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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들, 쪼그라들고 있다
ⓒ시사저널 윤무영 “아내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아내의 결정에 끌려다니는 남편이 늘어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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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인 ㄱ씨는 결혼을 앞두고 아파트를 개조해 부엌을 없애자는 약혼자의 제안에 망연자실해졌다. 아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는 재미로 인생을 살았던 그의 홀어머니와 달리 약혼자는 자기 일에 강한 성취욕을 보이며 부엌일 따위에 인생을 낭비하고 싶어하지 않았다.약혼자를 포기할 수 없어 ㄱ씨가 요리를 전담하기로 하고 부엌을 없애지는 않았다.ㄱ씨는 전통적인 가부장제는 싫어했지만 구체적으로 머슴 노릇을 요구하는 약혼자와 함께 살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30대 후반인 ㄴ씨는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자기 일도 잘 해내는 아내를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았다.그러나 아내는 결혼 생활에 큰 불만이 있다며 직장 동료와 사랑에 빠져 이혼하자는 제안을 해왔다.지금까지의 결혼 생활 동안 한 번도 행복한 느낌을 받지 못했고 무심한 남편에게 사랑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었다.진보적 교육을 받아 여성의 권익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ㄴ씨는 이혼을 요구하고 양육권까지 주장하는 아내의 요구에 반박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아내에게 가정의 주도권을 모두 일임했던 ㄴ씨는 아내가 떠난 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40대 후반인 ㄷ씨는 아내와 사별하고 30대 중반 미혼 여성과 재혼했다.직업을 갖고 있던 새 부인은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두었다.직장 생활로 스트레스를 받느니 남편의 재력에 기대 살자는 계산으로 직장을 그만둔 것이다.그러면서도 남편에게는 결혼 때문에 자아실현을 못한다며 사사건건 불만을 표시했다.ㄷ씨는 전처 자식을 키워주는 젊은 아내가 하자는 대로 모든 것을 양보했다. 하지만 30대인 부인은 성생활에 문제가 있다며 결국 이혼을 요구했다.두 번이나 아내와 이별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두렵고 젊은 아내 앞에 무기력하기만 했던 자신에게 자괴감이 들었다.그는 거액 위자료를 요구하는 아내에 대한 허탈감 등으로 아내의 요구에 제대로 반박조차 못한 채 정신과를 찾아왔다.
50대 초반인 ㄹ씨는 젊은 시절, 사업과 친구들 일에 바빠 가족과 시간을 거의 갖지 못했다.가족들은 ㄹ씨를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하지 않은 채 사는 데 익숙해졌다.사업이 실패를 거듭하면서 ㄹ씨는 우울증에 빠지게 되었으나, 가족으로서 ‘애착 관계 형성 (Attachment bonding)’을 한 적이 없던 그의 가족들은 남자답지 못하게 약한 모습을 보인다며 가장을 냉정하게 비난할 뿐이었다.
60대인 ㅁ씨도 처량하기는 마찬가지다.정년퇴직을 한 후 이미 모든 경제권을 장악하고 있는 아내에게 하루하루 용돈을 받아 쓰고 자식들도 가족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자신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눈치라 시간만 나면 집을 나와 삼청공원이나 탑골공원을 헤매지만 서글픈 마음을 금할 수가 없다.일만 하느라 적당한 취미 생활도, 친구 관계도 제대로 꾸려오지 못했던 ㅁ씨로서는 모든 결정권이 아내에게 있는 가정에서 벗어나 특별히 갈 데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이와 삶의 조건들이 다르지만 위 남성들의 공통된 특징은 모두 아내에게 주도권을 빼앗기고 아내의 결정에 끌려 다닌다는 것이다.필자가 처음 정신과 치료를 시작한 20년 전만 해도 시집과 남편에게 구박받는 여성들의 하소연이 대부분이었지만, 이제는 며느리에게 구박받는 시어머니와 처가 식구와 아내에게 무시당하는 남편들의 하소연이 더 많다.이혼했지만 나름대로 성공한 여성에게는 동정과 격려를 보내지만, 이혼한 남자에게는 오히려 의심의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도 세태의 변화 중 하나이다.
여성들, 머슴이자 왕자 같은 남편감 찾아
심리적으로 남성들은 생식과 출산을 독점하는 여성들에게 근원적인 두려움을 갖는다.신체적으로도 남성은 영아 사망률이나 각종 유병률이 높고, 수명도 여성에 비해 짧다.이렇게 생리적으로 약하게 태어난 남성을 보호하기 위한 그간의 사회적 억압 장치들이 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도 ‘이게 다 가족을 위해서다’라고 말하면 아내들이 모든 것을 다 인내해 주던 시절이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남편을 참아주는 아내들이 많지 않다.오히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자기가 성공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는 머슴이자 왕자 같은 남자를 찾는다.태아 성 감별 등으로 남초 현상이 심각해졌을 때 이미 남성의 사회적 지위 하락은 예견된 터였다.한국에서 남성우월주의가 뿌리박힐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전쟁과 기아 등으로 남성의 수가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기도 했다.이제 희소가치가 없어진 한국 남성들은 짝을 찾기도 어렵고, 용케 결혼했다 해도 가정의 한 구성원으로 대우받지 못하기 십상이다.여성은 희생자이고 남성은 가해자라는 단순한 구도는 이제 더 이상 현실적이지 않다.
그렇다면 이렇게 모든 권력을 빼앗기고 사는 남성들이 자신들의 존엄성을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비결은 무엇인가. 무조건 여성들에게 양보하고 아내를 위하면 되는가? 돈을 아무리 많이 갖다 주어도 남성들이 자신의 남성성에 자신 없다면 구박받고 무시당하기 쉽다.가정 내 갈등을 해결하는 훈련을 받지 못한 남편들은 아내에게 권위적으로 군림하거나, 문제가 있으면 아내를 피해 집을 나가 다른 여성에게 정을 주거나, 집안일에 무관심해지는 식으로 버텨왔지만 앞으로는 이런 대응도 힘들게 되었다.
남편들은 자신에게 성기능 장애 등의 약점이 있다고 느끼면, 이를 감추지 말고 아내와 솔직하게 의논하는 것이 좋다.아내들도 어렵게 의논해 오는 남편의 자존심을 짓밟지 말고 격려해 주고 자신들에게도 비슷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이다. 또 남편도 집안일과 바깥일에 균형감각을 갖고 가족에게도 많은 정성을 장기간 쏟아야 그 과실을 같이 누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부모의 과잉 보호와 그간의 불평등한 교육으로 인해 한국에는 약한 남성들이 의외로 많다.반대로 딸의 기를 살려 주려는 어머니들과 남성 위주의 사회 조건에 저항하라고 부추기는 대중문화 때문에 겉만 강팍해지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남성과 여성이 본래 서로 대립하는 관계가 아님에도 마치 원수처럼 산다면 인생의 큰 즐거움을 잃은 것이다.모든 부부관계를 일반화해 처방전을 낼 수는 없지만, 우선은 남편과 아내 양쪽이 진정으로 자신을 잘 위하는 법을 먼저 배우라고 주문하고 싶다.스스로를 소중하게 다루는 사람만이 자신의 배우자도 진심으로 존중할 수가 있다.혼자서도 행복해야 둘이 함께 했을 때 행복할 수 있고 상대방의 지나친 요구도 거절할 수가 있다.과거처럼 아내 위에 군림하면서 직장에서 받은 스트레스를 풀던 좋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다.그렇다고 사사건건 아내가 남편을 머슴처럼 부리는 부부도 결국 남편이 집을 떠나가는 시나리오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남편과 아내 양쪽이 따로 또 같이 행복할 수 있으려면, 권력이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것보다는 항상 적정한 균형을 유지하며 같은 방향으로 힘을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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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미(신경정신과 전문의) nleekr2000@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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