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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을 비판한다, 강의자: 송다니엘

형람서원 2024. 9. 15. 2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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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을 비판한다

 

강의자: 송다니엘

 

http://cafe.daum.net/HeidelbergChurch

하이델베르크한인교회

파일 첨부성서비평을 비평한다-송다니엘.doc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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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I. 들어가면서

  • 서론적인 문제들
  • 구약의 문학비평(자료비평)
    • 구약사(이스라엘 역사) 연구
    • 모세 오경의 형성문제
    • 구약의 문학비평 역사
    • 자료비평에 따른 창세기 구성
    • 정리: 모세 오경 연구의 발전단계
    • 자료비평 비판
  • 신약의 문학비평
    • 두자료설 (Zwei-Quellen-Theorie)
    • 가짜 바울서신
  • 자유주의 신학
    • 부록 1: 칸트와 헤겔
  • 종교사학파
    • 부록 2: 근동의 신화(구약)
  • „역사적 예수“ 탐구의 실상과 허상
    • 제1시기
    • 제2시기
    • 제3시기와 예수 세미나(Jesus Seminar)

 

II. 독일 신학대학, 국가교회의 현주소.

  • 루돌프 아욱쉬타인의 예수전
    • 칼 라너와 아욱쉬타인 대담
    • 린데만과 쉬피겔지와의 대담
  • 뤼데만 스캔들
  • 니콜라우스 쉬나이더(독일 국가교회 대표)의 예수님 동정녀 탄생 부인
  • 튀빙엔 대학의 성서신학
  • 경건한 국가교회 목사, 경건주의자
  • 독립교회와 복음주의 신학대학

 

III. 역사비평의 적용

 

본문비평(하등비평)

문학비평

  • 부록: (소위) 공관복음 문제

양식사비평

  • 부록: 린네만의 양식사 비판
  • 부록: 종교사적 컨텍스트
  • 부록: 모티브 분석

편집사비평

 

IV. 성경해석학 총정리

 

부록3: 성경의 기원과 고대교부의 진술

부록4: 로버트 스타인의 „공관복음서 문제“ 비판

 

 

[린네만의 책에서 인용한 것]

 

필자가 루돌프 불트만하에서 공부하였을 때에, 그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사실을 분명히 밝혔다[2]: „우리는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을 접어두고 신약과학 연구에 임해야 한다“.

 

 

선(先) 결론[3]

 

역사비평 신학의 모든 것은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복음서를 취급하는 소위 방법이라는 것, 즉 문학비평, 양식사와 편집사도 마찬가지이다. 그의 전제는 하나님을 창조주요, 보존자요, 통치하시는 분이요, 심판자요, 구속주로서는 전혀 고려에 넣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미 내린 결정을 근거로, 복음서에서 하나님에 관계되는 것과 그분의 행동에 대해서 보도를 하는 것은 실제적인 역사로 간주되지 않는다. 역사비평 신학자들은 쉬트라우스의 생각을 확고부동하게 붙들고 있다: 복음서에는 신화적인 것과 사실이 섞여있다.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이러한 전제를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복음서를 취급하는데에서 그들의 방법을 받아들인다.

 

누구든지 복음서가 신화적인 것과 사실이 섞였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자는, 복음서를 역사적인 문서로 취급하지 않는다. 기껏해야 역사학 기준에 따라 선별적으로 복음서에 접근한다. 그들은 증인에는 관심이 없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자신의 창조주요 구속주로 믿는 자는,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이 말하는 것은 아무런 조건 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는 하나님에게서 거듭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시를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가 성경을 취급하는 방법도 이것을 전제로 한다. 성령께서 하나님이 행동하셨다고 말씀하시면, 그것은 당연히 사실로 받아들여야 한다. 단지 이것만이 성경을 객관적으로 취급하는 방법이다.

 

철학에게 반신론적인 전제로부터 출발하면 안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반신론적인 전제를 근거로 둔 신학은 그 자체로 모순이다. 교회는 그러한 신학으로 목사를 양성하면 결코 성장하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학에 근거를 둔 중 고등학교의 종교 수업은 교단이 세운 원칙과 성경, 그리고 교회의 고백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것은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현실을 고려하면, 필자는 역사비평 신학이 복음서를 취급하는 데에서 무신론적인 방법을 버리고 목격자들의 증언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통찰을 얻는다는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잃지 않는다. 그들은 소위 방법이라고 하는 문학비평, 양식사와 편집사가 부적절하고 쓸모가 없는 방법임을 깨달을 수가 있다. 필자는 그들이 학생들에게 이러한 방법을 유익한 것으로 소개하는 그러한 노력을 중단할 것을 기대한다.

 

 

I. 들어가면서

 

1. 서론적인 문제들

 

필자가 알기로는, 한국에 교육부 인가를 받은 신학대학 중에서성서비평의 영향을 받지 않은 신학대학은 거의 없다. 이것은 단순한 짐작이 아니라, 필자가 오랫동안 성서신학 교수들의 논문과 저서, 그리고 그들의 논문이나 강의 자료에서 참조하는 책들을 보고 판단한 것이다. 혹자는 한국의 대부분의 신학대학은 보수적이기 때문에 성서비평과 관계가 없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4]. 그 이유는 대부분 교수들과 신학생들이 성서비평이 무엇인지 자세히는 모르기 때문에 성서비평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학과 교회에 파고든다. 특히 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은 본인이 특별히 조심하지 않으면 성서비평에 조금씩 영향을 받게 된다.

만약 한국 교회에 시급하게 큰 경종을 울리지 않는다면 몇 십 년 내에 대부분의 교회는 자유신학에 물이 들 것이다. 그리고 신학대학 교수 자리는 대부분 성서비판 교수가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보수적인 교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분열하여 나름대로 교단 신학교를 세울 것이다.

 

성서비평학은 대학에서 배울지라도 올바로 이해하기가 어렵다. 또한 실제로 설교에 적용하기란 더욱 어렵다. 대학을 졸업하여 목사가 되면, 성서비평의 기교는 머리에 별로 남지 않고, 주로 머리에 남아 있는 것은 성경은 그대로는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은 점차로 그리스도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발전한다. 그리스도, 즉 영원한 말씀에 근거한 살아 있는 인격적인 관계는, 자신과의 독백으로 대치되며, 기독교는 문화 종교로 전락한다.

 

성서비평 배후에 숨어 있는 사상을 꿰뚫어 보기는 매우 어렵다. 성서비평은 2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온 체계적인 학문이며, 유럽의 신학계 석학들이 많은 주변 학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낸 체계이다. 그러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자들이 성서비평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어렵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연구하지 않으면 혼동만 될 뿐이다. 이러한 난점을 고려하여 필자는 본문을 선택하여 역사비평을 해가면서 실제로 역사비평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밝히며, 동시에 문제점을 살펴보려고 한다.

 

짧은 시간에 깊이 있게 다루지는 못할지라도, 적어도 성서비평이 어떻게 행하여지는 것이며, 그 문제점이 무엇인지를 밝히려고 한다. 이에 역사비평의 주요 방법인 문학비평(자료비평), 양식사 비평, 편집사 비평을 다룬다.

 

필자가 성서비평을 반대하지만, 성서비평 학자들의 업적을 전부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여러 학자들이 탁월한 고전어 실력으로 본문의 의미를 명확하게 밝히고, 해박한 역사적, 문화적, 문학적 지식으로 본문 이해에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이들의 연구물은 전혀 무시하고는 신학이 발전하기는 어렵다. 이것은 성서비평의 비평가 게르하르트 마이어[5]도 인정하는 바이다. 그런데 바로 여기에 큰 함정이 있다. 신학생들과 신학자들은 거의 필연적으로 비평가들의 책도 연구해야하기 때문에 축자영감론자도 자신도 모르게 성서비평자가 되는 위험에 처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뿐만 아니라 독일, 미국, 영국, 네덜란드의 훌륭한 신학자들도 후기에 성서비판자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러한 불상사는 이들이 비평학자들이 사용하는 방법론의 배후를 잘 파악하지 못한 데에 기인한다. 따라서 우리는 성서비평이 무엇인가를 세밀히 연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서적을 연구할 때에 매우 조심해야 한다.

 

심각한 문제는 역사비평 방법이 아닌, 다른 해석학적 방법이 새로운 해석학이라는 이름으로 보수계통 신학대학에 들어온다. 이러한 방법들은 대부분 역사비평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아니고,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적용되는 방법론으로서, 사회학, 언어학, 문학 등의 시대에 따른 새로운 방법론을 사용한다. 복음주의권에서 이러한 방법을 „성경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다“라는 전제하에서 도용을 하기 때문에 적용하는 학자나 학생들이 이러한 방법이 무신론적인 전제에서 출발했다는 사실을 불식하게된다. 새로운 방법론을 사용하기 전에 충분히 연구하고 검토해야 마땅하지만, 불행하게도 대부분의 학자들에게는 이러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 이러한 환경에서 공부한 신학생들은 자신도 모르게 성경을 경시하는 자세를 가지게 된다. 그들이 성경을 비판하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성경의 말씀에 하나님의 죄인에게 향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고, 성경이 우리가 마음을 다해 순종해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의식이 차차로 엷어지게 된다[6].

 

이러한 점을 고려해서 신학대학에 변증학(혹은 해석학)과 같은 과목을 별도로 설치해서[7] 학생들이 성서비평을 배우고 그것을 합리적으로 비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학생들은 성서비평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떠한 결과를 낳는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서비평과 연관해서 새로운 해석학 방법론도 면밀히 검토를 해야 한다.

 

문학비평은 계몽주의 영향을 받아 18세기에 시작된 제일 먼저 시작한 성서비평방법이다. 그 이전부터 성경의 저자에 대한 끊임없는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모세 오경 전체를 모세가 쓰지 않았다는 비판(신34:5-12)부터 시작하여, 모세 오경은 여러 저자들이 기술한 문서(혹은 구전)를 후에 편집했다는 주장으로 정착되고, 이러한 비판 방법이 다른 구약의 부분과 신약의 복음서, 그리고 서신서에까지 적용이 되었다.

비평가들은 자신들이 성경에서 모순, 불일치, 중복, 심지어 한 단락 안에서도 문체의 상이성을 발견했다고 하여, 성경의 각 책이 한 저자가 쓴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시기에 여러 저자가 쓴 것을 편집한 것이라고 한다[8].

문학비평이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역사비평의 대전제는 „기적은 없다[9]“로서 계몽주의적 합리주의 영향을 받은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곳에서는 이러한 배경과 영향사를 다루지 않고[10] 단지 성서비평 방법에만 한정한다. 간단하게나마 먼저 문학비평의 역사를 살펴본다.

 

* 용어해설

 

- 성서비평은 일반적으로 성경을 쓰인 그대로 하나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자세를 말한다. 역사비평학은 성서비평의 가장 중요한 방법으로서 독일에서는 복음주의를 제외한 신교와 구교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성서해석방법이다.

- 본문비평은 성서비평이 아니다. 수많은 사본을 비교, 대조하여 가장 원본에 가까운 본문을 찾아내는 작업을 말한다.

- 역사비평은 소위 과학적인 방법이라고 부르는 일련의 비평 방법을 사용하여 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가장 중요한 역사비평 방법은 다음의 3가지이다:

  • 문학비평(자료비평)
  • 양식사비평
  • 편집사비평

 

 

 

2. 구약의 문학비평(자료비평)[11]

 

1) 구약사(이스라엘의 역사[12]) 연구

 

우리는 구약에 기술된 것이 사실임을 믿으므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구약에 쓰인대로 진행되었음을 믿는다. 그러나 성서비평신학에서는 구약에 있는 것을 모두 의심한 뒤에, 그들이 자의적으로 옳다고 인정하는 것, 혹은 일반역사에서 증거하는 것이나 고고학적으로 입증된 것만 믿는다. 문제는 이러한 입증된 자료가 너무 적기 때문에, 구약의 내용은 대체로 무시된다.

 

창세기 1-11을 원역사라하여 역사성이 전혀 없는 신화라고 규정하며[13], 12장 이하의 조상 이야기는 사가로 간주한다. 사가는 역사성을 조금은 내포하고 있고, 사람들에 의해 구전되어 온 이야기들을 말한다. 따라서 이들은 조상 이야기나 모세 오경에서 핵심적인 역사적인 사실을 찾으려고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태도는 구약의 다른 부분의 연구에도 적용된다.

 

구약연구의 큰 쟁점은 „모세 오경[14] 연구“이다. 이스라엘의 조상(아브라함, 이삭, 야곱)은 누구였으며, 혹은 실존 인물이었는지, 모세는 누구였으며, 출애굽은 실제로 있었는지, 이스라엘이 팔레스틴에 어떻게 정착할 수 있었는지를 연구한다.

 

연구는 주로 자료비평을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자료비평에 따르면 구약을 형성하는 자료는 제일 빠른 것이 기껏해야 9세기에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기원전 20세기까지 올라가므로, 이에 대한 역사적 자료가 없다는 이유로 이것은 역사성이 거의 없는 이야기로 간주된다.

 

 

2) 모세 오경의 형성 문제

 

모세 오경은 모세가 집필한 것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여러 시대, 다른 장소에서 쓴 문서를 누군가가 편집했다고 가정하므로, 모세 오경의 내용을 낱낱이 분석하여 내용의 출처를 밝혀야 한다. 이러한 일은 문학비평 방법을 사용하여 이루어진다.

문학비평이란, 한 본문 안에서 부정합을 찾아내는 일이다. 즉, 한 본문 안에서 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부분, 잘 어울리지 않는 것, 불필요한 중복, 서로 다른 사상이 섞여 있는 것, 문체가 다른 것 등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것이 발견되면 그 부분은 다른 본문에서 차용된 것으로 본다.

 

모세 오경에서 예를 든다면:

  • 하나님 이름이나 칭호가 바뀐다.
  • 중복:
    • 창세기 1장과 2,3장이 중복된다.
    •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것이 3번 등장한다(창12:10이하; 20:1이하; 26:1이하)
  • 모순: 노아의 홍수에서 정한 짐승 1쌍/ 7쌍.
  • 출애굽기, 레위기, 신명기에 있는 율법규정이 차이가 나는 것이 있다.

 

à 따라서 성서비평학자들은 모세 오경은 전혀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생성된 자료들이 섞인 것으로 추정한다.

 

 

3) 구약의 문학비평역사[15]

 

칼쉬타트(Andreas Bodenstein von Karlstadt):

문학비평의 시작은 구약의 모세 오경이다. 1520년 칼쉬타트가 신명기 끝 부분의 모세가 죽은 기록을 근거로 신명기 전체가 모세가 쓸 수 없었다고 주장함으로써 신명기의 모세 저작권에 대한 의심이 시작되었다. 사무엘서, 에스라, 다니엘서는 저자 미상이라고 함. 그는 비록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을 믿었음으로 그의 주장은 당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마치 판도라의 상자를 연 효과를 가져와서 성경의 저작권을 의심하는 풍조에 문을 열었다.

 

마시우스(Andreas Masius):

그는 1574에 여호수아 주석에서 처음으로 문서(자료), 편집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 후에 이 비판을 모세 오경에도 적용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용어를 통해 구약이 실제적인 역사적 문서로서는 신빙성이 없다는 생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로 성경은 수많은 학자들에 의해 비판을 받았다. 이신론과 계몽주의에 의해 „계시는 없다“라는 모토로 율법은 하나님의 계시가 아니라 대부분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비판 대상은 주로 성경의 저자는 성경이 증거하는 그대로가 아니다라는 것과(모세 오경의 저자는 모세가 아니다), 혹은 여러 가지 문서를 후대에서 누가 모아놓는 것이라는 것과, 성경에 쓰여있는 역사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터(Witter)

1711에 처음으로 두 문서(자료)설 주장.

모세 이전에 „시가“ 형태로 구전되어오던 전승들이 있었다.

창1:1-2:3과 창2:4-3:24는 여기에 사용된 하나님 이름이 다르므로 저자가 다르다. 이렇게 서로 다른 구전이 모세 이전에 형성되었다.

 

Jean Astruc[16](1753)

아스트뤽이 비터의 생각을 발전시킴.

그는 비터가 구분한 창1과 창2,3에 A(엘로힘 문서)와 B(여호와 문서)라는 이름을 줌[17].

그는 창세기를 모두 이렇게 구분하고 남는 그룹을 C그룹으로 뫃은 다음에 이것을 8 부분으로 구분함.

그는 모세가 문서들을 모두 수집한 다음, 이것을 사이 사이에 집어넣어 한 이야기(창세기)로 만들었다고 했다.

 

이후에 수많은 가설들이 쏟아져 나왔다. G, E, I, D 문서들이 학자에 따라 순서가 왔다갔다 함.

그러다가 벨하우젠이 J-E-D-P를 지지하면서, 각 문서의 발생연대까지 추측하여 순서까지 확정하였다.

중요한 점은 그가 로이스의 영향을 받아 제사장 율법을 후로 측정하고, 예언서를 앞으로 당김. 이로 말미암아 처음에는 빗발치는 비난을 받음: „모든 계시를 부인하는 자“, „믿음의 적“. 교수직에서 면직됨. 그러나 그의 주장이 수정되면서 차차로 정설로 굳어졌다.

 

19세기 말경에는 자료가설보다 단편가설이 우세해짐.

I: I1 – I2 – I3 – I4 … In (여러 단편의 야웨 문서)

E: E1 – E2 – E3 – E4 … En (여러 단편의 엘로힘 문서)

D: 여러 단편의 신명기 문서

P: PG – PH – PS … PX (여러 단편의 제사장 문서)

 

최신 문서가설

1912 Smend : I1 – I2 – E - P

1922 Eissfeld : L[18] – I – E - P

1934 v. Rad : L – E – PA - PB

Eissfeld, v. Rad, Martin Noth(1902-1968)는 자료가설을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까지 적용시킴.

 

자료를 구분해내는 작업과 함께 차차로 자료의 연대를 추측하는 일도 진행되었다.

1805 De Wette 가 문서의 발생 연도를 측정함.

1834 Reuss (로이스)가 유명한 말을 함[19]: 문서의 발생연대는 예언서 – 율법서 – 시편이다.

이후 여러 학자들이 이 가설을 받아들이고 벨하우젠이 확정시킴: 모세 오경은 J – E – D – P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설은 후에 설득력을 많이 잃어버렸고 그다음에 많은 다른 설이 나왔지만, 아직도 (특히 독일에서) 가장 많은 사람에 의해 지지를 받는다. 이것을 자세히 보자면 다음과 같다:

 

각 문서들의 특성과 발생 년도: 4가지 자료 (J – E – D – P)[20]

 

P 문서(Priesterschrift = 제사장 문서)

가장 최근에 쓰인 문서.

기원전 500년 귀환 후에 있을 제사장 제도의 부활을 위해 포로시기에 쓰인 것으로 추정한다. 혹은 에스겔 (570)부터 에스라까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쓰인 것이다.

P문서에는 제사법, 족보들에 관심이 있다.

이스라엘 신정정치의 기원, 제도에 관심을 두었다.

아브라함은 제사의 아버지이다(예: 할례를 시작함)

 

D 문서(Deuteronomistische Schrift = 신명기 문서)

기원전 622년 요시아왕의 개혁을 위해 쓰였다고 한다.

아마도 대제사장 힐기아의 명령으로 개혁파들이 종교개혁을 위해 집필한 공식적인 개혁문서로 추정된다: 그들은 예루살렘에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이것을 위해 자기들이 집필한 개혁문서인 신명기를 하나님의 종 모세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서 쓴 것을 이제서야 발견했다고 하였다. 왕이 옷을 찟는 극적인 연출을 하였다.

다른 도시에 있는 산당들을 모두 부정하게 하는 큰 종교개혁을 단행함에 있어서 반란을 막기 위해 대의명분이 필요하였으므로 신명기를 만들었다.

아브라함을 율법준수의 모범자로 묘사함.

 

P, D에 대해서는 큰 논란이 없으나, E문서나 J문서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아래는 다수가 지지하는 설이다.

 

E 문서(Elohist = 엘, 엘로힘은 신이라는 의미)

기원전 약 750년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발생하였다.

하나님을 Elohim으로 표현하였다.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에 관심이 적고 J보다 좀 더 객관적이다.

구체적인 사건과 이름이나 풍습의 기원에 관심을 두었다.

 

J 문서(Jahwist = 야훼는 하나님의 이름)

기원전 약 850년(?) 남왕국 유다에서 미명의 저자에 의해 쓰였다고 한다.

하나님을 Jahwe로 표현한다.

저자는 주로 윤리적이고 신학적인 문제에 관심을 두었다. (하나님께 범죄함, 심판, 구원…)

예배와 제식에는 관심이 없었다.

 

결과로 본다면 P문서가 기원전 500년 가량 쓰였으므로, 에스라가 이 문서들을 모아서 기원전 400에 모세 오경을 완성했다고 본다.

 

이론에 따르면 창세기-신명기는 기원전 400년 경에 하나로 모였다. 아래 창세기 구성을 살펴보면, P문서가 꽤 많은데, P문서는 기원전 500년 경에 쓰였고, D문서(신명기)는 기원전 622년 경에 쓰였다면, 이스라엘 역사가 완전히 뒤바뀐다. 왜냐하면 예언자들은 이보다 훨씬 이전의 사람들이고 이들은 이스라엘을 회개로 이끌기 위해 항상 모세 오경을 인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언자들이 활동할 당시에는 아직 모세오경이 없었다고 하므로, 예언서도 날조된 책으로 간주해야 한다.

 

 

4) 자료비평에 따른 창세기 구성[21]

 

1:1-2:4a: P 문서[22]. 하나님의 창조의 최종 목적이 제 7일에 안식을 하는 데에 있음을 암시함. 제사장들이 안식일의 중요성을 강조할 목적으로 이 문서를 만듦: 안식일은 천지창조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므로 반드시 지켜야 한다.

2:4b-3:24: J 문서. P문서의 창조설화는 „존재하는 모든 것의 기원“에 대한 대답을 주지만 J 문서는 „인간은 왜 죄인이며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대답을 준다.

4:1-4,26: J 문서

5:1-3: P 문서 (족보)

 

노아의 이야기는 J문서와 P문서의 합성물이다.

J 문서 P문서

6:5-8: 하나님이 심판을 결정하심. 6:9-12: 노아의 족보

6:13-22: 노아와 언약을 맺으심(방주제작 명령)

7장(홍수)은 두 문서가 섞여있다. 7:11-24에는 주로 P가 많다

8장(홍수의 끝). 2-13은 주로 J문서 8:1-5는 P. 13-19도 주로 P

8:20-22: 노아의 제사와 하나님 축복 9:1-7: 축복과 율법

9:8-17: 언약 체결

9:18-27: 노아의 아들, 노아의 저주와 축복 9:28: 노아의 나이와 죽음

 

12:1-3: J (명령과 약속)

12:4-5: P (우상숭배하던 하란을 떠남)

12:6-9: J (야훼의 약속)

……

15:15: E문서

 

족장들의 이야기도 각기마다 J, E ,P 문서가 섞여서 된 것.

이사야서는 제1, 제2, 제3 이사야서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20세기에 와서 이 문서가설이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 열왕기서에까지 적용됨(Martin Noth이 뛰어난 학자이다)

 

 

5) 정리: 모세 오경 연구의 발전단계

 

a) 약1750-벨하우젠까지

구자료가설, 단편가설, 보충가설, 수정된 자료가설.

 

b) 벨하우젠의 신 자료가설(1876-1878)

J – E – D – P의 확정과 문서의 연대 추정 à 수정되면서 오늘날까지 다수에 의해 유효한 설로 받아들여짐.

 

c) 벨하우젠 이후 약 1970까지

벨하우젠 설은 지지를 받았지만 차차로 고고학의 발달과 그 가설의 부정합으로 문서의 범위와 숫자, 문서의 이름 등이 계속되어 수정되었다.

L(평신도 문서), N(유목민 문서), K(겐족 문서), S(시나이 문서), G(JE의 기초 전승)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한 문서가 다시금 여러 자료로 분리되었다: JG(J문서의 기본 문서), J1, J2, J3, EG(E문서의 기본 문서), E1, E2, E3

이러한 분류의 문제는 자료 분류의 기준이 주관적이므로 객관적인 검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자료비평이 이렇게 갈수록 복잡하고 불투명하게 진행이 되자, 독일에서는 이러한 연구가 매력을 잃게 되어 1920년대 말경에는 더 이상 연구가 진행되지 않았다. 그 후에 궁켈의 이론이 부활하게되어 대부분 학자들의 관심이 양식사로 넘어간다(Noth, Alt, von Rad).

스칸디나비아, 프랑스, 영미권에서는 나름대로 발전한다.

 

d) 1970년 이후의 발전[23]

과거에는 모세 오경 연구가 대단히 활발했지만, 오늘날에는 가장 어렵고 모순이 많은 분야가 되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오늘날까지 새로운 해석학적 방법이 끊임없이 대두된다.

 

- 공시적(synchron[24]) 방법

Childs는 이러한 종래의 통시적(diachron) 연구 방법을 버리고, 현존하는 본문을 공시적으로 해석을 하자는 의견을 내세웠다. 따라서 그 이후에 구조분석의 방법 외에 공시적 방법이 „새로운 문학비평“(The new literary criticism)의 이름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 방법은 아직도 독일에서는 환영받지 못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활발하게 연구된다.

  1. 새비평(New Criticism): 여기에서는 본문을 공시적으로, 즉 저자와 전역사를 무시하고, 하나의 독자적인 단위로 간주한다. 그리고 이 본문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문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한다. 여기에서는 내용보다는 형태에 더 의미를 둔다.
  2. 수사비평
  3. 수용미학비평

 

- 통시적 방법

 

 

6) 자료비평 비판

 

자료비평은 얼핏 보아도 매우 자의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통일성 있는 글(창세기)이 하나님의 이름이 다르다는 이유로 파편처럼 나누어질 수 있는가? 이러한 일에 대한 당위성이 있는가? 이렇게 분리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다른 기준을 정해서도 얼마든지 달리 나눌 수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학문은 완전히 달리 발전했을 것이다. 이러한 일은 합리적인 학문이 아니다. 또한 글에서 누구나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모순이 있다면, 모세 오경의 저자는 바보인가? 자료비평의 중요한 논거를 비판한다:

 

1. 하나님 이름이 바뀜

 

자료비평은 하나님의 이름이 바뀐다는 것은 그 문서가 앞 문서와는 다른 문서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런데 E문서에와 P문서에도 하나님 이름 J(야훼)가 나타난다(E문서: 15:1-2, 7-8; 20:18; 22:14이하; 28:21/ P문서: 7:16; 17:1). 그리고 J문서에는 E(엘로힘)이 나타난다(창2:4; 3:1-5; 4:25; 16:13; 32:30). 또한 한 문장에도 하나님 이름이 상이하게 나타날 경우가 있으므로 이러한 기준으로 자료를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베스터만[25]도 그의 창세기 주석에서, 하나님의 명칭이 바뀐다고 해서 그 문서가 다른 저자의 작품이라는 설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의견이 일리가 있다고 말했다.

 

구약은 모두 7가지의 하나님 이름을 사용한다. 히브리인은 하나님 이름을 경우에 맞게 특별한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사용한다:

 

  1. 야훼: 생명의 근원, 언약의 하나님.
  2. 아도나이: 심판자
  3. 엘: 권능자
  4. 엘로아: 최고의 권능을 자신의 손에 지니신 자
  5. 엘로힘 전능을 경배받을 자
  6. 샤다이 전능자
  7. 제바옷 만군의 하나님[26].

 

따라서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할 때마다, 지금 어떤 하나님을 이야기하려는 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성경에는 이 이름들이 두 가지가 동시에 사용될 경우도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여러 가지 수식어를 사용한다. 즉, 기도의 내용에 따라서 전능하신 하나님, 혹은 자비하신 하나님,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이라고 한다. 또한 남편이 아내에게 편지를 쓸 때에도, 한 편지 내에서도 아내의 호칭을 여러 개를 번갈아가며 사용할 수 있다.

 

2. 중복과 모순(불일치)[27]

 

A. 창세기 1장과 2장이 중복이라는 이론.

  1. 1장과 2장은 독립적으로 돌아다니던 다른 창조 기사인가?
  2. 따라서 1장과 2장의 창조 순서는 다른 것인가?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역사 기술 방법(이야기를 설명하는 방법)이 다르다. 오늘날에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같은 사건을 반복적으로 기술하지 않는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은 먼저 전체를 일반적으로 개괄한 다음에 사건의 핵심 되는 부분만 선택하여 그것을 자세하게 기술하는 것이 보통이다.

예를 들어 창조기사를 볼 때, 저자는 먼저 1 장에서 창조를 개괄적으로 묘사(6일간의 창조를 순서에 따라 묘사)한 다음에, 하나님 창조의 핵심인 인간을 중심으로 해서 다시 자세하게 창조(단지 6째 창조일)를 묘사한다. 이것은 빼어난 역사 기술 방법이다.

 

창세기 2장이 인간 중심으로 기술되고, 인간이 창조의 중심이라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 사실에서 알 수 있다.

  1. 인간은 하나님이 직접 창조하셨다. 인간에게 창조(바라)라는 말이 3번 반복됨.
  2.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하고 있으므로, 비록 피조물이지만 하나님과 대화를 할 수 있고,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진다.
  3. 인간은 처음부터 남자와 여자로 창조되었다(1:27)
  4.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직접 생명의 호흡을 불어 넣으셨다.
  5.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다른 피조물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주셨다.

 

따라서 2장은 1장과 같은 세계 창조 기사가 아니라 인간 창조 기사이다. 즉 1, 2장은 중복되는 기사가 아니다. 2장은 1장을 연속해서 다른 각도에서 하나님의 창조를 다루고 있다. 그러므로 서로 비슷한 창조 기사가 다른 곳에서 다른 시기에 만들어져서 떠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이론은 논거가 희박하다.

세계 창조 기사는 2:3절로 끝이 나고, 인간 창조 기사는 2:4절로 시작이 된다: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톨레돗)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이 기사는 당연히 1장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창조를 자유롭게 묘사한다. 얼핏 보기에 1장의 기술과 모순되는 것 같은 기사는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해결이 된다.

예를 들어 2:19에서 하나님께서 짐승과 새를 만드셨다는 기사는, 7절에서 인간을 먼저 만드시고 그 후에 짐승을 만들어서 1장의 보도와 모순이 되는 것이 아니라, 2장의 보도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짐승에게 인간으로 하여금 이름을 주게 하기 위해 짐승을 인간에게 데려 오신다는 데에 초점이 있다.

 

B: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경우(창12, 20, 26)

 

문제제기: 이야기의 구성이 서로 매우 비슷해서, 같은 이야기가 다른 곳에서 돌아다니면서 약간 변형된 채로 다시 창세기에 들어온 것이다고 추정된다.

 

반론:

  • 삶 속에서 비슷한 경우가 몇 번이고 반복될 가능성이 없겠는가?
  • 세 이야기를 잘 관찰하면 서로 상당히 다르다.
  • 그 이야기들이 문맥 속에서 매우 잘 어울리므로,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
  • 가장 중요한 점은, 그 이야기들이 같은 이야기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C. 노아의 홍수

 

노아 이야기에서 학자들이 모순과 중복을 찾았다고, 그리고 한 이야기에 서로 다른 생각이 섞여 있다고 생각했다.

  1. 야훼와 엘로힘이 서로 교차되면서 등장한다[28]. 이것으로 서로 다른 문서가 섞인 것으로 단정하는 것은 상식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전혀 과학적이지 않다. 다른 문서라는 것을 합리적으로 증명을 해야 한다.
  2. 6:18[29]과 7:1[30]은 중복이다. 따라서 다른 문서를 옮겨다 놓은 것이다: 이것은 중복이 아니라, 저자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홍수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이 같은 창조기사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한 것과 같은 이유로 반박된다.
  3. 모순: 6:19-20에서와 7:15-16에서는 한 쌍씩 방주에 들어가고, 7:2에서는 정한 짐승 7쌍씩 들어가라고 하신다: 만약 누가 창세기를 여러 문서를 놓고 편집했다고 한다면, 그 편집자가 이 모순(만약 이것이 모순이라면)을 발견하지 못할 정도로 무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가 이것을 발견하고 정정을 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두 문서가 편집된 것이 아니라, 한 저자가 기술한 것이며, 모순도 아니다. 이것도 창세기 1, 2장을 기술하는 것과 같이 히브리인의 역사기술 방법에 기인한다. 즉 먼저 일반적인 경우를 설명하고, 다시 언급할 때에는 구체적이고 새로운 것을 언급한다.

 

Benno Jacob[31]은 홍수 이야기가 모순이 없는 하나의 통일된 이야기라는 것을 다음과 같이 밝혔다:

1. 모순으로 보이는 것은 자세히 관찰하면 해결된다.

2. 소위 중복이라는 것은 실상은 내용의 보충이며, 이것은 히브리인의 묘사 방법이다.

3. 이야기가 조직적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로부터 이야기가 통일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콥은 모순처럼 보이는 홍수의 날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7:11 2월 17일에 홍수 시작

7:12(7:24) 40일 홍수.

7:24 150일: 홍수가 시작한 지 150일 동안 물이 머물러 있었다. 즉 홍수가 난 기간을

제외하면(150-40) 110일 동안 물이 산위에까지 머물러 있었다.

8:3,4 홍수가 시작한지 150일 후에는 아라랏 산 꼭대기에 배의 밑 부분이 닿아서 움직이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32].

 

 

 

4. 신약의 문학비평

 

문학비평의 대상은 구약뿐만 아니라 신약의 복음서, 서신서도 해당이 된다. 신약에서 문학비평의 관건은 „공관복음의 문제“이다. 공관복음서 사이의 상관관계(소위 부정합을 찾아 해결)를 다루는 일을 소위 „공관복음의 문제“라고 한다.

 

1) 두자료설 (Zwei-Quellen-Theorie)

 

네자료설이라고도 함.

3개의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공관복음서)는 너무 비슷해서 두 사람이 한 복음서를 베껴 쓰면서 약간 고친 것이 분명하다. 간단히 말해 누가 누구의 것을 베끼고 어떤 자료를 추가로 사용하였는가를 밝히기 위해 오랫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결국 두자료설로 귀착됨. 두자료설은 학계에서 가장 널리 인정받는 학설이나 세부적으로는 많은 논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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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7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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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어록 Q
50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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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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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75년경
누가복음


8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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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가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예루살렘 멸망 이후에 쓰였다고 주장한다. 그 이유는 그 두 복음서에 예루살렘의 멸망 예언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교회가 그 사건 이후에 예수님이 마치 예언을 하신 것처럼 꾸미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트뢸취의 역사비평의 원칙에 따른 것(예언은 있을 수가 없다)이다.

 

도표에 따르면, 마태복음(누가복음)은 3 부분으로 구성되었다: 마가 + Q + 마태(누가) 특수자료.

 

Q란 무엇인가?

Q(Logienquelle, 예수 어록, Sayings Source)는 마태와 누가 사이에 일치하는 부분(마가에는 없는)을 설명하고자 가정한 문서이다. 이것은 주로 예수님[33]의 말씀으로 구성되었다고 한다. 문제는, 이것이 문서로 남아있지 않고, 존재했다는 기록이나 흔적도 없다. 또한 확실한 Q를 재구성할 수도 없다. 일반법칙으로는 마가에는 없으나 마태와 누가에 동시에 있는 기사는 Q로 본다.

Q의 장절 표기는 누가복음을 따른다: Q11:2-4는 눅11:2-4. 누가가 마태보다는 순서를 좀 더 정확하게 기록했기 때문이다.

 

특수자료란?:

단지 마태, 혹은 누가에만 나오는 것(예: 눅10:30-37. 사마리아인과 강도 만난 유대인)

 

공관복음의 자료 구성을 그림으로 표현하자면:

 

마가(661절) 마태(1068절) 누가(114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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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3(특수자료)







564(특수자료)











235(Q)





235(Q)

661

600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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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설명:

마가의 총 661절 중에서 마태는 600절을, 누가는 350절을 사용했다.

마태와 누가의 235절은 Q이다.

마태의 233절과 누가의 564절은 특수자료이다.

 

 

- 마가복음 우선설의 논거:

  • 마가의 대부분 자료가 마태와 누가에 동시에 발견이 되거나, 둘 중의 하나에서 발견된다.
  • 단락의 순서: 마태와 누가의 순서가 같을 때는 단지 그들이 마가를 받아들였을 때이다.
  • 언어 수정: 마태와 누가는 마가보다 더 좋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즉 마가를 받아들이면서 더 좋은 표현을 사용하였다.

 

- Q 존재의 논거:

  • 마태와 누가의 표현이 일치하는 곳이 많이 있다(마가에 없는 단락 중에). 자세한 부분까지 일치하는 곳이 있다(예: 마3:7-10과 눅3:7-9). 이것은 그들이 같은 문서를 참조했다는 하나의 논거가 된다.
  • 마태와 누가의 각 단락의 순서가 자주 일치함. 예를 들어 산상수훈과 평지설교의 순서가 일치함. 이것은 같은 원전(문서 혹은 구전)를 참조했다는 힌트가 된다.
  • 마태와 누가에서 중복으로 인용한 곳(눅9:1-6과 10:1-12[34]). 즉 눅9는 마가에서 가져온 것이고, 눅10장은 Q에서 가져온 것이다.

 

두 자료설의 문제점:

  1. Q 나 특수자료는 발견되지도 않았을뿐더러 어떠한 문헌에서도 그들이 존재했었다는 사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또한 고 문헌 중에서도 그러한 형태를 가진 문서가 없다.
  2. 마가복음을 참조했다면 다른 두 복음서는 기술 순서가 같아야 하는데, 세 복음서 순서가 모두 조금씩 다르다.
  3. 눅에는 막 6,45-8,26이 완전히 누락됨(마태에는 들어있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반론이 있다.

 

 

2) 가짜 바울서신

 

인터넷이 보급됨에 따라 성서비평의 내용은 일반 신자들에게까지도 쉽게 전달되고 있다. 문제는 신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서비평의 내용을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실로 비판 없이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후기 바울서신“이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성도들을 현혹시킨다. 본고에서는 이 말이 무슨 의미이며, 얼마나 타당성이 있는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성서비평에서는 신약에서 다음 7개의 바울 서신만이 그 저자가 분명히 검증되었다고 한다. 그 외의 다른 모든 신약성경은 저자 미상이라고 한다. 즉, 그들은 복음서와 다른 서신도 저자 미상으로 본다.

 

(소위) 바울 친서: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살전, 빌레몬서.

(소위) 후기 바울서신: 에베소서, 골로새서, 살후,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

 

게옥 큄멜은 그가 저술한 „신학개론[35]“에서 목회서신(디모데전후서, 디도서)이 사도 바울의 친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여러 학자들의 의견을 종합하였다. 필자는 그것을 요약하여 정리하면서 다른 학자[36]의 반박도 요약해서 싣는다.

 

간단히 살펴보는 목회서신에 대한 비판의 역사:

  • J. E. C. Schmidt는 1804년에 처음으로 디모데전서의 진정성을 의심하였다.
  • 쉴라이어마하도 1807년에 문체 등의 이유를 들어서 디모데전서가 바울 친서가 아니라고 하였다.
  • 아이히호른이 1812년에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목회서신 전체를 가짜라고 판정하였다.
  • 그 이후에 학자들이 계속해서 목회서신이 바울 친서와 다른 점을 찾아내려는 시도와 함께 열띤 논쟁을 벌였다.
  • 진정성에 반대하는 자는, 목회서신의 표현들이 친서의 표현과 같을 경우, 이것은 가짜 저자가 의식적으로 모방한 것이고, 서로 다른 표현은 목회서신이 친서가 아니라는 증거로 사용하였다.
  • 진정성을 주장하는 자는 그와 반대로, 가짜 저자가 바울 서신을 모조했으므로, 진짜 모조품이라면 표현이 다를 수가 없다고 공박한다. 즉 그는 최대한 바울적 표현을 사용하였을 것이다.
  • 비평가들은 차차로 문체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문제까지 제시했다.

 

큄멜은 목회서신이 바울서신과 다른 점을 다섯 가지로 설명한다:

 

1. 사용된 언어와 문체가 다르다:

홀쯔만은 바울 서신과 목회 서신의 언어가 상당히 다르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실제로 목회서신에는 친서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들이 유난히 많다. 친서에서 사용되는 많은 어투가 목회서신에서는 사용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반론: 그러나 문체가 다르다는 이유로 목회서신이 바울 친서가 아니라는 것은 조금도 증명될 수 없다. 목회서신은 명칭에서 나타나듯이, 다른 서신과는 다른 목적으로 쓰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새로운 주제를 다룰 때는 다른 용어를 사용해야만 한다. 또한 디모데와 디도는 사도 바울과 가장 가까운 동역자들이며, 디모데는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아들“이라고 부르는 자이다. 그럼에도 목회서신의 언어와 문체가, 문제가 있는 교회에 보내는 서신의 것과 다르지 않다면 오히려 가짜 서신이라고 의심을 받아야 할 것이다.

 

2. 목회서신은 사도행전 이후에 쓰인 것은 분명하다. 전통적인 주장은 사도 바울이 1차 수감 후에 한 번 풀려나서 스페인에 선교 여행을 다녀온 후에 다시 투옥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바울은 목회서신을 2차 수감 전후에 썼다고 한다. 역사비평가들은 클레멘스 전서5:7와 카논 무라토리의 증거를 토대로 사도 바울이 자유롭게 되었다가 재수감된 것을 인정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사도 바울이 이 기간에 집필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큄멜은 바울이 디모데에게, 자신이 죽기 전에 (딤후4:6 이하) 속히 로마로 오라고 한 말의 진정성을 부인한다. 바울이 1차 변론 이후에는 (딤후4:16) 감옥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릴 수 없다고 한다. (반론: 2세기 초에 딤후를 썼다는 저자가 이 사실을 모르고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썼을까?

20세기의 사람이 2세기의 사람보다 당시의 상황을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반론: 고대 교회의 여러 문서에서 목회서신이 바울 서신임을 증거한다. 바울 자신도 목회서신이 자신의 서신임을 증거한다. 그런데 여기에 어떤 다른 증명을 내세워야 하는가? 역사비평학자들이 오히려 목회서신이 바울 서신이 아니라는 것을 상세하게 증명해야 하지 않는가? 이렇게 명백한 증거를 무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

 

참고로 초대 교부들의 증거를 살펴보면:

  • 카논 무라토이(180-200년경)에서 디모데에게 보낸 바울의 두 편지가 언급된다.
  • 이레네우스(200년경 사망)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들을 언급하면서, 딤후4:21에 나오는 리누스를 언급하고 (adv. haer. III 3,3) 딤후4:10-11을 바울의 말로 인용하였다.
  •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도 딤후2:1-2를 인용하였다.
  • 터툴리안(150-230)은 딤후1:18을 인용하면서 이는 바울이 쓴 것이라고 했다.
  • 유세비우스는 바울이 딤후를 로마에서 썼다고 했다.

 

3. 거짓 교사와의 싸움

목회서신에 등장하는 거짓 교사는 유대주의 기독인과 초기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유대인들이다. 전에는 많은 성서비평가들이 영지주의는 2세기에 체계가 잡혔으므로, 목회서신이 2세기 작품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으나, 차차로 그들도 사도 바울 시대에도 초기 영지주의 요소가 나타났음을 인정했다.

큄멜도 이러한 거짓 교사들과의 싸움이 바울 시대에 있을 수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들이 60년 이전에 쓰였다고 추정하는 골로새서에서도 이러한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러나 큄멜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바울은 골로새서에서 거짓 선지자의 가르침을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반박을 하라고 권면하지만, 목회서신에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가 전수받은 가르침을 일깨워주고 이것을 붙잡으라고 가르친다(딤전4:1; 6:20; 딤후1:14; 2:2; 딛3:10-11). 즉, 바울이 교회에 이단에 대처하는 방법을 권고하는데, 이 방법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큄멜은 목회서신이 사도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쓴 것임이 틀림없다고 한다.

 

반론: 디모데가 목회하던 에베소 교회와 골로새 교회는 서로 상황이 전혀 다르다. 골로새 교회는 사도 바울이 개척한 곳이 아니고, 주로 골로새서는 거짓교사 문제를 다룬 서신이다. 그러나 디모데는 이미 일정 기간에 에베소 교회를 섬기면서 거짓 교사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한 상태였고, 또한 이 편지는 다른 목적으로 쓰인 것이므로, 바울이 거짓 교사에 대해서 다른 측면에서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하다.

 

4. 교회 조직

고린도전서에 따르면 교회는 조직이 없고 카리스매틱(은사)에 기초를 두었으나, 목회서신에 따르면 적임자 임명을 통해 교회지도부가 조직되었다. 이 사실은 후기에 초기 카톨릭주의의 형성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때에 목회서신이 집필되었다.

 

반론: 목회서신의 교회조직은 사도시대의 교회의 상황과 다를 바 없다. 행 14:23에서나 빌 1:1에 장로와 집사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목회서신에서 예배질서나 교회행정에 대해 지시하는 부분은 매우 적고, 직분 자체를 강조하지도 않는다 (왜 직분이 필요한가? 등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다). 다른 교회와 마찬가지로 이미 있는 직분을 전제로 하고, 디모데가 어떤 사람을 직분자로 세워야 하는가에 대한 즉, 직분자의 자격 요건에 대해 말하고 있다(딤전3:1-13; 5:3-22; 딛1:5-9). 또한 에베소나 근교에서 다른 교회를 개척할 때에 디모데가 새로이 직분자를 세울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목회서신이 바울이 사망한지 한참 후에 교회가 조직을 갖추게 되었을 때 쓰였다는 설은 그 근거가 빈약하다.

 

5. 목회서신의 신학은 바울의 신학과 다르다.

이에 대해 각주에서 소개한 한스 뷔르키가 상세하게 반론을 제기하였는데, 별로 의미가 없으므로 이곳에서는 생략한다.

 

외 반론들:

1. 후기서신에서는 지도자들은 결혼할 것(딤전 3,1ff)이라고 했으나, 바울서신(친서)에서는 되도록 결혼하지 말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해당 구절을 잘 살펴보면 지도자들이 결혼하라고 권면한 것이 아니고, 결혼을 했을 경우를 이야기하고 있다.

2. 친서에서는 자매들은 차별대우 받았으나, 후기서신에는 평등을 가르친다. 그러나 친서라고 하는 빌 4:2에서는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교회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로 등장했음을 볼 수 있다. 또한 딤전 2:9ff을 볼 때, 이것이 친서의 내용과 다르다고 할 수 없다.

 

 

가짜 서신 문제

 

1. 역사비평가들은 초대기독교 시대에 가짜 서신, 가짜 복음서를 쓰는 것은 당시의 도덕관념으로 볼 때,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나 Acta Pauli (바울 행전) 사건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행전은 150-200년 사이에 소아시아의 어느 장로가 썼다. 그러나 이 문서가 발견되자 교회에서 비상이 걸려서 저자를 찾아냈다. 그가 문책을 당하자 자신이 바울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것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사도의 이름을 도용했다는 이유로 장로직에서 해임되었다. 이 사건은 교회가 사도의 이름으로 쓰인 글을 비판하여 받아들이지 않았음을 잘 보여준다.

 

2. 예수님의 1차 증인인 사도들은 마지막으로 요한복음이 1세기 말에 쓰여진 후에 모두 죽었다. 그리고 그들의 글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성경과 같은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죽은 지 50년 후에 사도 바울의 이름으로 쓰인 바울 서신이 등장했다면, 교회에서 이것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을 리가 없다. 분명히 면밀하게 조사를 하고, 또한 누가 이러한 거짓말을 했는지를 밝혀서, 그를 파면했을 것이다.

 

3. 이단문서: 사도의 이름을 도용해서 쓴 것은 대부분이 이단 문서이다. 그들은 이단이었기 때문에 (의도가 순수하지 않았으므로) 사도들의 이름을 도용한 것이다. 이단 문서가 교부들에게 알려진 것은 보통 3세기 이후이다(도마복음은 230년경에 알려짐). 이 문서들은 이단들에 의해 비밀리에 사용되고 있었으므로 늦게 적발되었다. 그러나 소위 후기 서신은 일찍부터 교회에서 사용되었고 아무런 문제없이 교회에 정착되었다.

가짜 문서들이 쓰인 것은 역사비평가도 130년 이후로 잡는다(베드로 복음은 약 150년). 그러나 대부분 역사비평가들은 후기 바울서신은 저작 연도가 2세기 초라고 짐작한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보아도 소위 바울 후기서신은 가짜 문서들이 나오기 이전에 완성되었다.

 

 

바울과 관계되는 문서(위경)

 

  • 바울과 테클라 행전(acta Pauli et Theclae; 2세기 말): 바울의 목회서신에 대항해서 쓰인 문서. 테클라라는 여성은 당시 여권주의자였다. 내용의 골자는 그 자매가 가르쳤다는 것과(바울 서신에서는 자매는 가르치지 말라고 했음), 스스로 자신에게 세례를 준 것이다. 이 문서에는 사도 바울이 이러한 테클라의 가르침을 인정한다고 쓰여있다.
  • 가짜 클레멘트서: 이것은 영지주의적 문서이다. 바울이 사도임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이다.
  • 라오디게아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선행을 해야 한다는 내용.
  • 바울과 세네카의 편지교환(4세기): 세네카와 바울 사이에 친분이 있었다.
  • 바울 묵시록: 바울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 지옥에 있는 것을 본다. 그들은 주일에는 괴롭힘을 당하지 않는다(주일성수 암시).
  • 영지주의적 바울 묵시록: 나그 함마디에서 발굴.
  • 위(가짜) 디도서.

 

사도 바울과 관계되는 위 문서들은 전부 문제가 있는 글이다. 전부가 이단 문서는 아니지만, 사도 바울의 가르침과는 거리가 멀 뿐만 아니라 수준도 매우 얕다. 이들 중에 소위 후기 바울서신이라고 하는 디모데서나 디도서에 조금이라도 근접할 만큼 영적, 지적 무게가 있는 문서는 없다.

사도 바울은 살후 2:2에서 심지어 „우리들“이 보냈다고 하는 말씀이나 편지에도 현혹되지 말라고 가르친다[37]. 이것은 초대 교회가 얼마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중요시했는가를 나타낸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도의 이름으로 쓰인 문서가 있으면 즉시 확인 절차를 밟고, 만약에 그것이 가짜로 판명이 나면, 곧장 해당 인물을 처벌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을 모두 고려한다면, 목회서신이 위경과 같이 가짜서신 일 가능성은 없다.

 

 

목회서신의 내적 증거

 

목회서신이 바울 친서라는 것은 서신 자체가 스스로 가장 뚜렷하게 증거한다. 특히 디모데후서의 예를 들자면, 이 서신에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이, 그와 디모데 사이의 사랑이 친밀한 조언 속에 녹아 있으므로, 가르침과 개인적 관계를 뗄 수가 없을 정도이다. 게다가 당시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처지가 편지의 내용과도 관련이 있다. 누구도 디모데를 향한 사도 바울의 사랑을 말로써 흉내 낼 수 없고, 사랑과 가르침이 혼합되어 하나가 된 이 편지를 인공적으로 만들어 낼 수도 없을 것이다.

 

디모데후서 1장의 각 절을 살펴보면, 거의 모든 말이 사도 바울과 디모데의 개인적 처지와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

 

  •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된 바울은(1:1) à 바울이 저자이다.
  • 나의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1:2) à 바울의 아들 디모데에게.
  • 내가 너를 나의 기도에서 끊임없이 생각할 때, 하나님께 감사한다(1:3)
  • 너의 눈물을 생각할 때, 내가 기쁨에 차기 위해 너를 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1:4)
  • 너는 너의 할머니와 어머니가 가졌던 순수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1:5)
  • 내가 너를 안수했을 때에 나타났던 은사를 불붙듯 일깨워라(1:6)
  • 하나님이 너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은사를 주셨다(1:7)
  • 주님과 나를 증거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아라(1:8)
  •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해 고난을 받아라(1:8)
  •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고 부르셨다(1:9)
  • 그리스도가 죽음을 쳐부쉈다(1:10) à 사도 바울이 죽기 바로 전에 있고, 디모데는 지금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에 격려하고 있다.
  • 바로 이러한 이유로 나도 이 모든 고난을 당하고 있다(1:12)
  • 내가 너에게 가르친 말씀을 잘 지켜라(1:13)
  • 내가 너에게 맡긴 이 귀중한 재산(복음)을 잘 보관하여라(1:14)
  • 아시아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떠났다(1:15)
  • 그러나 오네시포루스는 나를 기쁘게 했다(1:16)
  • 그는 감옥에 갇힌 나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열심히 나를 찾아서 방문했다(1:17)
  • 주님께서 그를 축복하시기를 바란다. 너는 그가 에베소 교회에서 내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얼마나 수고를 하였는가를 잘 알고 있다(1:18).

 

이렇게 1장만 보더라도 거의 모든 구절이 사도 바울과 디모데(혹은 오네시포루스)가 개인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성서비평의 대가 불트만조차도 딤후4:6-22는 매우 개인적이라서 이 부분은 사도 바울이 썼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성서비평가들이 딤후의 연대로 측정한 2세기 초에는 이미 바울 서신은 성경과 같은 권위를 누리고 있었다. 만약 교회지도자 중에서 누군가가 사도 바울의 친서를 이렇게 철저하게 흉내를 내어서 마치 사도 바울이 쓴 것처럼 구구절절 꾸몄다면, 그는 사기꾼이요 거짓 증거자이다. 그렇다면 그가 썼다고 하는 딤후의 내용의 질도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감이 들어간 딤후가 거짓 증거자의 작품이라는 것은 전혀 설득력이 없다. 이러한 주장이 과학자의 입에서 나오면 안 된다.

 

원래는 후기 바울서신으로 번역할 것이 아니라 가짜 바울서신으로 번역해야 한다. 학문적인 명칭은 Pseudepigraphien이다. Pseudo는 가짜라는 의미의 그리스어이다. 한국의 성서비평 학자들이 이 말을 후기 바울서신이라는 말로 번역함으로 신도를 속인 것이다. 만약 그들이 가짜 바울서신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면, 성도들이 당장에 반발을 하거나 경각심을 가질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도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성서비평가가 되어간다.

 

우리가 일부의 바울 서신이 후기서신이라고 의심을 품기만 해도 하나님 말씀은 권위를 잃는다. 그렇다면 성경이 우리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며, 따라서 성경말씀은 더 이상 우리의 삶을 지도하지 못한다. 우리가 말씀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를 판단하고 지도하도록 해야 한다.

 


[1] 역서: 에타 린네만 „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의견인가“, „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조작인가“. 부흥과 개혁사.

[2] „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조작인가“ 260쪽

[3] 위의 책 247-248쪽

[4] 필자는 오랫동안 보수신학대학의 커리큘럼과 수업에 사용되는 교과서를 지켜보고 교수들의 논문을 검토하였다.

[5] Gerhard Maier, „Das Ende der historisch-kritischen Methode“, Brockhaus 5판(1984), 80쪽. 1974 초판. 이 책은 김성수 교수(합신)가 한국어로 번역하였다.

[6] 한국의 보수 신학대에서는 성경무류설을 주로 조직신학적으로만 고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만으로는 안 된다. 성경무류는 성서신학적으로도 증명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경무류라는 껍질만 남게되어 언젠가는 무너진다.

[7] 고신과 합신과 같은 대학에서 성서신학 교수들이 해석학이라는 과목으로 이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필자의 의견으로는 학과를 분리하여 문제를 좀 더 깊이있게 다루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8] 필자는 신학 대학에서 이러한 본문을 모두 찾아서 상세히 연구, 토론을 하는 세미너리에서 배웠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많은 연구를 하였다. 우리가 모순이라고 생각되는 구절은 상세히 연구해보면 전혀 모순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성경은 사람들이 쉽게 모순을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만만한 책이 아니다. 현재의 학문으로, 거의 모든 모순, 불일치로 보이는 구절들은 모순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필자는 수십년간 이러한 과정을 거쳤기 때문에 성경의 무오를 더욱 확실하게 믿는다.

[9] „역사비평은 과학인가 의견인가?“ 125쪽, 172쪽.

[10] 에타 린네만의 책에서 문제가 다루어진다.

[11] 자료비평이라는 말은 본문이 여러 가지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라는 가정에서 나왔다. 이 자료를 찾아내는 작업을 자료비평이라고 한다: Quellenscheidungstheorie, Source criticism. 문학비평(Literarkritik, literary criticism)을 통해 자료비평으로 발전된다.

[12] 이스라엘 역사라는 제목으로 많은 논문과 교과서들이 있다. 쉽고 건전하게 쓰인 책으로는 Eugene Merrill의 „Kingdom of Priests“가 있다. 이 책은 독일어로도 번역이 되었다. 비판적인 구약입문서로서 많이 읽히는 책으로서는 에릭 쩽어의 „Einleitung in das Alte Testament“가 있다(1995 초판에 이어서, 벌써 7판이 나옴). 신학생들를 위해 16쪽으로 정리된(주로 모세 오경 부분을 정리함) 독일어 본은 필자에게 연락하면 보내 준다.

[13] „창조, 타락, 노아의 홍수는 신화다!“ 이들은 대부분 진화론자다.

[14] 모세 오경은 토라라고 하며 원래는 다섯 부분으로 나늬어져 있지 않고, 한 책으로 되어 있다.

[15] 실제로는 매우 복잡하여 주제를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

[16] 비터의 글이 널리 알져지지 않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아스트뤽이 두 자료설을 처음 주장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

[17]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을 엘로힘이라고 하고, 2,3장에서는 엘로힘-야훼라고 한다.

[18] 평신도 문서

[19] 이러한 로이스의 망언에 대해서는 린네만의 „성경비평학은 과학인가 조작인가“의 57쪽 이하에서 자세히 나온다.

[20] 이 자료가설은 아직도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므로 잘 알아둘 필요가 있다.

[21] Abriss der Bibelkunde. Claus Westermann. VBKV.

[22] 맨 처음 아스트뤽은 E문서로 분류하였다.

[23] 새로운 해석학에 대해서는 부록에서 별도로 다룬다.

[24] 예를 들어 공시적 역사 기술 방법은 같은 시간에 여러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기술하는 것이다.

[25] 그의 방대한 창세기 주석은 기념비적 저작이다. 그는 성서비평의 대가이지만, 그의 해박한 지식으로 복음주의권에서도 그의 주석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26] 삼상1:3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제사를 드렸는데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여호와의 제사장으로 거기에 있었더라“

[27] 여기에 대한 대답은 창조과학협회의 홈페이지에도 나와있다: http://www.kacr.or.kr

[28] 이것을 보고 „아하! 서로 다른 문서들이 섞여있는 것이구나“라고 단정을 내림.

[29]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방주로 들어가고

[30] 7: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31] 야콥(1862-1945)은 독일에서 살았던 저명한 유대 랍비로서 보수 신학자는 아니었지만 자료비평의 오류를 지적하는 데에 공헌을 하였다. 모세오경이 모순이 없는 책임을 증명함.

[32] 필자가 얼핏 보기에는 8장 3,4절 사이의 모순으로 보이는 진술이 해결된 것 같지 않다. 즉 3절에서는 150일 후에 물이 빠지기 시작되었다고 했고, 4절에서는 7월 17일에는 이미 물이 빠져서 배 밑이 아라랏 산에 닿았다고 했는데, 7월 17일은 바로 150일이 되는 해이다(2월 17일에 홍수 시작). 즉 물이 빠지기 시작하자마자 배가 산에 닿았다고 하는 진술이다. 필자는 야콥의 상세한 해설(창세기 주석)을 읽은 것이 아니고, 베른하르트 크니스의 짧은 논문을 참조하였다. 야콥의 상세한 주석에는 분명히 그 부분에 대한 해설이 나왔을 것이다.

[33] 필자는 학문적인 언어라 할지라도 예수님을 예수라고 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가 경배해야 할 하나님이다. 신학과 신앙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것이 분리되는 즉시 자유주의로 빠질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필자는 비평학자들이 예수로 사용한 것은 그대로 예수라고 하였다. 예수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필자의 의도가 아니다.

[34] 한 단락은 12제자 파송이고, 다른 단락은 72제자 파송이다. 엄연히 다른 사건을 비평가들은 같은 사건으로 본다.

[35] 거의 20판이 육박하는 큄멜의 신약개론은 독일 신학대학의 교과서로 사용된다.

[36] Hans Bürki는 그의 디모데서 주석(Wuppertaler Studienbibel)에서 목회서신의 진정성을 탁월하게 그리고 상세하게 증명하였다. 간단한 요약서로는 E. Mauerhofer의 신약개론이 좋다.

[37] 살후2: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출처] 역사비평을 비판한다 -송다니엘 [117페이지]|작성자 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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