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09-10] 사도행전 4:13-4:22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

형람서원 2007. 9. 15. 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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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09-10] 사도행전 4:13-4:22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


제목: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

내용: 베드로와 요한 사도를 무식한 범인으로 보았지만, 당돌하게 증거하는 모습에 놀란 제사장들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한 담력이 세상 사람들 눈에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담력은 예수를 증언하는 것과 선을 행함에 있지만, 세상 사람들의 담력은 선한 사람을 잡을 때와 악을 행함에 있습니다. 무식하고 용감한 사람을 당할 사람은 없습니다.


13-18절) 협박하면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설득당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르는 제사장들


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14)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제사장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진술에 설복을 당하여 복음을 영접할 기회가 왔지만 자기의 기득권(their vested right, 15-16)을 지키기 위해서 거부하고, 오히려 사도들을 위협하며, 복음을 제거, 억제하려고 합니다.


 13절)  악한 생각은 공평성과 이성의 반응을 무시하고 계속 횡포를 일삼는 것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칼빈은 “착각과 광기의 영the spirit of giddiness and madness”이라고 규정합니다. 그들은 어리석음의 극치로 두 사람의 입만 봉하면 복음을 폐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부활의 실체와 능력을 보면서도 여전히 천지의 대 주재이신 주님을 이기려고 하는 모습입니다.


   17. In threatening let us threaten.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의 무서움의 실체를 볼 수 있습니다. 종교가 마땅히 소유해야 할 권위를 넘어서면 인간의 지위가 신성하게 되어 대담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사람에게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목사들에게 권위라는 것은 제한성을 갖고 있어서 거기에서 넘어져서 되지 않는다. 만일에 그들이 지나치게 과감한 행동을 한다면 우리는 합법적으로 그들에 대한 복종을 거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복종하는 일은 큰 악을 범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1) 칼빈은 완곡하게 개혁의 정당성을 주장한다. 우리들 또한 현재 교회에서 개혁은 합법적으로 진행해야 합니다. 기득권을 포기한 개혁 세력에겐 많은 시기와 질투가 쏟아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와 요한에게, 루터와 칼빈에게 그렇게 했듯이...


19-23절) 베드로와 요한은 제사장의 위협에 굴하지 않지만, 결국 풀려나오게 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 여세나 되었더라 23.  사도들이 놓이매 그 동류에게 가서 제사장들과 장로들의 말을 다 고하니

  칼빈은 23절까지로 구분하였지만, 22절까지 구분된 것이 더 바람직한 것으로 보입니다.


   19. Whether it be right.   회의 장소가 이스라엘(칼빈은 교회로 제시하여 마치 로마교회와 대결로 구도됨)을 대표한 곳임으로 사도들은 자기 권위를 초과한 행동(직권남용(職權濫用))을 하는 제사장들에게 복종할 수 없음을 밝힙니다. 칼빈은 불성실한 제사장(목사, pastor)들이 교회에서 비록 합법적인 권위를 행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이 분명하다고 강조합니다.2)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기로 결정되면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됨으로 사람의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하나님 말씀만을 주장하게 됩니다. 즉 교회는 영적 통치(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사도들이 ‘하나님 앞에서(in conspectu Dei, in God's sight)’라는 분명한 고백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선한다는 것으로, 성령의 능력이 아니라면 대답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도들이 ‘하나님 앞’이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사도들이 있는 곳은 공회의 법정이었지만, 하나님 앞이라고 주장하여 공회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불법의 장소가 되었음을 강력하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제사장들은 자기에게 오는 모욕을 받고서도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21절). 성령께서 말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위엄을 주심으로 감히 덤벼들지 못합니다. 경계를 정하신 하나님께서는 경계를 넘어서지 못하도록 규정하셨습니다. 우리의 경계를 명확하게 하며,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증언합시다.


   20. For we cannot 평화를 위해서는 침묵이 필요하지만, 진리(복음)를 위해서는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침묵되어 인간이 억압되는 것은 평화가 아닙니다. 더욱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복음을 전파하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가르치는 직책까지 두어 복음을 전하도록 하셨습니다. 바울은 자기가 전한 복음이 자랑할 것이 되지 않음은 자기의 직책이기 때문입니다(고전 9:16). 하나님의 계명이 비록 인간들의 압제로 인하여 억압될 수 없지만, 전하는 인간을 억압할 수는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은 사단의 공격을 막기 위하여 방패를 공격하기 위하여 검을 구비(전신갑주(全身鉀冑))해야 합니다.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에 어떤 이유로도 억압되지 않기 때문에, 전도자는 신속하게 하나님의 보호(놋 성벽, a brazen wall)를 취해야 한다.”


   21. And when they had threatened them.  악한 자들이 사도들을 해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억제하심으로 그들의 원하는 대로 해를 줄 수 없었습니다. 칼빈은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니라, 민중(21절)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제시하면서 “그들은 비록 알지 못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끈으로 그들을 묶으신 것”이라하여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보호하시는 섭리를 보여줍니다. 보이지 않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만유의 주이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보이는 위협에 굴하지 않고 담대히 복음 위에 서서 복음을 전합니다.

   관리들이 자기의 오류를 인정하였음에도(21절) 불구하고 회개에 이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머뭇거림으로 공격 행위가 주춤하게 되었고 사도들은 놓이게 됩니다(23절).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보이는 기적과 사람의 숫자에 압도됨으로 신앙으로 인도되지 못합니다. 칼빈은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였다고 주석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이 아닌, 사람의 숫자에 놀라 당황하고 있는 것입니다.3)


   23. Furthermore when they were let go. 사도들은 석방 후 교회에서 자기들의 일을 상세하게 보고하여 믿음의 담력을 얻어 적의 위협을 대항하여 기도로써 무장하려고 합니다. 본 절에는 기도라는 설명이 없지만, 함께 보여 보고하고 기도하였음을 명약관화(明若觀火)입니다. 성도들은 서로 격려하며 믿음으로 교제하고,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서 공동의 적을 향해서 대항해야 합니다. 모든 기독교인은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모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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