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근대사,,,
광주일보 "남도근대화탐사"
<광주편>13. 우편,전기,전화시대개막
2012년 7월 18일 수요일(제 19276호)
1917년 자혜의원(현 전남대병원)에 광주 최초의 전기불 밝히다.
<원문인용>
1888년, 다시 말해 강제병합 22년 전 이미 일제의 군부세력은 조선반도 곳곳을 염탐해 그것을 책으로 남겼다. 침략 야욕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된 것이었다. 일본육군참모본부가 작성한 '조선지지략' 제8권이 바로 전라도편이다. 여기에는 당시 광주목에 대해 소상히 적혀 있다.
이 서적에 따르면 광주목은 40개면(원래 41개면)에 호수는 7753호였으며, 읍성 내에 객사, 향청, 훈련청, 장청, 군기고, 대동청, 형방청, 공수청, 관노청, 의방 등이 있었다. 조선지지략이 중시해 다룬 것은 바로 역원(驛院)이다. 역은 당시 공문의 전달, 공무 여행자에 대한 마필 제공을 하는 기관이며, 원은 국립숙박시설읻. 이 역원은 수도인 한성에서 지방에 이르는 주요 도로에 약 30리마다 설치됐으며 전국에 500여 개소가 있었다. 일제는 조선시대 정보 핵심거점인 역원을 예의주시한 것이다.
광주에는 경양방죽이라는 명칭을 만들어낸 경양역, 선암역, 수여원, 증원, 최정원, 저원, 보통원, 분수원, 장록원, 견암원, 혈보원, 누무원, 극락원, 진국원, 신원 등이 있었다. 2역 13원으로 구성된 것이다. 이 서적은 읍성에서 이 역원까지의 거리까지 자세히 명시하고 있다. 이중 가장 으뜸은 단연 경양역이었다. 경약역에는 1명의 찰방을 중심으로 23명의 역리와 5명의 노비가 있었으며, 주변 6개의 역을 총괄하고 있었다. 그 주변에 펼쳐진 논밭은 이 역의 운영경비를 대는 역둔토였으며, 경양역(경양면)은 광주읍성 내 성내면을 중심으로 한 읍사방(기례방면, 부동방면, 공수방면, 편방면)에 이어 두번째로 인구가 밀집돼 있었다.
<인용끝>
<요약> 1895년 지방제도개혁으로 부군제가 실시되며 1896년 광주군에 귀속되면서 폐지되었다. 조선시대의 정보전달체계가 전환되는 것이다. 1884년 우정총국이 설치되면서 근대우편제도, 1896년 나주우체사가 1897년 광주로 이설되면서 광조도 우편제도가 실시되었다. 1905년 한일통신협정에 의해 일제는 자신들이 운영하는 광주우편수취소와 우체사를 병합해 '광주우편국'으로 편성했다. 1917년 충장로 4가에 자리를 잡아 지금까지 95년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나라 전화사용시기는 1896년이다.
1902년 한성-인청간 시외전화 개설, 1903년 부산에 전화시설 설치
광주에 전화설치는 1908년 7월에 시작해, 1911년 4월에는 요금제로 누구나 사용할 수 있었다.
광주전깃불은 1917년 8월 16일,, 1887년 궁궐에 전기가 들어온지 30년만이다. 이 전기는 169가구에 공급되는 극소수의 전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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