인식할 수도 없다." Inst. 1.13.17. I cannot think on the one without quickly being encircled by the splendor of the three; nor can I discern the three without being straightway carried back to the one.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사벨리우스주의와 종속설에 대항하여 삼위일체 한 하나님 안에서 각 위격이 서로 동일하며, 분리되지 않고 서로 구별됨을 말하였다. 그들의 강조점은 동일실체보다는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에 강조점이 있었다. J. N. 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London: Adam & Charles Black, 1958), 264.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하나님의 동일실체보다 서로 구별되는 세 위격에 강조점을 두었다. 바실은 ousia를 보편(general 또는 universal)를 hypostasis를 개별들(particulars)로 구별하는 유비를 사용하였다. Basil, The Letters, in Nicene and Post-Nicene Fathers, vol. VII, ed. Philip Schaff, Henry Wace, 2nd Series, 14 vols (Grand Rapids: Eerdmans, 1956), 771.
일반적으로 서방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본성(일체)에서 출발하고, 동방교회는 삼위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면에서 칼빈은 동방교회의 전통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한국칼빈학회, 『칼빈 신학 해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35.
칼빈은 서방교회의 일반적인 전통인 하나님의 본성이라는 ‘일(一)’의 관점에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삼(三)’의 문제로 나아간 것이 아니다. 그는 성자와 성령의 신성을 성경의 증거를 따라서 먼저 정리한다. 그는 성경에 경륜적으로 나타난 삼위 하나님의 사역들을 살피면서, 삼위들의 단일성을 증거한다. 또한 그는 삼위일체에 관하여 수많은 비성경적인 변증을 가하는 전통을 벗어났다. 그는 삼위 하나님을 소개하면서 호기심이나 사변이 아니라 구원론적이고 실천적인 지식을 강조하였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한국칼빈학회, 『칼빈 신학 해설』(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0), 144.
칼빈은 삼위에서 출발하여 한 본질에 이른다. 칼빈은 순서의 관점에서 성부를 신성의 근원으로 본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동방 신학과 관련하여”, 『칼빈 신학과 목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31.
칼빈은 성자가 성부로부터 나오셨지만 똑같은 신성을 가지셨으며, 성부와 성자 사이를 구분하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는 성자와 성령의 자존성과 동등성을 먼저 강조한다. 그런 후에, 세 위격이 본질상 지니고 계신 통일성을 동시에 강조하였다. 이것이 칼빈의 삼위일체론이 신론의 발전에 끼친 중대한 공헌이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52-53.
성령은 하나님 안에 한 인격이시며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나오신다(필리오케)
1. 성령은 하나님 안에 참으로 존재하는 한 인격이시다
칼빈은 성령의 신격(the deity of the Spirit)에 관하여 여러 증거로 말한다. Inst. 1.13.14.
고전 3, 6장, 고후 6장은 우리를 하나님의 전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또한 우리를 성령의 전이라고 하므로 성령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한다. 또한 행 5장에 의하면 성령을 속인 것을 하나님을 속인 것으로 말하고 있다. 또한 성령에 대한 거역(마 12 : 32, 막 3 : 29, 눅 12 : 10)의 죄가 용서받지 못할 것을 말하고 있다 Inst. 1.13.15.
“성령은 모든 은사의 시초요 원천일 뿐만 아니라 그 창시자”이기도 하다. Inst. 1.13.14. the beginning or source, but also the author.
“성령은 하나님 안에 참으로 존재하는 한 인격이시다.” Comm. Acts. 13:2. he is a person truly subsisting in God.
“성령은 전체 본질의 한 위격이다.” Inst. 1.13.20. the Spirit is a hypostasis of the whole essence.
“성령은 하나님 안에 위격적으로 거하신다.” Inst. 1.13.14. He resides hypostatically in God.
2. 성령은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나오신다(필리오케)
칼빈은 필리오케, 즉 성령은 아버지와 또한 아들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인정했다. 이것을 기독교강요 1권 13장 18절에서 말한다. “아들은 오직 아버지에게만 나오시고; 성령은 동시에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고 말해진다”. Calvin, Institutio, 1.13.18. the Son is said to come forth from the Father alone ; the Spirit, from the Father and the Son at the same time.
칼빈은 “filioque”(필리오케, and the Son, 그리고 아들)라는 서방의 전통을 따라 '필리오케'를 재확인하였다. Kurt Anders Richardson,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과 복음주의 신학』, 김찬영 역(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74;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80.
필리오케라는 말은 기독교강요 최종판에서 딱 한번 사용하였다. 그러나 칼빈은 이 말에 교리적 문제가 거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500.
칼빈은 발출에 대한 “증거”가 다수의 신약성경 본문들 속에 암시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1.
칼빈은 동방교회가 성령이 아들로부터 오신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은 경솔하다(frivola)고 주장하였다. 박해경, 『칼빈의 기독론』(서울: 아가페문화사, 2004), 300.
웨스트민스터 신조는 성령의 보내심에 관하여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영원토록 나오신다”고 하였다. 박해경, 『칼빈의 기독론』(서울: 아가페문화사, 2004), 300.
성부는 신격(deity)의 시작이며, 질서와 지위에서 신성의 시작이다
* 고경태는 deity를 '신성'으로 divinity는 '신격'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deity와 divinity는 모두 신성과 신격으로 교차 번역되고 있습니다. Godhead가 deity와 divinity로 변용되어 사용하기 때문에 명료한 구분이 쉽지 않습니다. divinity = godhood, deity = godhead로 The definition of divinity in the dictionary is the nature of a deity or the state of being divine. "신과 신성 (Deity and Divinity)"으로 번역되는데, 신성(神性, deity 또는 divinity) 신(神: god, deity, divinity) 신학자들은 예수의 deity보다는 예수의 divinity라고 말하기를 좋아했다. 신적인 속성(Divinity)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과 본질 자체를 가리키는 “신성”(Deity)이다. God is; divinity refers to having the attributes of God .. theótēs Deity, Godhead as directly revealed, God's personality (Col. 2:9), as distinguished from theiótēs in Rom. 1:20, divinity or divine power and majesty, a concept arrived at by observing God's mighty works.
"one God in three divine persons" (God the Father, God the Son and God the Holy Ghost)
deitas Coined by Augustine of Hippo from deus (“god”), after dīvīnitās (“divinity”). (위키)
deitas et divinitas
[참고] http://bbs.catholic.or.kr/homem/bbs_view.asp?num=175&id=29842&mwtype=S&menu=question_and_answer
Godhead(신성), divinity(신성), deity(하느님)의 차이점(???)에 대하여
bbs.catholic.or.kr
어거스틴은 성부가 모든 신격(all deity)의 시작이라고 말하였다. Inst. 1.13.29.
칼빈도 “성부가 신격(deity)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Inst. 1.13.26.
경륜적 삼위일체 측면에서 칼빈은 성부 하나님을 “모든 활동의 시작과 만물의 원천과 근원”으로 간주한다. 칼빈은 훨씬 더 빈번하게 ‘원리와 근원’(principium et origo)이나 ‘원천(fons et scaturigo)이라는 표현들을 성부에 대해 사용한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8-499.
성부를 시작이라 말하는 것은 칼빈의 특징적인 표현이다. 칼빈은 성자와 성령의 시작의 측면에서, 신성의 시작 또는 성부의 우선성을 설정한다. Kurt Anders Richardson,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과 복음주의 신학』, 김찬영 역(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84.
칼빈은 삼위 안에 있는 합당한 질서를 말한다. 그런데 니사의 그레고리가 아니라 어거스틴을 직접 인용한다. 게다가 성부가 신성의 근원이라고 불려지는 것은 양대 교회의 공통적인 유산이라고 여겨진다. 그런데 이 입장은 성부의 위격에서 시작하는데, 이것은 본질에서 시작하는 것과는 다르다. 성부는 본질을 수여한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순서상 신성의 근원이시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동방 신학과 관련하여”, 『칼빈 신학과 목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27.
칼빈에 따르면, 성부는 신격의 원천이시며 시작(the fountainhead and beginning of deity)이시다. 그러나 성부가 성자와 성령에게 본질의 수여자(essence giver)로서 신격(deity)을 주입하신 것이 아니다. 성부만이 아니라, 성자도 하나님이시다. 이것은 본질의 단순한 통일성(the simple unity of essence)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성부만이 진실로 또한 당연히 유일한 하나님이시며 이 하나님께서 성자와 성령을 지으시고 이들에게 자신의 신격(deity)을 주입하셨다고 해석하였다. 실로 저들은 이 가공스런 말을 삼가지 아니하고, 여전히 성부만이 유일한 "본질의 수여자(essence giver)"이시며 이와 같은 특징 때문에 성부는 성자와 성령과 구별되신다(is distinguished from)고 주장하였다. 그들의 그 가식적인 논증의 최초의 주장점은, 그리스도께서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불리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사실에서, 바로 말해서 성부만이 하나님이시라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더욱이 그들은 "하나님"이라는 명칭이 성자에게도 공통으로 적용되지만 성부가 신격의 원천이시며 근원(he is the fountainhead and beginning of deity)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보다 우월하므로 탁월한 방법으로 성부에게 이 명칭이 적용되었으며, 또한 이것은 본질의 단순한 단일성(the simple unity of essence)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보지 못하였던 것이다.” Inst. 1.13.23.
칼빈은 성부는 질서와 지위에서 신성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부가 성자의 신격의 원작이기나 한 것처럼 하나님의 본질이 성부에게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질서와 지위에 있어서 신성의 시작(in respect to order and degree the beginning of divinity)이 성부에게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치 성부가 성자의 신격의 원작자(the deifer of the Son)이기나 한 것처럼 본질이 성부에게만 적당하다(it is a destable invention that essence is proper to Father alone)고 생각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행위라고 단정한다.” Inst. 1.13.24.
칼빈은 성부는 질서상 처음(first)이시며, 성자를 낳으셨기 때문에 전체 신성의 시작과 원천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성부는 질서상 처음이시며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자신으로부터 자기의 지혜를 낳으셨기 때문에, 모든 신성의 기초가 되시며 원천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Inst. 1.13.25. but inasmuch as the Father is first in order, and from himself begot his wisdom, as has just been said, he is rightly deemed the beginning and fountainhead of the whole of divinity.
하나님의 한 본질(One Essence)은 세 인격들(Three persons)을 포함하고 있다
1. 하나님의 본질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신비이다
하나님의 본질은 인간의 이해를 뛰어넘는 신비이다. 아무리 인격적인 용어를 동원한다 하더라도 정확히 묘사할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 말하기를 아주 싫어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오직 위격들을 통해서 안다고 강조하였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44.
칼빈은 하나님 중심적인 삶과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의 본질을 알려고 하지도, 가르치려고 하지도 않았다. 이오갑, "칼뱅의 신-초월과 임재의 변증법적 하나님",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20.
2. 인격은 비공유적 속성을 가지고 하나님의 본질 안에서 구별되는 실재이다
칼빈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와 아타나시우스 신조에 애정을 갖고 동조했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85.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사실상 아타나시우스 신조의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칼빈의 사상의 독창성은 삼위일체 용어인 ‘위격’을 설명할 때 나타난다. 라틴 교부들이 그리스어의 'hipostase'를 번역한 'persona'를 칼빈은 'subsistentia'라고 표현한다. 이 subsistentia는 “삶, 생활, 생존”을 의미한다. 칼빈은 subsistentia을 프랑스어 판에서는 ‘résidence’로 번역했다. 이것은 거주, 체류라는 뜻이다. 즉 그는 삼위일체의 위격을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있다. 이오갑, "삼위일체론",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95.
폴 오웬은 로버트 레이몬드의 1998년도 조직신학에 나타난 칼빈 해석을 비판하면서 칼빈의 삼위일체론이 니케아 신조와 정통 교부들의 신학과 다른 것이 아니라 그대로 계승된 것으로 주장한다. 박해경,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 195.
칼빈은 “인격은 비공유적 속성(proprietas incommunabilis)으로 상호 관계 하에 구별되는 하나님의 본질 안에 있는 실재(subsistentia)이다”라고 정의한다. 칼빈에게 각 위격은 구별된다. 그러나 이 구별은 실재하는 구별이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동방 신학과 관련하여”, 『칼빈 신학과 목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15.
칼빈은 "인격(Person)"은 하나님의 본질 안에 "실재"를 의미한다고 말한다. ”내가 말하는 인격(personam; person)라는 말은 하나님의 본질(essentia; essence)안에 실재(subsistentiam; subsistence)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것은 다른 실재와 서로 관계를 가지면서도 교통할 수 없는 특성(proprietate incommunicabili; incommunicable properties)에 의하여 저들과 구별된다(distinguitur; is distinguished). 우리가 의미하는 실재(subsistentiae; subsistence)라는 말은 본질(essentiam; essence)이라는 말과는 다른 어떤 것을 의미하는 말이다.“ Inst. 1.13.6.
각 위격은 하나님의 전 실체를 가지신다. 즉 실체에 있어서는 동일본질이시다. Inst. 1.13.2,6; 문병호, 『30주제로 풀어쓴 기독교강요』(서울: 그리심, 2009), 63.
칼빈은 성부, 성자, 성령 사이의 내적 관계를 영원한 관계로서 말한다. 그는 삼위 사이에는 ‘경륜’(economy), ‘세대’ (dispensation), ‘성질’ (disposition)이라는 용어를 자주 채택하였다. 창조와 구원의 사역에서 각각의 위격들은 독특한 역할을 감당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용어들은 모두 다 위격들의 영원한 신비적 교류와 공유를 표현하려는 단어였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60.
칼빈은 삼위의 구별된 특성들에 대하여 “구별들”(distinctiones), “특성들”(proprietes), “상호 관계들”(relationes)의 개념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하였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6.
칼빈은 말한다. ”만일 ‘말씀’이 단순히 하나님일 뿐 아무런 특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면, 말씀이 항상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요 1:1)라고 한 요한의 말은 잘못된 말이 될 것이다. 그 즉시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고 첨가하였는데, 그는 여기서 우리에게 통일성으로서 본질(the essence as a unity)을 상기시켜 준 것이다. 그러나 말씀이 성부 안에 계시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함께 계실 수 없기 때문에 여기에서 실재(subsistentia; subsistence)의 관념이 명백해진다. 즉 실재는 본질과 밀접하게 결속되어 있어 본질과 분리될 수는 없지만, 그러면서도 본질과 구별되는 특수한 표지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세 실재(tribus subsistentiis; three subsistences)는 상호 관계를 맺고 있으면서도 특별한 특성에 의하여 서로 구별된다(Now, of the three subsistences I say that each one, while related to the others, is distinguished by a special quality)고 말하는 것이다. 이 관계(relation)는 여기서 분명하게 표현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 관하여 단순하게 또는 막연하게(indefinita, indefinate) 언급할 때에는 이 말은 성부 못지 않게 성자와 성령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부와 성자가 대조될 때에는, 언제나 각자의 성격(character of each)에 의해 상호 구별되는 것이다. 셋째로, 개별적으로 각자에게 고유한 것(whatever is proper to each individually)은 어떤 것이라도 전달될 수 없는 것(incommunicabile; incommunicable)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왜냐하면, 성부에게 속한 구별의 표지(as a distinguishing mark)는 성자에게 속하거나 성자에게 옮겨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 안에는 본질의 통일성(essentiae unitate; the unity of essence)에 영향을 주지 않는 일종의 분배 혹은 경륜(distribution or economy)이 있다고 하는 터툴리안(Tertullian)의 정의를 올바르게만 이해한다면 나는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Inst. 1.13.6.
3. 하나님의 한 본질 안에 세 인격들이 존재한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1559년 『기독교강요』에서 완결된다. 이 책은 그동안 초판과 그 이후의 판들과 논쟁들과 설교들, 그리고 산발적으로 주장되었던 것들의 종합이었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하나님의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이 있다”는 것이다. 칼빈의 삼위일체론은 기독교강요 최종판에서 완결된다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오갑, "삼위일체론",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93.
칼빈은 그의 삼위일체론의 요약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을 『기독교강요』(1559) 제 1권 13장의 제목에서 말하였다. “성경 안에서, 창조 이래로, 우리는 하나님의 한 본질(One Essence), 이것은 세 인격(Three persons)을 포함하고 있다고 가르침을 받았다.” Inst. 1.13.제목. Unicam Dei essentiam ab ipsa creatione tres in Scripturis, quae tres in se personas continet.
라틴 교부들은 인격 또는 위격을 의미하는 그리스어의 hipostase를 persona(인격)로 번역하였다. 칼빈은 이것을 다시 subsistentia(실재)라고 표현한다. 이오갑,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95.
칼빈에 따르면, 하나님의 본질은 우시아(ousia)로서 essence, 라틴어로 essentia이며, 각 위격은 휘포스타시스, hypostasis이다. 칼빈은 본질과 위격을 명확히 구별하였으며, 용어를 정리하였다.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80-181.
칼빈의 삼위일체론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본질(헬라어로 ousia; 라틴어로는 essentia; 영어로 essence)과 각 위격(hypostasis, 휘포스타시스) 간에 명확한 구별을 제시하고 있는 점이다. 칼빈에 따르면, 삼위의 각각의 인격이란 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서 (in Dei essentia) 내재적인 위격 (hypostasis), 혹은 실재이며 (subsistence, 라틴어로는 subsistentia), 서로 간의 관계에 있어서 다른 인격과는 전적으로 구별되며, 서로 바꿀 수 없는 독특한 요소를 갖고 있다는 말이다. 이 때에 ‘실재’ (subsistence)라는 의미는 ‘존재’ (being)라는 용어와는 좀 다른 말로 쓰여 졌는데, ‘존재’와는 분리할 수 없는 용어이지만, 존재와 연관을 갖고 있는 한 위격이라는 말로 이해되어진다. ‘수브시스텐티아’라는 말은 존재 내에 있는 관계성을 드러내는 단어이며, ‘에센티아’라는 말은 존재 그 자체 (esse in se ipso, a se ipso)를 의미하는 단어이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50.
칼빈은 하나님이 세 분이라는 견해와 세 인격들로 찢어졌다는 오류를 막기 위해 짧고 쉬운 정의를 찾도록 노력한다. Inst. 1.13.2.
칼빈이 설명하는 삼위일체 교리는 ‘세 인격으로 역사하시는 한 분 하나님, 혹은 한 분 안에 존재하는 세 인격들’이다.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45-46.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유일하신 분이시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동시에 명백하게 자신이 세인격들로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신다." Inst. 1.13.2. For he so proclaims himself the sole God as to offer himself to be contemplated clearly in three persons.
“우리는 위를 본질에서 분리시키지 아니하고, 오히려 삼위를 구별하되 그 각자가 본질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도록 한다는 사실이다.” Inst. 1.13.25. we do not separate the persons from the essence, but we distinguish among them while they remain within it.
칼빈에 따르면, 성부와 성자는 서로 다른 어떤 실재(subsistence)이다. 위격(hypostasis)이라는 말은 본질(essence)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본질은 단일하시며 분할되지 않는다(the essence of God is simple and undivided). 성부와 성자는 각각의 위격(hypostasis)이 있으며, 서로 구별(distinguishes)된다. 그러나 이것은 본질의 구별(distinction of essence)이 아니다. 하나님 안에 세 위격들이 있다(there are in God three hypostases). 라틴 교부들은 이 말을 "인격"(person)이라는 말로 표현했는데, 이 말을 직역하기 원한다면 "실재"(subsistence)라는 말로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와 똑같은 의미로 "실체"(substance)라는 말을 사용하였다. "인격"이라는 말은 라틴 교부들만이 아니라 희랍의 교부들도 사용하였는데, 아마 이 교리에 동의한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용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 안에 세 "프로소파"(prosopa, 얼굴)가 존재한다(there are three prosopa in God)고 가르쳤던 것이다. 희랍의 교부들이나 라틴 교부들은 비록 용어상으로는 어떤 차이점이 있겠지만, 그 본질적인 문제(essntial matter)에 있어서는 완전히 일치 하고 있는 것이다. Inst. 1.13.2.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그리스도는 육신으로 나타난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신성(the eternal Divinity of Christ)을 가지고 계신다.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구별되는 위격(hypostasis)이다. 그는 하나님 안에서 그에게 특별한 어떤 실재(some kind of subsistence peculiar to himself in God)를 갖고 있다. 초대교회 저자들은 ‘하나이면서 단순한 하나님의 본질 안에, 세 위격들 또는 세 실재들, 또는 세 인격들이 계시다(there are three Hypostases, or Subsistences, or Persons, in the one and simple essence of God)고 말했다.’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신성한 본질(Christ’s divine essence)에 의심을 남기지 않도록,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같은 본질에 속한 분이라(Christ is of the same essence with the Father)고 선언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그리스도의 영원한 본질(his eternal essence)에 의심을 가질 수 없다.” Comm. John. 1:1.
“하나님의 본질은 단일하시며 분할되지 않는다.” Inst. 1.13.2. the essence of God is simple and undivided.
“하나님 안에 세 위격들이 있다.” Inst. 1.13.2. there are in God three hypostases.
“하나님 안에 세 얼굴들이 존재한다.” Inst. 1.13.2. there are three prosopa in God.
정리한다면, 칼빈은 하나님의 한 본질(ousia; essentia; essence) 안에 세 인격들(위격들; persons; hypostases)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인격을 의미하는 용어들을 헬라교부들은 hypostasis로 사용하였고, prosopa도 사용하였다. 라틴교부들은 주로 persona로 표현하였다. 칼빈은 이것을 subsistentia로 번역하였다. 즉 hypostasis, prosopa, persona, subsistentia는 인격을 의미하는 같은 용어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의미하는 용어는 essentia이다. 단지 주의할 것은 나중에 essentia와 같은 의미를 지닌 substantia를 당시에 교부들은 인격을 의미하는 용어로 사용하는 혼동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4. 하나님의 본질은 세 위격들이 상호내주하신다(내재적 삼위일체)
갑바도기아 교부들은 삼위일체는 영원 속에서 존재하고 있음을 주목하였다. 유출로 보지 않았다. 하나님의 본질(우시아)은 하나이며, 삼위는 휘포스타시스에서 발견된다고 보았다. 서로 다른 위격들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원인관계에서 그 발생과 기원을 중심으로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들은 성부는 무출생이며, 성자는 성부로부터 출생했으며, 성령은 성부로부터 발출했다고 주장했다. 하나님의 본질은 위격들이 상호점유, 혹은 상호교류, 상호순환으로 번역되는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라는 헬라어를 사용하였다. 이것은 라틴어로는 써큐민쎄시오(circuminsessio)이다.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55.
동방의 교부들은 상호내주(perichoresis, 페리코레시스)라는 개념을 사용하였다. 칼빈은 이 개념을 사용하여 내적인 통일성을 확보하고자 하였다. 칼빈에 따르면, 삼위는 각각 구별된 하나님이시지만, 서로가 상호 내주의 관계를 통하여 하나로 연합되어 있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79.
하나의 나누어질 수 없는 신성 안에서 상호 내주하는 인격적인 관계들 혹은 실재들이라는 칼빈의 사상은 삼위일체론에 있어서 그의 가장 중요한 공헌이다. 박경수, 『교회의 신학자』(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04), 181.
칼빈은 “단일체 안에서”(in solidum)이라는 용어를 채용하여 삼위 사이에 서로 아무런 가등이나 차별이나 분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이 표현을 통하여 칼빈은 삼신론자의 위험을 견제하였다. 한 하나님 안에서 본래적으로 상호 인격적인 결합(cohension)이 되어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Inst, 1.13.2: "quorum quisque in solidum sit Deus." I.13.23: "in solidum patris et filii sit communis." 김재성, “칼빈의 삼위일체론, 그 형성과 독특성과 중요성”, 한국칼빈학회, 『칼빈연구』 창간호(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4), 61, 김재성, 『성령의 신학자 존 칼빈』(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93-194.
칼빈은 성자가 성부 그리고 성령에게 참여하는 내재적 삼위일체 관계에서 각 위격들을 강조하였다. Kurt Anders Richardson, “칼빈의 삼위일체론", 『칼빈과 복음주의 신학』, 김찬영 역(서울: 부흥과 개혁사, 2011), 77.
내재적 삼위일체 측면에서, 칼빈에 따르면, 성부는 아버지이시며, 발생하신 분이 아니시다. 또한 성부는 영원부터 성자를 발생하시고, 성자와 함께 영원부터 성령을 발출하시는 분이시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9.
칼빈은 이른바 내재적 삼위일체론과 경륜적 삼위론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유해무, “삼위일체론: 동방 신학과 관련하여”, 『칼빈 신학과 목회』(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99), 24.
“성부에게는 활동의 시초 및 만물의 원천과 기원을 돌리고, 성자에게는 지혜와 모략 및 만유를 질서 있게 배열하시는 분으로 돌리고, 성령께는 그러한 활동의 권능과 효력을 돌린다.” Inst. 1.13.18. It is this: to the Father is attributed the beginning of activity, and the fountain and wellspring of all things; to the Son, wisdom, counsel, and the ordered disposition of all things; but to the Spirit is assigned the power and efficacy of that activity.
칼빈은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공유함을 말하며, 성부와 성자, 또는 성부와 성령이 함께 언급될 때에는 성부에게 하나님의 호칭이 적용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본질의 통일성과 각 위격의 순서가 유지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절제를 사랑하며 믿음의 분량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은 알아두면 유익한 것을 다음과 같은 간단한 형식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자. 즉 우리가 한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할 때, 그 하나님의 이름 아래서 하나이며, 단순한 본질로 이해되는데, 이 안에서 우리는 세 인격들 또는 세 위격들을 이해한다(when we profess to belive in one God, under the name of God is understood a single, simple essence in which we comprehend three persons or hypostases).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이 특수화함 없이 언급될 때, 이 명칭은 성부를 지칭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성자와 성령 또한 지칭한다. 그러나 성자가 성부와 연합될 때 양자는 상호 관계를 가지게 되기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위(位)들의 사이를 구별해 내는 것이다. 그러나 인격들 안에 고유한 특성들은 그들 안에서 하나의 질서를 수행한다(the peculiar qualities in the persons carry an order whithin them) 예를 들면, 성부에게 시작과 근원이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부와 성자, 혹은 성부와 성령이 동시에 언급될 때, 하나님이라는 명칭은 언제나 성부에게 특별히 적용된다. 이와 같이 하여 본질의 통일이 보존되고 그 정당한 순서가 유지된다(unity of essence is retained, and deity of the Son and the Spirit). 그렇다고 이것이 성자와 성령의 신격(deity)을 조금도 손상 시키는 것은 아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이 여호와라고 증거한 하나님의 아들이 바로 그리스도라고 사도들이 주장하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위에서 확실히 보았기 때문에, 항상 본질의 통일성(the unity of essence)으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성자를 가리켜 성부와 다른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것은 가증스러운 신성 모독죄가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단순한 명칭(the simple name of God)은 어떠한 상관관계도 허락하지 않으며, 따라서 하나님은 자신에 대하여 이런 하나님이다 또는 저런 하나님이다 하는 식으로 불릴 수가 없기 때문이다.” Inst. 1.13.20.
5. 성부와 성자는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칼빈은 성부와 성자의 인격의 구별과 본질의 통일성을 말한다. 성부는 오직 성자의 계시에 의해서만 알 수 있다.
칼빈은 히브리서 1장 2절 주석에서 성부와 성자의 인격적 구별과 본질의 통일성을 말한다. “인간들에 관해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 자신에 관해서도,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인격적인 구별이 있다(there is a difference of persons between the Father and the Son). 그러나 본질의 통일성은 신격에 특별한 것은 무엇이든지 아들과 아버지에게 속한다는 것과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모두 양자에게 속한다는 것을 요구한다(the unity of essence requires that whatever is peculiar to Deity should belong to the Son as well as to the Father, and also that whatever is applied to God only should belong to both). 그러나 어떤 것도 이 통일성 안에서 각자에게서 그 자신의 특별한 속성들을 막는 것은 없다(there is nothing in this to prevent each from his own peculiar properties).” Comm. Hebrews. 1:2.
칼빈은 요한복음 17장 5절 주석에서도 성부와 성자의 인격의 구별과 본질의 통일성을 말한다. “ ‘이 구절에 그리스도의 인격과 아버지의 인격 사이의 명백한 구별이 나타난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하나님이실 뿐만 아니라, 그는 하나님의 영원하신 말씀, 모든 시대 이전에 아버지에 의해 나신 분이시다.” Comm. John. 17:5. a manifest distinction between the person of Christ and the person of the father is here expressed.
칼빈은 요한일서 2장 23절 주석에서도 성부와 성자의 인격의 구별과 본질의 통일성을 말한다. “성부는 성자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은 우리의 종교의 제일 첫째 가는 원리(the first axioms of our religion)이다. 두 번째 조항(his second article)은 성부는 그리스도 안에서 알려진 자 이외의 다른 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Comm. 1 John. 2:23.
칼빈은 히브리서 1장 3절 주석에서 성부와 성자의 인격의 구별과 본질의 통일성을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한 본질(the same essence)을 가지고 있다......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아들과 아버지는 구별되는데, 하나의 실재 또는 인격은 양자에게 속한다’는 것을 배운다.” Comm. Hebrews. 1:3. we hence learn that the Son is one God with the Father, and that he is yet in a sense distinct from him, so that a subsistence or person belongs to both.
“그 본질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전체적으로 그리고 완전하게 공통이다.” Inst. 1.13.23. the essence is wholly and perfectly common to Father and Son.
6. 성자와 성령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칼빈은 말씀과 성령은 하나님의 본질, 하나님의 실체(the very essence of God, the substance of God)이라고 말한다. Inst. 1.13.16.
칼빈은 “삼위일체에 있어서 사단은 두 가지 즉 성자와 성령의 신적 본질(the divine essence of the Son and the Spirit)이나 또는 그 인격들의 구별(the distinction of the persons)에 대하여 커다란 분쟁을 선동하여 왔다”고 주장한다. Calvin, Institutio, 1.13.21.
7. 성부, 성자, 성령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성부, 성자, 성령은 구별되나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나 각 위격은 각 위격의 독특한 특성들을 공유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님의 통일성과 각 위격의 특성을 말해준다.
칼빈은 말한다. ”더우기 이 구별(the distinction)은 하나님의 가장 단순한 단일성(simle unity of God)과 모순되지 않는다. 오히려 성자는 성부와 함께 똑같은 영을 공유(share with)하시기 때문에, 성자가 성부와 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입증해 준다. 따라서 성령이 성부와 성자의 영이기 때문에, 성령은 성부, 성자와 다른 존재가 아니라는 것도 증명해 준다. ‘왜냐하면, 그 각 위격들 안에서 그 전 신성한 본성이 이해 되어지는데, 이 특성으로, 각자에게 그 자신의 독특한 성질이 속한다.’ 성부가 전적으로 성자 안에, 성자가 전적으로 성부 안에 거하신다는 사실은, 성자께서 친히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믿으라고 하신 말씀(요 14:10)을 통하여 잘 알 수 있다. 교회의 저술가들 역시 어떤 본질의 차이(any difference of essence)로 말미암아 하나가 다른 하나에서 분리(is separatede) 성서서원은 분할이라고 오역하였으나 분리로 번역해야 한다.
된다고 함을 인정하지 않았다. 어거스틴이 말한 구별(the distiction)을 제시하는 이 명칭들은 각자의 상호 관계(their mutual relationships)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단 하나이신 바로 그 실체(the very substance)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Inst. 1.13.19. For in each hypostasis the whole divine nature is understood, with this qualification-that to each belongs his own peculiar quality.
칼빈은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생각을 혼란하게 만들어 그 통일성(that unity)으로 즉시 돌아가지 못하게 하는 그런 식의 인격들의 삼위(a trinity of persons)를 상상해서는 안 된다. 실로 성부, 성자, 성령이라는 말은 실제적인 구별(a real distiction)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의 사역을 통하여 여러 가지로 지시되는 이 하나님의 명칭들을 무의미하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구별이지 분할(but a distiction, not a division)이 아니다.“ Inst. 1.13.17.
”반대로 성부가 성자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는 어떤 구별의 특성(some mark of differentiation)이 필요하다. 이 특성을 본질이라고 하는 자들은 본질, 아니 그것도 전체 본질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참된 신격(deity)을 분명히 말살시키는 것이 된다.“ Inst. 1.13.23.
또한 성부는 자기에게 독특한 어떤 것(something unique)을 가지고 계신다. 이 독특한 것은 아들과 공유하지 않는다(shared with the Son). Inst. 1.13.23.
8.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며, 분할되지 않고, 세 위격에 속한다
칼빈에 의하면, 위격과 본질은 구별되어야 한다. 세 위격들은 하나의 본질 안에 자리 잡고 있다. 그러므로 위격들이 본질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 Inst. 1.13.25; 박해경, 『칼빈의 신론』(서울: 이컴비즈넷, 2005), 193.
칼빈은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며, 분할되지 않으며, 이것은 성부, 성자, 성령에 속한다고 주장한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본질(God's essence)을 갈기갈기 찢어 놓았고(tore) 또 어떤 사람들은 인격들의 구별을 혼합하였다(the distinction that exists between the persons confused). 참으로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이미 충분히 입증된 대로 한 하나님의 본질은 단순하시며 분할되지 않는다(the essence of the one God is simple and undivided)는 것,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 아들, 성령에 다 같이 속한다는 것(it belong to Father, the Son, and the Spirit); 다른 한편 성부는 어떤 특성에 의해 아버지는 아들과 다르며, 아들도 성령과 다르다(by a certain characteristic the Father differs from the Son, and the Son from the Spirit)는 점 등을 확고하게 고수한다면, 아리우스나 사벨리우스 뿐만 아니라 고대의 모든 오류를 주장한 자들에 대하여도 문은 굳게 닫혀질 것이다.” Inst. 1.13.22.
9. 성자와 성령의 본질은 비발생이다
성부는 발생하지 않으신다(ingenitus). 성자는 성부에게서 발생되신다(genitus a Patre).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발출되신다(procedit a Patre Filioque). 성부는 원천(fons)이시다. 성자는 지혜(sapientia)이시다. 성령은 권능(virtus)이시다. Are Barrs, “삼위일체”, The Calvin Handbook, 『칼빈 핸드북』, 김귀탁 역(서울: 부흥과개혁사, 2013), 496.
칼빈은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성자, 성령의 본질이 비발생적인 것이며, 성부가 성자와 성령에게 본질을 준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그의 본질이 주어졌다고 말하는 누구든지 그가 스스로 존재해왔다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Calvin, Institutio, 1.13.23; whoever says that Son has been given his essence from the Father denies that he has being from himself.
“그러므로 삼위일체가 본질, 성자, 성령의 셋으로 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은 분명히 성자, 성령의 본질을 멸절시키게 될 것이다.” Calvin, Institutio, 1.13.25; For those who want to make a Trinity of these three- Essence, Son, and Spirit-are plainly annihilating the essence of the Son and the Spirit.
“우리는 성경에 입각해서, 하나님은 본질에 있어서 하나이시며 그렇기 때문에 성자, 성령의 본질이 비발생적인 것이라고 가르친다.” Calvin, Institutio, 1.13.25; Yet we teach from the Scriptures that God is one in essence, and hence that the essence both of the Son and of the Spirit is unbegotten.
10. 각 위격의 속성은 상호 교류할 수 없다
칼빈에 따르면, 각 위격의 속성은 상호 교환되거나 교류하지 않는다. 즉 삼위가 일치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한 본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 것이지, 속성의 교류에 의한 것이 아니다. 만일 속성이 교류된다면, 칼빈이 볼 때, 각 위격의 구별이 불가능해지고, 따라서 양태론 같은 단일신론적 오류로 빠질 수 있다. 그래서 그는 루터 신학이 중시하는 속성의 교류를 자신의 삼위일체론에서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오갑, 『칼뱅의 신과 세계』(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0), 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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