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목회칼럼] 개혁하는 교회: 바른 설교

형람서원 2014. 1. 25. 1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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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칼럼] 개혁하는 교회: 바른 설교

 

에크레시아 셈페르 레포르만다! (Ecclesia semper reformanda!)

교회 개혁에 대한 구호는 신교와 구교 모두에서 외치는 표어이다. 그렇다면 왜 구교는 개혁교회가 아니고, 신교 중에서 칼빈파만이 개혁교회가 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교회개혁의 방향과 목표에서 있을 것이다.

구교의 목표와 방향은 교황주의에 입각한 보편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루터교회는 믿음의 교회를 만드는 것이다. 칼빈파는 성경(66권)으로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것이다.

 

칼빈파는 스코틀랜드, 네델란드, 독일의 하이델베르크, 프랑스의 위그노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개혁파 교회를 효과적으로 정착시키는데 실패했다. 프랑스에서는 구교의 대대적인 박해로 위그노들이 흩어졌고, 독일에서는 루터파의 압제로 정착하지 못했다. 스코틀랜드와 네델란드에서 장로파와 개혁파로 체계를 이루었다. 두 교회도 20세기에 칼 발트의 신학의 물결을 막지 못했다. 칼 발트의 신학으로 스코틀랜드와 네델란드의 교회는 괴멸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제 개혁파의 모습을 갖춘 신학교와 교수는 극소수로 전락했다. 그런데 20세기 초부터 형성된 한국 장로교회가 그 흐름의 큰 줄기에 있다는 것은 놀라운 섭리라고 볼 수 있다.

 

한국 교회에 선교는 장로교 선교사들이 들어왔지만(영국과 유럽 선교사들이, 구스타포, 존 로스, 토마스 실패함), 부흥운동에 의한 강력한 영향력에 의한 것이기도 했다. 장로교와 감리교 선교사가 함께 들어왔지만, 후일에 많은 장로교 선교사들의 활동으로 한국 교회는 장로교회가 기독교로 인식될 정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한국 장로교의 최초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는 박형룡 박사는 신학강단에서 네델란드 신학계열인 벌콥의 [조직신학]으로 강의했다. 성경을 사랑하는 한국 교회에서는, 성경무오를 믿지 않으면서도 성경무오를 말할 수 없다. 이러한 민족성과 장로교가 잘 결합이 되어 한국 교회는 장로교회의 아성이 되었다. 어떤 개신교에도 장로가 없는 형태가 거의 없다.

 

이젠 한국교회에 장로교인지? 다른 개신교인지 분별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간판은 다르지만 정치형태와 말씀의 내용이 동일하기 때문이다. 장로교회의 정치의 모습을 따라서 할 수 있지만, 설교의 내용까지 따라 할 수 없다. 모든 설교가 동일하다면, 개혁신학을 지향한다는 장로교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말씀이 같으면 영도 같으며, 말씀이 다르면 영도 다르다.

 

한국 장로 교회는 “오직 성경”이 포기 혹은 유보되었다. 한국교회는 모범은 조선생이 되어 성경보다 ‘다른 은사’를 사모한다. 그러니 설교 내용이 동일하다. 칼빈을 따르는 장로교라면 칼빈의 주석과 설교는 읽어 보고 설교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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