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스크랩] 사사기 16 장: 삼손과 들릴라: 유혹과 회복

형람서원 2007. 12. 2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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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6 장:  삼손과 들릴라: 유혹과 회복

 

  (1-14절) 삼손은 블레셋 소렉 골짜기의 들릴라(4절)을 사랑하지만, 들릴라는 블레셋과 삼손을 넘겨줄 것을 은 1,100에 거래를 완료하였다(5절). 들릴라는 음모를 꾸며 삼손의 힘의 근원을 알려고 유혹하였다. 삼손은 순차적으로 답을 해나간다. 먼저 칡 일곱으로 결박(7절), 쓰지 않은 새줄(11절), 머리털 일곱 가닥(13절)으로 점점 근원으로 다가간다.

   삼손의 힘의 근원은 어디인가? 사사기는 분명하게 제시하지 않으며, 마치 삼손이 생각한 것처럼 머리카락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그러나 머리카락에서 힘이 나온다는 것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1-3절) 블레셋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삼손의 괴력

          (1) 삼손은 여전히 여성 편력이 있다(1절). 삼손은 가사의 한 기생을 마음에 두고 활보를 한다. 삼손은 이방 여인과 결혼하는 것을 떠나서, 기생(prostitute, Harlot)까지 탐하는 정욕을 보인다.

          (2) 삼손은 블레셋 지경을 마음대로 활보한다. 블레셋 군사들이 삼손을 잡으려 성문에 매복을 하지만, 삼손은 성문을 통째로 뽑아버리고, 성을 무력화시킨다(3절). 이러한 삼손의 활보는 안하무인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무시하고 활보한다.


 (4-5절) 소렉 골짜기 들릴라와 블레셋의 밀약

         들릴라는 블레셋 방백들의(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의  다섯  방백) 회유에 밀약을 하고, “각각 은 1,100 세겔(1세겔은 약11.4g, 5절)”을 확약한다. 은 한 세겔(Shekel)은 일반 노동자의 4일간의 품삯에 해당한다. 고대 이스라엘의 화폐 가치상 금 1달란트는 3,000세겔에 해당되며, 약 34.27kg의 무게를 지녔다. 당시 은 30세겔은 장정 한 사람의 노예 값이었는데, 금 세겔은 은 세겔의 15배 가량 되었다. 따라서 금 1달란트는 은 45,000세겔에 해당되는 값어치를 지녔다. 돈의 위력은 삼손의 위력보다 더욱 막강하였다. 들릴라는 자기에게 매혹된 삼손을 이용하여 힘의 근원을 알아내려고 음모를 펼쳤다.

        이러한 들릴라의 계략에도 삼손은 꾸준히 그녀의 품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


 (6-14절) 들릴라에게 세 번을 거짓말을 하였지만....

          삼손은 자기의 힘의 근원을 묻는 말에 세 번 거짓말을 하였다. 삼손은 들릴라의 거짓말에 속아, 자신이 거짓말을 하는 것을 드러내버렸다. 드릴라는 계속해서 삼손을 공격하였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삼손에게, 드릴라의 공격은 거짓말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 거짓말한 삼손이 드릴라에게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공격당하고 있다. 삼손은 하나님께 바로 서야 하는데, 드릴라에게 바로 서려고 한다.

          드릴라는 자신이 삼손을 속이고 있지만, 오히려 삼손이 자기를 속인다고 공격한다. 하나님을 속인 삼손은 여인의 꾐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6-9절, “마르지 아니한 푸른 칡 일곱” '칡'에 해당하는 '예테르'(thongs, cords)는 현악기의 현이나 활시위(시11:2) 또는 동물의 심줄 등을 의미하기도 한다(Hervet,  Keill & Delitzsch, Wycliffe). 즉 정확히 어떤 줄이었는지는 분명치 않으나  미신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는 들릴라나 블레셋 방백들에게는 삼손의 대답이 신빙성 있게 보였던 것 같다.

    삼손을 묶은 끈을 끊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는 것이 첫째는 “불탄 삼실(9절)”, 두 번째는 “실을 끊음(12절)”같이 그리고 세 번째는 머리털을 묶는 것 까지 진행된다(14절). 삼손은 자기를 점점 조여 오는 드릴라의 계략을 눈치 채지 못한다.


   삼손의 힘의 비밀은 머리털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실인의 서약 즉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이며, 삼손에게 특별이 주어진 말씀 “여호와의 신”이었다. 그러나 삼손은 마치 머리털에서 자신의 힘이 나오는 것으로 생각하였고, 블레셋의 거민들과 동일하게 힘의 근원에 대한 탐구에서 수수께끼를 버리고 있다. 어느 나실인이든지 머리털에서 힘이 나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삼손에게 주어진 힘의 근원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사이며, 나실인으로서 머리를 깍지 않음에서 발생한 머리카락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블레셋 사람들은 그 힘의 근원을 하나님 아닌 다른 것에서 찾고 있다. 그것은 삼손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이 수수께끼에서 다시 여인의 눈물의 하소연에 굴복하고 마는 삼손의 모습은 있지 말아야 할 곳에 있는 삼손의 한계이다. 우리가 있지 말아야 할 곳은 악인의 꾀임, 교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아야 한다(시편 1편).


  깊이 잠이 든 삼손: 삼손은 블레셋을 처음 드나 들 때에는 잠이 들지 않았지만, 들릴라의 품속에서 깊은 잠이 들게 되었다. 영적 침체의 빠져든 삼손은 자기의 머리카락을 엮는 행동에도 잠에서 깨어나지 못했다. 죽어 가는 자는 자기를 공격하여도 움직일 힘이 없는 상태가 된다. 삼손은 육체적인 자만과 영적인 무지가 겹친 최고의 사사이면서 최악의 사사이다.


  나실인의 마지막 서약 머리카락: 삼손은 이방여인과 접촉하였고, 사자의 주검을 만졌고, 독주를 마셨고, 마지막 머리카락만이 남게 되었다. 탁월한 힘과 지혜를 가진 삼손이었지만, 꿀의 달콤함, 여인의 달콤함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15-31절) 삼손의 죽음과 블레셋의 몰락: 삼손은 결국 들릴라에게 자기의 비밀을 말하여, 블레셋 사람들에게 결박되어 눈을 뽑히고 만다(15-21a). 눈이 뽑힌 삼손은 블레셋의 맷돌을 돌리면서 머리카락이 자랐고, 블레셋 신 다곤의 제사 때에 놀림감으로 신전으로 불려 놀림을 당한다(21b-27절). 삼손은 소년에게 의지하여 다곤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려 블레셋의 3,000명과 함께 장렬한 죽음을 맞이한다(25-31절).


   15-21a; 삼손의 진정을 토로하게 하게 머리카락을 모두 베어버리고, 블레셋 군사들은 삼손의 눈을 빼어버린다. 들릴라는 자기의 목적이 성취될 때까지 끊임없이 삼손을 재촉하여 결국 삼손의 진정한 고백을 받고야 만다. 삼손은 자기가 나실인의 서약을 깬 것을 알면서도, 여호와께서 자기와 함께 있는 줄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의 힘의 근원이 여호와인 줄을 알지 못했다. 삼손은 들릴라에 빠져서 힘이 없어진 줄을 몰랐고(19절), 여호와께서 자기를 떠난 줄도 몰랐다(20절). 힘이 없는 삼손, 여호와께서 떠난 삼손은 아무런 가치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의 눈까지 빼임을 당하게 되었다(20a).


    여인의 재촉을 당해낼 남자는 없다. 여자의 재촉을 이길 수 있는 것은 항상 진심으로 대하는 것 뿐이다. 여인을 속이거나 이용하는 것은 결국 여인에게 잡힌바 될 것이다. 삼손은 자기 연인 들릴라의 재촉에 못이겨 번뇌할 뿐만 아니라 죽을 지경까지 이른다(16절). 구별된 나실인이 여호와의 법은 떠나서 살면서도, 기생의 재촉에 죽을 지경까지 이른 것은 거룩한 용사의 모습이 아니라, 마치 불량배와 같은 모습이다.

   블레셋 사람들도 세 번 속아 거의 포기했는데, 들릴라는 포기하지 않고 삼손의 진정을 보고받은 후 들릴라의 집으로 집결하였다(18절). 들릴라는 삼손의 머리카락을 베어버렸고, 삼손은 그것도 모르고 깊은 잠이 들었다. 자기 힘이 빠진 것도 모르면서 깊은 잠에 빠졌다. 들릴라의 외침에 자기의 힘이 빠진 것도 모르고 블레셋의 군사들과 싸우려하지만, 여호와께서 떠남으로 힘이 없어져 여상 다른 사람과 같게 되었다(20절).


(21b-27절) 삼손은 두 눈이 뽑혀서 맷돌을 돌렸으며, 다곤의 축제에 블레셋 3,000명이 모인 군중들에게 놀림을 받았다.

  삼손은 블레셋에게 잡히자마자 두 눈이 뽑혔다. (참고, 유대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도 바벨론으로 끌려갈 때에 두 눈이 뽑혔다.) 패자에게 주어지는 최악의 형벌, 즉 게임의 종료를 선언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삼손은 살아있고, 삼손의 마음은 여호와께로 향하였다.

   삼손의 결박은 다곤의 승리였다. 블레셋은 자기의 계략에 의한 행동을 다곤의 승리로 찬양했다. 우상숭배자의 비양심적인 행동을 볼 수 있다. 자기목적만 성취된다면 수단에는 문제가 없었다. 은혜의 백성은 우상숭배자들의 비신사적인 반칙을 극복하고 승리해야 한다. 삼손은 비신사적인 블레셋에게 패하여, 조롱받을 뿐만 아니라, 다곤의 위상을 높여 주었다. 삼손의 큰 아픔은 자기의 실수로 인하여, 다곤의 위상이 높아진 것이다. 그래서 다곤의 신전의 몰락과 자기의 생명을 바꾸어 여호와의 능력을 펼쳐 보임으로 자기의 실수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조롱하며 희롱하였다(25절). 눈이 빠진 삼손을 보기 위해서 다곤 신전에는 3,000명의 많은 블레셋 사람들이 운집하게 되었다. 삼손을 보기 위해 지붕 위 까지 운집된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전이 무너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28-31절) 삼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원수를 갚게 해 줄 것을 간구한다. 삼손의 간구는 응답됨과 함께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삼손은 여호와께 기도한다. NIV에서는 엔학고레(삿 15:18, he cried out to the Lord)이고, 28절에서는 Samson prayed to the Lord로 구별하였다. 삼손의 행적에서 여호와께 기도하는 것이 처음 등장하는 부분이다(28절). KJV는 공통적으로 called를 사용하였고, 공동번역도 개역과 같이 “부르짖음”으로 번역하였다. 그러나 Vulgate에서는 'valde clamavit ad Dominum'(15:18절), 'at ille invocato Domino'(16:28절)로 구별하여 번역하였다. 카라(א󰙜󰙌)와 아말(15:18절), 아말(ר󰗫אָ)과 자간(16:28)로 구분되어 있다. 그러므로 15:18(말함)과 16:28(기도)은 구별하여 번역해야 한다. 즉 삼손이 최초로 진심어린 기도한 시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삼손의 기도에 나타난 세 명칭: (1)주(主, 아도나이): 이것은 삼손과 함께 이스라엘 백성을 주장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즉 자신을 통치하는 주(主)는 자신이 아니라, 여호와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의 영혼을 주장하시는 하나님만이 자신의 '주(主)'되심을 고백하는 것이다. (2) 여호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구원의 하나님에 대한 명칭이다. 여호와는 구원자로서 자기의 힘의 근원이 된다. (3) 하나님(*, 하엘로힘) : 여기서  관사  '하'(* )가 붙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모든 신들 중의 신임을 나타낸다. 이로 볼 때  삼손은 이 싸움이 이스라엘의 하나님과 열방의 신들과의 싸움이며 이 싸움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반드시 승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삼손은 항상 자기의 힘과 지혜를 의지하여 블레셋과 전투했었다. 그러나 삼손은 부르짖는 사람이 되었던 것이다. 자기의 힘의 근원을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삼손은 힘을 다하여 다곤의 신전의 기둥을 무너뜨려 했다(30절). 삼손의 신앙과 희생은 자기 생전에 이룰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이루었다. 다곤의 신전을 무너뜨렸을 뿐만 아니라, 블레셋의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된다.

   삼손은 다곤 신전이 무너짐으로 죽임을 당했지만, 형제들이 삼손의 시체를 취하여 마노아의 장지에 장사하였다(31절). 전의를 상실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기의 영토뿐만 아니라, 신전을 헤집고 다녀도 저항할 힘이 없었다. 다곤 신전을 짓밟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블레셋과 완전한 승리를 볼 수 있다. (사사기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불평 많은 에브라임, 강력한 베냐민의 쇠락 = 사무엘에 이르러 다곤 신전에서 여호와의 언약궤의 승리 등, 그리고 블레셋의 약화이다. 그리고 약화된 유다 지파가 다윗에 의해서 다시 재건됨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회는 호흡이 끝나는 날까지 주어진다. 삼손이 비록 들릴라의 유혹에 무너져 두 눈이 뽑히고 블레셋의 조롱이 되었지만, 회개와 탄식은 사사의 직분을 회복하는 계기가 된다.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은 바로 호흡이 끊어지는 날까지 주신 기회이다.

  삼손은 자기의 실패의 원인은 들릴라에게 속아 머리카락이 잘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삼손은 자기의 힘의 근원이 머리카락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여호와께 있음을 알았다. 그러므로 머리카락이 자랐지만 여호와께 기도한다. 은혜의 회복이 다시 힘을 찾는 계기가 된 것이다.

출처 : [매일성경]광주성경연구소
글쓴이 : 고경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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