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스크랩] 사사기 17 장: 미가와 방황하는 레위인

형람서원 2007. 12. 21.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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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17 장:  미가와 방황하는 레위인

  ‘미가’는 자기 어미가 잃어버린 은 1,100 세겔에 대해서, 어미의 허락으로 어미의 돈으로 신상을 만들고, 신당을 세워 자기를 위한 제사장을 세워 여호와를 자기 탐욕의 수단으로 삼는다. 이 일에 베들레헴의 레위인이 동참할 뿐만 아니라, 매우 만족한 생활을 하게 된다.


  (1-6절) 미가의 소행: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함.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는 어미의 돈 은 1,100이 잃어버림으로 문제가 발생했다(2절). 레위인의 연봉은 은 10(10절)로 약속함으로 은 1은 약 1개월의 급료가 된다. 미가가 어미의 돈이 잃어버렸는지, 미가가 훔쳤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거액의 돈에 대해서 망각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우며, 훔친 돈에 대해서 저주를 듣고 고백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미가의 어미는 자기 돈을 훔친 자를 저주했으나, 아들에게 돈이 있음이 드러나자 저주를 복으로 변개한다(2절). 한 입에서 두 말이 나오는 것은 매우 신빙성이 없는 행동이다. (만약 훔쳤을 경우 - 훔친 행위에 대한 꾸지람 없이 축복하는 것은 매우 악한 행동이 될 것이다.)

          미가와 그의 어미는 자기 아들의 번영을 위해서 여호와의 이름을 들먹거리며, 자기 임의대로 신상, 신당, 에봇, 드라빔을 제작한다. 미가가 여호와에 대한 신앙으로 신상, 신당, 에봇을 만들었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드라빔을 제작하는 것은 전혀 핑계할 수 없다. 즉 자기 욕심으로 모든 행동을 한 것이다. 개인의 소견대로 아무런 거리낌 없이 진행된다. 사사기의 혼란을 극명하게 볼 수 있다.


 =====17:6

   그때에는 이스라엘 왕이 없으므로 - 이 표현은 후에도 몇 차례 나타난다(18:1; 19:1;  21:25). 이 말씀은 왕정 제도에 대한 백성들의 욕구가 증폭됨을 제시하지만, 또한 진정한 왕이신 여호와에 대한 무지의 증가이기도 하다. 이스라엘에 왕이 없을지라도, 법률이 공포되었으니 율법을 신실하게 준수한다면 왕이 계신 것과 다름이 없다. 그러나 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함으로 결국 살아계신 통치자가 없음으로 혼란이 증폭된 것으로 이해하게 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함]

           (1) 여호와의 이름을 주술적으로 사용함(2절)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2) 여호와께 드린다면서 아들에게 줌(3-4절)

           (3) 여호와를 섬긴다면서 신상을 만들며, 자기를 위한 신당을 세움(4-5절)

           (4) 신당을 세움으로 제사장을 세울 때, 레위인이 허락함(10-11절)









  (7-13절) 미가의 제사장이 된 베들레헴 레위인

           미가가 비록 모든 것을 준비했을지라도, 레위인이 없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다. 그런데 그 신당에 적합한 레위인이 등장한 것이다. 레위인도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였다. 개인 제사장이 되었지만 매우 만족한 생활을 영위했다(11절). 그리고 여호와께 복을 받기 원했다.


   베들레헴 사람들은 자기 관할에 있는 레위인을 보호하지 않음: 베들레헴은 본래 레위인들에게 할당된 성읍들 중에 하나가 아니다. 그러나 베들레헴 사람들에게 주어진 레위인들에 대해서는 지역에서 책임지고 관할해야 한다. 하나님의 율법대로 제사를 드리면 레위인의 삶은 평탄하게 유지될 수 있다. 그러나 베들레헴 사람들 또한 자기 소견대로 행동하여 레위인을 방치하였다. 즉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관하게 삶이 유지되는 것이다.

  이러한 비극의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차지해야 할 땅을 차지하지 못함으로 약속된 정착지에 정착하지 못하는 레위인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 레위인에 대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책임지고 수종을 들어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와 율법이 유지될 수 있다. 레위인을 방치하는 것은 결국 여호와의 제사와 율법을 방치하게 됨으로 당연히 개인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생활고에 억눌린 레위인: 레위인은 미가의 제의에 솔깃하여 그의 제사장이 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주저함이 없다. 레위인 또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한 것이다. 자기에게 주어진 경제적 유익을 따라 결정하는 것에 대해서 전혀 주저함이 없다.


    백성들의 관심: 여호와께 복을 받기 원함: 미가는 자기의 임의로 레위인을 제사장으로 임명한다(12절). 그래서 비록 레위인이지만 제사장이 되었다. 그래서 미가의 집은 제사장이 있는 신당이 되어 여호와께 복을 받을 수 있는 성전이 되었다는 것이다(13절).

     이처럼 백성들이 여호와께 복을 받기 원하면서, 여호와의 율법은 전혀 지키지 않았다. 사도 바울은 경기 하는 자는 법대로 경기해야 한다고 말씀한다(딤후 2:5). 미가는 여호와의 율법은 전혀 무시하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동하면서도, 복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에 얼마나 율법에 대한 무지와 비례해서 탐욕이 극심했는지를 알 수 있다. 말씀이 약하면 탐욕이 강성해 진다는 원리가 도출된다.


  나그네를 접대하는 초대교회:



출처 : [매일성경]광주성경연구소
글쓴이 : 고경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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