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형람서원 2012. 10. 2. 0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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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1569 허균 탄생
1573 왕비 유씨 탄생
1575 광해 출생

1592 임진왜란
1600 인목대비, 19세 나이로 51세 선조와 혼인, (광해의 나이 25세)
1606 인목대비에게 영창대군 출생
1608 즉위, 대동법 실시 (나이 33세)
1613 5년 칠서지옥, 영창대군 서인
1614 6년 영창대군 살해
1616 8년. 2. 28 "숨겨야 할 일들은 조보에 내지 말라"
1618 10년 강홍립 파병, 인목대비 서궁유폐, 허균 역모로 능지처참

1623 15년 인조반정. 광해군 폐위

1641 광해군 사망

 

도승지:  승정원의 기능은 왕명출납·시종·정부기능·외방출사기능이 있다. 왕명출납은 가장 중요한 기능으로 국왕으로부터 하달되는 모든 명령과 정교(政敎)는 반드시 승정원이 살펴 국왕에게 다시 허락을 받은 뒤에 하달했다. 의정부 대신도 승정원을 경유하여 왕을 면대해야 했다. 승정원에서 최고의 직분이 도승지이다.

 

광해군에서 실제 도승지는  이덕형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잘 알려진 한음의 이덕형(李德馨 1561~1613)이 아닌, 이덕형(李德泂 1566~1645)은 허균보다 8년이나 연상이고, 광해군이 밀려나는 그날까지도 도승지였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전형적인 팩션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본 후기는 혹시라도 그러한 가능성을 생각할만한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역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생각한다.

 

1) 왕은 절대로 하루 아침에 형성되는 기질이 아니다. 

    왕은 절대로 장난이나 실수로 되어지는 성격이 아니다.

    하루 대통령은 아무런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허수아비에 불과하다. 

    --> 그런데 영화에서는 광해군의 중요한 정책을 순식간에 결정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영화의 스피디한 전개도 있겠지만, 15일에 그러한 중대한 사안을 결정할 수는 없다. 또한 그러한 어전 회의를 이끔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 수 없다. 

 

2) 왕은 모든 사람이 사모하는 꽃이지만, 절대로 한 사람에게 주어진 절대적인 위치이다. 또한 어느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조선왕조들도 왕좌를 잘 감당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왕에게는 최고의 보장이 주어진다. 그럼에도 그 자리를 인간이 감당하지 못했다. 감당한다할지라도 수 많은 독살과 살기의 공격을 피해야 했다. 

    현재도 왕의 자리를 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왕의 자리는 이 땅에서 가장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있는 곳이다. 그래서 왕의 용변도 개방되었고, 변까지도 검사한다. 인간은 군림하는 왕이 아닌 섬기는 왕이 되어야 가장 편안한 상태가 될 것이다. 

 

3) 왕은 만들어지는 것이지 스스로 되지 못한다. 

    태조 이성계부터 왕은 혼자 독불장군으로 되지 못한다. 어떤 왕이든지 옹립하는 세력이 있어야 한다. 그 세력과 절충이 되지 않으면 왕권도 결국은 몰락하게 된다. 어쩌면 광해군도 북인들과 관계가 어그러짐으로 서인에게 틈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서인들은 왕의 제목(인조)를 추앙하면서 반정을 도모했다. 스스로 왕이 되려고 하지 않았다. 왕이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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