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다빈치 암호'(The Da Vinci Code)

형람서원 2006. 5. 20. 22:57
728x90
반응형
예수님의 아내?
1. 들어가는 말

미국어판 1200만권, 한국어판도 100만권을 돌파하고 40개 언어로 번역된 '다빈치 암호'(The Da Vinci Code) 라는 책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많은 독자층을 갖게 되었다.
내년 중순에 영화까지 만들어진다면 그 파급효과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저자인 댄 브라운(Dan Brown, d 1964-)은 미국 TV 인터뷰나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자신이 쓴 소설이 예술적 이론을 제공하고 기독교 신앙에 대한 사실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소설에서 그는 예수님이 막달라 마리아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교회가 감추고 있었다고 말함으로 여권주의자들의 관심을 끌었을 뿐 아니라 예수님이 육신의 자녀를 두셨다고 주장하므로 기독교를 혐오하는 자들에게 미끼를 제공했다.
위조된 사실을 진실로 여기는 그는 허위적 사실들을 지금까지 교회의 권위 아래 철저히 비밀로 만들기 위해 새롭게 사복음서들을 만들어졌으며, 단순히 인간이신 예수님을 4세기 로마황제 콘스탄틴의 정치적 계산아래 투표에 의해 신성으로 격상시켰다고 근거도 없는 거짖주장을 파뜨렸다.
이런 신비한 비밀을 알고 있던 르네상스 시대의 대화가인 레오나르드 다 빈치(Leonard da Vinci, 1452 ~ 1519) 는 걸작 '최후의 만찬' 을 그리면서 예수님의 아내인 마리아를 암호적으로 표현해 넣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15여명에 이르는 정통 기독교 저자들은 그의 주장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대렐 벅크(Darrell L.Bock) 가 쓴 '다 빈치 암호파괴'(Breaking the Da Vinci Code),
행크 해너그라프와 폴 마이어(Hank Hanegraaff and Paul Maier) 가 쓴 '다 빈치 암호: 사실과 가상 (The Da Vinci Code: Fact and Fiction ?),
마틴 룬(Martin Lunn)이 쓴 '다 빈치 해독된 암호' (The Da Vinci Code Decoded),
아미 웰본(Amy Wellbom)이 쓴 '다 빈치 암호해독' (De-Coding Da Vinci),
리처드 애반즈(Richard Abanses) 가 쓴 '다 빈치 암호의 숨겨진 진실' (The Truth Behind the Da Vinci),
제암스 카로우(Jamea Carlow)와 피터 존스(Peter Jones)가 쓴 '다 빈치 암호 분해' (Cracking Da Vinci`s Code),
그리고 칼 올슨(Carl Olson)과 샌드라 미셀(Sandra Meisel)이 쓴 '날조된 다 빈치' (The Da Vinci Hoax) 등이 있다.

이에 따라 이 소설에 대한 위조성과 거짓성은 각각 '목화와 신학' 과 '국민일보' 에 쓰인바 있다.
이 글에서는 성탄절을 기하여 예수님의 신성을 음해하고 예수님의 결혼, 즉 막달라 마리아를 예수님의 아내였고 그의 자녀가 '사라' 였다고 황당한 표현을 하고 있는 소설을 소개하면서 비판하고자 한다.

2. 간략한 줄거리

'다빈치 암호' 는 먼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관리자 쟈크 소니에르(Jacgues Sauriere)의 피살로부터 이야기가 시작한다.
고대 기호들에 대한 전문가이며 그 책의 영웅으로 묘사되는 로벗 랭던(Robert Landon)은 하버드 대학교 상징학 교수이다.
그는 사건 현장에 도착하여 죽은 관리자가 남겨놓은 실마리들을 접하게 된다.
그런 후, 랭던과 살해된 관리자의 손자이며 암호 해독자이기도 한 소피 느보(Sophie Nevue)는 살인자를 좇기 시작한다.
한편, 그들은 랭던을 살인자로 의심하는 파리 경찰과 운둔한 로마 카톨릭 종파인 오푸스 데이(Opus Dei)에서 일하는 백피증 증세를 가진 암살자를 교묘히 피해 다녀야만 했다.

랭던과 느보는 관리자를 살해한 자가 기독교가 생성된 2,000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파헤치려는 어떤 비밀적 계획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사실을 밝히는 백만장자 역사학자이고 불구자인 레이 티빙(Leigh Teabing)에게 찾아가 실마리 배경에 있는 사실들을 들려달라고 간청한다.
티빙은 역사가이며 랭던의 친구이기도 했다.
티빙에 의하면, 예수님은 단순히 다윗의 자손에 불과하며 '거룩한 여성'(sacred feminine)이라는 종교를 창설하고 이스라엘을 주도하는 왕권의 천명을 염원했던 자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유대 권좌를 주장하는 자신의 의도에 위협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막달라 마리아라는 여인을 자신의 아내로 취하여 자녀를 낳아 자신의 꿈을 이루어 갔다.
그들 부부의 후손들 가운데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들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예술 작품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결혼 그리고 그들이 설립했던 여신 종교를 새겨놓았던 것이다.
그것을 가리켜 'Da Vinci Code' 즉 '다 빈치 암호' 라 부른다.

그 소설에 따르면, 4세기 교회는 초기 기독교에 있었던 여권주의적 메시지를 지지하고 '거룩한 여성' 을 고백했던 모든 자들을 이단자들로 선포하고 마녀사냥이라는 미명아래 진멸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지극히 주교적이며 결혼을 증오하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두 사람의 후손들과 그 진리를 신뢰했던 사람들은 1099년 예루살렘에서 '시온의 수도회'(Priory of Sion)라 부르는 비밀 형제단을 결성했다.
그들의 지도자는 부이용의 갓프리드(Gottfrid of Bouillon)이었다.
이들의 목적은 그리스도 이후 갓프리드 조상들에게 전해주었던 위대한 비밀을 보존하는 일이었다.
예루살렘에 있는 폐허된 성전 밑에서 발견된 문서들은 이 비밀을 확증했다.
이것을 지키기 위해 갖가지 어려움들을 직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수도회는 현재까지 생존했다.
메이슨 랏지(Masonic Lodge)는 그 중에 하나이다.

수년 동안 시온의 수도회는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에 대한 진리를 성배(Holy Grail) 전설을 통해 전달했다.
성배는 일상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했던 거룩한 잔(chalice)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막달라 마리아의 태가 왕권의 혈통을 담고 있는 그릇, 즉 '잔' 이라 주장한다.
살해당한 박물관 관리자는 바로 그 시온의 수도회에 속한 자였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 후손들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남겨 놓은 실마리들은 다 빈치의 작품들을 해석할 수 있는 주요한 열쇠를 포함하여 자신의 손녀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후손이었다는 사실을 그녀에게 알려주려는 것과 관련을 맺고 있었다.

3. 예수님의 신성

이 소설의 저자인 브라운은 2003년 11월 3일 찰스 깁슨이 사회하는 미국 ABC 방송국의 유명한 아침 프로그램인 Good Moming America 에서 깁슨은 말하기를,
"이것은 소설입니다. 만약 당신이 그것을 논픽션 책으로 썼더라면 내용이 어떻게 달라질 것 같습니까?"
브라운은 대답하기를,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다 빈치 암호' 를 쓰게 될 때 나는 회의주의자로서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 책을 연구하면서 이 이론에 대한 반증을 예상했습니다. 나는 2년 동안 유럽을 수많이 여행하면서 나는 실제적인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오랫동안 그곳에 있었던 이론에 대한 소실임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같은 날 Primetime Live (Monday) : Jesus, Mary and Da Vinci 에서 브라운은 엘리자베스 바가스에게 말하기를, "나는 회의주의로서 시작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와 보혈에 대한 많은 이론에 대한 반박과 내가 신자라는 사실에 대한 반박을 예상했습니다"
(유사한 내용들이지만 보다 그의 자세에 대해서 알기 원한다면 Renee Tawa, "Deep into the 'Code,' " Los Angeles Times (Friday, March 19, 2004 를 보라).
예수님의 신성에 대해 '다빈치 암호' 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기독교에 있는 것은 다 원래 기독교의 것이 아니오,
기독교가 도래하기 전의 신, 미트라는 '신의 아들' 또는 '세상의 빛' 이라고 불렸어요.
미트라는 12월 25일에 태어났고, 죽어서는 암석 무덤에 묻혔소.
그리고 사흘 후에 부활했지.
그런데 12월 25일은 오시리스와 아도니스, 디오니소스의 생일이기도 하오.
새로 태어난 크리슈나는 황금과 유황과 몰약을 선물받았지.
심지어 기독교의 주일이라는 것도 이교도에서 훔쳐온 것이라오.

"무슨 뜻이에요?"
랭던이 입을 열었다.

"원래 기독교는 유대교 안식일인 토요일을 기념했소.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날을 이교도의 태양숭배일과 일치시키기 위해 옮겨 버린 거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은 이교도의 태양 숭배일, 즉 선데이에 참석하는 줄은 꿈에도 모르고, 일요일 아침마다 예배를 드리러 교회에 가고 있죠... 예수의 '신성' 까지.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예수의 신성이라니요?"

티빙은 나지막이 말했다.
"아가씨, 그때까지 역사에서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그저 한 사람의 예언자일 뿐이었다오...위대하고 힘 있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결국 '인간' 일 뿐이었지.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신의 아들이 아니고요?"

"그래요. 신의 아들이라는 예수의 위상 수립은 니케아 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제기되고 '투표' 에 부쳐진 거였다오" (브라운, 1권, 356-7).


그가 말하는 미스라이즘(Mithraism) 의식은 고대 로마의 군인들 가운데 행해졌던 것이다.
미스라이즘에 따르면, 미스라는 신의 아들로 불리고 동정녀에게서 태어나서 제자들을 거느렸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지만 3일 만에 죽은 자들 가운데 태어났다.
그는 죄들을 위해 속죄했고 하늘로 되돌아갔다.
과연 기독교 신앙은 이러한 미스라 의식으로부터 유래시킨 것일까?
우리의 신앙은 역사적이지 신화적이지 않다.
예수님은 역사적으로 실제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고, 장사되었고, 그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
이것은 신화 같은 허구가 아니라 실제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유사성이 있다는 점에서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첫째,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모든 것은 구약성경에 예언되었던 것이고 구약성경은 미스라이즘보다 훨씬 이전에 기록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올 것이고 (슥 12:10),
동정녀에게서 태어날 것이고 (사 7:14),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고 (시 22편),
그리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실 것이다 (시 16:1) 는 사실은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된 것이다.
누가복음 24:45 ~ 46에서 예수님은 이미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 에 대해 말씀하셨다.

두 번째, 미스라이즘은 기독교 개념들을 도용했다고 여겨진다.
1-2세기 기독교인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여러 이교도들은 영지주의처럼 자신들의 가르침에 기독교의 진리를 응용하여 삽입했다고 여겨진다.
그 비근한 예로서 미스라이즘에서 말하는 재생이란 개념은 모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스웨덴 학자 리젠펠드(Harold Riesenfeld) 는 1956년에 초기 기독교에 이교주의의 영향에 대해 주장을 한 적이 있다.
("Mythological Background of New Testament Christology," in W. D. Davis and D. Daube, eds., The Background of the New Testament and Its Eschatoligy (Cambridge, Mass.: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56), 81-95).

하지만 미국 웨스트먼트(Westmont) 대학의 철학교수인 윌리엄 크레익(William Craig) 은 이교 신비주의 종교 분야에서 두 개의 박사논문을 쓴 사람인데 그에 의하면, "오늘날 신약성경 학자든 역사가든 부활에 대한 기독교 사상들이 이교 종교들과 유사한 점들에서 유래되었다는 견해를 옹호하는 학자가 있음을 알지 못한다" 고 했다.
또 미스라이즘과 바울이 사용한 언어 간에 예수님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에 대한 유사점과 관련된 책을 쓴 웰스(H. G. Wells) 는 이교도들의 의식들에 나타나는 상징적 의미들을 실질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모든 이교도 의식들은 궁극적으로 공통적인 근원들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H. G. Wells, The Outline of History: Being a Plain History of Life and Mankind, ed. Raymond Postgate, vol. I (Garden City, N. Y.: Garden City Books, 1956), 430-3).

미스 라이즘에 신들의 죽음과 부활 사상이 없다고 역사학자 나쉬(Nash)는 강력히 주장한다(Ronald H. Nash, The Gospel and the Greeks: Did the New Testament Borrow from Pagan Thought? (Richardson, Tex.: Probe Books, 1992), 147).

역사신학자 채드윅도 다음과 같이 말한다.
321년 콘스탄틴의 법은 노예들을 자유 시키려는 경건한 목적 외에 태양을 위한 경외로운 날에 법정을 운영하지 않도록 했다.
또 농장에서도 필요한 것 외에는 주일에 노동하지 않도록 했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위해 모일 뿐만 아니라 쉬는 날로서의 주일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주일의 첫 날에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기독교 관습은 사도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쓰기 전에 이미 전통적이었다.
교회가 주일에 하루를 예배드리는 날로 정한 관습은 유대교에서 비롯된 것이지 미스라 태양의식에서 비롯된 것이 결코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셨던 그 날을 주일로 선택했던 것이다(Henry Chadwick, The Early Church (London: Penguin, 1993), 128).

티빙은 예수님의 신성이 니케아 종교회의에서 투표로 결정되었다고 위에서 언급했는데, 325년 니케아에서 개최된 1차 범 종교회의는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300 여명의 교회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그릇되게 해석하는 아리안주의를 이단으로 정죄했다.
아리우스는 예수님께서 완전한 신성을 가지지 않았다고 가르쳤고, 하나님께서 그를 창조하셨기 때문에 완전한 하나님일 수 없다고 가르쳤다.
그렇지만 아리우스도 예수님께서 단순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라고 믿지는 않았다.

채드윅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220 명 가운데 218명이라는 절대적인 다수가 신조에 서명했다.
이일로 황제는 매우 기뻤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조의 결정적인 의미는 서명자들의 수로 인하여 명백하게 드러났다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한 본질' 임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성부와 성자가 '동일하신 분' 임이 확정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차이점은 매우 애매모호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이 인격이나 특별한 본체로 이해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보다 넓은 의미로 받아들여 생물적인 속성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콘스탄틴은 두 명의 리비안 감독들을 제외한 모든 감독들의 동의를 받아들였다(Ibid, 130).

니케아 범종교회의에서 예수님의 신성이 거의 절대적인 다수로 정해졌음에도 불구하고 4세기가 성자의 정통 입장과 아리안의 애매한 입장간에 수많은 논쟁이 여전히 있었다는 것을 브라운은 간과하고 있다.
로마제국의 헬라인들과 고트족은 아리안 신앙을 선호했다.
이 사실은 '다빈치 암호' 의 신념, 즉 콘스탄틴이 예수님의 신성을 믿지 않았던 사람들을 근절시켰다는 신념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아리안들과 정통인들은 모두 함께 예수님의 신성을 믿었다.
하지만 삼위일체의 내적 본성을 교회가 어떻게 이해하느냐를 정의하는 것과 정도에 있어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또 티빙은 예수 그리스도의 결혼에 대해 황당하게 언급한다.

"그래요, 그렇지. 내가 조금 전에도 얘기했듯이, 예수와 마리아 막달레나의 결혼은 역사적인 기록의 일부요."
티빙은 장서들 가운데서 한 권을 고르기 시작했다.
"게다가 결혼한 남자로서의 예수가, '그는 독신이었다' 라고 말하는 보편적인 성서의 시작보다 더 상식에 맞아요."

"왜요?"
소피가 물었다.

티빙이 책을 찾고 있는 동안 랭던이 말을 이었다.
"왜냐하면 예수는 유대인이었기 때문이요.
그리고 당시의 사회 규범은 유대인 남자가 결혼하지 않는 것을 금하고 있었소.
유대교 관습에 따르면 독신 생활은 비난받아 마땅한 짓이었고, 유대인 아버지의 의무는 아들과 어울리는 신부를 찾아주는 것이었소.
만일 예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다면, 적어도 복음서들 가운데 하나는 그 점을 언급하고 독신이라는 자연스럽지 않은 상태에 대해서 어떤 설명을 제시해야만 했어요" (브라운, 2권, 14-5).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다.
예수님의 결혼을 증명하기 위해 예수님께서 사회적 예법을 따랐다는 것인데, 예수님께서 사회적 예법을 따랐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당시 결혼했고 당시의 사회적 규범이었던 것은 사실이다(cf. 창 1:28).
하지만 예외적으로 살아 갔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 중에 엣센파(Essenes) 가 있었다(Philo, Hypothetica, XI.xiv-xvii).
역사는 우리들에게 엣센파가 금욕적, 금혼적이었고 영적인 사람들로서 유대인들 가운데 높은 존경을 받고 있었다고 말한다.
예수님께서 신부가 있었다면 그 신부는 계시록에 나오는 혼인잔치에 소개된 교회였을 것이다(계 19:7).
더욱이 성경 어디서든지 결혼하지 않은 것을 정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7:25 ~ 38, 마태복음 19:12).
'다빈치 암호' 에서 예수님의 결혼을 거론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신성을 저해하려는 의도가 가득 찼기 때문이다.

4. 막달라 마리아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님과 은밀하게 결혼했으며 프랑스로 가서 '사라' 라는 예수님의 딸을 낳았다는 얘기를 이미 했다.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베냐민 족. "마리아 막달레나는 여기 있다오."
가계도의 윗부분을 가리키며 티빙이 말했다.

소피는 놀랐다.
"그녀가 베냐민 가문의 한 사람이었다고요?"

"정말이오. 마리아 맏달레나는 왕족의 후손이었지."
티빙이 말했다.

"하지만 저는 막달레나가 가난한 여자라는 인상을 갖고 있었어요."

티빙은 머리를 흔들었다.
"막달레나가 대단한 가문의 일원이라는 증거를 없애기 위해 창녀라는 이미지를 덧씌워버린거요."

소피는 자신이 다시 랭던을 보고 있음을 알았다.
랭던은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소피는 티빙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왜 초기 교회들은 막달레나가 왕족의 피를 가졌는지에 신경을 썼을까요?"

영국인은 미소를 지었다.
"아가씨, 교회를 걱정시킨 것은 마리아 막달레나의 왕족의 피가 아니었다오.
막달레나가 그리스도와 어울려 다닌 것만큼은 아니었지.
그리스도 역시 왕족의 피를 가졌으니까.
알다시피, 마태복음은 예수 다윗 가문의 후손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유대인들의 왕인 솔로몬 후손 말이오.
예수가 세력가인 베냐민 가문과 결혼하는 일은, 두 왕족의 피를 섞는 일이었지.
솔로몬 밑에서 그랬던 것처럼 왕가의 혈통을 회복하고, 왕관을 합법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정치적인 결합을 만들어 냈던 거요."

소피는 티빙이 마지막 요지에 이르렀다는 느낌이 들었다.
티빙은 몹시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성배에 대한 전설은 왕족의 피에 대한 전설이오.
성배의 전설이 '그리스도의 피를 담은 잔' 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은 예수라는 왕족의 혈통을 품은 여자의 자궁, 마리아 막달레나였소."

티빙의 얘기는 소피의 마음에 충분히 와 닿기 전에 서재를 한 바퀴 울리고 다시 돌아온 듯했다.
'마리아 막달레나가 예수 그리스도라는 왕족의 혈통을 품고 있었다?'...

"그대로 있어요.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은폐를 지켜보구려.
예수 그리스도는 결혼했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였다오.
아가씨, 마리아 막달레나는 성스러운 그릇이었지.
그녀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족의 혈통을 담은 잔이었던 거요.
혈통을 품은 자궁이자, 신성한 열매를 퍼뜨릴 줄기였지!" (브라운, 2권 20-1).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 중 한 사람이었고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여인이었다 (요 19장).
마리아는 막달라 (Magdala) 라는 부유한 마을 출신이었다.
그녀는 예수님으로 인해 나음을 받았고 그를 후원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 되었다 (눅 8:2 ~ 3).
성경은 결코 그녀가 매춘부였다고 언급하지 않는다.
그것에 대한 소문을 낸 사람은 베드로가 아니었고 로마의 감독 대 그레고리였다.
그는 자신의 '설교 33' 에서 막달라 마리아를 누가가 무명의 죄인으로 불렀다고 했다.

이 여인 (막달라 마리아) 이 누가가 말하는 죄인인 여성이었다고 믿는다.
요한은 그녀를 마리아로 불렀고, 마가는 일곱 귀신 들렸던 여인으로 나음을 받았다고 했다.
일곱 귀신들이란 의미는 그레고리에게서 "모든 사악한 것들" 을 의미했다.
일곱이란 수는 주요한 죄들을 말하는 것으로 탐욕, 부정, 그리고 무절제한 성적 욕망 등을 포함하고 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 안에 있는 일곱 가지 사악한 것들로부터 그리스도는 구원하셨다는 내용은 누가복음 8:1 ~ 3 과 마가복음 16:9 에 나온다.
누가가 말하는 무명의 죄인인 막달라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발에 부은 기름 부음은 감추어져 있던 행위들 속에 있는 그녀의 육체를 붓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는 참회하면서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 수많은 범죄들을 덕으로 바꾸었다.
(Gregory, "Homily 33," in Homiliarum in evangelia, Lib. Ⅱ,Patrologia Latina, vol. 76 (Paris: J. P. Migne, 1844-1864), cols. 1238-46).

또 티빙은 막달라 마리아가 초대교회에 탁월한 지도자 역활을 했다고 설명한다.
'빌립복음서' 라는 책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의 동반자(company)는 막달라 마리아였고 모든 제자들보다 마리아를 더욱 더 사랑했기 때문에 가끔 입을 맞추었다고 주장한다.
또 제자들은 이로 인해 마음이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왜 그녀만 사랑하느냐라는 질문에 예수님은 그녀처럼 너희들도 사랑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하지만 '빌립복음서' 는 본래 그리스어에서 콥트어로 이루어진 문서였다.
본래 그리스어에서는 배우자나 성교제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주장한 것은 1998년에 피크넷(Picknett)과 프린스(Prince) 가 쓴 '템플의 계시' (The Templar Revelation)의 65 페이지에 설명하고 있다.
본래 문서에서 사용된 동반자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코이노니아' 라는 말이었다.
그 의미는 '동반자', '친구' 또는 '협동자' 라고 한다.
그래서 사업, 선교, 또는 친구 사이에서 나오는 동반자라든지 연맹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지, 결코 결혼이나 성교를 의미하지는 않았다.
어떤 헬라어 사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의미이다.
또 생각해야만 하는 것은 예수님과 친분을 가졌던 마리아는 3명이었다.
예수님의 모친, 누이, 그리고 동반자였다.
그런데 그 복음서에서는 단지 마리아라고 언급했을 뿐 막달라 마리아를 지칭한 것이 아니었다.
단순히 마리아라고 지칭했으니 셋 중에 누구를 말하는지 우리는 확실히 알 수 없는 것이다.
또 브라운은 자신들보다 더 막달라 마리아를 사랑한다고 불평하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그에게 가끔 입을 맞추었다고 억지 주장한다.
같은 영지주의 문서들인 '피스티스 소피아' (Pistis Sophia) 와 '마리아 복음서' (Gospel of Mary) 를 보면 막달라 마리아는 다른 제자들보다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래서 마리아의 역할은 당시에 본질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의 입맞춤은 영지주의자들에게는 입맞춤이 바로 '지식' (gnosis) 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사도들이 질투심을 갖게 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표현을 가지고 예수님께서 마리아와 더욱 사랑의 관계를 가졌다고 추론하는 것은 너무나 비논리적인 억지 주장에 불과하다.
마리아 복음서에서 영지주의자들은 막달라 마리아를 영지주의 설교자로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신비한 지식을 전해 받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그런 표현을 사용했던 것이다.
더욱이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났다는 것을 볼 때 그러한 추측이 일어날만 하다.

5. 나가는 글

브라운의 책이 단순히 소설이라면 위와 같은 저자들이나 기독교인들은 무관심을 가질 것이지만 브라운은 초기 기독교 역사와 연관된 이야기들이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도전하고 있고 역사적 진실을 터무니 없게 왜곡하고 있다.
이 책은 위증적, 가공적, 그리고 허위적 오류들을 마치 진실인 것처럼 묘사한 것이 양의 탈을 쓴 늑대와 같다 하겠다.
또 브라운은 단순한 소설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작품에서 교회사만 아니라 성경의 진리를 하나씩 허위적으로 유포하고 있으며 마치 사실인양 포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 책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초대교회 기독교 저자들도 이단들이나 영지주의자들에 대해 기독교 진리를 변호하고 항변했던 것처럼 우리도 진리를 왜곡하는 방법을 예술을 통하여 행할 때 반드시 대응해야만 한다고 믿는다.

'다 빈치 암호' 는 소설이라는 미명 아래 진리를 왜곡하고 허위를 내포하고 전파하고 있다.
오직 성경만으로 (sola Scriptura) 라는 프로테스탄트의 주요한 진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또 초대교회에 있었던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분명한 진리를 비역사적으로 묻혀버리고 이단 서적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재편집하고 있다.
더욱이 포스터모더니즘에 살아가는 현대인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영지주의, 여권주의, 그리고 선정적이고 신비적인 글이다.
이와 같은 비사실적, 비역사적, 그리고 가공적인 소설 '다 빈치 암호' 가 미국에서 대중적 인기를 거두는 이유는 급진적 여권주의와 여성운동이 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실례로서 2003년 12월 8일자 Newsweek 의 겉표지 기사에 막달라 마리아를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브라운도 예수님을 여권주의자라고 말하면서 막달라 마리아를 남성 사도들보다 탁월하며 그들의 지도자라는 것을 부각시키고 있다.
또 이런 사실은 여권주의자들로 하여금 남성들이 주도하는 교회 권위들에 대하여 저항할 수 있는 좋은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그래서 브라운은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과 혈통들에 대한 비밀을 보존했던 수도회는 콘스탄틴과 그의 남성 후계자들이 거룩한 여성화를 마귀화 시키는데 주력하므로 모계적 이교주의를 성공적으로 주교적 기독교로 전환시켰으며, 현대 종교로부터 여신을 말살하였다고 주장한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