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매일성경, 07-09-11] 사도행전 4:23-4:31 기도하는 교회

형람서원 2007. 9. 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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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성경, 07-09-11] 사도행전 4:23-4:31 기도하는 교회


제목: 기도하는 교회

내용: 사도들의 보고를 들은 후에 기쁨과 담력을 얻은 교회는 힘써서 더욱 기도하여,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합니다.


24. 저희가 듣고 일심으로 하나님께 소리를 높여 가로되 대주재여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은 이시요 25. 또 주의 종 우리 조상 다윗의 입을 의탁하사 성령으로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족속들이 허사를 경영하였는고 26.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함께 모여 주와 그 그리스도를 대적하도다 하신 이로소이다 27.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스려 28.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 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또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30. 손을 내밀어 병을 낫게 하옵시고 표적과 기사가 거룩한 종 예수의 이름으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더라 31.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위협의 공포가 다가올 때 성도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해야 합니다. 그것은 위협 때문에 우리 자신의 임무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위협을 느끼는 제자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서 수군거리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의 손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해야 할 의무를 포기할 정도로 공포 속에서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함으로써 넘어지지 않을 확실한 절개를 간구한 것이다.”


  24.Thou art God, which hast created. 비록 핍박의 상황에서도 제자들은 하나님을 만유의 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적의 강력한 세력(능력)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고백함으로 두려움이 경감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에 연결시킵니다. 그리고 확신을 갖고서 담력을 내어 기도합니다. “확실히 우리가 그의 약속과 능력을 의지하고 우리가 구하는 바를 얻을 것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기도할 때에 우리의 기도는 정당한 것이 되고 또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기도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기 앞으로 오도록 초청하시고, 또 그는 우리를 도우실 만한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것을 인식함 없이는 우리는 어떤 확신도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기도할 때 마다 이 두 가지(하나님의 능력과 약속)를 묵상해야 한다. 천지만물의 창조에 대해서 묵상함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께 종속되어 있어 다스림을 받는 진리, 또는 전체 세계에 하나님의 명령하심 일 이외에는 어떤 것도 발생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악한 자가 아무리 거창하다할지라도 토기장이에 대항하는 토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1)


    25.Who by the mouth of David. 초대교회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의 왕국을 전복시키려는 훼방과 협박에 하나님의 의지(능력)는 그의 나라를 수호하시고,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훼방자의 횡포는 헛수고가 될 것입니다. 교회가 경건과 열정을 갖고서 기도한 것은 자신의 안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왕국의 증진과 전진을 위한 것이었습니다.2)


   Why have the Gentiles raged? 다윗은 자신의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께로부터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았을 때에 사방에서 원수들이 일어났습니다. 다윗에게는 사울과 블레셋 그리고 다른 원수들이 많이 있어 위협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자기 왕국의 지지자이심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어리석은 계획을 비웃고 그들의 일이 헛된 것임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의 왕국은 그리스도의 왕국의 형상으로 설립된 것이 때문에, 다윗은 그림자에 머물지 않고 실체를 파악하고 있는 것(David doth not stay still in the shadow itself; but he apprehendeth the body)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세우신 아들의 왕국을 영원히 유지하실 것은 진리입니다. “시편의 가르침은 동시에 그 왕국을 타도하려고 애쓰는 많은 적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을 지적해 주는 일이다.(중략)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세상에서는 결코 평온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것은 우리가 싸울 것을 요청받았을 때에 무엇인가 생소한 것처럼 생각하여 당황하게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이다.”


   26. Against the Lord, and his Christ. 성령께서는 ‘주와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는 자는 누구나 다 하나님을 거스려 싸움을 하는 자들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아들의 인격에서 통치하시는데,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항해서 반역하는 것은 하나님께 순종함을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God will reign in the person of his Son alone, we refuse to obey him so often as we rebel against Christ). 위선자들은 자신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말하면서,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고 위협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저항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누르고 승리할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래서 육체의 두려움에서 강하게 무장해야 합니다. 또 우리가 거룩한 가르침을 경홀이 여기고 스스로 하나님을 거스려 자신을 파멸에 떨어지게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27 Have met together in this city.   예언은 발생한 사건으로 더욱 확실하게 믿어지게 됩니다. 칼빈은 4년이라는 시간을 추정하고, 사건을 회상하는 교회의 모습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예언과 성취된 일의 결과를 확인하고 적용하는 것은 유익한 일입니다. 여기에서 혼선을 받은 것은 “원수들이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 이상의 일은 할 수 없다”라는 하나님의 절대주권입니다. 칼빈은 명확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음을 고백하면서, 또한 죄의 부당성을 주장해야 되는 딜레마입니다.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상충됨은 풀 수 없는 난점입니다. 이 난점에서 그리스도인은 오직 주를 경배함으로 지혜와 능력을 얻게 될 것입니다. 악한 자들은 자기의 분량 안에서 성취와 주권적 모든 행동을 자행합니다. 마치 국가 권력 안에 있기에 모든 범범 행위가 옳게 인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더욱이 상대방이 잘못함으로 범죄(보복) 할지라도 옳게 인정될 수 없습니다. 악한 자들은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후 승리의 노래를 불렀지만, 얼마되지 않아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목격한 제자들은 그들의 분노와 계획이 모두 헛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본 절은 로마 관리, 헤롯, 이방인, 이스라엘 보편인류가 합세하여 예수를 거부하게 됩니다. 제사장은 축제일에 하지 않기로 했지만, 결국 그들은 유월절 전날에 거사가 이루어지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의 어린양이 되셨습니다. 애굽에서 어린양은 은밀하게 계시되었지만, 새이스라엘의 출애굽은 모든 인류에 의해서, 모든 인류 앞에서 계시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왕국을 공격하였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그들의 열광과 시도를 통해서 자신의 경륜을 이루셨습니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당신은 성공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의 팔을 베어보라고 할 수 있겠으며, 실존적으로 오는 십자가의 고통을 감내하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한다면 논리가 맞을 것입니다. 단순한 상상력과 이해력으로 주의 경륜을 판단하려는 경솔함을 주의해야 합니다.

   Thy holy Son Jesus. your holy servant Jesus(NIV), your holy child Jesus(KJV)로 사본의 다른 점이 발견됩니다. 희랍어로는 παȋδά로써 child와 servant로 번역되는 용례가 있습니다.3) 칼빈은 ‘파이스’라는 말이 ‘종’과 ‘아들’로 사용되어 종이라는 번역도 정당하다고 생각하지만, 아들이라는 번역을 합당하게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에게 기름을 부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기름이 아니라, 보이지 않은 성령으로써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28.That they might do.  칼빈은 그리스도의 왕국에 대한 음모가 있지만 굳건하게 섬을 강조합니다. 그것에 대한 교리(a singular doctrine)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자신의 비밀스러운 계획에 의하여 지시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의지는 악한 자들의 작용을 통해서도 수행하시는 것이다.”입니다. 비록 악한 자들이 자의적으로 하나님께 봉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계획, 섭리에 의해서 하나님께 봉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여전히 하나님께 대한 악과 불공정이 있음으로 심판에서는 피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판단은 행위에서 나타나는 봉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마음에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 하나님께서는 결과에 의해서 판단하시 것이 아닙니다. 아이러니는 고통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백성과 핍박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불평하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하나님의 예지를 찬양하는 백성으로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예지를 인정하면서도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거역하는 것은 인간의 배역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나님의 권능과 뜻’인 your power and will(NIV), thy hand and thy counsel(KJV)에 해당되는 구절을 thine hand and thy counsel으로 번역합니다. thine hand and thy counsel(Wycliffe)로 구성되어 영어의 thine의 용법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모든 것이 지배되는 것으로, 하나님의 뜻이 실제적으로 나타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


   29. And now O Lord.   사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에 관하여 증언하는 것이 그리스도와 연합됨으로 인식합니다. 그것은 성도들에게 비록 어려움이 닥쳐오더라도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끈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담대하게 적의 잔인한 행위의 중지를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안녕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자기들의 소명을 저버리고 게으름 속에서 세월을 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열심히 복음을 널리 전파하도록 간구합니다. 칼빈은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조롱에 대항에서 기도하는 것을 인용합니다(사 37:14-17). “우리의 적의 잔인과 모욕이 우리의 임무의 길을 걷지 못하도록 방해하여 우리를 실망케 하기보다는 오히려 기도의 욕구를 불타오르게 하도록 해야 한다.”4)


   30. Grant unto thy servants. 단 하나의 기적이 이렇게 적을 화나게 만들었다면, 거룩한 사람들이 매일 보여주는 새로운 기적을 보기 원합니다. 기적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하나님의 능력이 현시됨을 기뻐하며 기대하게 됩니다. 복음이 아무 장애를 받지 않고 전진하는 것을 보는 것처럼 힘든 일이 악한 자들에게 없을 것입니다. 생명의 교리가 전파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며,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입니다. 주의 사역을 하는 종들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 예수의 이름으로 행하여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이 증진을 위해서 믿음의 담력을 구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31. And when they had prayed.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기도를 열납하셨을 뿐만 아니라, 장소가 진동하는 사실로 보아 눈에 보이는 표적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에게 진동한 사실은 별 유익이 없는 것으로 보지만, 하나님의 임재의 확증에는 어떤 효과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로써 성령의 충만함으로 큰 담력을 얻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즉 이 구절에서 진동함이나 성령의 충만함 보다 제자들이 자신들이 요구한 것이 획득됨을 강조합니다. 그것은 기도에 대한 영구한 증거입니다. 백성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으로 환난과 핍박에 있는 성도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격려해 줍니다. 기도를 마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기도하는 목적이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성령의 임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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