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칼빈주석)베드로전서 1:1-12

형람서원 2008. 5. 2. 23:50
728x90
반응형

제 1 장


1 Peter 1:1-2

 

1. Peter, an apostle of Jesus Christ, to the strangers scattered throughout Pontus, Galatia, Cappadocia, Asia, and Bithynia,

1. Petrus, apostolus Jesu Christi, electis inquilinis qui dispersi sunt per Ponturn, Galatiam, Cappadociam, Asiam et Bithyniam,

2. Elect according to the foreknowledge of God the Father, through sanctification of the Spirit, unto obedience and sprinkling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Grace unto you, and peace, be multiplied.

2. Secundum precognitionem Dei Patris in sanctificatione Spiritus, in obedientiam et aspersionem sanguinis Jesu Christi; Gratia vobis et pax multiplicetur.


 1절. 바울의 인사와 베드로의 인사에서 다른 점은 베드로는 “더욱 많을 지어다”라는 동사를 덧붙이지만 의미는 동일하다. 바울이 성도들에게 은혜와 평강으로 시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의 시작하신 일을 다 이루실 때까지 은혜와 평강이 더하시기를 기원한 것이기 때문이다.

  나그네. 칼빈은 ‘나그네’에 대해서 ‘모든 경건한 사람을 지칭하는 것’을 은유적 표현으로 거부하고, ‘흩어져 있는 유대인’으로 제시하였다. 흩어진이 증거라는 것이며, 천국을 가는 세상의 나그네라고 적용하는 것은 실수라는 것이다.


 2절. 사도는 거룩하게 하심(through sanctification of the Spirit)에 두 가지 일을 덧붙인다. 그는 순종함이 ‘새 삶’을 의미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뿌림은 ‘사죄’를 뜻한다고 본다. 하나님께서는 유효적인 부르심(an effectual calling)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것은 우리가 새로워져서 그의 의에 순종하게 되고, 또 예수 그리스도 피의 공로로 우리가 죄에서 깨끗하게 될 때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무조건적 선택에서 되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신앙 체험으로써 확인해야 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령을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우리를 부르신 데에는 두 가지 결과 혹은 목적이 있는데, 새롭게 지음을 받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과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써 죄 씻음을 받게 되는 것이다. 두 가지는 성령의 역사로 일어난다. 우리는 선택이 그의 부르심과 분리될 수 없고, 새 생명으로부터 믿음의 의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으로 이루어진 선택은 순종과 그리스도의 피뿌림, 성령의 거룩케하심” [We hence conclude, that election is not to be separated from calling, nor the gratuitous righteousness of faith from newness of life.]본 구문이 난해하기 때문에 아래와 같이 각주를 제시하였다. The meaning would be more clear, were we to make a change in the order of the words, “Elected, according to the foreknowledge of God, unto obedience and the sprinkling of the blood of Jesus Christ, through (or, by) the sanctification of the Spirit,” that is, they were elected in order that they might obey the gospel, and be cleansed from the guilt of sin by the blood of Christ, through the sanctifying power of the Spirit. It was not their obedience that made them the elect, but they were chosen that they might obey, and thus obey through the influence of the Spirit. This is clearly the doctrine of this passage. See 2 Thessalonians 2:13 — Ed.


  하나님의 선택은 하나의 비밀에 속한 것이어서 성령의 특별한 계시가 없이는 알려질 수 없는데 이것이 어찌 밝혀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성령의 증거로 말미암아 자신의 선택을 확신하게 되므로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의 선택에 관해서는 확실한 것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 형제의 선택에 관하여 지나치게 캐고 들어서는 되지 않고, 그들은 오히려 부르심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마땅하며, 믿음으로 교회 안으로 받아들여진 자들은 다 선택을 받은 자들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나는(=칼빈) 대답하겠다.

  선택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에 연결되어 있는 것이지, 누가 선택받았는지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것이 아니다. 선택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인 동시에 선택으로 우리가 은혜를 알 수 있다. 우리의 부르심에서 선택의 확실성을 인식하려는 것은 아주 깊은 신비에 싸여 있는 하나님의 숨겨진 예지 속에서 찾아내려는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다. 베드로는 선택의 대상이 아니라, 선택의 효과를 제시한다. 선택의 효과는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 즉 유효적인 소명으로 성령의 내적인 역사에 의하여 생기는 믿음이 복음의 외적 선포에 더해질 때 발생한다. That effect is the sanctification of the Spirit, even effectual calling, when faith is added to the outward preaching of the gospel, which faith is begotten by the inward operation of the Spirit. 

 

1 Peter 1:3-5

3. Blessed be the God and Father of our Lord Jesus Christ, which according to his abundant mercy hath begotten us again unto a lively hope by the resurrection of Jesus Christ from the dead,

4. To an inheritance incorruptible, and undefiled, and that fadeth not away, reserved in heaven for you,

5. Who are kept by the power of God through faith unto salvation ready to be revealed in the last time.

 3. Benedictus Deus et Pater Domini nostri Jesu Christi, qui secundum multam suam misericordiam regenuit nos in spem vivare, per resurrectionem Jesu Christi ex mortuis,

4. In haereditatem incorruptibilem et incontaminatam et immarcescibilem, repositum in caelis erga vos,

5. Qui virtute Dei custodimini per fidem in salutem, qut parata est revelari tempore ultimo.


  3절. 영적인 전쟁에서 용기를 얻어 세상을 이기는 목적을 위해서 그리스도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해서 알아야 하며, 하나님 없는 가치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혜를 찬양할 수 있으며, 하늘의 무한한 보화를 얻고 즐기기 위해서 세상을 버리는 것을 어려운 일로 생각하지 않는다.

   

   원문은 “복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나님, Blessed be God who is the Father of Jesus Christ.”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된 하나님을 알고자할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로 이해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보자가 되어주지 않으셨더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알 수 없다. 그리스도를 떠나서있는 사람은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붙들고 있는데, 유대인과 회교도들이 그렇다.


   사도는 먼저 유효적인 원인을 제시하고, 다음 중보적인 원인을 제시한다. He first mentions the efficient cause, and then he points out the mediating cause. 베드로는 구원에서 오직 ‘긍휼’하심을 강조하여 하나님만이 유일한 주인임을 가르친다. 하나님의 긍휼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언급되지 않고 부활만 언급되어도 모순되지 않는데, 그것은 시작이 없이 결과가 없기 때문이다. 부활만을 제시하는 것은 ‘새생명’에 대해서 말하기 때문이다.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거듭남이 하나의 선물이다. 하나님에 의해서 새롭게 회복되는 것은 육체에 따른 소망이 아니라, 참되고 합법적인 하늘의 상속자(the true and legitimate heirs of God)로서 소망을 갖는 것이다.


 4절.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을 잇게 하시나니... 세 가지 형용사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상세하게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성도의 기업(an inheritance)은 하늘에 간직된 것이다. 하늘의 기업은 사단이 감히 해할 수 없는 안전한 곳이다. 성도들은 하늘 나라의 참되고 합법적인 상속자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는다.


  5절. 너희가 구원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얻었나니... 전후관계에 유의해야 한다. 그에 말해 의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보호하심을 입고 있으며, 우리의 기업은 하늘에 간직되어 있다. 믿음은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자주 움츠러들기 때문에 주께서 만일 우리를 돕지 아니하신다면 우리는 항상 내일을 염려했을 것이다.

  최종적인 보존(성도의 견인)은 내일에 확실한 구원을 의심하지 않는다. 로마교회의 가르침으로는 구원의 확실성이 없음으로 사단의 소리와 같은 견해이다. 즉 우리의 연약함을 자극하여 의심과 불안을 보호한다고 주장하지만, 보호는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생긴다.


1 Peter 1:6-9

6. Wherein ye greatly rejoice, though now for a season, if need be, ye are in heaviness through manifold temptations:

7. That the trial of your faith, being much more precious than of gold that perisheth, though it be tried with fire, might be found unto praise and honour and glory at the appearing of Jesus Christ:

8. Whom having not seen, ye love; in whom, though now ye see him not, yet believing, ye rejoice with joy unspeakable and full of glory:

9. Receiving the end of your faith, even the salvation of your souls.

 6. In quo exultatis, paulisper nunc, si opus esti, contristati in variis tentationibus;

7. Ut probatio fidel vestrae multo pretiosior auro, quod perit et tamen per ignem probatur, reperiatur in laudem et honorem et gloriam, quum revelabitur Jesus Christus:

 8. Quem quum non videritis, diligitis, in quem nunc credentes, quum eum non aspicitis, exultatis gaudio inenarrabili et glorificato;

 9. Reportantes finem fidei vestrae, salutem animarum.

 

6. Ye are in heaviness, or, Ye are made sorrowful.

  성도는 근심을 기쁘게 견디지만 불경건한 자들은 원망과 완악함으로 하나님을 대항하여 다툰다. 성도에게 주어진 고난의 위로는 ‘잠간’이라는 말이다. 고난의 잠간은 영생에 비교할 수 있는 시간적 개념이기도 하며, 실제적으로 잠간 동안 근심하게 된다. 잠간이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시련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Wherein ye greatly rejoice, or, In which ye exult.  우리가 ‘너희를 기뻐하다’보다는 ‘너희가 기뻐하다’로 읽을 것을 요구한다. 사도의 권면의 목적은 구원의 소망에서 나오는 열매, 영적인 기쁨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사도가 성도가 크게 기뻐하는 동시에 근심한다고 말할 때 다소 모순이 있어 보인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 두 가지 일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훌륭하게 공존할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으로써 알고 있다.

  ‘참된 인내란’ 기쁨의 근원은 하나님의 은혜인 것을 알아야 한다.


 

1 Peter 1:10-12

10. Of which salvation the prophets have enquired and searched diligently, who prophesied of the grace that should come unto you:

11. Searching what, or what manner of time the Spirit of Christ which was in them did signify, when it testified beforehand the sufferings of Christ, and the glory that should follow.

12. Unto whom it was revealed, that not unto themselves, but unto us they did minister the things, which are now reported unto you by them that have preached the gospel unto you with the Holy Ghost sent down from heaven; which things the angels desire to look into.

 10. De qua salute exquisierunt et scrutati sunt prophetee, qui de futura erga nos gratia vaticinati sunt;

 11. Scrutantes in quem aut cujusmodi temporis articulum significaret qui in illis erat Spiritus Christi; prius testificans ventufas in Christum afflictiones, et quee sequuturae erant glorias;

12. Quibus revelatum est quod non sibi ipsis, sed nobis ministrabant haec, quae nunc annunciata sunt vobis per cos qui vobis praedicarunt evangelitum, per Spiritum sanctum missum e coelo; in quae desiderant angeli prospicere.


   사도는 선지자들이 부지런히 구원을 연구하고 설폈다는 사실에서 그 구원의 가치를 인정하고 있다. 구원은 하나의 큰 문제요, 또 특별히 탁월한 사건으로서 선지자들에게 경배적인 연구의 감동(a spirit of inquiry respecting)이 되었다. 그러나 선지자들이 연구했던 것보다 지금 우리에게 더 분명한 빛을 발함으로 더 많은 구원의 복음이 알려졌다. 초기부터 구원의 확실성은 성령의 증거(the Holy Spirit)로 명백하게 받아졌다.

   두 가지 사실. 먼저 복음의 은혜에 대한 설명이 선조들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많이 알려졌다는 것과 구원에 관하여는 모두가 성령의 사역으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에서 보여줄 은혜와 완전한 계시의 시대에 관해 연구하였다. 둘째 그리스도의 영으로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미래의 일을 예언하였다. 셋째, 선지자들은 당시의 사람들보다 우리에게 더욱 풍성한 것으로 채워주고 있으며, 당시의 희미한 예표의 제시되었던 구원의 내용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계시되어 풍성한 구원이 오직 그리스도만을 통해 위로부터 온 구원의 계시라는 것을 제시한다(that this was revealed to them from above; for in Christ only is the full exhibition of those things of which God then presented but an obscure image). 넷째, 복음은 선지자적 교리의 명료한 확증에서 포함되고, 구원도 선지자들에 의해서 이전에 선포되었다. 다섯째, 이 놀라운 사건인 복음에서 선포된 구원의 영광은 하나님의 존전에서 함께하는 천사들도 흠모하는 일이다. 천사들이 흠모하는 복음의 선포는 오직 그리스도만이 천상의 지복에 이를 수 있으며, 천상에 오르려는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장애물을 극복해야 되며, 비교할 수 없는 유익을 안다면 세상에 무엇이 장애물이 되겠는가?


  10 Of which salvation  선지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은혜를 제한된 상태(시간)에서 경험함으로 그 이상의 구원을 갈망하였음이 당연하다. 사도는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핌’을 제시함으로 구원의 연구적인 성격을 제시하였다.

  율법과 복음의 사이에는 하나의 차이점이 있다. “곧 그 둘 사이에는 마치 어떤 휘장이 쳐져 있는 것 같아서 지금 우리 눈에 계시된 일들을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은 보다 가까이에서도 보지 못하였다. 실로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아직 떠오르지 아니하셨는데도 완전한 빛으로 대낮처럼 비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는 고정된 틀에서 만족하는 것은 율법주의가 되며, 날마다 인내로 그리스도의 오심을 갈망해야 한다. 즉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나라가 임할 시기를 살피며 성령의 계시에 전념하는 것이 유익한 것이다. 성경을 열심히 상고하며, 성령께서 가르치시는 것은 균형을 유지시키신다.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인간의 마음을 다스림으로 하나님의 영으로 배우고 만족하는 것이다. 인간의 호기심이 아니라 성령의 인도와 지도를 받는다면 그리스도의 영적 왕국을 이해할 수 있다.

 

  11. The Spirit of Christ which was in them First  사도는 선지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영이 먼저 계셨고, 그들이 미리 증거하였다고 진술한다. 선지자들은 특별한 방법으로 지식의 영을 받았지만 우리처럼 분명하게 나타난 그 빛에는 참여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찬사를 받는 것은 우리와 동일한 성령의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도는 성령을 하늘로서 임하신바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주인으로 소개하고 있다(he makes the Spirit, sent from heaven, to preside over the teachers of the Gospel, for he shews that the Gospel comes from God, and that the ancient prophecies were dictated by Christ.).


   그 받으실 고난... 순종의 순서에서 먼저 고난이 언급된다. 그리고 고난 뒤에 영광이 따른다. 영광 앞에 고난이 위치하기에 그리스도은 이 영광에 참여하기 위해서 고난을 불행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해피 헨딩(a happy end)’이 있기 때문에 고난을 인내하는 것은 헛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무오한 섭리(the infallible providence of God)에서 선지자들에게 주신 희미한 거울이 고난 중에 있는 우리에게 하늘의 영광의 형상을 비추어 위로한다.


   12 Unto whom it was revealed  선지자들은 당대에 탁월한 공헌을 하였고, 교회를 가르치며 우리에게 주는 사역이(너희를 위한 것임이 계시로 알려짐) 탁월하다. 선지자들이 극구 찬양했던 그리스도의 나라를 드러내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에게 권장하여 그 나를 구하는데 부지런히 힘을 썼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차려놓은 음식을 즐겁게 맛보고 있는데, 그들이 누렸던 영혼의 참된 양식의 그리스도의 만찬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들은 직분의 한계와 제한 때문에 그리스도와 함께하지 못한 상태, 즉 숨어 계신 분(possessed him as one hidden)1)으로 소유하고 있었다. 숨어 계시다는 것이 은혜의 권능이 숨겨짐이 아니라, 육신을 입고 우리 가운데 나타나지 않으셨다는 의미에서 숨어 계셨다는 것이다.


   Which are now reported to you, or announced to you  사도는 다시 옛 예언과 복음의 차이를 지적한다. 하나님의 의가 율법과 선지자의 증거를 받아 복음에 계시가 되었으므로 성령께서 이전에 증거하셨던 그리스도의 영광도 이제는 밝히 전파되고 있다. 그래서 복음이 확실성이 드러난다. 복음은 인간적인 생각이 아니며, 복음의 전파 또한 성령의 감화와 인도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을 상기시킨다.


   Which things the angels desire to look into   복음의 보화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는 천사들에게 인봉되어 있는 것은 신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즉 종으로서 사역하는 것과 아들로서 사역하는 것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우리보다 더 지식이 높은 천사들이 복음의 보화를 알 수 없는 것이 신비이다. 엡 3:8-10절에서 이방인에게 복음이 전파됨이 천사들에게 알려졌다고 말씀한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떠난 이방인들이 돌아오는 사건은 천사들에게 새로운 사건인 것이다. 천사들은 날마다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을 보면서 경탄에 마지않는다2). 칼빈은 이 견해를 먼저 복음의 보화의 놀라운 광경을 살펴보기를 원하는 천사들과 복음 안에서 나타나는 살아 있는 형상이 그리스도의 나라 보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것으로 나누어 후자를 선택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