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바울종교의 기원] 제 5 장 유대적 환경

형람서원 2012. 11. 7.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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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5 장 유대적 환경

(173-207/번역본 220-264)

고경태 목사

 

메이첸은 당대에서 진행되던 바울신학과 바울이 추구했던 신학이 전적으로 다름을 논증하였다. 현대 바울신학에서 예수를 ‘의의 교사’, ‘하나님의 계시자’로 제시하였지만, 바울은 예수를 ‘구속주(the divine Redeemer)’로서 ‘구속의 종교’로 전적인 차이가 있다(the religion of Paul was a religion of redemption).

바울이 추구한 예수는 당시 팔레스타인에 실재했던 그 예수이다(the Jesus who actually lived in Palestine). 바울은 유대교 신자에서 나사렛 예수를 신봉하는 종교로 개종했다.

 

[브레데(Wrede)와 브뤽크너(Brückner): The Idea of redemption] 두 사람은 바울의 종교를 구속 개념으로 설명하려 했다. 그러나 구속주의 인격 자체가 아닌 어떤 곳에서 유추된 구속주의 인격에서 이끌어 냈다. 즉 바울이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 메시아 사상에서 천상의 그리스도 개념(conception of the heavenly Christ)을 유추해냈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울 서신 자체에서는 바울의 개념의 근원을 밝히기 어렵다. 만약 역사적 예수를 근거해 바울 종교가 나왔다면 혁신적인 개념에 대해서 설명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두 사람의 견해에 의하면 바울의 그리스도는 개종 전이 후에도 변함없이 예수는 유대 묵시 문학의 그리스도이다(the Christ of the Jewish apocalypses).

 

[바울 당시의 유대 환경 연구] 메이첸은 유대적 환경을 3가지 주제에서 제시한다. (1) 유대교의 분파, (2) 율법, (3) 메시야이다.

 

[유대교 분파에서 바울은 엄격한 유대인] 바울 시대의 유대교는 팔레스타인 유대교와 디아스포라 유대교로 구분할 수 있다. 전자의 언어는 아람어였고, 후자는 헬라어였다. 디아스포라 유대교에서 헬라어를 사용했지만 자유주의적인 유대교로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1세기의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에 전념하는 통일된 민족이었다. 어째든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이 디아스포라 자유주의 유대교(a liberal Judaism)로부터 발현되었다는 것은 중대한 오류이다. 바울이 비록 다소(Tarsus)에서 출생하였지만 팔레스타인 유대인으로 자유주의 유대인은 아니었다.

유대인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진 철학자인 몬테피오레(Claude Montefiore, 1858-1938)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유대인들보다 더 엄격하다고 했다. 몬테피오레는 1세기 팔레스타인 유대교는 B.C 500년 경의 랍비적인 율법과 하나님의 죄사함의 확신을 연합시킨 포용적인 자세라고 하였다. 메이첸은 이러한 몬테피오레의 증거로 제4 에스라(4 Ezra)에 근거한 것으로 제시했다. 이러한 일련의 제시는 예수의 말씀에서도 팔레스타인 유대교가 포용적인 자세로 발견된다. 몬테피오레의 제시는 비판을 받을 수 있지만, 팔레스타인 유대교에 대해서는 타당성이 있다. 또한 유대적 자유주의는 현대의 기독교적 자유주의와 동일하게 모든 것을 포용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바울은 개종 전과 후로도 자유주의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았다. 바울의 복음은 온화한 율법관이 아닌 준엄한 율법관이다. 또한 율법으로 하나님의 자기도취(complacency)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하나님의 공의의 충족이다(satisfaction of divine justice).

 

[요세푸스의 분류: 바리새파, 사두개파, 엣센파] 바리새파와 사두개파는 신약성경에 등장한다. 성경에 언급되지 않은 엣센파는 금욕적이며 동물제물을 거부하고 세속과 분리하여 공동체 생활을 하였다. 라이프풑(Lightfoot)는 골로새서에서 엣센파의 영향이 있다고 평가했지만, 메이첸은 의심했다. 즉 바울이 엣세파의 영향을 받았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바리새파(Pharisees)는 율법에 열심을 갖은 정통 유대교(orthodox Judaism)를 대표한다. 그들은 대중적이지는 않았지만, 교육을 주관하는 등 공동체 전반에서 지도자적 위치에 있었다. 성전이 파괴되고 바리새파의 율법 해석만이 존재하게 되었다. 바울은 자유주의적 유대인이 아니라 바리새파였다.

 

[율법과 메시아 대망] 발덴스페르거(Baldensperger)는 유대교의 두 개의 중심축으로 ‘율법’과 ‘메시아 대망’을 제시했다(Baldensperger, Die Messianisch-apokalyptischen Hoffnungen des Judentums, 3 te Aufl., 1903, 88-89). 포로시대 이후 유대교에서는 율법에 열심했다. 이러한 열심에서 다양한 구전이 형성되어 규칙화가 되었다. 메이첸은 이러한 유대교의 열심에서 열매가 없다고 평가했다. 왜 율법에 열심인 유대인이 예수에 대해서 반대자가 되었는가? 도덕 영역에서도 나사렛 예수는 탁월한 가치가 있고 율법사나 위선에 배척될 필요가 없었다. 바울 시대의 바리새파는 공로 종교(religion of merit)로 은혜의 종교(religion of grace)와 전적으로 구별된다. 메이첸은 바리새적인 율법주의가 복음의 준비 과정으로 가능성을 제시했다. 바울은 율법이 유대인에게 죄의식을 주어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schoolmaster)로 말하였다. 율법의 본질적인 성격이 몽학선생이었는지 실제 유익하였는지는 의문이다. 그런데 바울 시대에 유대교는 심각한 죄의식이 없었기 때문에 난점이 있다. 바리새파 유대주의의 율법은 지키지 못할 상태로 어렵지 않았다. 바리새파의 형식주의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을 깨끗케하려는 자비와 공의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는 낮은 율법적 종교(low view of law)에 불과했다. 높은 율법관(high view of law)은 죄의식을 주어 은혜를 구하는 자가 되게 할 것이다(a man a seeker after grace).

신약 시대의 유대교에서는 4 에스라서에서(Fourth Book of Ezra) 보면 죄의식의 흔적이 있다. 이와 비교되는 제2 바룩서(Baruch)에서는 약간 다른 입장이다. 제2 바룩서에서는 인간의 악에 대해서 낙관적이며 자기 만족적이다. 악의 문제에 대해서 바울은 동시대의 유대교에서 찾지 않고 구약성경에서 찾았다. 바울주의는 구약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었다. 바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비로소 자신의 죄를 확인할 수 있었다.

발덴스페르거에 의거한다면, 유대교의 다른 관점이 메시아 대망(Messianic hope)이다. 메시아 대망은 구약성경에 근거하였다. 비평주의(critical view)에 의하면 독특한 개인적인 메시아의 교리가 이스라엘 역사 후기에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메시아는 다윗 가문의 혈통에서 나온 왕을 기대했다. 이상적인 지상적 왕에 대한 기대는 제1에녹서(1 Enoch)에서 인자(Son of Man)가 천상적인 존재를 기대하는 것(expectation of a heavenly being)으로 변했다. 그레스만(Gressmann)은 각 개인에게 초월적인 구주에 대한 개념이 태초에서부터 있었다고 하였다. 그레스만은 이사야 53장을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the suffering servant of Jehovah)- 개인적으로 해석했다. 초자연주의적 구약 성경관(the supernaturalistic view of the Old Testament)에서는 개인적인 구주를 인정함에 동일하지만 객관적 확실성인 것이다.

1세기 유대교에서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원수의 압제에서 구원하는 왕에 대한 소망 이외에 아무것도 없었다. 이러한 모습은 신약 성경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메시아 소망에 대해서는 외경에 나타나지 않으며 다른 문헌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미래에 도래하는 시대에 대해서 개인적인 메시아의 등장은 없다. 혹 예수가 자신을 메시아로 주장하지 않았다할지라도 사도들에게는 메시아에 대한 기대가 있었음이 확실하다. 예수는 유대인들이 거짓 메시아이기 때문에 죽음을 당했다.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이나 예수의 제자들 모두가 “유대인의 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요세푸스(Josephus)에게도 메시아 사상이 나타나 있다. 유대인으로 로마의 사가인 요세푸스에게 메시아 사상은 반역적인 위험이 있기에, 그는 메시아를 황제인 베스파시안으로 설명했다.

 

1세기의 유대교에서 메시아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온 ‘지상적 왕’이거나 ‘천상에 존재하고 있는 존재’의 개념이었다. 두 개념에서 당시 통상적인 개념은 전자였고, 후자는 묵시 문학에서 기원한 난해한 가르침이었다(esoteric doctrine).

 

부뤽크너(Brückner)는 일반 주장과 다르게 1세기 유대교에 메시아 교리의 존재에 대해서 부정하였다. 그는 메시아가 초자연적 인물로서 초인(超人, supernature man)이라는 것이다. 초인은 전쟁의 무기의 능력이 아닌 입의 숨결이 무기로 지상 왕국을 건립한다(supernature power). 메이첸은 부뤽크너(Brückner)의 유대인이 갖은 초자연적 속성의 메시아 견해에 일면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부뤽크너(Brückner)의 메시야관은 인간의 본질로서 지상 왕국을 다스리는 존재이다. 성경에서 세례 요한은 이적을 행하지 않았음에도 메시아로 추정되었다(누가복음과 요한복음).

또 다른 메시아관은 순교자 저스틴의 트리포와의 대화(Justin Martyr's Dialogue with Trypho)에서 나타난다. Dialogue with Trypho는 2세기 중엽의 작품으로 예수를 단순한 인간(mere man) 메시아로 주장하는 유대인 트리포에 대해서 논박하는 내용이다.

1 세기의 유대인들은 ‘지상적인 왕’과 ‘천상적인 인자’의 메시아 관에서 어떻게 전자로 정착되었는지에 이해가 가능하다. 초월적인 메시아관은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개념이 아니라 묵시 공동체들의 지엽적인 견해였다. 즉 초월적인 인자 교리가 보편적으로 인지되지 않았었다.

우리는 1세기에 유대인들이 묵시 문학에서 나타난 초월적 메시아관만을 소유했다는 것에 대해서 부뤽크너의 견해로 반대할 수 있다. 초월적 메시아관은 묵시문학에 분명히 등장하지만 보편적인 견해가 되지 않은 것은, 당시의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대망했기 때문이다.

 

[묵시문학에서 나타난 초월적 메시아 개념] 초월적 메시아 개념은 에녹서의 상사(the Similitudes of 1 Enoch), 제4 에스라서(4 Ezra), 제2 바룩서(2 Baruch)에서도 나타난다.

상사편(相似篇)에서 메시아는 천상적 존재로 세상의 종말에 나타나서 심판하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선택된 유일자이며 나에게 선택된 유일자(the Elect one, Mine Elect one)로 그 인자, 혹은 인자(the Son of Man or Son of Man)로 불렸다(Similitudes 48:10, 52:4).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레이크(Lake)와 잭슨(Jackson)은 다윗의 혈통으로 메시아 사상을 강조하면서 부정했다. 메이첸은 두 사람의 의견을 반박하고 에녹1서에서 “인자”는 메시아로 보는 것이 타당한 것으로 제시했다.

상사편(相似篇)에서 등장하는 “인자”는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사용한 “인자”와 어떤 관련이 있는가? 어떤 신학자는 “인자”는 절대로 메시아적 칭호가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인자는 단순히 아람의 관용적 표현으로 ‘사람(the man)’이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복음서의 인자도 ‘단순한 인간(the man)’을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포기되었다. 첫째, 복음서의 인자가 평범한 인간을 의미하는 것에 대해서 확실성을 갖지 않았다. 가장 일반적인 칭호가 될 수도 있고 가장 특수한 의미의 칭호도 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상사편(相似篇)에서 존재한다. 인자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다니엘 7:13이고, 제1에녹 46:1,2이다. 다니엘 7:13절과 연관된 인자는 보통 사람이 아닌, 하나님(the Ancient of Days)과 함께 있었고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내려왔었다.

상사편(相似篇)에서 등장하는 “인자”는 선택된 유일자(the Elect one)로서 고귀한 속성으로 채색되어 있다. 인자는 창조 전부터 존재하였고(Similitudes 48:3,6), 최후에 하나님의 보좌에 영광 중에 좌정하여(Similitudes 51:3), 인간 뿐만 아니라 타락한 천사까지 심판할 것이다(Similitudes 55:4). 구원받은 의인들은 인자와 함께 영원히 함께 먹으며 생활할 것이다(Similitudes 62:13,14).

상사편(相似篇) 전체에서 제시되는 메시아의 모습은 초자연적으로 땅과 전혀 관련이 없는 천상적 인물이다. 의인들이 사는 영광스런 땅에 거주하는 인자 사상과 이스라엘은 특권 의식이 사라지지 않았다. “택자”를 압제하는 이방인의 통치자들은 “왕 혹은 권력자”들이다. 또한 인자는 이스라엘에서 단순하게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심판은 개인 생활의 비밀에 대한 것으로 이해하는 바탕이었기 때문이다.

 

제 4 에스라 7:26~31. 에서는 메시아의 통치가 엄격하게 일시적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메시아는 400년간 생활을 향유하고 전 인류와 함께 죽는다. 4 에스라는 혼합적인 모습을 갖고 있는데, 지상에서 죽는 메시아의 모습으로 새시대와 관계가 없다. 4 에스라에서 메시아는 죄의 문제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

 

12족장의 유언(Testaments of the Twelve Patriarchs)에서 나타난 메시아의 천상적 성격은 부뤽크너(Brückner)의 주장이 그름을 보여준다. 레위 지파와 관계가 된 메시아와 다윗 계열의 왕의 사상이다. 묵시문학에서 메시아는 지상적인 성격을 갖고 있어 윤리적 성격이 강조된다. 그러나 강한 유대적이고 바리새적인 특징은 배제되지 않는다.

바울 시대의 메시아는 초월적, 개인적, 보편주의적이었다. 메시아 왕국의 무대는 단순히 예루살렘으로 국한하지 않았다. 왕국의 시작은 천상이지만 지상에서 출현되었다. 이러한 최종적인 복은 부활에 의해서 가능한 것으로 제시했다.

제2바룩서(Baruch)에서는 인간의 부활 상태와 현재 상태에 대해서 인상깊게 주장했다. 즉 의인은 그들의 옛 몸에서 변형되어 부활할 것으로 제시했다. 결론적으로 메시아 왕국의 도래는 우주적 의미의 사건으로 간주되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 그리고 이방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종속되어 공유되는 복이다.

 

[바울의 메시야 개념과 묵시문학의 개념: 다윗의 후손과 천상적 인자] 후기 유대교의 종말론의 사상은 구약성경에 근거하고 있다. 첫째 후기에 나타난 메시아의 초월성은 구약성경에 근거한다. 이사야 9장, 11장, 이사야 65:17, 다니엘 7:13등이다. 천상적 메시아는 구약성경에서 반복한다. 둘째 개인주의도 구약성경에 근거한다. 부활의 교리와 함께 개인주의 대망은 다니엘에서 등장한다. 마지막으로 묵시문학의 보편주의는 대선지서에서 나타난다. 선지서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보편성과 이스라엘의 복에 참여하는 것을 나타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개종 전에 초자연적이고 천상적인 메시아를 믿고 있었다면 그는 구약성경에 불충실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개종 전에 메시아 개념은 서신서의 기독론의 원천이었을까? 브레데(Wrede)와 부뤽크너(Brückner)는 그렇다고 주장했다. 두 사람은 고상한 바울 기독론(the lofty Christology of Paul)의 원천이 초월적 메시아관인 인간 예수에서 나왔다면 설명이 불가능하고, 나사렛 선지자에게 있던 느슨한 개념은 기독교 이전의 메시아 개념을 가설(hypothesis)로 제시했다. 이 가설에 대해서 메이첸은 재고(再考)한다.

먼저 바울이 개종하기 전에 묵시 문학의 메시아 개념을 갖고 있었는가? 발덴스페르거(Baldensperger)의 이해를 따른다면 율법에 종속된(a substitute for the Law) 랍비적인 관심을 갖았던 바울에게서 메시아 교리는(the Messianic dogma) 지배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발덴스페르거의 제시는 개종 이전의 바울은 메시아 사상가가 아니라 율법에 열심인 범주였다. 신약성경의 전체를 보면 당시에 메시아 사상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바리새인 바울은 정통 신앙에 대해서 거부할 수 없기에, 개종 이전에도 분명히 개념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묵시 문학의 천상적 인자로 초월적 메시아였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에녹서의 상사편에서 나오는 특별한 칭호는 바울에게 분명히 없다. 묵시 문학(Son of Man, Elect one, Righteous one)에서는 말하는 것을 바울은 반복하지 않는다(the Pauline terminology). 또한 에녹1서에서는 “메시아”라는 말이 거의 사용되지 않았고, 바울적 칭호인 “주”라는 용어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연유에서 묵시문학과 바울의 연결은 절대로 아님을 확신하였다. 바울이 사용한 메시아 개념은 초자연적인 묵시문학과 다른 정치적인 것이다. 메시아 개념이 초자연적 속성이 있는 것이지만 다윗 후손의 왕의 개념(솔로몬 시편(72편 제왕시)의 메시아)을 따른다면 바울에게 메시아의 선재 사상은 없다. 바울의 사상은 에녹1서의 인자와 전혀 다르다.

 

[바울의 기독론:창조 중보자, 인격개념] 개종 이전의 바울이 묵시 문학의 메시아와 같은 천상적인 선재한 메시아를 믿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메이첸은 브레데와 브룩크너가 묵시문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단정한 것이 너무 지나친 것으로 평가했다.

 

만약 개종 이전에 바울이 묵시문학적 메시아를 추종했다할지라도 바울의 기독론의 기원으로 설명할 수 없다. 묵시문학에서 등장하는 메시아와 바울서신에 등장하는 그리스도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첫째, 묵시 문학에는 메시아의 창조 사역에 관한 교리가 없다. 반면 고린도전서 8장 6절과 골로새서 1장 16절에는 창조 사역이 있다. 묵시문학에서 메시아는 선재하는 존재이지만 창조에서 역할은 없다. 이 차이는 사소한 차이가 아니다.

브레데와 브룩크너는 메시아 선재 사상에서 묵시문학과 연결시켰다. 그러나 바울의 메시아 선재사상과 전혀 다른 것은 창조 사역에서 있다.

 

둘째, 묵시 문학에서 선재한 메시아의 인격과 바울 서신의 메시아의 인격에서 원만한 연결의 흔적을 찾을 수 없다. 묵시문학에서 메시아는 하늘에 감춰진 신비로운 계시로 은혜를 받은 사람에게만 주어진다. 또한 메시아와 인격적인 관계에 대한 기록은 없다. 반면 바울 서신의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인간이 사랑할 수 있는 인격(person)이다. 바울에게 메시아는 인격적으로 사랑할 수 있는 존재이다. 이러한 개념은 브레데에게 없다. 브레데가 이러한 개념은 갖고 있었다면 천상적 인자이 개념에서는 심각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다. 그의 메시아 개념은 예수가 창조주와 심판자에서 분리되었다. 메시아에서 인격 개념을 갖으려면 묵시문학이 아닌 바울서신에서 찾아야 한다.

메시아의 온화한 인격을 두 사람은 십자가 처형에서 찾으려 한다. 두 사람은 역사적 예수가 지상에서 죽었다는 사실이 강조된다. 그러나 바울은 메시아의 죽음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죄를 위한 고난의 죽음으로 해석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사랑을 위한 속죄 행위였다. 바울과 그의 제자들은 십자가의 구속제사와 친밀한 인격관계(the warm, personal relationship)를 갖고 있었다.

그렇다면 바울은 어떻게 예수의 죽음이 메시아의 대리적 죽음(a vicarious death of the Messiah)으로 해석했는가? 메이첸은 이 답을 예수께서 바울에게 말해준 특별한 특징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브레데의 가설에서는 이 견해는 배제하였다. 브레데는 대리적 죽음의 개념이 바울 개종 이전부터 있었다고 주장했다. 메이첸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그것은 기독교 이전 후기 유대교 문서 중에서 대리적 죽음에 대한 가르침의 흔적이 없기 때문이다. 4 에스라에서 메시아의 죽음이 있지만, 타인에게 은택을 주는 죽음은 아니다. 단지 새로운 세계를 오게 하기 위한 죽음일 뿐이다. 순교자 저스틴의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유대인 드리포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서 제시하지만, 대리적 고난에 대해서는 표현하지 않았다. 메이첸은 쉬러(Schürer)의 가설인 1세기까지 없었던 메시아의 대리적 고난 사상이 3세기에서 유대인들에게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서 타당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1세기 인물인 바울의 상황에는 적합하지 않다.

4 마키비서 6:28,29에서 의인의 피가 백성에게 씻음이 된다는 기록이 있다. 죽음을 당한 마사다의 엘르아잘(Eleazar den Yail)를 위한 기도에서 속죄제물이 됨을 기도하고 있다. 그러나 의인의 대리 수난의 개념이 바울 시대에 일반적 교리라는 증거는 하나도 없다. 의심할 것도 없이 이사야 53장의 감화와 적용은 없다. 대리적 수난의 형틀인 십자가가는 유대인들에게 거치는 돌일 뿐이었다.

그래서 바울이 가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친밀한 인격관계는 유대 환경에서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묵시문학과 나사렛 예수와 연결된 사상의 연계성은 가질 수 있지만, 묵시문학과 살아계신 영광의 그리스도와는 연결시킬 수 없다.

 

바울의 기독론과 묵시문학의 메시아의 세 번째 차이는 신성교리이다. 바울의 신성개념은 중심이지만(로마서 9:5), 묵시문학의 표현에서는 찾을 수 없다. 바울서신에서 “주”라는 용어는 “하나님”과 동일한 명칭이다.

또한 바울 서신에서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서두에서 규칙적으로 등장하는 반면에 묵시문학(제1에녹서)에서 메시아의 표현에서는 등장하지 않는다. 한 문장에 연합된 표현은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1 에녹서에서 메시아가 기름부음 받은 자로 다윗의 후손으로 지상왕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과 동일한 위치는 아니다. 바울의 서신에서는 은혜와 평강이 양자로부터 동일하게 오는데, 1에녹서에서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또한 1에녹서에서 등장하는 Son of Man, Elect one, Righteous one는 바울 서신에서 찾을 수 없다.

바울이 섬기는 그리스도는 묵시문학이 제시하는 메시아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바울이 개종 이전에 묵시문학의 메시아를 믿었다할지라도, 서신서의 그리스도와 연결성은 전혀 없다. 바울이 개종함으로 바뀐 것은 메시아와 예수를 동일하게 여긴 것이다. 그 메시아가 하나님 보좌까지 올려진 예수라는 것이다.

[지혜 기독론] 즉 묵시문학의 메시야 교리로는 바울 기독론에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견해는 한스 윈디쉬(Hans Windisch)도 인정했다. 그래서 윈디쉬는 묵시문학에서 부족한 메시아 개념을 유대교의 “지혜”의 교리에 호소하여 보충하려 했다. 윈디쉬는 메시아의 묵시적 교리가 바울의 기독론의 기원을 설명할 있다고 인정했다.

 

잠언 8장에서 “지혜”는 고귀한 말로 찬양되며, 천지창조 이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지혜는 대담하게 시적으로 의인화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구별되는 실제적인 인격으로 인정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후대 알렉산드리아의 “솔로몬의 지혜”에서 의인화가 현실적 인물이 관련되어 보일정도로 발전되었다. 지혜가 하나님과 다른 어떤 종류의 인물로서 간주되는 것이다. 윈디쉬는 이 견해를 바울이 취하여 그리스도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했다고 주장했다.

윈디쉬의 주장은 바울의 기독론의 두 요소를 보충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첫째, 바울 서신에 있는 그리스도의 창조 활동에 대한 근거가 된다. 유대교에서 지혜가 창조자의 보조 혹은 손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둘째, 바울과 그리스도 사이의 관계에서 지혜가 솔로몬의 지혜에서 현자에게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현자는 지혜의 대변자가 된다.

그런데 언제부터 메시아와 지혜가 동일화가 되었는가? 바울이 완성시킨 것인가? 기독교 이전의 유대교에서 있었는가? 바울이 완성했다면 바울의 기독론에 발전이 없는데, 나사렛 예수와 지혜의 신적 인물이 동일화되었는가? 메이첸은 윈디쉬가 좋은 제안을 하여 자연주의 개념을 확립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두 사람의 견해를 더욱 엉망으로 만들어버렸다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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