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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만 되면 동방박사에 대한 이야기가 예수님 탄생을 축하하는 전형적인 사건으로 이야기 되어 오고 있는데, 과연 그러한 모습이 성경적인가에 대하여 어느 누구도 성경적인 접근을 하지 않고 있음을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그래서 2003년 성탄절을 앞두고 ‘동방박사’의 성경적인 의미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마2:1-18의 말씀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한 성경적 의미(진리)가 무엇인지를 말씀 중심으로 살펴보고, 비교를 위해서 눅2:8-20의 말씀을 참고하고자 한다. 장황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인 내용들(동방박사의 전승, 신분, 경배의 스토리 등)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먼저 마태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지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1. 유대인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
-즉, 구약 특히 모세 오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다윗을 민족적인 위대한 왕으로 생각하며, 율법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위한 메시아(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이 세상을 멸하고 유대인을 구원하실 분으로 믿고 있다. 마태복음 전반적인 내용이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갖고 있는 유대인(특히 지도자들)들을 책망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것.
2.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의미를 깨달을 것.
-사단이나 유대 지도자 등이 예수님을 시험(유혹)하기 위해서 묻는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이해 방법 : 항상 예수님의 답변으로부터 그들의 질문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3.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관심을 둘 것.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통해서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구약의 해당 본문에 대한 미래적(2차적) 해석을 이해할 것.
4. 구약의 올바른 이해에 관심을 둘 것.
-유대인들이 잘못된 구약의 이해를 지적하시면서 의미를 재해석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의하여 구약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것.
5. 예언적인 말씀을 유대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것.
-천국이나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유의하여 이해할 것. 특히, 4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만 있는 내용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것.
이제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니”(마 2:2)
그들은 별을 연구함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점성가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상한 별의 출현을 위대한 인물(왕)의 출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믿고, 그 장소를 알기 위하여 동방에서 별의 위치를 추적하다가 유대 땅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서 확신하게 된 결과(‘유난히 큰 별 혹은 특이한 별의 출현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한다.’는 사실)입증해 줄 그 별을 추적하여서 위대한 인물(한 나라의 왕 혹은 세상을 호령할 미래의 왕)을 만나서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자 관심이었다. 경배라는 표현은 헬라어에서 항상 하나님에게 경배한다는 표현만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경외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엎드려 절하는 경우(왕에게[마18:26,])에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오히려 예루살렘이 소동한 것을 보고 그 왕은 일반적인 왕(정치적, 혈통적 왕)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적인 그리스도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10)
그들의 기쁨은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나서 경배하는 신앙적인 기쁨(cf.눅2:25-35[시므온], 36-38[안나])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혹은 예언의 결과가 사실로 입증되는 것에 대한 감격으로 학문적인 성취에 대한 기쁨을 나타낸 것뿐이다. 그리스도 사상이 있었던 유대의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후의 행동과 비교를 해보면 이해할 수가 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눅 2:20)
목자들은 예언의 성취를 본 현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였다. 이것이 신앙적인 사람들의 기쁨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이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현장을 본 후가 아니라 자신들의 학문적 연구의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그들이 연구해온 그 별이 한 인물의 탄생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기쁨이었다.
둘째, 그들이 왜 끝까지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을까?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 ‘동방의 박사들이 이미 유대의 상인들을 통하여 구약 내용이나 그리스도(메시아)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이 그리스도를 의미함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 사상을 갖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출발 했다면, 그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마2:2-6; 미5:2)도 베들레헴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왜냐하면 그들은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막연한 풍문이나 자료만을 근거로 먼 길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 대신에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 것이다(비교, 눅2:10-11[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구주’ 곧‘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한 나라 혹은 민족의 왕이 태어나는 것을 예언하는 별의 출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별이 유대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였을 때에 당연히 유대의 왕이 태어난다는 징조로 확신하였기에 끝까지 별의 인도를 받지도 않고 유대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별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방의 박사들이 아마도 유대의 동방에서 예루살렘의 북동쪽을 통해서 왔을 것이다(사해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위쪽으로 둘러서 왔다면). 그러므로 별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베들레헴까지 인도하려고(아마도 베들레헴 위에 머물러 있었지 않았을까?) 하였으나 그들의 판단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별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육안으로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알 수 있는 정도의 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별의 출현은 예수님의 탄생과 거의 동시였을 것이고, 그 별을 연구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적어도 몇 달 후였을 것이다(길게는 1년 이상. cf. 마2:16). 그 동안에 별의 출현으로 인한 유대의 소동이 없었던 것을 보면 일반 사람들은 그 징조를 알아차릴 수도 없었던 것 같다.
셋째,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들이 바친 예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그러므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것은 한 민족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경외심이고, 그들이 바친 예물은 그들의 연구에 대한 결과로서 만나게 될 미래의 왕에 바치기 위하여 준비한 선물이었다(고대에는 왕을 알현 할 때에는 선물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으며, 아마도 그 예물은 박사들의 고장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물품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 물론 그 의미를 억지로 찾아본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예수님의 왕적(황금), 제사장적(유향)인 사역과 그리스도로서의 고난(몰약)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선물이던 구태여 의미를 붙인다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어떻게 헤롯 왕의 요청보다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게 되었을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 예수님께 경배하게 하는 사람으로 동방의 박사(점성가)들을 사용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점성가들은 하늘의 변화나 징조를 통하여 땅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하고, 그에 대하여 대비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상한 사건들에 대하여 민감하며, 그 사건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루살렘의 소동을 통해서 태어날 아기가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종교적인 왕으로서 현재 유대지방의 왕으로 군림하는 헤롯 가문의 출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꿈에 나타난 지시를 유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신(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의 지시를 권력을 가진 왕의 요청보다도 더 신뢰하고는 다른 길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섯째, 결론적으로 본문이 (특히, 유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하시는데 정작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 있던 이방의 동방 박사들이 자연을 통한 지식(점성술)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잘 알고 맞이해야 할 유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롯 왕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하셨다.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 사실을 유대인들을 위한 마태복음에 기록한 것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유대인을 책망하기 위한 의미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국 이 기록의 의미는 동방 박사들의 예수님께 대한 경배가 초점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핍박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요한복음에 기록한 말씀(요1:9-13) 중에“자기 땅에 오메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요 1:11)라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에 대한 책망의 말씀인 것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9-13)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의 예수님께 대한 경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지고,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탄절 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야 하지 않을까?
마2:1-18의 말씀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에 대한 성경적 의미(진리)가 무엇인지를 말씀 중심으로 살펴보고, 비교를 위해서 눅2:8-20의 말씀을 참고하고자 한다. 장황한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있는 일반적인 내용들(동방박사의 전승, 신분, 경배의 스토리 등)에 대해서는 생략한다.
먼저 마태복음을 이해하기 위한 기초지식에 대해서 언급하고자 한다.
1. 유대인의 관점에서 접근할 것.
-즉, 구약 특히 모세 오경에 대해서 잘 알고 있으며, 아브라함을 신앙의 조상으로 다윗을 민족적인 위대한 왕으로 생각하며, 율법에 충실한 것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으로 확신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으로서 그들을 위한 메시아(그리스도)를 보내어서 이 세상을 멸하고 유대인을 구원하실 분으로 믿고 있다. 마태복음 전반적인 내용이 잘못된 그리스도관을 갖고 있는 유대인(특히 지도자들)들을 책망하거나 잘못을 지적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해할 것.
2. 예수님의 말씀으로부터 의미를 깨달을 것.
-사단이나 유대 지도자 등이 예수님을 시험(유혹)하기 위해서 묻는 말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이해 방법 : 항상 예수님의 답변으로부터 그들의 질문의 속뜻이 무엇인지를 다시 이해해야 한다.
3.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관심을 둘 것.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통해서 구약의 예언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고, 구약의 해당 본문에 대한 미래적(2차적) 해석을 이해할 것.
4. 구약의 올바른 이해에 관심을 둘 것.
-유대인들이 잘못된 구약의 이해를 지적하시면서 의미를 재해석해 주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유의하여 구약의 말씀을 올바르게 이해할 것.
5. 예언적인 말씀을 유대인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것.
-천국이나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에서 유대인들이 어떻게 될 것인가에 유의하여 이해할 것. 특히, 4 복음서 중에서 마태복음에만 있는 내용은 특별히 유대인들에게 초점을 맞추어 이해할 것.
이제 본문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몇 가지 질문을 제시하고, 그에 대해서 논의하고자 한다.
첫째, 동방에서 온 박사들의 관심은 무엇인가?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하니”(마 2:2)
그들은 별을 연구함으로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해하고자 하는 점성가들이었다. 그러므로 이상한 별의 출현을 위대한 인물(왕)의 출생을 예고하는 것으로 믿고, 그 장소를 알기 위하여 동방에서 별의 위치를 추적하다가 유대 땅으로 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의 관심은 자신들의 연구를 통해서 확신하게 된 결과(‘유난히 큰 별 혹은 특이한 별의 출현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한다.’는 사실)입증해 줄 그 별을 추적하여서 위대한 인물(한 나라의 왕 혹은 세상을 호령할 미래의 왕)을 만나서 확인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이자 관심이었다. 경배라는 표현은 헬라어에서 항상 하나님에게 경배한다는 표현만으로 사용된 것이 아니라 경외심을 표현하기 위해서 엎드려 절하는 경우(왕에게[마18:26,])에도 사용되는 표현이다. 오히려 예루살렘이 소동한 것을 보고 그 왕은 일반적인 왕(정치적, 혈통적 왕)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적인 그리스도인 것을 알았을 것이다.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마 2:10)
그들의 기쁨은 기다리던 그리스도를 만나서 경배하는 신앙적인 기쁨(cf.눅2:25-35[시므온], 36-38[안나])이 아니라 그들의 연구 혹은 예언의 결과가 사실로 입증되는 것에 대한 감격으로 학문적인 성취에 대한 기쁨을 나타낸 것뿐이다. 그리스도 사상이 있었던 유대의 목자들이 천사의 말을 듣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후의 행동과 비교를 해보면 이해할 수가 있다.
“목자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 가니라.”(눅 2:20)
목자들은 예언의 성취를 본 현장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였다. 이것이 신앙적인 사람들의 기쁨에 대한 표현이다. 그러나 동방의 박사들이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현장을 본 후가 아니라 자신들의 학문적 연구의 결과를 확인하는 순간(그들이 연구해온 그 별이 한 인물의 탄생을 정확하게 예언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의 기쁨이었다.
둘째, 그들이 왜 끝까지 별을 따라서 베들레헴으로 가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들어갔을까?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인 ‘동방의 박사들이 이미 유대의 상인들을 통하여 구약 내용이나 그리스도(메시아)사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과 그들이 말한 ‘유대인의 왕’이 그리스도를 의미함이 아님을 증명해준다.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 사상을 갖고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해서 출발 했다면, 그들도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도의 탄생 장소(마2:2-6; 미5:2)도 베들레헴인 것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왜냐하면 그들은 연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막연한 풍문이나 자료만을 근거로 먼 길을 찾아 나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에 대해서도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 대신에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을 것이다(비교, 눅2:10-11[천사들은 목자들에게 ‘구주’ 곧‘그리스도’라고 분명히 말했다.]) 그런데 그들은 한 나라 혹은 민족의 왕이 태어나는 것을 예언하는 별의 출현으로 이해하였기 때문에 별이 유대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였을 때에 당연히 유대의 왕이 태어난다는 징조로 확신하였기에 끝까지 별의 인도를 받지도 않고 유대의 왕궁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들어간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별이 그들을 예루살렘으로 인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지리적으로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의 남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방의 박사들이 아마도 유대의 동방에서 예루살렘의 북동쪽을 통해서 왔을 것이다(사해가 동쪽에 있기 때문에 위쪽으로 둘러서 왔다면). 그러므로 별은 예루살렘을 거쳐서 베들레헴까지 인도하려고(아마도 베들레헴 위에 머물러 있었지 않았을까?) 하였으나 그들의 판단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별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육안으로 확연히 구별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니라 전문가들이 관심을 기울여야 알 수 있는 정도의 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마도 별의 출현은 예수님의 탄생과 거의 동시였을 것이고, 그 별을 연구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것은 적어도 몇 달 후였을 것이다(길게는 1년 이상. cf. 마2:16). 그 동안에 별의 출현으로 인한 유대의 소동이 없었던 것을 보면 일반 사람들은 그 징조를 알아차릴 수도 없었던 것 같다.
셋째, 동방박사들의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 들이 바친 예물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가?
그러므로 동방의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한 것은 한 민족의 왕으로 태어난 아기에 대한 경외심이고, 그들이 바친 예물은 그들의 연구에 대한 결과로서 만나게 될 미래의 왕에 바치기 위하여 준비한 선물이었다(고대에는 왕을 알현 할 때에는 선물을 바치는 관습이 있었으며, 아마도 그 예물은 박사들의 고장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물품 중에 하나였을 것이다). 황금, 유향 그리고 몰약: 물론 그 의미를 억지로 찾아본다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예수님의 왕적(황금), 제사장적(유향)인 사역과 그리스도로서의 고난(몰약)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떤 종류의 선물이던 구태여 의미를 붙인다면 모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넷째, 어떻게 헤롯 왕의 요청보다 꿈(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게 되었을까?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 예수님께 경배하게 하는 사람으로 동방의 박사(점성가)들을 사용한 이유가 이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점성가들은 하늘의 변화나 징조를 통하여 땅에서 일어날 사건들을 예언하고, 그에 대하여 대비하게 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이상한 사건들에 대하여 민감하며, 그 사건을 예사롭지 않게 여기는 특성을 갖고 있다. 예루살렘의 소동을 통해서 태어날 아기가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종교적인 왕으로서 현재 유대지방의 왕으로 군림하는 헤롯 가문의 출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런 그들에게 꿈에 나타난 지시를 유대 종교적인 의미를 지닌 신(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 꿈의 지시를 권력을 가진 왕의 요청보다도 더 신뢰하고는 다른 길로 돌아갔을 것이다.
다섯째, 결론적으로 본문이 (특히, 유대인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하시는데 정작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유대인들은 가까이 있으면서도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오히려 멀리 있던 이방의 동방 박사들이 자연을 통한 지식(점성술)으로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였다.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하여 잘 알고 맞이해야 할 유대의 종교적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는 헤롯 왕의 편에 서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대로 탄생하셨다.
이방인인 동방의 박사들의 경배 사실을 유대인들을 위한 마태복음에 기록한 것은 유대인들을 위로하기 위한 기록이라기보다는 유대인을 책망하기 위한 의미의 기록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결국 이 기록의 의미는 동방 박사들의 예수님께 대한 경배가 초점이 아니라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핍박하는 일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해서 요한복음에 기록한 말씀(요1:9-13) 중에“자기 땅에 오메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요 1:11)라는 말씀과 동일한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유대인에 대한 책망의 말씀인 것이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치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 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9-13)
그러므로 동방 박사들의 예수님께 대한 경배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의미를 모르거나 외면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책망의 말씀으로 해석되어지고, 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져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성탄절 마다 동방의 박사들처럼 예수님을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이 의미 있는 일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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