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바울과 예수
(117-169/번역본 150-218)
‘바울과 예수’, ‘예수와 바울’에서 메이첸은 ‘바울과 예수’로 제시했다. 이것은 바울을 통해서 예수를 증거하는 논증방식을 취하기 때문이다.『바울 종교의 기원』은 바울의 종교(믿음)에서 ‘예수’를 논증하고 있다. 그래서 예수가 누구인지를 확증하였다. 예수는 기독교의 기원이며, 사도들과 바울은 변함없이 초기부터 예수를 믿음의 대상으로 보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의 가르침과 대치되지도 않는다.
[바울 종교의 기원: 예수, 예수의 참된 제자: 바울] 바울 종교의 기원은 예수이다. 바울은 종교적 철학자(a religious philosopher)가 아니라 예수의 증인(a witness of Jesus)이었다. 바울이 예수의 참된 제자로서, 그의 권위와 모든 가르침을 소유했다. 바울은 서신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으로 여겼고, 모든 생활에서 ‘그리스도의 행했음’과 ‘그리스도께서 계속해서 행하심’이 근본이었다(Christ had done and what Christ was continuing to do, 참고 갈 2:20). 바울이 고백한 “그리스도”는 자기가 알고 있었던 “나사렛 예수”였다. 바울의 변화는 “역사적 인물”에 국한되었던 “부활한 주”이다. 부활한 주의 인격이 ‘그리스도’이다. 바울은 최고의 칭호인 주(主)를 십자가의 예수에게 적용하며, ‘영광의 주(主)’로 찬양했다. 영광의 주께서 종의 생활로 팔레스타인에서 살았지만 언제나 천지만물에게 경배를 받을 합당한 주이시다(고전 2:8, 빌 2:10-11).
[그노시스, 케노시스와 비교할 수 없는 바울 종교의 기원] 바울서신에서는 그노시스(영지주의, gnosticism)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영지주의는 역사적 예수와 신적인 주로서 그리스도를 분리하는 것이다. 몰간(W. Morgan)은 인간 예수의 신성의 발전을 주장하는 양자론적 그리스도론(adoptionist Christology)의 주장을 일각했다. 메이첸은 바울이 예수를 세계 창조의 실행자(the instrument in the creation of the world)로 이해했다고 하였다. 또한 바울에게 케노시스(kenosis, 자기비움, 자기허기)와 연관된 흔적은 전혀 없다. 케노시스에서는 지상의 예수가 높은 본성을 포기하여 천상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바울 서신에서 찾아볼 수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주와 통치자(Lord and Master)로 간주한 것이 명확하다. 이 그리스도는 바울이 알았던 이단자 나사렛 예수였다. 그 나사렛 예수가 바울 종교의 기원이다. 영지주의와 케노시스의 종교의 기원은 알 수 없다. 그들의 기원은 나사렛 예수가 아니거나, 나사렛 예수에 국한하거나, 나사렛 예수의 인간의 변이에 대한 것이다. 바울의 종교는 나사렛 예수와 부활한 주와 영원한 동일하게 여기는 영지주의와 케노시스와 전혀 다르다.
[바울과 원시 사도의 관계: 바우어와 메이첸] 당대에 예루살렘에서 박해자에서 개종한 바울에 대한 평가는 무엇이었는가? 예수 이해에 반대적인 견해였는가? 예수의 참 제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인정했는가? 이 두 관계 이해는 기독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가치가 있다.
바우어(Baur)는 이 관계에 대해서 설명하여 신학적 기여를 했다. 그런데 그는 두 관계를 갈등적 관계로 제시했다. 바울과 베드로가 깊은 차이를 갖고 있어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갈등했다는 것이다. 메이첸은 바우어의 제시에서 원리적으로 교회의 근원이 둘이 됨으로 의문을 제기했다. 고대 카톨릭 교회는 바울과 베드로의 한 기초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바우어의 새로운 신학적 문제 제기는 탁월했다. 이는 기독교 역사를 구성할 때에 역사적 예수에서 사도적 기독교로 진행하는 것에서, 사도적 기독교에서 고대 카톨릭 교회까지 진행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바우어는 고대 교회가 바울적 기독교와 베드로적 기독교의 갈등에서 점진적인 타협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았다. 바우어의 견해는 리츌(Ritschl)의 비판으로 무너졌고, 라이트푸드(Lightfoot), 쟌(Zahn), 하느락(Harnack)에 의해서 거부되었다.
리츌은 바우어가 유대적 기독교의 중요성을 과장되게 부각시킨 것이 잘못되었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바우어가 제시한 신약성경의 저술연대보다 더 후기로 제시했다. 결국 리츌은 바우어의 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그 안에 머물렀다. 결국 리츌도 교회의 존재와 일치에 대해서 설명하지 못한 것이다. 사도들의 일치가 없었다면 교회는 절대로 현재까지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우어는 바울과 베드로의 싸움(갈등)이란 가설 위에 바울 서신을 해석하였고, 신약성경 전체 해석의 원리였다. 바우어는 요한계시록을 세배대의 아들 요한으로 제시했는데, 이것은 그의 제자들도 인정하지 않았다. 메이첸은 3장에서 고린도교회가 바울과 베드로의 갈등 관계가 아님을 밝혔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사도들의 갈등의 흔적이 없고, 갈라디아서 2장에는 있다. 그러나 바울과 예루살렘 지도자들은 바울의 계시대로 합의를 이루었다. 즉 초대교회의 사도들은 바울에게 “교제의 악수”를 하였다. 이것은 사도들의 완전한 일치로 유대주의자들의 주장에 대해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거부됨이 선언된 것이다. 바우어도 갈라디아서 2장의 일치된 모습을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을 이 일치된 사실에서 안디옥에서 외식하는 베드로를 책망한 것이지, 바우어의 주장대로 서로의 갈등의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예루살렘의 결의가 더욱 확고한 일치를 보는 것이다.
갈라디아서 2장에서는 바울 복음의 독립성이 강조되고, 고린도전서 15장에서는 초대 사도들의 복음의 일치가 강조된다. 바우어는 사도들과 바울의 갈등을 주장했다. 이에 대해서 바이스(Weiss)는 불가능한 해석으로 거부했다.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바우어는 갈라디아서와 고린도 전후서의 모든 자료를 무시하고 자기 주장에 맞추어 재구성시켰다. 성경의 모든 자료들을 사용하여 평가한다면 바울과 초대교회의 사도들의 갈등은 사라질 것이다.
릿츌(Ritschl)은 바우어의 의견에 반대하고, 바울과 초대 사도들의 갈등이 아니라, 모든 사도들과 극단적인 유대주의와 투쟁으로 제시했다. 극단적인 유대주의 가르침은 초대교회의 일치된 거부로 영향력을 잃었다. 2세기에 등장한 다양한 유대적 사상에 기초한 기독교 이단(에비온주의, Ebionistes)들은 사도 시대부터 시작되었다. 그래서 이단의 근원은 유대주의자들이다.
교회 역사에서 유대주의자들이 이탈된 것은 베드로 사도의 작동이 아니었다. 유대주의의 영(spiritual ancestors)이 사도적 기독교(apostolic Christianity)와 일치하지 않고, 남몰래 들어온 가짜(가라지)였기 때문이다. 바울에게 항의한 사람들은 초대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유대적인 가르침을 계속하기 위한 교회의 훼방자인 것이다.
바울은 십자가 이후의 제자(disciple)였지만 예수의 초기 제자들과 일치했는데, 유대에 있던 유대주의자들과는 일치되지 않았다. 또한 베드로 사도는 율법주의를 지지하지도 않았다. 유대주의자들의 원리는 베드로 사도가 아닌 유대교에 있었다.
그러나 초대 교회 신자들은 개종 이전에 했던 유대인의 규례를 준수했다. 성전제사도 꾸준히 성실히 준수했다. 외형적으로는 경건한 유대인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구원에서는 율법 준수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구주 예수만을 의지했다. 율법주의적 유대주의가 주장하는 것과 달랐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과 유대인들은 동일하게 하나님 나라의 세움을 대망했다. 십자가 이후로 교회 신자들은 슬픔에 잠겼다가 구원에 이르렀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동일한 생활 원리에 있었다. 다만 외형은 서로가 다르지 않았다.
유대인들 중에 바리새인은 메시아의 강림을 고대하여 예수의 가르침을 고대했지만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이스라엘의 특권을 계속갖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메시아였지만, 유대인에게 전유된 메시아는 아니었다.
초대 사도들도 유대적 관습을 고수하지 않았다. 베드로 사도는 안디옥에서 사역을 하였고, 요한 사도는 에베소에서 사역을 했다. 초대 사도들도 이방인 지역에서 이방인을 전도하는 사역을 수행했었다. 그럼에도 사도들은 율법을 준수했는데, 이방인들에게는 강요하지 않았다. 이러한 사역의 모습은 바울의 원리와 충돌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바우어의 주장은 잘못되었다.
[바울의 기독론: 천상적 그리스도] 이방인의 자유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과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가르침은 초대 사도들에게 전혀 비판받지 않았다. 기독교인의 자유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었지만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는 전혀 없었다. 유대주의자들은 바울의 가르침대로 예수와 어떤 인격의 차이를 인정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가르침에 대해서 저항은 전혀 없었다. 골로새서는 예수의 탁월성이 더욱 강조되었다. 골로새서에서 예수의 탁월성은 격하시키려는 사람은 이단이었다. 바울의 천상적 그리스도에 대해서 거부하고 역사적 예수를 주장한 부류는 초기 사도들이 아니라, 기독교의 역사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Gnostics)이었다. 바울은 영지주의와 전혀 관계가 없고 팔레스타인 기독교의 사도들과 완전한 일치(perfect harmony)를 이루었다.
[바울 기독론의 변화?] 바울의 기록론 사상은 변화되었는가? 이러한 흔적으로 고린도후서 5:16을 근거로 제시하였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육체로 알았다가 더 높은 신성으로 변화되었다는 주장이다. 바울은 두 개의 기독론 사상을 소유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두 가지를 설명한 것이다. 고린도후서 5:16이 자신의 초기 개념이라는 언급은 전혀 없다. 고린도후서 11:4에서 바울은 반대자들이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는 천상적 예수와 구별된 다른 예수이다. 고린도후서 11:4절은 난제(crux interpretum)이다. 성경에서는 예수의 인격의 다른 견해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바울은 복음의 내용을 변경할 필요를 알지 못했다. 바울의 종교에서 근본적으로 강조되는 것은 신적 속죄자로서 그리스도(Christ as divine Redeemer)이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 이 개념을 강력하게 주장했지만,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해서는 변호한 흔적이 없다. 바울이 전한 그리스도의 인격은 천상적인 그리스도이다.
[다른 예수] 바울은 고린도후서 11:4-6에서 고린도 교회가 “다른 예수”를 용납함에 대해서 책망하였다. 바울의 가르침에는 다른 예수도, 다른 성령도, 다른 복음도 없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바울의 가르침을 부족하게 생각하고 새로운 지식의 첨가를 추구했다. 바울은 이런 고린도 교회에 “나를 참고 견디라”고 권면했다. 대명사가 ‘나를’이다. 바울 자신이 고린도 교회에 가르쳤던 것을 지키라는 표현이다.
[사본상의 문제] 이 본문은 사본상의 문제가 있다. 사본에서 현재 동사와 미완료 동사로 나누어져있기 때문이다. 의심할 것이 없이 미완료형태가 읽기에 어렵다. 본문비평의 원칙은 문장에서 두 단어의 선택에서, 해석이 어려운 단어를 채택하는 것이다. 미완료형으로 읽는 다면 한 상황에서 다른 상황으로 전환되는 느낌이 들게 된다.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내용에서 다른 복음의 내용으로 전환되고 있다고 느낀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19-20에서 고린도 교우들에게 “나를”참고 견디라고 권면하였다. 이는 그들이 바울의 반대자들의 가르침을 잘 참고 견디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반대자들은 자신이 바울보다 더 자세한 지식을 갖았다고 주장했고, 고린도 교우들은 잘 용납하였던 것이다. 그들이 주장한 “다른 예수”는 자신들의 과도한 주장 속에만 있는 것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말한 “다른 예수”도 제안하지 못했다. 그러나 바울은 완전한 예수를 전했다.
바울이 갖은 천상적 그리스도에 대한 이해는 초기 사도들이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논쟁은 없었고 바울은 이 교리를 침묵할 수 없었다. 복음의 근본적인 가르침을 위해서 침묵을 지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바울의 갈라디아서에서 유대주의 가르침에 대한 저주, 안디옥에서 베드로를 꾸짖음 등에서 담대함을 볼 수 있다. 바울이 말하는 천상적인 그리스도는 당대에 함께 살았던 나사렛 예수이다. 그들은 예수의 인간생활이 비천한 단계인 것으로 보았다.
바울은 예수를 모든 존재의 왕좌에 앉은 거룩한 구세주로 여기는 사람들과 교제를 하였다. 바울이 갖은 천상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당시 초기 사도들에게 대한 개혁된 사상은 아니었다. 바울이 예수의 생애에 대한 필요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사도들의 도움이 필요했는가? 바울은 틀림없이 예수의 생애와 죽음에 대한 정보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의 제자들을 박해하였다. 박해자인 그가 다메섹의 도상에서 개종하였고, 3년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지만 아무도 만나주지 않았다. 개종 후 예루살렘에서 야고보와 베드로가 바울을 만나는 것을 꺼려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바나바] 사도행전 4장에 등장한 바나바는 구브로에서 태어났고, 초기 예루살렘 교회의 지체로 재산 전체를 헌신했다. 바나바의 행동은 교회에 특별한 호의를 보여주었다. 바나바가 예수와 어떤 교분이 있었는지는 성경에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십자가 이전에 예수와 접촉했었을 것이다.
[마가 요한] 1차 선교 여행에 동반한 마가 요한은 골로새서 4:10, 빌레몬서 24절에 바울의 믿을만한 조력자로 등장한다.
마가 요한은 확실한 예루살렘 교회의 지체였다. 그의 어머니의 집은 예루살렘 교회 모임의 중요한 장소였다. 사도행전 12장의 말씀은 벨하우젠 조차도 역사적인 높은 가치를 평가했다.
히에라폴리스(Hierapolis)의 주교였던 파피아스(Papias)에 의하면 마가와 베드로의 사제관계로 제시했다. 베드로전서 5:13에서 확인된다. 마가 요한은 바울과 예루살렘 교회뿐 아니라 바울과 예수의 가장 친한 친구 사이로서 어떤 연결점을 갖고 있다.
바울과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화합은 바울서신과 사도행전에서 등장한다. 예수의 공생애에 대한 바울의 지식은 예루살렘 교회에 보존되어 있었다. 바울이 예수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지 않은 채 교회와 접촉을 가졌다는 것은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실라] 실라는 3차 선교여행에 동반했다. 실라도 예루살렘 교회의 지체였다. 실라가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사도 명령을 가지고 간 두 사람 중 한 사람으로 말한다(행 15:27). 바울 사역의 동역자인 바나바, 마가, 실라는 모두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이었다. 실라를 통해서도 바울과 예루살렘의 긴밀한 관계에 대한 증거가 된다. 바울의 선교사역에서 언제든지 예루살렘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로마서 16장 7절에서 안드로니고(Andronicus)와 유니아(Junias)는 바울보다 먼저 신자였다. 바울은 사도들에게 긴밀하게 인정된 안드로니고와 유니아가 바울과 함께 사역했다. 예루살렘의 사도들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은 바울은 예수에 대한 모든 것을 동등하게 소유했을 것이다.
[바울의 복음(1): 예루살렘의 복음과 동일함] (1)바울은 자신이 나사렛 예수의 제자로 생각했다. (2) 또한 예수의 친구들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3) 바울은 예수의 생애에 관한 풍부한 자료를 갖고 있었다. 즉 바울은 예수의 참 제자였다(Paul was a true disciple of the real Jesus).
바울은 예수에 관한 역사적 진술에(historical information about Jesus) 대해서 관심이 없었다. 이러한 무관심은 서신에서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 극히 드물게 나타난다. 바울은 예수의 지상 생애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진술하지 않았고 단순히 접촉에만 관심을 두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육체를 따라서 섬기지 않았고(고후 5:16) 모든 사람도 그렇게 하도록 사역했다.
회심 이전에 바울은 진정한 애국적 민족주의였고, 신비적 경건주의가 없었다. 그러한 바울이 회심했다. 바울은 유대 땅에 살았던 나사렛 예수에 대해서 거의 모든 정보를 알고 있었다(고전 15:1-11). 그러한 전승은 바울에게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나님에 관한 지식은 오직 계시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의 복음을 이해할 때에 고린도전서와 갈라디아서를 비교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갈라디아서만을 고집할 때에 바울의 복음 사역은 단지 “부활”을 전하는 것이 된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자신의 복음이 그리스도의 부활에 기초하고 있다고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바울이 자신의 복음을 마치 예루살렘과 상관없이 자기 계시에 의한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고린도전서 15장과 비교할 때에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의 전승을 잘 알고 있었으며(1-11), 부활장이 예루살렘 교회의 가르침과 동일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의 복음(2): 그리스도에게 직접 받았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복음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하였다. 바울은 다메섹 근처(도상)에서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갖게 되었다. 신성을 모독하는 참람한 지식으로 증오하던 것에서 예수의 계시로 말미암아 부활의 증인이 되었다.
현시대에 예수에 대한 자료가 제한되어 있지만, 당시에 예수에 대한 자료는 너무 많았다. 오늘날과 같은 고고학 자료나 특수자료가 당시 바울에게는 일상생활이었다. 그러한 바울이 자신이 받은 복음이 사람에게서 나지 않고, 그리스도로 직접 받았다. 다메섹 도상에서 신적 개입(divine interposition)을 확신할 수 있다. 즉 바울이 이방인의 구원을 위한 사역자에 대한 소명은 다메섹의 도상에서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이 서신에서 제시하는 예수 생애에 관한 전통] 바울은 예수의 생애에 대한 전통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증언하지 않았으며, 매우 적게 직접 인용했다. 고린도전서 7:10의 이혼에 대해서 “주의 명령”으로 권면했다. 이 명령은 부활하신 주의 명령이 아닌, 십자가 이전의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명령하신 것이다. 먼저 이러한 진술로 보아 바울은 부활의 주께서 직접 계시한 것과 역사적 예수의 가르침에 대해서 구별하는 습관을 보여준 것이다. 데살로니가전서 4:15에서 “주의 말씀”은 지상의 사역에서 주신 예수의 계시이다.
그런데 고린도전서 11:23절 이하에서 주의 만찬의 제정에 관한 보고이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역시 주께 받은 것이다”에서 ‘주께 받았다, I received~’라는 표현이 직접인가? 아니면 구전인가?에 분별이 요구된다. 전자를 주장하는 부류는 초자연주의적 입장에 지지를 받았다. 그들은 부활한 주님이 바울에게 과거의 모든 사건들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알려주었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이 견해는 자연주의에서 초자연주의로 이끌어, 바울을 신비주의자이며 몽상가로서 예수에 과한 역사적 가르침과 분리시키려는 것이다. 그러나 메이첸은 일반적으로 알 수 있는 지식에 대해서 하늘에서 직접 계시의 필요성이 없음으로 거부했다.
자연주의자들은 바울 의식에서 일어난 환상들로 평가했다. 보고를 통한 지식이었다면 그것을 언급했을 것인데, 주께 받은 것이라고 하니 환상을 통해서 습득된 지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에서 바울이 선험적으로(a priori) 받았다는 자연주의의 견해는 배격되어야 한다. 바울이 주께, ‘~로부터’ 라는 단어는 단어 뒤에 있는(I received from the Lord) 단어(Lord)를 나타내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즉 직접적 근원이 아닌 궁극적 근원을(not the immediate but the ultimate source)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 고린도전서 15:3에서 “받았다”는 목격자에 의한 보도를 뜻한다.
[바울이 알고 있는 예수] 이러한 바울서신의 내용을 볼 때 바울은 예수의 생애에 대해서 자세한 지식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흔히 바울이 예수에 대해서 죽음과 부활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있었다고 하는데, 바울은 예수 생애의 사소한 것까지 언급했고 알고 있었다.
바울이 알고 있는 예수는, 유대인, 다윗의 자손, 모세의 율법 아래 있었으며, 형제들이 있었고(야고보), 유대인들에게 전도사역을 하였고, 십자가에서 죽었고, 부활함 등이다. 고린도전서 15:4을 보면 바울은 예수의 매장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십자가에 대해서 생생하고 자세하게 선포할 뿐만 아니라, 예수의 생애를 따뜻한 성품에 동의되는 어떠한 설명이 없다. 빌립보서 2장 5절에서 그리스도의 공평함이 성육신과 십자가에서 보여주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서 신자의 믿음, 감사의 근원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죽음에 근거했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성육신과 속죄의 죽음 예수의 지상 사역까지 일관되게 감동을 받았다.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온유함”은 지상 사역에서 나타난 예수의 모습이다. 선재하신 그리스도의 영광, 예수의 고난의 삶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바울은 예수의 지상의 전 생애를 본받으려 했다. 그리스도를 본받음(살전 1:6, 고전 11:1)은 바울의 삶과 설교에서 등장하는데, 이것은 복음서의 예수의 모습이다. 바울서신에서 예수의 설교와 모범이 거의 없다고 비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 바울서신에서 바울이 예수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지식과 따뜻한 예수의 인격에 대해서 증거했다. 바울은 예수의 지상 사역에 대해서 상당한 정보를 갖고 있었다.
바이스(Weiss)는 예수가 믿음을 요구하는 사역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바울의 사역지에서 예수를 속죄사역을 한 구원자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예수는 누구인가? 바울이 제시하는 속죄주로서 예수는, 몇 해 전에 죄인으로 죽임을 당한 유대인이었다는 것이다. 예수는 참 의인이었는가? 등 다양한 질문이 발생된다. 비록 서신서에서 예수의 언행에 대한 설명이 적다할지라도, 바울이 설명할 때 예수의 언행이 중요한 부분으로 등장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바울은 예수의 참제자였다(Paul was a true disciple of Jesus). 바울은 동시대에 또한 그렇게 인정을 받았다. 그는 예수의 가르침과 사역을 사용했다. 그렇다면 바울이 추종한 사람이 참 예수인가(real Jesus)?
[예수: 지상 생애의 초자연적 인격과 부활하신 천상의 그리스도] 바울이 믿는 예수를 추구할 때에 문제점은 예수에 관한 근원된 문서가 4복음서이다. 그 복음서들을 확신할 수 있는가? 복음서를 확신한다면 바울이 예수의 참제자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의 생활의 실체와 총화는 신적인 주님(divine Lord)이였고, 복음서에서 전체에서 예수는 신적 주님과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예수는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며, 영감받은 의의 교사도 아니며, 하나님의 계시자나 해석자도 아니다. 이러한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천상의 구속주로서 이 땅에 인류를 구원하러 오신 초자연적 인격이다(a supernature person; a heavenly Redeemer come to earth for the salvation of men). 예수의 초자연적 인격은 복음서 모두에서 제시한다. 요한복음의 신적인 그리스도와 마가복음의 인간적 그리스도를 대비시키는 것은 이미 지나간 헛된 소리이다. 지금은 정도의 차이(differ only in degree)일뿐 동일하게 초자연적 인격, 천상적 구속주로서 예수를 제시한다. 이것은 바울이 제시하는 예수도 초자연적 인격이며 구속주로서 복음서와 완전히 일치한다.
현대 비평학에서 인정하는 것처럼 마가복음을 초기의 것이라고 인정하고 따른다면, 막 10:45에서는 예수는 구속주이다. 복음서에서도 예수의 생애의 사소한 것보다 예수의 죽음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것은 바울과 복음서가 동일하게 예수의 죽음이 죄를 속량하는 사역(a ransom from sin)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복음서의 예수와 바울 서신의 그리스도가 동일한 현상에서 복음서가 바울을 의존하는 것으로 가설을 세우기도 했다. 그래서 참된 예수를 말하기 위해서 바울적 요소와 복음서를 분리시키는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예수의 지위를 신적인 위치까지 올릴 때에는 꼭 바울적 그리스도와 유사성을 피할 수 없다. 이 때에 어려운 점은 바울과 복음서가 모두 동일하게 예수를 믿음의 모범뿐만 아니라 믿음의 대상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주의는 자연적인 것을 주장하려고(the historian, the modern naturalistic theory) 성경의 초자연적인 제시를 제거하려고 했다. 그래서 갈릴리 선지자의 진정한 형상으로 초자연적인 것으로 각색한 것을 제거하고 소박하게 재구성하려고 하였다.
현대 자연주의적 이론에서는 바울이 제시하는 복음과 복음서의 예수는 동일하지 않았다. 복음서에서는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이 분리되기 어렵기 때문에, 그들은 초자연적인 요소를 제거하였다. 이는 복음서 전체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어떤 과격한 사상가는(radical spirits) 초자연성을 인정하면서 예수의 현실성을 거부하였다(radicalism). 그러나 복음서의 예수는 만들어진 초상이나 신화의 산물이 아닌, 지극히 역사적 상황에 부리를 박고 있다. 자유주의에서 자신들이 원하는 예수는 역사에서 분리된 “자유 예수(liberal Jesus)”로 그들의 창작물에 불과하다.
설령 이러한 분리가 성공되었다고 한다면, 역사적 예수로서 근대 자유주의의 인간 예수는 기형(monstrosity)의 모습이 될 것이다. 이러한 모순은 예수의 메시아 의식(Messianic consciousness)에 있다. 자유주의에서는 예수에서 메시아 의식을 제거하고 겸손한 의의 교사의 인격을 부과하여, 예수의 믿음으로 하나님 안에서 믿음을 요구했다. 그런데 그 인간 예수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땅을 심판하는 인자로 생각하고 있다. 정말 순수한 인간 예수가 그러한 생각을 했다면 정상적인 정신의 소유자라고 할 수 있겠는가? 초월적인 메시아 사상을 자기에게 적용할 수 있는가? 브레데(Wrede)는 예수가 자기를 메시아라고 주장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the messianic secret). 이것은 뷰셋(Bousset)도 동일한 방향이다. 그러나 예수의 의식에서 메시아적 요소는 복음서에서 너무나 깊이 자리 잡고 있다. 즉 성경을 각색하지 않고서는 이룰 수 없는 신학 이론이다. 또한 예수에게 전혀 없는 메시아 의식을 어떻게 제자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선생을 메시아라고 인식할 수 있었는가를 입증할 수 없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메시아라고 하셨기 때문에 메시아라고 선포한 것이다.
최근 비평에서는 예수의 의식에서 메시아 의식을 전혀 부정하지 못한 이론이 있다. 슈바이처(A. Schweizter)와 철저한 종말론(consistent eschatology)을 따르는 무리들이다. 예수가 미래에 실현될 하나님 나라를 기대했다는 것으로 메시아 의식을 인정하지만 한 부분을 과장시킨 복음서의 예수와 다른 것이다.
이러한 견해를 피한 완화된 견해(a policy of palliation)에서는 예수의 메시아 의식을 인정하지만, 예수 생애의 후기에서 일어난 것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이 주장에서는 예수를 다윗의 후손이 아닌 다니엘의 인자로 간주한다. 또한 예수에게 본질적으로 부여된 인격이 아니라 하나님과 밀접한 의식에서 발생된 것이다. 이러한 완화적인 방법이 복음서 전체의 예수의 모습을 해결할 수 없다. 순수하고 거룩한 의의 교사가 후세에 세상의 심판자로 격상되는 신적 인자로서의 변화를 차이가 너무나 큰 것이다. 하이트뮬러(Heitmuller)는 예수를 신비스럽게(uncanny) 격상하면서 해결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복음서에서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이고 하늘에서 구름타고 올 자로 생각했다. 전형적인 겸손이라면 이러한 상상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자연주의자들의 다른 해결 모색으로 예수를 메시아 의식의 과대망상증으로 제안했다. 예수가 정신이상자인 것이다. 여기에서 예수는 사랑하는 예수가 되지 않는다.
모든 자유주의 예수 재구성의 두 가지 난점은 첫째 복음서에서 자연적인 것과 초자연적인 것을 분리하는 것과 둘째 분리가 성취할지라도 남은 예수의 초상이 기형적이라는 것이다. 마지막 견해대로 심리학적으로 기형인 예수를 인정하자면, 그 인간 예수를 어떻게 신약성경의 초자연적 예수(supernature Jesus)와 연결시킬 수가 있겠는가? 예수를 초자연적인 인격으로 된 것은 최초에 발생했다. 즉 바울이 회심할 당시에 이미 예수를 하늘의 그리스도(heavenly Christ)로 믿고 있었다. 바울의 개종은 예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약 3-4년 후의 일이다. 바울이 만난 천상의 그리스도는 예루살렘 교회가 믿고 있던 “다른 예수, other Jesus”와 전혀 분쟁이 없는 일치된 것이었다. 예루살렘 교회도 바울과 동일하게, 예수를 의의 교사가 아닌 천상적 구속주(heavenly Redeemer)로 제시하였다.
자유주의에서 부활은 예수의 인격의 존엄에 대한 인상의 각인으로 설명되었다. 그러나 복음서의 초자연적 예수가 죽음에서 제자들이 스스로 살아있다고 생각하는 병리적인 현상으로 평가된 것이다. 그런데 제자들이 기적의 예수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부활 신앙은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즉 예수의 기적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에게서 부활 신앙은 발생하지 않는다. 양자 초자연적인 예수와 부활한 그리스도의 현현을 취하지 않고서는 신약성경 전체를 구성할 수 없다.
자유주의에서 구현하는 예수(liberal Jesus)에서 세 가지 곤란한 점은, 첫째 복음서에서 예수의 초상을 손상시킨 기적의 모습이 있다는 것, 둘째 역사적 예수로 재구성했을 때 인격의 도덕적 모순이 발생한다는 것, 셋째 12제자들이 순전한 인간 예수와 전혀 갈등이 없이 바울 서신과 신약전체의 신적 그리스도께 자리를 양보한 점 등이다. 이러한 모든 난점들을 극복했다할지라도, 예수와 바울의 일치는 비평주의의 모든 주장을 일축시킨다.
[예수와 바울의 일치] 첫째, 예수와 바울은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동일한 견해를 갖고 있다. 하나님 나라의 용어는 바울 서신에서 많이 나오지 않는다. 바울에게서 왕국(Kingdom)은 정치적이거나 물질적인 것이 아니다. 1세기 유대교에서 왕국은 지극히 정치적이고 물질적인 것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왕국 개념에서 정치적인 것이 분리되었는가? 예수나 바울에게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윤리적인(ethical) 의미였고, 현재적이었고 미래적이었다. 예수의 천국 개념을 종말론으로 간주하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예수와 바울에게 천국은 초월적이었고 윤리적인 것(transcendent and ethical)이었다. 바울에게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의와 평강과 희락으로, 단순한 말이 아닌 전체에서 예수와 동일한 것이다. 예수는 복음, 왕국의 오고 있음(the coming of the Kingdom)을 선포했다.
둘째, 바울은 예수와 동일하게 하나님의 아버지됨의 교리(doctrine of the fatherhood of God)를 갖고 있다. 예수가 확립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여김은 기독교 문서 외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 구약성경에서도 아버지가 아닌 민족의 하나님이었고, 헬라와 그리스에서도 국가종교의 신이었다. 구약성경에서는 메시아에 대한 준비를 시켰고, 유대 문학이나 랍비 문학에서 드물게 하나님을 아버지로 보는 견해가 있었다. 그런데 예수는 제자들에게 아버지라고 부름이 새시대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아버지됨은 예수의 독특한 개념이며, 바울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를 서신서의 초두에 정규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하나님이 아버지되심은 논증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명한 것으로 영혼의 깊음에서 올라오는 것이다.
자유주의에서 아버지되심은 무한한 사랑으로 평가하였지만, 성경에서도 아버지께서 만민에게 동등하게 햇빛을 주시지만 악인과 선인의 동일한 아버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아버지라는 고백은 하나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나타낸다.
복음이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지만, 죄의 문제는 해결되어야 한다. 예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계시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속죄 사역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러 오신 것이다.
셋째, 바울은 은혜의 교리(a doctrine of grace)의 제시는 예수와 동일하다. 자유주의에서도 예수가 은혜의 교리를 인정했다. 구원이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은혜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에게 주시는 성질의 것이다. 바울은 은혜의 교리를 가르쳤지만, 그의 복음을 들은 그리스도인들은 심판대 앞에 설 것이라 생각했다. 예수와 바울에서 제시되는 심판대에서 선 그리스도는 동일하다.
넷째, 바울의 윤리적 교훈은 예수의 윤리적 교훈과 놀랍게 흡사하다. 율법의 완성을 사랑이라는 개념, 위대한 원칙에서 동일하다. 예수와 바울의 동일성, 연속성은 유대 교사들과 건너기 힘든 심연이 있다. 바리새인었던 바울이 어떻게 비연속성에서 동일성으로 바뀌었는가? 바울과 나사렛 예수의 무리들과 친밀했던 것이다.
[바울과 예수의 관계: 죄사함 받은 사도이며, 죄사함을 주신 구속주] 바울이 예수의 사도로 인정한 사실이며 예수의 생애와 가르침에서 바울은 일치된다. 예수의 영향력으로 바울이 사도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바울이 예수를 모방하지 않았다는 브레데(Wrede)의 견해는 정당하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의 말씀에 대해서 기재하지 않음에서 예수에 관한 지식이 없었다라고 단정할 수 없다. 바울은 예수가 자신을 구속주라는 것이 중요했다. 즉 바울의 종교는 구속의 종교였다. 예수는 교사가 아니라 구속주였다. 인간들에게 바른 삶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죄를 속량하여 인간에게 새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이다. 바울 종교의 핵심은 속죄 사상이며, 속죄를 이루신 구속주가 예수이다. 브레데는 바울을 구속주로 인정했지만, 바울을 예수의 추종자가 아니라 새종교의 창립자로 생각했다. 그래서 바울의 신학이 아닌 나사렛 예수에서 종교를 찾으려 했다. 브레데의 견해는 단순한 신학적 사변(theological speculation)에 불과하다.
예수는 인간의 죄를 위해서 구속 사역을 위해서 하늘에서 오신 신적 구속주이며, 바울은 예수의 참된 추종자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버지됨에 대한 계시자라면 바울은 예수의 참 제자일 수 없다. 팔레스타인의 의의 교사였던 예수에서는 천상적 구속주를 대체할 수 없다. 예수와 바울의 관계에서는 어떤 전향적인 해석보다, 오직 영광의 주의 구속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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