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독서(7) 하나님을 아는 지식 Inst., I, 3, 1-3.
칼빈은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최초로 제시한 신학자다. 고대교회에서 하나님의 인식은 역사적이고 성도들의 영적이고 착한 행실에 있었다. 그리고 중세교회에서는 국가종교로 정착하여, 중세말기까지 신인식에 대한 논의보다 신존재증명이 활발했다. 그러나 칼빈에서 신인식이 수립되어, 신을 부정하는 세계정신에 선지자적 역할을 한 것이다.
칼빈은 인간이 신에 대한 인식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논쟁이 없이 받아드려지는 보편적 진리로 제시했다. 신인식 부정은 칸트에 와서 철학계에서 명확하게 거부되었고, 신학(자유주의와 현대신학)에 반영되어 기독교에서도 확고한 체계가 되었다.
칼빈은 창조에서 창조주의 존재를 확립한다. 창조 세계에 살고 있는 어떤 미개인이라할지라도 신에 대한 관념을 갖고 있다. 이것을 칼빈은 종교의 씨앗(religionis semen)이 있다고 했다. 이것에 대한 증거로 우상숭배로 제시했다. 인간이 비록 신을 섬기지 않는다할지라도, 나무나 돌에게(totem) 예배하는 형태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종교가 순진한 백성들을 속박하기 위해 교활하게 지어낸 것이라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 견해는 16세기에 그리고 18세기의 자유주의의 근간이 되기도 한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계의 저술에는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는 것이 진리처럼 여겨진다. 칼빈은 교활한 정치인들이 종교를 이용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 조차도 인간본성의 종교성으로 연결한다. 공개적으로 신을 무시하고 모욕하지만, 자신이 신의 얼굴에서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항상 두려움에 빠져 있다. 이러한 양심의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술이나 정신착란 등으로 무서움을 피해 평안하게 잠을 자려고 한다. 이러한 행동도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칼빈은 건전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도 신에 대한 감각이(sensus divinitatis)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단언한다(Inst., I, 3, 3). 인간이 아무리 부정해도 신에 대한 두려움을 쫗아낼 수 없다는 것이 바로 신의 존재를 확증한다는 것이다.
칼빈은 신에 대한 지식과 예배를 파괴하는 행동이 바로 신을 거부하기 때문에 신의 존재를 스스로 증명한다는 것이다. 모든 자연인들 그리고 신을 거부하는 사람들까지 신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칼빈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가르침은 본성으로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이다.
창조의 법칙이 창조주 하나님께 경배하며 사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자들도 알고 있었다. 플라톤은 영혼의 지고선이 하나님을 닮는 것이라고 했다. 플라톤은 영혼의 변화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연결했다. 인간이 고난에서 불평하지만, 짐승보다 우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이며 불멸을 추구하는 것이다. 형설청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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