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독서(9) 하나님의 지식과 인간의 영혼 Inst., I, 5, 1-5.
기독교강요 I권 5장의 제목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천지창조와 계속된 통치에 의해서 빛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명백한 자기계시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부패(교만과 욕망)에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인간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종교의 씨앗”을 모든 사람에게 주셨고,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칼빈은 창조 세계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거울”로 제시했다(시 19:2).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속에 있다고 했다(롬 1:19-20). Inst., I,5,1.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학식이 높거나 없는 모든 사람이 확실히 알 수 있다. 배움이 있는 사람은 배움의 도움으로 지식의 비밀을 더 깊이 꿰뚫을 수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조성하신 인체는 경이로운 작품으로, 단순한 인간이냐? 해부학적으로 예리한 지식을 갖느냐?의 차이가 있다. Inst., I,5,2.
옛적 철학자들은 인간을 소우주로 적절하게 제시했다. 인간은 맹인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알 수 있다. 인간이 하나님을 아는 일을 즐겨하지 않고 게으르다면 인간의 본분을 망각한 것이다. 다윗은 그 화려한 왕좌에서 성전 처마 밑에 새를, 어린 아이를 사모했다. 사도 바울은 아테네의 철학자들이(행 17:28, 아라투스) ‘그의 소생’이라고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기원을 증명했다. 즉 인간은 경험으로도 하나님을 인간들의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애로우신 사랑을 맛보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배하고자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Inst., I,5,3.
그런데 인간은 파렴치한 배은망덕을 더한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창고가 내부에 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고, 교만과 허풍으로 일관한다. 인간의 교만과 허풍도 하나님의 신성의 한 증거이다. 신성의 씨앗(seed of divinity)이 그릇되어 괴물같은 영들로 존재한다. 인간은 하나님을 부인하기 위해서 광란(madness)에 쌓였다. 그들은 은폐하고 왜곡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제거했다. 그럼에도 짐승과 같은 인간을 통치하기 위해서 천상의 모든 보화를 동원해야만 했다. 인간의 존귀함은 곧 하나님의 영광에 상응한다. 현대에는 인간의 천부인권설을 주장하면서도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거부한다. Inst., I,5,4.
영혼의 불멸을 부정하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칼빈은 비난한다. 영혼이 육체를 섬기기 위한 기능에 제한된다는 견해에 대해서 부정한다. 이성은 육체와 유기적인 대칭 관계를 갖고 있지만, 영혼은 믿기 어려운 장치로서 많은 놀라운 장치의 모체이다. 그래서 인간에 하나님의 신성이 들어 있다는 것에 틀림없는 증거가 된다. 인간의 영혼은 꿈의 기능, 미래를 예언하는 기능도 있다. 인간이 이런 신적인 기능이 있으면서도 창조주를 모른다는 것은 부당하다. 자연은 하나님의 피조세계이다. Inst., I,5,5. 형설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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