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20 장: 미스바에 모여 베냐민을 응징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 자손들이 함께 모인 곳은 ‘미스바’이다. 여호수아 때에는 ‘실로’에서 모였고 성막은 실로에 있지만, 민족의 위기가 있을 때에는 미스바에 모여 총회를 열었다. 레위인은 미스바 총회에서 자기의 신상에 대해서 발언하고(4-6절), 지파들은 문제에 대해서 논의한다.
(1-7절)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기브아(지파)를 보복하기 위한 지파 연맹
1절) 미스바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 미스바는 창 31:49절에서 라반과 야곱이 헤어질 때 언약된 장소이다. 라반은 ‘여갈사하두다’라고 하였고, 야곱은 ‘갈르엣 또 미스바’라 하였다. 야곱과 라반의 분리된 증거이며, 미스바로서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심을 의미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사사기, 사무엘기에 등장하는 미스바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제일 유력한 지역은 나비삼월(Nebi Samwil), 예루살렘 북쪽 13km 지점의 텔 엔 나스베(T. en-Nasbeh)로 이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단(Dan)은 최 북단이다. 단 지파는 원래 유다 지파의 서쪽에 분깃을 받았지만, 임의로 북쪽 라이스로 이동하여 기업을 자리 잡았다. ‘단’이 최북단을 의미할 때에는 단지파의 불순종이 바로 드러난다. 기업을 찾지 못한 단 지파가 까지 연맹에 참가한 이스라엘 전체 연합이다. 이러한 연합이 사사기 마지막 부분에서, 베냐민 지파를 보복하기 위해서 결성되었다. 지파의 연합이 400,000의 대군이 소집되었다(2절). 이스라엘 방어를 위한 병력을 모은 적이 없는 이스라엘이 지파를 보복하기 위해서는 대군이 소집되었다.
선한 일에 힘쓰는 사역이 되어야 한다. 선한 일에 모이기에 힘써야 한다.
(4-6절) 레위인이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서 자기의 사정을 보고한다.
레위인의 연설로 청중들에게 분노를 조장하며(5절), 자기의 행위에 대해서는 핑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6절). 레위인은 전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관점에서 보고를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의 보고를 그대로 수용하여 방안을 대처한다. 레위인은 동족상잔의 비극을 조장하며, 자기의 불의와 불성실에 대한 반성은 전혀 없다. 지파의 수장들 또한 그의 불균형적인 보고에 의해서 의결을 진행하게 된다. 그것은 베냐민 지파들이 불참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7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끼리 의견과 방법을 간구한다.
이스라엘 민족의 위기의 상황에서 자기들끼리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는 것은 바른 신앙의 자세가 아니다.
(8-28절)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전투
(8-11절) 미스바에서 베냐민을 징계하기로 결정함
(12-14절) 베냐민에게 징계 받을 것을 요구하지만, 거절당함
(15-16절) 베냐민의 군사력: 26,000명, 기브아 700명(왼손잡이) = 26,700명
( 17절) 이스라엘의 군사력: 400,000명.
(18-22절) 1차 전투: 유다 지파의 선봉으로 이스라엘 22,000명 전사
(23-25절) 2차 전투: 28,000명 전사
(26-28절) 이스라엘의 벧엘의 탄원: 여호와의 응답은 “올라가라! Go.”
1. 형제를 징계하기를 결정하고, 대규모 전투를 준비하는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형제를 징계하기 위해서 대규모 전투 부대를 형성한다. 명분은 베냐민 지파의 망령된 행동을 징계하기 위함이다(10절). 적에게 약하고, 형제에게 강한 이스라엘의 모순된 모습은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의 법칙이 그대로 적용되었다.
형제들이 싸우기 위해서 혈기 등등한 모습은 적들과의 전투에서는 전혀 볼 수 없었다. 형제와 싸우기에
2. 형제의 권고를 무시하는 베냐민(12-14절). 이스라엘의 권고를 무시하는 베냐민은 안하무인(眼下無人)이다. 첫째, 정당한 권위가 없으면 순종할 수 없다. 일단 이스라엘에는 권위가 없다. 둘째, 정당한 권고, 징계지만 거부한 베냐민은 여호와의 율법을 전혀 거부하고, 오직 힘의 원리와 자기 고집을 주장한다. 여호와의 율법이 없는 세대에게는 가능하지만, 여호와의 율법을 믿는 자는 율법의 권고를 수용해야 한다. 셋째, 잘못의 권고를 무시하는 것은 더욱 더 큰 악을 초래한다. 베냐민이 권고를 수용했다면, 수 만 명의 용사들이 들판에서 죽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넷째, 나의 편이라고 무조건 감싸는 것은 당을 짓는 행동이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큰 어려움이 바로 당이 없다는 것이다. 실수를 보호해주는 장치가 없는 당, 사실이 왜곡됨을 보해주는 기능을 하는 당의 세력이 불필요하다. 당을 지어 악을 양생하여 자기의 이익과 힘을 과시하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일 수 없다.
3. 이스라엘의 질문에 응답하시는 여호와: 여호와께서 비록 전쟁을 승인하셨지만, 이스라엘이 400,000명의 대군을 갖고서 26,700명의 군사력에게 두 번의 참패를 당한다. 여호와께서 승인한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참패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전쟁이 정당한 전쟁 이면에 복수심과 형제에 대한 증오가 있음을 심판하시는 것이다(매일성경 해설). 둘째, 이스라엘의 나태이다. 느슨한 항오에 기브아의 기습공격으로 22,000명이 전사했다(20-21절).
여호와께서 응답하심은 두 목적이 있다. 첫째, 이스라엘의 나태에 대한 책망이다. 이스라엘은 적과의 전투에서 소극적이었지만, 형제와의 전투에는 적극적이다. 둘째, 베냐민의 죄악에 대한 징계이다. 결론적으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여호와께서 동족상잔의 비극을 허락하신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면 내분과 격론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지체들이 게으름이 있을 때, 죄악에 대해서 관용하며 보호할 때, 형제를 미워할 때이다.
4. 두 번의 패배 후 이스라엘은 오히려 탄식으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림: 이스라엘의 교만은 전쟁을 하면서 여호와께 제사 없이 행함으로 자기들은 죄가 없는 공의로운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림이 없는 전쟁, 회개가 없는 징계, 즉 내 눈의 들보를 꺼내지 않는 징계는 오히려 징계하는 측이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하나님께 회개의 제사와 찬미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 둘째, 여호와께서는 번제와 화목제로 드리는 이스라엘을 용납하시고, 베냐민에게서 승리할 것에 대해서 약속해주신다(28절).
[벧엘에 있는 법궤, 26절] 법궤는 실로에 있는 것이 정상적이지만, 본문에서 법궤가 벧엘에 있게 된다. 그들이 언제 하나님의 법궤를 그곳에 옮겼는지는 분명히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두 번의 전쟁 패배 이후에 실로에서 벧엘로 옮겨온 듯하다(Hengstenberg).1) 이스라엘이 비록 법궤 앞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지만, 그들은 실로에 있는 법궤를 이동시켰을 가능성이 있다. 전쟁이란 긴박한 상황이었을 수 있지만, 여전히 편의적인 생각이다. 그럼에도 여호와께서 응답해주셨다.
(29-48절) 베냐민의 패배와 잔혹한 복수
여호와께서 주신 이스라엘의 전략은 유인과 매복 작전이다2). 기브아 성에 있는 베냐민 군사들을 성 밖 큰 길 유인하여, 성을 장악하고 퇴로가 막힌 군사에게 매복 공격을 하는 궤멸 작전을 펼쳤다. 다수의 군사가 있기 때문에 큰 장소에서 싸우는 것이 이스라엘에게 절대 유리한 것이다. 베냐민은 2번의 전투에서 승리함으로 자신감이 넘쳤고, 이스라엘의 대군의 침략에 전혀 두려워하지 않고 응전하였다. 그들은 함정에 빠졌으면서 모를 정도로 교만하였다(34절). 그리하여 베냐민 25,100명이 전사하였다. 베냐민 전체 군사 26,700명 중 전사하고 남은 자가 600명이었다. (약 1,000(35절)-1,100(46절)명 정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를 학살 수준에 이르는 진멸을 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인들에게 아쉬움과 아량이 있었는데, 형제에게는 전혀 아량이 없이 전멸시키려고 한다(48절).
(29-35절) 전투에 대한 1차 소개 = 25,100명 전사
(36-46절) 전투에 대한 2차 소개 = 전투(18,000)+큰길(5,000)+기돔(2,000) = 25,000
(47-48절) 광야로 도망간 600명과 성읍 완전 초토화시키는 이스라엘.
이스라엘과 베냐민의 패배의 원인: 첫째. 죄의 문제에 대한 해결이 없다. 베냐민은 기브아의 비류들을 옹호하며, 이스라엘과 대치한다. 두 번의 전투의 승리에서 더욱 자기의 죄에 대해서 돌아보지 않고, 자기의 힘을 과시하게 된다.
둘째, 죄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을 때에는 교만하게 된다. 이스라엘은 많은 숫자로 교만하여 전투에서 패배했고, 베냐민은 두 번 승리했다고 교만하여 대군에게 쉽게 덤벼들었다. 베냐민은 전투에서 얼마나 교만했던지, 자기들이 지는 상황에서도 지고 있는 줄을 알지 못했다. 교만은 패배를 알지 못하고, 멸망을 당할 때에 알게 된다. 교만의 최고봉은 지옥행이다. 지옥의 문턱에서도 깨닫지 못하고, 지옥문 안에 들어가야만 깨닫게 된다.
셋째,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한다(20:26). 제사를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그래서 번제로 자기의 모든 것을 헌신하며, 화목제로 하나님과 백성들이 서로 화목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잔혹한 복수] 군사가 없는 성읍을 급습하여 진멸하는 것은 이스라엘의 무모함이 드러나며, 감정에 싸인 행동을 드러난다(48절). 강한 자에게 약하고, 약한 자에게 강한 것은 전형적인 노예근성이다. 신앙인은 강한 자에게 정의를 약한 자에게 자비를 행한다. 진리는 자유를 선포하여, 공의를 세우며, 자비를 행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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