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정이철 목사의 WCF에 대한 엉뚱하고 무례한 주장에 대해서(2024.09.14)

형람서원 2024. 9. 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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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철 목사의 WCF에 대한 엉뚱하고 무례한 주장에 대해서(2024.09.14)

고경태 목사

정이철 목사에 대해서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straw man fallacy)"와 "확증편향의 오류(Confirmation bias)"를 범한다고 인터넷에서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전자는 상대방의 주장을 곡해한 것에 근거해서 비판을 전개하며 자기 정당성을 주장하는 것이고, 후자는 강한 자기 가치관에 근거해서 자기 가치관에 부합된 정보만으로 사고 체계를 구성하는 오류 체계입니다. 확증편향은 우리 사회에 많고, 허수아비 때리기 오류가 확증편향과 만나면 답이 없는 오류가 등장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그러한 오류에 동반하는 것은 동일한 확증편향이 있거나, 단순한 답에 매료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정 목사의 확증적 가치관이 긍정적인 부분이 있지만(신비주의에 대한 경계), 그 긍정적인 가치가 만능이 될 수는 없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방언, 성령체험에 대한 주관성에 대해서 절대적인 가치, 즉 편향적 가치를 갖고 있습니다. 편향성으로 말하는 것은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판단은 자기 주관성이 아닌 객관성을 가져야 합니다. 참고로 정태홍 목사는 객관성을 밝히기 위해서 자기의 평가 기준을 매번 밝히고 있습니다(멘탈리티의 핵심키워드 5가지: 1. 신성한 내면아이 2. 구상화 3. 의미 4. 통일성 5. 도약). 정이철 목사는 자기 판단기준을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단순하게 성경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무모한 주장입니다.

저는 교리에 근거한 신학 판단을 훈련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교리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입니다. 정이철 목사는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가치를 비교하자고 주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기독교강요>는 판단을 위한 저술이 아니고 성경해석을 위한 신학교범이라고 생각합니다.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도 판단을 위한 고백서가 아니라 총합을 위한 고백서입니다. 즉 로마 카톨릭, 알미니안, 소시니안을 제외한 개혁파 신학으로 총합을 구성하기 위한 고백서입니다. 그래서 엄격한 신학을 추구하는 사역자에게 미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한 믿음으로 한 교회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은 개혁파의 중요한 지향성 중 하나입니다.

정이철 목사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 대한 부정적 표현을 하면 그에 대해서 반론적 글을 저의 블로그에 게시하고 있습니다. 제 사이트가 재정적 문제로 닫혀서 일단 블로그에만 개제하고 있습니다.

1) 정이철 목사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 종종 있습니다. 그러나 가끔은 자문자답인가?하는 의구심이 들때도 있습니다. "웨신(WCF)의 행위언약을 주장하면 반드시 행위구원으로 빠진다는 논리"는 '비약'이 아니라 터무니 없는 문장입니다. 그 주장이 맞다면 우리는 행위구원에 빠져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 목사의 <설명>을 보면 엉터리 문장에 성실하게 답변하고 있습니다. "우문현답(牛問賢答)"이 아니라 "우문멍답"입니다.

2) "웨신이 가르치는 행위 언약을 믿는다고 해서 행위구원론으로 빠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정 목사의 첫 일성이 좋은 균형성을 갖는 것처럼 보이지만, 행위구원론이 아닌 성경에서 벗어난 가치를 수용한다는 것으로 행위구원론보다 더 무서운 상태에 이른다고 답변했습니다.

3) 정 목사가 설명하는 행위언약에 대한 설명이 허수아비를 세우는 과정입니다. 이 부분이 허수아비 세움이 아닌 것이 되려면, 주장한 근거에 대해서 밝혀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정 목사가 제시한 내용이 WCF에는 없습니다.

4) 정 목사는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교리 체계를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WCF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으로 보는 언약 체계가 있습니다. 최근에 발생한 세 가지의 문제,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과 수동적 순종, 행위언약과 은혜언약, 그리고 회심준비론에 대한 토론에서 발생되는 문제입니다. 정 목사는 세 주제를 한 묶음으로 봅니다. 그러나 필자는 신앙고백서는 논리체계로서의 문장이 아닌 고백 문장으로 제시합니다. 그러나 신학자들은 고백보다 논리 체계로서 문장을 구성하고 있습니다. 신앙고백서의 문장은 논리적 연계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한 교회를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사항들을 고백해서 묶으려는 지향성입니다. 그러나 신앙고백서 작성까지 성공했지만, 결국 독립파 청교도들의 이탈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5) 정 목사는 "행위언약을 믿으면" "그리스도가 왜곡된다"고 주장합니다. 두 문장은 전혀 맥락이 맞지 않는 문장입니다. 먼저 "행위언약"은 신학자마다 주장하는 개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정이철 목사는 윌리엄 퍼킨스의 "행위언약" 어휘를 WCF에 적용시켜 혼돈을 줍니다.

6) 정 목사가 말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과 능동적 순종에 대한 견해는 WCF에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누구의 견해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7) 정 목사는 WCF에 "그리스도를 왜곡하는 이단성이 풍부"하다고 주장합니다. 매우 위험한 표현이고 용납될 수 없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WCF의 은혜언약 개념과 전혀 일치하지 않는 주장에 근거해서, WCF의 은혜언약에 이단성으로 규정했습니다. "아담이 불완전한 사람으로 창조됨"은 WCF에 없으며, 개혁파 신학자들 중에서도 주장한 학자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자연법, 십계명은 유사성은 있지만 일치성은 없습니다. 율법의 제3용도에 대해서 무지한 것으로 보입니다.

8) 정 목사는 "그래서~~"라고 자기가 세운 허수아비를 근거해서, 전혀 관계없는 WCF의 행위언약을 거부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이상한 그리스도가 되게 합니다. 십자가의 죽은심과 자기를 우리에게 연합시킴으로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를 율법을 지키심으로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로 왜곡합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문장의 내용이 맞지 않아 의미를 파악하기 쉽지 않습니다. 풀어쓰면 행위언약과 은혜언약은 성경이 제시한 그리스도가 아닌 이상한 그리스도로 인도하는 것이다. "십자가의 죽으심과 연합으로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율법을 지켜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로 왜곡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정 목사는 그리스도와 연합을 십자가와의 연합으로 제한시키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연합은 신비여서 명확한 규정은 경솔한 행동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와 관련되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만으로 구원을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전체(totus Christus, The Whole Christ)가 Solus Christus로 드러나야 합니다.

9) 율법으로 주어진 구원에 대해서 거부하는 것은 나쁘지 않습니다. 나쁘지 않기 때문에 정당한 것은 아닙니다. 정당성은 전체에 통과해서 정당성을 얻어야 합니다. 단순하게 한 부분에서 정당하기 때문에 전체가 정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체를 표현하는 기법으로서 십자가, 십자가의 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의 이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으라", "십자가의 도를 믿으라"...를 동의어로 사용합니다.

형람서원 고경태

https://www.good-faith.net/news/articleView.html?idxno=3241

행위 언약을 믿으면 행위구원론으로 빠진다고 누가 말했나요?

  • 정이철 // 입력 2024.09.14 00:10 수정 2024.09.14 01:03

반문>

삼위를 주장하면 삼신론을 주장한다 오해할 것을 무서워하여 삼위의 본체를 언급하지 않아야 하는가? 일체를 주장하면 단일신론으로 빠질 위험 때문에 유일신임을 언급하지 말아야 하는가? 그렇다면 웨신(WCF)의 행위언약을 주장하면 반드시 행위구원으로 빠진다는 논리는 비약이 아닌가?

설명>

웨신이 가르치는 행위 언약을 믿는다고 해서 행위구원론으로 빠지는 사람은 없습니다. 웨신이 가르치는 행위 언약을 믿으면,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이 왜곡되고, 우리의 믿음이 구원을 주시는 성경에서 벗어납니다.

행위 언약을 믿으면 어떻게 그리스도가 왜곡되는지 설명해드리겠습니다. 태초에 아담의 마음에 자연을 통해 기록된 십계명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언약)을 아담이 지키지 않는 죄를 그리스도가 대신 받으셨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수동적 순종 교리입니다.

그리고 아담이 영생을 얻기 위해 자연을 통해 마음에 기록해주신 십계명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리스도가 대신 완전하게 지켜야만 그 공로로 그리스도 자신과 우리가 영생을 얻는다는 논리를 전개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는 자기 목숨을 걸고 자연을 통해 아담의 마음에 기록되었던 십계명, 나중에 모세를 통해 돌판에 기록된 십계명을 완전하게 지켰다고 이단들은 말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능동적 순종입니다.

사실 우리는 아담처럼 율법을 지키지 못하고, 지킬 수도 없는 죄인들입니다. 그리서 우리는 자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는데, 그리스도가 수동적 순종으로 아담이 율법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언약)을 거역한 죗값을 받으셨고, 또한 그리스도가 능동적 순종으로 아담이 영생을 위해 지키지 못한 율법을 다 완전하게 지켰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누구나 은혜로 구원은 얻는다는 것이 웨신이 가르치는 은혜 언약입니다.

은혜 언약이라는 말은 좋으나, 그 속에는 그리스도를 왜곡하는 이단성이 풍부합니다. 그 시작은 아담이 완전한 생명을 스스로 얻어야 할 불완전한 사람으로 창조되었고, 아담에게 영생을 주는 십계명이 자연법으로 아담의 마음에 자연적으로 기록되었다는 자연법으로서의 율법 이단사상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웨신의 행위 언약을 거부해야 합니다. 웨신의 행위 언약과 행위구원론은 사실상 무관합니다. 단지 그리스도를 성경이 말씀하지 않는 이상한 그리스도가 되게 합니다. 십자가의 죽은심과 자기를 우리에게 연합시킴으로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를 율법을 지키심으로 구원을 주신 그리스도로 왜곡합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출처 : 바른믿음(http://www.good-faith.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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