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종교란 무엇인가? 오강남, 김영사, 2012. 13,000원.

형람서원 2014. 1. 10. 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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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종교학의 석학으로 인정되는 오강남의『종교란 무엇인가?』는 현재인의 종교(宗敎, Religion)에 대한 가치를 알 수 있는 좋은 책이다.

 

오강남은 종교 때문에 갈등하는 세계와 사회로 제시했고, 열린 종교와 닫힌 종교로 제시했다. 그러나 종교가 없거나 같다면 다툼이 없는가? 열린 종교면 좋은 것인가? 세계전쟁은 같은 기독교 국가, 혹은 기독교 국가(독일)와 이슬람인 오스만 제국이 연합하기도 했다. 갈등은 종교 때문이기도 하지만, 종교 때문에만은 아니다. 세계대전의 기독교는 열린 형태의 종교였다.

 

오강남은 종교에 앞서 진리에 대해서 다룬다.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라는 도덕경의 문장, 진리는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실재, 실체라는 것이다. 이 진리, 실제에서 더 깊은 자유와 즐거움을 알면서 체험하는 황홀Ecstasy이 종교라는 것이다. 더 깊은 차원으로의 열림이 종교다.

 

오강남은 마르크스가 정의한 종교인 “아편”, 프로이드가 정의한 “노이로제로서의 종교”에 대해서 “열린 종교”를 제안했다. 실제에서 더 깊은 심상으로 들어가는 길을 끊임없이 탐구하는 정신이다. 그래서 오강남은 종교를 “이대로의 나에서 새로운 나로의 변화”라고 했다(90). 기독교의 세례도 이러한 변화의 일종으로 보았는데, 기독교의 세례는 변화의 예식이 아니라, 죄사함의 예식이며, 죄사함의 구주를 믿음의 의식이다.

 

오강남은 경전은 상징적 표현이라고 하며, 틸리히의 견해를 따라 상징과 실체를 동일시하는 것은 악마화(demonization)이라고 비판했다. 또한 경전의 목적이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목적으로 한다고 했다(99). 기독교 경전인 성경의 배타성에 대해서 경계했다. 그러나 기독교 경전의 목적은 인간의 가치관의 변화(transformation)가 아니라, 상태와 신분의 변화(rebirth)의 수준이다.

 

오강남은 니체와 포이어바흐가 선언한 ‘신이 죽었다’는 표현을 따른다. 그리고 틸리히의 존재의 근거, 야스퍼스의 포괄자, 오토의 숭경스러운 것,niminous, 중세 에크하르트의 신성, Godhead, Deitas, 힌두교의 브라마, 도교의 도(道), 불교의 사물의 본성, 존재의 근거, 실상, 공(空)이 모두 동일한 것, 존재자체, 하느님을 초월하는 하느님God above God으로 보았다(118). 오강남의 신관은 기독교 신에 대해서 사신(死神)이고, 일반종교의 신에 대해 일치선언이다. 기독교의 신도 일반종교와 동일한 수준으로 선언한다. 그런데 일반종교에서는 신이 아닌 깊음, 혹은 깨달음뿐이다. 대상성이 형성되면 유신론이 되어 진리가 되지 못하며 당연히 종교가 되지 못하게 된다.

 

오강남은 “아하체험”으로 얽매이지 않는 삶을 설명한다. 얽매이게 하는 것은 의사(疑似)종교 pseudo-religion, 이데올로기, 유사(類似)종교 quasi-religion이다. 이것에 얽매이면 진정한 나를 발견할 수 없다. 이러한 것에서 벗어나는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있다(138). 새롭게 변화된 의식, 우주 의식 cosmic consciousness을 갖는 것이다. 궁극 관심에 기우려 깨달음을 얻고 열린 종교로 가야한다고 역설한다(139). 반면 닫힌 종교에서 나오기를 촉구한다. 교리, 조직, 인간 어떤 것에도 갇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오강남이 예로 든 자유자의 모형 중에 한 사람인 사도 바울은 열린 종교로 자유함을 얻었는가?

 

오강남은 “믿음”이란 예수의 메타노이아에 응하는 것으로 보았다. 메타노이아, 회개(悔改)는 의식 구조의 개변, 세계관의 변화로 보았다. 그래서 예수처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삶, imtatio Christi를 이루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처럼 Christ-like 되는 것이다. -> 기독교의 믿음은 구주와 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다.

 

오강남은 경전에 대한 무지와 오남용에 대해서 비판한다. 흄의 이야기를 들어 종교의 오류의 위험성을 들었다. 또한 기독교인들이 성경을 그대로 믿는다는 것은 결국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성경의 의미는 무한하다(189). 성경해석을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으로 하는 행태가 많다. 예는 인종차별이고, 타부로 인해 동성애에 대해서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 오강남이 제시하는 기독교 경전 이해는 맞는 부분과 다른 부분이 있다. 전자는 성경해석의 이현령비현령이고, 후자는 동성애증에 대한 것은 바르지 못하다.

 

오강남 교수의 글을 읽으면서, 오 교수는 끊임없이 종교와 종교의 연합을 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왜 기독교만 비판되고 수정되어야 할 종교인가?하는 의문이 든다. 기독교만 수정되면 종교와 종교가 연합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인가? 세계에서 기독교는 테러와 박해를 받은 종교다. 미국에서도 십계명 표시가 사라진지 오래다. 그런데 아직도 기독교에 문제가 있다고 하니 참 아이러니하다.

세계에서 기독교의 비율이 약 25%라고 하며, 거기에서 오 교수가 비판하는 기독교는 과연 몇 %인가? 비판하는 대상이 한국 교회에 국한하는 것인가? 『종교란 무엇인가?』는 제목으로는 세계 보편 타당한 구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한국에서도 매우 지엽적인 부분에서 보편성을 끌어내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책에서 “종교”에 대해서 심도 있는 진술을 기대했는데, 단순히 기독교?에 대한 상당한 비판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래서 종교란 “이대로 나에서 새로운 나로 변화”라는 개념으로 갈무리가 된다. 즉 오 교수는 종교에서 절대자 신(神)은 절대로 등장하지 않는데, 이것을 “열린 종교”라 했다. 여기에서 “아하체험”의 세계에서 자유를 누리는 것으로 제시했다. 이것이 종교와 종교를 융합할 수 있는 매개가 될 수 있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책의 가격은 저렴하기에 가격에서는 누구나 접할 수 있는 저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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