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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근 목사

형람서원 2024. 6. 2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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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근 목사

1938년 7월 5일 충북 영동 출생이다.

1977년 총신대 신학원 졸업,

1989년 총회목회 신학원 졸업했다.

1979년 부산노회 목사안수,

1971-1982년 해운대 중일교회,

1982-1995년 부산제일교회,

1995-2008년 의성교회에서 은퇴했다.

기독교 서적 60권을 저술하였고 시집 2권을 펴냈다. '문학21'에 시, 수필로 등단했다.

 

특별인터뷰-목회일선에서 은퇴한 이윤근 목사


5월 31일 의성교회 교회설립 100주년 기념식과 함께 목회일선에서 물러난 이윤근 목사를 만났다. 이윤근 목사하면 떠올리는 단어가 있다. 바로 '쓴소리'다. '쓴소리꾼'은 교단정치권, 총회와 산하 기관과 관련된 네티즌들, 집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그에게 붙어준 또 다른 이름이다.

왜 사람들은 이 목사를 '쓴소리꾼'으로 이미지화 했을까? 그것은 목회에서도, 총회 정치에서도 할 소리를 하는 몇 되지 않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얼굴은 몰라도 '이윤근' 이름 석 자를 말하면, 남들이 잘 하지 못하는 시원한 말을 속 시원하게 쏟아내는 존재로 인식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윤근 목사는 '원로목사'가 아닌 '은퇴목사'로 현직에서 물러났다. 그의 명성에 비한다면 초라함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그는 얼마든지 원로목사 자격을 갖출 수 있었다. 이 목사는 95년 의성교회 부임 전 해운대 중일교회를 거쳐 부산제일교회에서 6년 정도 더 목회를 했다면 말이다. 하지만 그를 원하던 의성교회 요청, 아니 하나님의 부르심을 거스를 수 없었다.

여기에는 이윤근 목사가 펴는 '허수아비론'에 근거한다. 그는 목사를 '허수아비'라 정의한다.

"목사는 하나님의 필요와 소명에 따라 살아야하는 허수아비입니다. 허수아비는 주인의 필요에 따라 만들어지고, 세워지고, 옮겨지는 것입니다. 허수아비는 주인에 의해 존재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허수아비 목회론은 이 목사에게 소신있는 목회를 할 수 있는 바탕이 됐다. 그래서 그의 설교에는 자주 회초리가 들려져 있다. 또한 교회 행사시 전통이었던 답례품이나 선물, 축하금을 주고받는 것을 일체 없애기도 했다.

"신진목회자들은 앞으로 목회하기가 더 어려울 것입니다. 세상이 워낙 빠르고 복잡다단하게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방법론과 인위적인 것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철저히 해 영력을 강화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그는 또 한번의 쓴소리를 했다. "목회자는 교인을 내편이 아니라 하나님 편으로 만들도록 목회해야 합니다."라고.

이윤근 목사에게서 총회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10여년의 짧은 총회정치 이력이지만, 이슈마다 그의 거침없는 말과 글은 많은 사람에게 주목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에게 총회에 바라는 말을 물었다. 이 질문에 이 목사는 기다렸다는 듯 거침없는(?) 쓴소리를 했다.

"예수님을 팔아 내 일, 내 이익을 쫓는 행태는 제발 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헌금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합니다. 헌금은 성도들이 전투장같은 삶의 현장에서 싸운 피와 땀과 눈물입니다. 주의 일을 한다는 허울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헌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총회와 교회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이윤근 목사는 쓴소리꾼이 맞다. 그래도 그가 밉지 않은 건, 그의 말에 거부감이 들지 않는 건, 감정에 치우친 고함이 아니라 바르게 하고자 하는 안타까움과 애착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거부감없는 그의 쓴소리를 이제 현장에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김병국 기자 bkkim@kidok.com

사진설명>13년간 목회했던 의성교회를 뒤로 하고 이윤근 목사가 서 있다.

모든 직분은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

 
 
40년 목회경험 담아 펴낸 직분자 가이드…“좋은 직분자는 함께 동역할 줄 아는 사람”


이윤근 목사는 33세에 부산 해운대중일교회에서 첫 목회를 시작해 12년간 시무한 뒤 부산제일교회로 옮겨 다시 14년을 시무했다. 그 뒤 의성교회로 옮겨 올해로 13년째 시무하고 있으며, 다가오는 5월에 자신의 목회인생을 마무리한다.


어느 한 교회에서 수십 년을 목회하거나 여러 교회를 옮기며 목회할 경우 5년 남짓 짧은 기간 시무한 이력을 남기는 경우는 흔하다. 그러나 10년 이상을 목회한 교회가 세 곳이나 되는 목회자는 흔치 않다. 시무하는 교회마다 그는 깊이 뿌리를 내리며 목회한 셈이다. 이런 경륜을 집대성하여 내놓은 책이 바로 ‘직분자 지침서 시리즈’이다.


이미 오래 전에 <목사 장로, 이래도 되는가>란 책을 펴내 당회를 구성하는 목사와 장로의 바른 동역관계에 대해 이야기하였고, 직분자들의 남모르는 아픔을 통해 서로 이해하며 교회의 화합을 일궈가도록 돕기 위해 <누가 목사(장로·사모)의 고통을 아는가> 시리즈를 펴내기도 했다.
직분자 지침서 시리즈는 지금까지 <좋은 집사> <좋은 장로> <좋은 권사> <좋은 교사> 등 모두 네 권이 나왔다.


이 목사가 바라는 각 직분의 ‘좋은’ 자질은 ‘동역하는 인품’이다. 목회자를 중심으로 서로가 동역하여 교회라는 큰 수레를 앞으로 전진시켜가는 사람들, 그들이 좋은 직분자들이다.
“목사와 장로의 관계는 마치 한 집안의 부부 같아야 해요. 헤어져서도 안 되고, 사이가 나빠져서도 안 되는 관계이이지요. 서로 교회를 위해 존재한다는 정체성을 뚜렷이 공유한다면 어떤 갈등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는 목회자로서 때로는 ‘허수아비’처럼 처신했다. 즉 만든 자의 의지에 따라 어디에나 서 있으면 되는 허수아비처럼 하나님께서 가라 하시는 곳으로 가서 목회했다. 다행스럽게도 직분자들과의 깊은 유대를 형성하여 떠나올 때는 헤어지기 아쉬운 관계가 되었다. 그렇게 잘 다져진 직분자-목회자 관계를 통해 교회는 평화롭게 성장하였다.


은퇴를 앞둔 이 목사는 교회 시무와 함께 저술활동, 제직세미나 인도 등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은퇴 후에는 저술활동에 더욱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윤근 목사가 말하는 좋은 직분자의 모습


집사는 성도들 간에 풀의 역할을 하여 주님과 가까이 붙게 해야 하고 목회자와 가까이 붙게 해야 하며 교회와 가까이 붙게 만들고 성도들끼리 가까이 붙게 만들어야 할 의무는 있지만 가위처럼 친한 벗을 싹둑 잘라내는 일을 해서는 아니 된다”(<좋은 집사>에서).


“성도들은 아무리 사람을 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교회 나오라고 말을 해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사람의 언행이 먼저 보이고, 보이니 화가 나고, 화가 나니 교회가 싫어지고, 교회가 싫어지니 출입하기가 싫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장로는 모든 면에서 본이 되도록 언행을 조심하여 본이 되는 생활을 해야 한다”(<좋은 장로>에서).


권사가 성도의 가정에 심방 가서 해서는 아니 될 말을 하고 실수를 했을 때는 말하기 이전과 같이 수습하기는 매우 어렵다. 반드시 후유증이 남아 교회에 큰 상처가 되어 오랫동안 아픔을 격어야 할 것이다”(<좋은 권사>에서).


교사들이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은 어린이니까 아무렇게나 가르쳐도 된다는 생각은 절대 금물이고 어린아이에게 음식을 가려서 해 되지 않도록 먹이는 어머니 심정으로 잘 가르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좋은 교사>에서).


<좋은 집사> <좋은 장로> <좋은 권사> <좋은 교사>(기독신문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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