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빨간 거짓말 다빈치코드
라은성교수 (국제신대원, 역사신학) 1. 들어가는 글 2003년 3월 미국인 ‘댄 브라운’(Dan Brown)이라는 사람이 써서 출판된 『다빈치 코드』(The Da Vinci Code)는 어느 누구의 예상을 뒤집고 현재까지 세계적으로 40,000,000권 이상이 팔렸고, 44개 언어로 번역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무명의 출판사에서 번역했지만 한국 출판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판매되었습니다. 한국에서도 2004년 7월에 번역되어 138주 동안 베스트셀러로 될 정도로 팔린 소설입니다. 국내 출판시장에서 밀리언셀러가 나온 것은 최근 몇 년 만에 처음이다. 지난해 최고 히트작이었던 '아침형 인간'이 90여만 부에 그쳤고,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나무’도 1백만 부 고지를 넘지 못했다. ‘다빈치코드’와 더불어 외국소설 붐을 일으켰던 파울로 코엘료의 ‘연금술사’도 80만부 판매돼 ‘다빈치코드’의 40% 수준입니다. 이제는 1억불 이상의 예산을 영화를 만들어 59회 칸트 영화제의 개막극으로 상영된 후 다음 날인 5월 18일 세계적으로 동시에 상영됩니다. 그러면 책을 접한 사람만 아니라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회위원회 위원장 홍재철 목사와 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고창곤 목사 등은 2006년 3월 7일 오후 『다빈치 코드』의 국내배급사인 서울 강남구 삼성1동 '소니픽처스릴리징코리아'를 항의 방문하여 영화의 상영계획철회를 요구했습니다. 그러면서 『다빈치 코드』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독교 자체 내에서도 반대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부류와 좀 더 구체적인 방안을 모색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일어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두 가지 관점에서 접근해가는 것이 좋다고 여깁니다. 먼저 기독교인들이 알아야하는 『다빈치 코드』에 대한 정보, 즉 그릇된 점들을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입장에서 볼 수 있는 사관을 제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주로 『다빈치 코드』를 통해 동요되거나 선호하는 부류는 비기독교인들, 초신자들, 또는 십대들 등입니다. 이들에 대해 객관적으로 『다빈치 코드』에 대해 사실들을 알아서 거짓을 영화화 했다는 이해가 되도록 홍보하는 일입니다. 이 두 가지 관점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것은 『다빈치 코드』의 줄거리, 역사적으로 왜곡된 부분들, 그리고 사상적 배경 등입니다. 이런 순서로 이 글이 전개하려고 합니다. 들어가기에 앞서 꼭 집고 넘어가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것이 논문이나 보고서가 아니라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소설이가 때문에 저자의 상상과 허구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문학작품이기에 문학작품으로 여기는 것이 좋다는 견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그 소설의 첫 페이지에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FACT”(사실)이라고 천명하면서 소설을 시작합니다. 다음과 같이 되어있습니다.
시온의 수도회는-1099년에 설립된 유럽의 비밀 협회는-실제 존재하는 조직입니다. 1975년 파리의 국립박물관은 ‘비밀문서들’(Les Dossiers Secrets) 로 알려진 양피지들이 발견되었습니다. 그 안에는 아이작 뉴턴, 보티첼리, 빅토르 휴고, 그리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같은 시온의 수도회의 수많은 명단들이 들어있었습니다. ‘오푸스 데이’로 알려진 바티칸 고위 성직자는 철저하게 헌신된 카톨릭 종파입니다. 그 종파는 세뇌당하고 압제 당했기 때문에 또 ‘육체적인 금욕’으로 알려진 위험한 훈련으로 인해 최근에 논쟁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오푸스 데이는 뉴욕시 렉싱턴 243번지에 4천7백만 국가본부가 있습니다.
소설을 두고 어느 저자가 위와 같은 말을 하겠습니까? 이것은 문학이라는 신성한 이름을 가장한 위증문서입니다. 더욱이 『다빈치코드』저자인 댄 브라운은 2003년 11월 3일 찰스 깁슨(Charles Gibson)이 사회하는 미국 ABC 방송국의 유명한 아침 프로그램인 굿 모닝 아메리카(Good Morning America)에서 깁슨은 말하기를, “이것은 소설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논픽션 책으로 썼더라면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습니까?” 브라운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빈치코드』를 쓰게 될 때 나는 회의주의자로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연구하면서 이 이론에 대한 반증을 예상했습니다. 나는 2년 동안 유럽을 수많이 여행하면서 나는 실제적인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이론에 대한 소실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프라임타임 라이브’(Primetime Live (Monday): Jesus, Mary and Da Vinci)에서 브라운은 엘리자베스 바가스(Elizabeth Vargas)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회의주의자로서 시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보혈에 대한 많은 이론에 대한 반박과 내가 신자라는 사실에 대한 반박을 예상했습니다.
댄 브라운은 기독교가 진리를 숨기고 있다고 미국 TV에서도 밝혔기 때문에 단순히 소설이라고만 넘기기에는 너무 순진하다고 여깁니다. 그는 기독교가 거짓을 지금까지 퍼뜨리고 있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소설을 쓴 것입니다.
줄거리로 들어가기 전에 끝으로, 덧붙여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소설’(fiction)이 한 세대가 지나면 ‘사실’(fact)로 변하거나 인식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단군이야기, 심청이야기, 춘향이야기, 또는 홍길동이야기 등은 신화이거나 소설이지만 사당을 짓거나 숭배하기도 합니다. 사실이 아니라고 하지만 사실로 인용하곤 합니다. 의식 속에 엄연히 존재하고 있습니다. 이런 배경을 갖고 있는 『다빈치코드』의 줄거리를 보도록 합시다.
2. 줄거리 파리에 있는 루브르 예술 박물관의 관리소장이지만 시온의 수도회의 수장인 쟈크 소니에르 (Jacques Sauniere)는 ‘성배’가 위치를 알고 있는 비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자인 동시에 교회와 기독교의 기본을 흔들어버릴 비밀문서를 갖고 있는 자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그는 백피증을 가진 수도사에 의해 박물관의 주요 갤러리에서 총에 맞아 ‘모나리자’의 그림 앞에 죽은 채로 발견됩니다. 마치 다 구겨진 바바리를 입고 사건을 천재적으로 해결하는 콜롬보 형사의 드라마를 보는 듯합니다. 그런데 소니에르는 죽어가면서 수수께끼와 같은 신비한 숫자들을 바닥에 그려 놓았던 것입니다. 이 숫자들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상징의 실마리가 된 셈이죠.
성배이 상징적 실마리를 가지고 그의 죽음의 비밀을 풀기 위해 파리를 방문하고 있었던 죽은 소니에르의 미국 친구이며 하버드 대학 종교기호학 교수인 로벗 랭던 (Robert Langdon)과 소니에르의 손녀이며 프랑스 여형사 암호 당담자인 소피 느보 (Sophie Neveu)의 도움으로 제시된 여러 실마리들의 의미들을 추론해 갑니다. 더욱이 백만장자 역사학자이고 불구자인 레이 티빙(Leigh Teabing)에게 찾아가 실마리 배경에 있는 사실들을 들려달라고 간청하면서, 프랑스 경찰, 소피 느보, 로벗 랭던, 그리고 티빙의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소설은 흥미진진해 갑니다. 이렇게 하여 풀게 된 암호들은 곧 성배의 비밀을 위한 것이었죠. 성배라 할 때, 우리는 해리슨 포드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영화 ‘인디아나 존스’에 등장하는 성배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성배는 프랑스어로 ‘상 그리엘’ (san greal)입니다. 그래서 성배가 단순한 ‘잔’ (chalice)이 아니고 예수님의 혈통을 나은 자궁을 의미했다. 성배, 즉 ‘상 그리엘’의 철자 ‘g’ 을 ‘san’ 으로 옮기면, 즉 ‘상 리엘’ (sang real)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의미는 ‘왕족의 혈통’을 의미하게 됩니다. 여기에서 저자인 브라운은 예수님은 결혼했으며 그 자손이 있다는 거짓된 엄청난 사실을 추정해 냅니다. 바로 기사단들, 즉 시온의 수도회가 2천년 동안 지켜 내려온 성배의 비밀이라는 억지 주장을, 즉 허상을 꾸며냅니다. 이 비밀이 만일 폭로되면 2천년 동안 건재해 온 기독교는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니 기독교가 2천년 동안 속여 왔다고 억지 주장을 펼치고 있다는 것이지요. 이 소설은 계속하여 성배의 비밀을 지키려는 ‘시온의 수도회’와 이를 막으려는 ‘오푸스 데이’(Opus Dei)의 두 축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성배’의 비밀, 즉 예수님께서 결혼했다는 비밀을 지켜온 기사단들, 즉 ‘시온의 수도회’의 명단 중에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들어있었습니다. 그가 그 비밀을 자신이 그린 ‘최후의 만찬’에 그려놓았고, 그의 후손인 소니에르가 피살을 당했다고 하지요. 그러니까 시온의 수도회의 후손인 다빈치는 이러한 비밀을 자신의 그림에 남겼다는 허구에서 소설은 근거하는 셈입니다. 후에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성배가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이 사용하셨던 실제 잔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그것은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결혼했고, ‘사라’라는 그들과의 사이에 태어난 딸의 후손이 오늘날까지 생존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문서집을 위한 암호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암호를, 즉 코드를 최후의 만찬에 다빈치가 그려놓았다는 것이죠. 그리하여 「다빈치 코드」에 나타나는 암호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들의 정체에 대한 모든 정보의 실마리가 되는 셈이죠. 그러면 이러한 비밀을 준수했다고 하는 ‘시온의 수도회’가 과연 존재하느냐? 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죠. 물론, 거짓입니다만.
3. 시온의 수도회 ‘시온’이란 말은 성경에 나오는 ‘시온산’이라는 말과 아무런 연관이 없고 제네바 근교에 있는 몽트 시온(Mont-Sion)에 기원을 두고 있을 뿐입니다. 또 이 책 서두에서 ‘사실’이라는 제목으로 밝히듯이 시온의 수도회가 실제로 1099년에 존재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온의 수도회는 역사 속에 나오는 단체, 즉 1099년에 세워진 단체가 아니라 단지 20세기 후반에 미국에서 만들어진 사회단체입니다. ‘시온의 수도회’는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사람이 1956년에 세운 단체로서 그것에 대한 문서를 1960년대에 파리 국립박물관에 등록하므로 세상에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그 목적은 저소득층이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을 위한 권리와 자유권을 변호하기 위해 설립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57년에 이르러 그 단체는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플랑타르는 ‘시온의 수도회’의 ‘비밀문서’를 떠돌아다니는 이야기를 가공하였다. 그리하여 후에 고발을 당합니다. 그 내용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설과 자손들의 비밀을 간직했던 수도회, 즉 템플 기사단의 수장들의 명단들이 적혀있다. 그 명단에 보면 ‘최후의 만찬’과 ‘모나리자’를 그린 레오나르도 다 빈치(1452~1519),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아이작 뉴턴(1642~1727),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휴고(1802~1885) 등이 등장하고 맨 마지막 인물은 위조했던 플랑타르 자신이라고 한다. 이런 모든 것이 거짓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플랑타르가 발견했다는 양피지로 된 ‘비밀문서들’에 대해 그의 공동 저자였던 폴 스미스 (Paul Smith)라는 사람이 10가지 이상의 이유를 들어 그 문서들이 허위문서들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1. ‘서고트적’ 기둥은 속이 비어있지 않다. 레네 러 샤토우에 있던 그 기둥은 1891년부터 소니에르가 만든 것에 불과하다. 2. 소니에르 옆집에 살았던 마담 레온티네 마레를 인용하면서 하는 말이 ‘저널리스트들은 종이에 나의 말들을 기록하지 않는다. 항상 그들은 제단 기둥에서 발견된 양피지들에 대해 쓰기에 바빴다. 나는 그러한 것에 대해 결코 말한 적이 없었다.’ 3. 양피지 2번의 ‘암호를 푸는 기술’은 그것을 위조한 자에 의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다. 컴퓨터로도 풀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풀어, ‘유혹 없는 여성 목동’을 의미한다고 하는데 필립 드 체리시에 의해 조작된 것이다. ‘암호를 푸는 기술’은 그의 농담들 중에 하나에 불과하다. 4. ‘암호를 푸는 기술’은 체리시에 따르면 1967년 수도회 문서를 담고 있었던 위조된 비석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5. 양피지에 대한 착상은 소니에르가 양피지를 발견했다고 얘기하는 노엘 코르부에 의해 과장된 것이었다. 실제는 1955년 부활절 빌라 베타니에서 식당을 개업하면서 고객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였던 것이다. 플랑타르와 체리시는 베랑그르 소니에르가 발견한 양피지를 소유했다고 억지주장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소니에르는 아무런 비밀문서를 소유하고 있지 않았다. 6. 체리시는 양피지를 조작하기 위해 로르 드 레네라는 책을 판 수입금에서 재산을 늘리기를 원했었다. 받지 못하자 그는 변호사에게 다음과 같은 서신을 보냈다. ‘사랑하는 분에게. 나는 당신에게서 서신을 받고 난 후, 마리송 율리아드와 드 세데씨에게 서신을 썼다. 왜냐하면 나의 인준도 없이 위조된 두 양피지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고 그러한 양피지는 내가 만들었던 착상이기에 함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 때문이다.’ 7. 양피지가 로르 드 레네와 연관된 제랄드 드 세데와 마찰을 빚었던 것임을 플랑타르는 밝혔다. ‘플랑타르와 세데 간에 언쟁이 있은 후, 플랑타르는 세데의 책에 출판된 양피지가 허위임을 알고 있었다. 1971년 나는 세데가 출판한 두 가지 양피지의 저자가 세리시임을 암시하는 편지를 받았다.’ 8. 세리시 조차도 양피지가 1971년 자신의 소설 ‘Circuit’ 에서 밝히기를 자신이 만든 것이라고 했다. 9. 1996년에 출판된『신비의 역사』에 있는 잔-루크 샤멜을 인용해 보면, 플랑타르는 나를 믿었는데 그 이유는 내가 그에 대한 책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나에게 양피지 원본을 주었다. 그것은 2가지 양피지였다. 양피지 1번에 플랑타르는 자필로 ‘이것은 세데가 출판한 『레네에 발견한 금』(The Gold at Rennes)에서 세리시가 그 양피지가 위조된 것이다’고 썼다. 10. 잔-루트 샤멜은 1979년에 출판한 자신의 책 『금으로 된 삼각형의 보화』(Le Trésor du Triangle d'Or) 80페이지에서 세리시가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다고 밝혔다. ‘세데가 출판한 양피지들은 나에 의해 위조된 것이었다. 나는 국립 도서관에 제출된 고대 문서는 ‘기독교 고고학의 가브롤’ (dom Cabrol l'Archéologie chrétienne) 아래 출판된 15권의 작품들에서 발견된 것이다.’ 11. 양피지는 1984년 시온의 문서로 위조된 것이다. 12. 1989년 3월 9일 플랑타르는 노엘 피노트와의 인터뷰에서 양피지들이 위조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들 모두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자손들의 존재의 비밀만 아니라 그들의 존재를 두려워하여 그들이 거주하며 살았던 프랑스 남부의 카타르인들과 알비파들을 ‘종교재판’이라는 미명 아래 로마 카톨릭인들이 수십만의 사람들을 학살했다고 합니다. 학살을 당했다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이 모두 프랑스의 고대인들인 메로빙기안 후손이라고 한다든지 이들을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것은 역사왜곡이며 허구일 뿐이다. 그래서 로마 카톨릭은 예수님의 자손들을 없애고 새로운 왕국, 즉 프랑크 왕국을 만들어 마침내 ‘신성로마제국’을 탄생시켰다고 억지 주장을 펼칩니다. 실질적인 예를 들어보도록 합시다. 프랑크족의 장군 샤를 마르텔(686~741)이 메로빙기안 왕 다고베르트 2세를 죽일 때 그의 아들 지기스베르트 4세(Sigisbert IV, 약 676~약 687)는 마르텔의 핍박을 받아 레네 러 밴느와 레네 러 샤토우로 도망하였고, 블레시아에 있는 샘물 가까이에서 이적적으로 되살아났다고 합니다. 후에 그는 어느 감독에 의해 구조 받았던 것입니다. 후에 그는 레대이의 백작이 되었고 758년에 죽었고, 레네 러 샤토우에 자신이 세운 막달라 마리아 교회 묘지에 묻혔다고 합니다. 하지만 실제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다고베르트 2세가 죽을 때 샤를 마르텔이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가 다고베르트 2세를 죽일 때 마르텔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엉뚱한 이야기 일뿐입니다. 또 블레시아에는 샘터도 있지 않습니다. 더욱이 지기스베르트 4세가 레대이의 백작이 된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에 알프레드 1세 시대였기 때문이었고 더욱이 그의 부친인 다고베르트 2세와 같은 날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정말 파렴치하게 역사를 왜곡시키고 있습니다.
4. 성경적 진리 왜곡 어떠한 성경적 진리들을 왜곡하는 것인지 살펴보자. 그 소설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복음서, 즉 마태, 마가, 누가, 그리고 요한복음은 본래 80개의 복음서들 가운데서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하기 위해 로마제국 황제 콘스탄틴은 4개 복음서만 투표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다빈치코드』책 50장에 보면,
성서는 인간의 작품이란 말일세. 신의 작품이 아니고. 성서는 구름에서 기적적으로 떨어진 것이 아니야. 격동의 시기에 인간들이 만들어 낸 역사적인 기록이지 . . . 그 당시 여든 개 이상의 복음서들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되고 있지. 하지만 오직 몇 개만이 신약성서 안에 포함되도록 뽑혔다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등이 거기에 속하지. . .
4복음서는 325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325년에 있었던 ‘니케아 범종교회의’는 옛 로마제국 여러 곳에서 많은 지도자들이 참석했던 회의였습니다. 이 종교회의가 열리기 전, 교회에서는 이미 여러 교회지도자들, 즉 교부들에 의해 4복음서는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80권의 다른 복음서들이 있었다고 하지만, 80권이 아니라 초대교회에는 복음서라고 불리는 50여권 외경들뿐이었습니다. 어떤 것도 초대교회 지도자들에 의해 성경으로 인준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여인들이 하늘로 올라가기 위해 남성들이 되었다는 식의 황당한 이단 사설들이 들어있는 이야기 모음집들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당시에 외경이라 불리는 거짓 복음서들이 널리 유포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은 4복음서에만 언급된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 27권 전체에 고루 언급되고 증명하고 있다. 예수님의 신성은 325년 훨씬 이전부터 교부들에 의해 설명되고 있었다. 심지어 이교도 역사가들도 기독교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있었다고 증언할 정도니까. 이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명백한 사실인데. 왜 브라운은 이런 거짓을 언급하고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결혼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제시하고 있는 역사적 자료로서 그 소설에서는 나그 함마디 문서를 제시하고 있다.
5. 나그 함마디 영역본 ‘나그함마디’ 문서의 겉표지‘나그 함마디’ 문서가 발견된 장소1945년에 발견된 ‘나그 함마디’ 문서
영지주의 문서인 「나그 함마디」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배우자라고 암시하고 있을까? 「나그 함마디」 문서란 1945년 이집트 나일강 상류에서 발견된 4세기 문서입니다. 지금은 영역이 되어 누구든 접할 수 있습니다. 「나그 함마디」 문서에 있는 「빌립 복음서」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구세주의] 동반자이다. 그는 그녀를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사랑했다. 자주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나머지 제자들은 그녀에게 다가와 묻곤 했다. 예수님에게 말하기를, ‘왜 당신은 우리 모두 보다 그녀를 더욱 사랑하십니까?’ 구세주께서 대답하시며 묻기를,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것만큼 왜 너희를 사랑하지 않겠느냐?’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과 입을 맞추었다는 것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고 억지 주장합니다. 하지만 본래 문서에서 사용된 ‘동반자’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라는 말이었습니다. 그 의미는 ‘동반자’ ‘친구’ 또는 ‘협동자’라고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업, 선교, 또는 친구 사이에서 나오는 동반자라든지 연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고, 결코 결혼이나 성교를 의미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떤 헬라어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의미입니다. 또 「나그 함마디」 문서들 중 「피스티스 소피아」 (Pistis Sophia)와 「마리아 복음서」 (Gospel of Mary)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역할은 당시에 본질적이었고 여성 지도자였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의 ‘입맞춤’은 성적인 것이라고 해서 육체적 접촉을 통해 예수님으로부터 마리아에게 영적 능력과 통찰력이 전달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결혼설에 대한 증거는 정말 희박합니다. 어느 영지주의 문서들에서도 예수님이 결혼한 분임을 언급하거나 결혼한 상태임을 엇비슷하게 암시적으로도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더욱이 예수님 당시에 독신이라는 것은 관습적이 아니라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아.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 독신으로 지내라고 권하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쿰란에 살고 있던 유대파 수도자들이었던 엣센파는 독신으로 지냈습니다. 더욱이 사도바울은 독신을 합법적으로 언급할 정도니까. 성경에서 예수님의 결혼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하여 결혼했다거나 독신자였다고 말한다는 것은 정말 억지 주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끝으로, 우리는 분명하고 확실하게 지적해야만 하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나그 함마디에서 1945년에 발견된 영지주의 문서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4세기의 아타나시우스라는 교회 지도자는 파코미안 수도사들에게 그들이 읽고 있던 영지주의 문서들을 파기하라고 명합니다. 하지만 파코미안 수도사들은 거부했고 그것들을 숨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거했던 장소와 나그 함마디는 그렇게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그러면 영지주의 문서인 「나그 함마디」가 발견된 1945년 이후부터 영지주의 영향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고 있는 ‘뉴에이지’ 운동에 속한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동시에 지금 우리가 다루고 있는 『다빈치 코드』도 나온 것입니다. 이 소설은 철저하게 「나그 함마디」를 기초하고 있습니다. 기초하고 있는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결혼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여성이 초대교회 지도자였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권주의자들(feminists)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여권주의자였다고 억지를 부립니다. 물론 예수님은 누구든 평등하게 사랑하셨음이 틀림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억압받은 여성 지도자 막달라 마리아와 그녀와 예수님의 혈통들이라는 사상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은 무모한 억지라고 여겨지지 않습니까?
6. 『최후의 만찬』 6.1. 막달라 마리아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끝으로, 존재하지도 않는 ‘시온의 수도회’ 후손이라고 억지 주장하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그린 『최후의 만찬』에 마리아를 그려 놓았다고 하므로 여권주의자들을 부추기는 『다빈치 코드』의 허구와 거짓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다빈치 코드』라는 소설의 겉표지에도 등장하고 첫 페이지부터 시작되는 『최후의 만찬』에 등장하는 인물들 가운데 예수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사람이 예수님의 아내, 즉 막달라 마리아라고 억지 주장합니다. 『다빈치 코드』 58장을 보면,
소피는 예수의 바로 오른쪽에 앉은 인물을 면밀히 들여다보았다. 인물의 얼굴과 몸을 살피는 동안, 그녀 내부에서 충격이 일어났다. 그 인물은 흐르는 듯한 붉은 머리칼과 섬세하게 모아 쥔 손, 그리고 살짝 솟은 가슴으로 보아 의심할 여지없는. . .여자였다. . . 소피는 사진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예수의 오른쪽에 있는 여자는 젊고 경건해 보였다. 품위 있는 얼굴과 아름다운 붉은 머리카락. 그리고 손을 얌전히 포개고 있었다. ‘이 여자가 한 손으로 교회를 박살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이 여자는 누구지요?” 소피가 물었다. “마리아 막달레나.”
그림을 보면 예수님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제가가 여인처럼 생긴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라는 억지주장을 합니다. 사실은 여자처럼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빈치가 그림을 처음 그렸던 것이 파손되었고 후에 미술가들이 덧입히고 복구시키는 작업이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본래의 저자가 그리고 복구된 그림과 이 후에 덧입혀진 그림을 비교해 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그림은 이탈리아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있는 수도원에 그려진 460×880센티미터로 1494년~1498년에 그려진 대형 벽화입니다. 그림의 순간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한 사람이 예수님을 배반할 것이라는 말을 듣자 각자가 갖게 되는 반응을 그린 그림입니다. 복구 후의 사도요한의 모습복구 전의 사도요한의 모습하지만 수차례 수백 년 동안 수정과 복구가 시행되었다. 레오나르도가 처음 그릴 때 젖은 회반죽 위에 그린 것이 아니고 마른 벽에 그렸기 때문입니다. 송진, 석고, 마스틱(mastic)등의 재료들이 돌 벽에 템페라화법으로 봉하였기 때문에 20년이 지나면서 그림은 손상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최초의 수정은 1726년 벨로치에서부터 시작되어 1999년 5월에 와서 최종적 복구가 완성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레오나르도가 기존의 그리는 방법보다는 새로운 방법을 시도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른 석고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방법이었습니다. 여러 환경적 오염, 여행자들의 방문, 촛불의 연기 등으로 인해 그림들이 손상되기 시작했던 것이죠. 그 복구되기 전과 복구된 후의 요한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복구 전의 그림은 남자임에는 틀림없고, 누구든 복구 후의 그림은 여자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즉 사도요한임이 전통적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라는 제자는 귀속 말로 사도요한에게 말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내용은 신약성경 요한복음 13:21~24에서 분명하고 알 수 있습니다. 더욱이 성경에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최후의 만찬에 참석한 여인이 아니었기 때문에 모양만 보고 그녀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이라고 여겨집니다.
6.2. 익명의 손? 베드로의 모습베드로의 오른 손 모양옥스퍼드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에 나타난 오른 팔의 모습윈저성의 로얄 도서관에 그려진 오른 팔의 모습또 그 그림에서 묻게 되는 질문은 익명의 손에 대한 것입니다. 대체적으로 그림에서 보듯이 예수님 오른쪽 인물이 사도요한이라고 한다. 그에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사람이 베드로라고 하며. 그 다음 검은 머리카락을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판 가룟 유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자세히 보면, 왼손은 요한의 얼굴 밑에 그려져 있고, 오른손은 가룟 유다의 오른쪽 팔 옆에 놓여있습니다. 브라운에 의하면, 알 수 없는 사람의 손이라고 하고 있지만 실제는 베드로의 오른 손임을 누구든 인정한다. 그런데 소설 58장을 보면,
소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제자들 사이에서 불쑥 나온 손을 바라보았다. “지금 저 손에 ‘단검’이 들려 있는 거예요?” “그래요. 여전히 이상하긴 하지만, 자세히 보면 저 손은. . . 누구의 손도 아닙니다. 잘려 나온 손이지. 익명의 손이오.”
그리하여 예수님의 12명, 예수님,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가 ‘최후의 만찬’이라는 그림 안에 모두 그려져 있다고 억지 주장합니다. 하지만 소개된 그림들을 보시면, 모두 레오나르도가 그린 팔의 그림들입니다. 왼쪽은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크라이스트 처치 (Christ Church)에 있는 그림이고, 오른쪽은 영국 윈저성에 있는 로얄 도서관에 있는 그림입니다. 이렇게 볼 때 베드로의 팔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어쨌든 그림 속에 막달라 마리아가 있음을 말하기 위해 온갖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입니다.
7. 결론 위에 지적한 것들 외에도 『다빈치코드』에는 수십 가지의 거짓된 역사왜곡이 있습니다. 굳이 한 가지를 지적하라면, 루브르 박물관에 세워진 ‘유리 피라미드’가 666개라고 하지만 실제는 673개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소설이라는 미명아래 기독교의 위대한 진리인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결혼설을 억지 주장한 『다빈치 코드』의 그릇되고, 위조된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시온의 수도회’, ‘예수님의 결혼설’, 그리고 ‘최후의 만찬’에 있는 막달라 마리아 등입니다. 이렇게 거짓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가공적인 소설 『다빈치 코드』가 미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거두고 한국에서 인기를 점유하는 이유를 보게 되면, 첫 번째 이유는 급진적 여권주의와 여성운동이 활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서 2003년 12월 8일자 ‘뉴스위크’(Newsweek)의 겉표지 기사에 막달라 마리아를 다루고 있습니다. 이처럼 브라운도 예수님을 여권주의자라고 말하면서 막달라 마리아를 남성 사도들보다 탁월하며 그들의 지도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여권주의자들로 하여금 남성들이 주도하는 교회 권위들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좋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사회적 불안과 기독교의 불만을 해소하는데 적절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을 통해 기독교와 신앙현상이 갖는 극도의 불신감을 표현하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아주 공감하며 통쾌해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로마제국 황제 네로가 화재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떠맡기고 화형을 시키며 핍박했던 것처럼 현대인들은 자신들의 불안과 불행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고 싶어하는데 결국 기독교인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인들이 음모자들이 아니면 이중인격자요, 고집쟁이, 시대착오적인 자들이라고 말하고 싶어 합니다. 반면 전통적인 신앙관이나 교회의 가치를 의심하는 사람들은 숨겨진 진리를 찾는 자, 진실한 자로 그려집니다. 문제는 오늘날 기독교신앙과 교회가 많은 사람들에게 실제로 그렇게 위선적으로 느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현대인(특히 젊은이)들의 기본적 정서에 아주 부합하는 형식과 내용을 갖고 있습니다. 이 책은 무엇보다 호기심과 반항심 많은 현대인(젊은이)들이 전통적인 권위를 파괴하고, 금기에 도전하고 싶은 욕구를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려 표현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 이유는 기독교를 음모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습니다. 더욱이 『다빈치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은 이 책을 통해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을 거부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주인입네 하며 인간보다 위에 앉아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그런 초월자가 아니라, 그저 우리 보통 인간들처럼 결혼해 자식 낳고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그런 평범한 신이기를 억지 주장합니다. 그러면서 욕심을 버리고 세상 살아가는 좋은 지혜나 이따금씩 가르쳐 주면 더욱 좋을 그런 신으로 여깁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이런 부패하고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기독교는 없어질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소설을 접하면서 잊어서는 안되는 것은 이 소설이 확실한 증거들, 즉 역사적, 문학적, 그리고 고고학적 물증들을 제시하지 못하고 단지 선정적인 것들을 주워 모아서 만든 것입니다. 사실에 대한 설명의 본질과 역사에 대한 가정은 독단적인 결론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문맥에서 떠나서 역사적 근원의 언어들을 왜곡시키므로 브라운은 자신의 풍자스러운 모습을 만들고 있습니다. 과거에 있는 신빙성 있는 다양하고 객관적인 자료들을 무시하고 지극히 편협적인 자료들, 즉 야사들을 모아서 집대성했습니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나름대로 해석하여 풀어 썼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과 기독교는 진정한 역사적 객관적 자료들과 기록들 위에 굳건히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는 객관적 증거와 합리적 사고를 요구할 때마다 변증하고 늘 변호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증거들을 가지고 기독교를 음해하고 있기 때문에 이것에 관해 기독교는 늘 승리해 왔습니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합리적인 모든 이들에게 이해와 신실함을 심어주었습니다. 합리적이었고 정당한 역사적 근거들 위에서 증명되었고 변증되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의 논박에도 신실한 물증과 확증을 제시 했습니다. 끝으로, 여기에서 하나 분명하게 집고 넘어가야할 두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그것은 ‘소설이 한 세대가 지나가면 사실로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소설의 내용이 거짓임을 말하지 않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