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역자 서문에서

형람서원 2024. 7. 15.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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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배병권 목사, 바른교회)는 통합측 신학교를 나왔으나 아래와 같이 배웠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고백대로, 그리고 배운바에 따르고자 합니다. 참고로 이 책은 당시 장신대 예배학 교수님이 펴냈고, 장신대에서 나온 책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

- 장로교 예배의 뿌리를 찾아서

< 역자 서문 >

장로교는 교단마다 헌법을 기본법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이 헌법 안에는 대부분 교리와 정치와 권징과 예배모범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 내용들은 거의가 다 존 낙스를 중심으로 출발한 스코틀랜드 교회가 장로교의 원조로서 제정한 것들입니다. 그러나 지금껏 한국의 장로교는 교리에 실린 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만을 주어진 유산으로 생각하고 있을 뿐 그 외의 것은 모두 자생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장로교가 가지고 있는 예배와 신앙과 정치와 권징의 뿌리는 거의가 다 웨스트민스터 성회에서(Westminster Assembly of Divine) 제정된 것들입니다. 특별히 예배모범의 제정은 웨스트민스터 성총회가 모이게 되는 주목적이었고, 이것은 장로교예배의 뿌리와 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대한 문헌 하나 없는 것이 한국 장로교의 실정입니다. 장로교 예배의 기본 정신과 그 줄기에 대한 아무런 연구가 없이 예배를 지속하고 있다는 것은 1세기를 넘긴 교회로서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장로교 예배의 정신과 그 뿌리를 모르는 연고로 발생된 부끄러운 일들은 참으로 많습니다. ​

​예를 들면, 축도는 바울의 축도(고후 13:13)가 전부인 줄 알고 있습니다. 모든 장로교 목사들은 오직 이 축도만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 예배모범은 아론의 축도(민 6:24-26)를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정했고, 그 다음이 바울의 축도로 되어 있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예배 중에 시편송을 부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의무라고 규정했는데도 우리의 찬송가에는 시편송이 매우 적습니다. 거의 부르지도 않는 현실입니다. 더욱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것은 장로교의 예배에서는 성찬 성례전을 자주 거행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는데, 한국의 장로교는 일 년에 두 번 성찬 성례전을 하게 됨을 하나의 법규처럼 지키고 있습니다. 이 모두가 장로교 예배의 본질과 그 내용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역자는 미국의 석·박사 과정에서 기독교 예전과 설교를 연구하면서 제가 찾는 장로교 예배의 본향이 복음을 전해준 미국이 아니라 스코틀랜드 교회임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꿈은 장로교의 고향인 그 곳을 찾아가 한 학기라도 보내면서 문헌을 찾고 그들의 예배 현장을 보면서 장로교 예배의 근간을 찾아 연구하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기회를 허락하시어 1992년 그 곳의 에딘버러 대학교에서 연구교수로 반년을 지내게 해주셨습니다. 그 때 저는 집중적으로 본서를 중심하여 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을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연구는 본 예배모범의 위치성과 형성과정을 비롯하여 스코틀랜드의 종교 개혁과 존 낙스의 예배모범, 영국 퓨리탄들과 그들의 예배에 대한 관심, 그리고 웨스트민스터 성회와 예배모범탐구가 주를 이루었습니다. 그 때 본 예배모범의 구조와 내용을 분석, 연구하면서 진정한 장로교의 예배 신학과 방향을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대한 연구논문은 졸저 ‘예배의 신학’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이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놀라움 속에 젖어 들었습니다. 그것은 이 예배모범을 합법적으로 이룩하기 위하여 스코틀랜드 교회가 수많은 생명들을 희생하는 대가를 치렀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찰스 1세가 1636년 존 낙스의 예식서 사용을 금지시키고 교회의 수장이 왕으로 되어 있는 영국 국교회의 예식서를 사용하도록 강요할 때 생명을 내놓고 일어선 그들의 모습은 전설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1638년 서명을 하고 일어선 계약군들이 불굴의 정신으로 왕당파에 대항하여 싸워 마침내 그 결과로 웨스트민스터 성회를 통하여 장로교의 기틀인 예배모범을 1644년에, 장로교 정치를 1645년에, 그리고 신앙 고백을 1647년에 이룩하였습니다.

이 과정을 상세히 연구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 기록이 장로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출발임을 알게 됩니다. 스코틀랜드 교회가 월리엄 3세에 의하여 장로교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될 때까지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있었고, 이는 오늘의 장로교를 있게 하는 밑거름이었습니다.

본서는 웨스트민스터 성회에서 제정한 예배모범만을 수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여기에는 그 본문과 그 본문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해설서가 있습니다. 그 해설에서 부족한 것은 부록으로 엮어진 부분에서 역사적인 정황 이해와 함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놓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서는 단순한 예배모범의 내용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장로교 목사의 임직의 원칙과 그 절차에 이르기까지 명문화되어 있는 역사적 기록을 보게 합니다.

역자는 다시 한 번 이토록 소중한 문헌이 우리 앞에 놓일 수 있도록 허락하신 하나님께 한없는 감사를 드립니다. 오직 부끄러운 것은 장로교에 몸담고 있는 실천신학 교수로서 이처럼 소중한 문헌을 좀 더 일찍 펴내지 못한 점입니다. 이제라도 부족한 저에게 이 소중한 문헌을 우리말로 펴내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본서가 한국의 장로교인들 손에 들어오기까지 저 혼자만의 노력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귀한 손길들이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저에게 반 년 동안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고 필요한 정보들을 제공하면서 나의 연구에 결정적인 도움을 주었던 스코틀랜드 교회(Church of Scotland)총회와 연구교수의 자리를 허락하여 주었던 에딘버러 대학교의 신학부인 뉴칼리지 교수회와 포레스터(Duncan Forrester) 학장에게 감사의 뜻을 표합니다. 그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분야의 연구와 본서의 발굴이 가능했습니다. ...

2002년 부활절 아차산 기슭의 선지동산에서 정장복

- '웨스트민스터 예배 모범', 토마스 레쉬만 편,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P. 3-6 역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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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트민스터 예배모범 역자 서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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