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기독교와 정통신학

형람서원 2024. 6. 11.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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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정통신학

고경태 박사(형람서원)

우리는 어휘를 사용할 때 개념화를 진행해야 한다. 17세기 존 오웬도 <성경신학>을 시작할 때에 어휘의 개념화에 대해서 제시했다. 중세에서 근세로 전환되면서 어휘 개념에 대한 혼돈이 발생했다. 근세는 보편론, 실재론(實在論, realism)이 아닌 유명론(唯名論 또는 명목론(名目論), nominalism)으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참고로 창세기 1장에 근거하면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시고, 창조물에 대한 이름은 아담이 지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어휘는 빛, 낮, 밤, 물, 하늘, 땅, 바다, 남자와 여자 등이다(창 1장).

1, 기독교에서 교회로

기독교(基督敎)는 무엇인가?(What is Christianity?, 참고. 고경태, <기독교란 무엇인가?>, 우리시대, 2022). 메이천 박사(J. Gresham Machen, 1881-1937)는 <기독교와 자유주의: Christianity and Liberalism(1923년)>, <바울종교의 기원: The Origin of Paul's Religion(1921)> 등을 저술하면서 기독교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세웠다. 메이천 박사는 스코틀랜드의 자유교회의 신학에 근거하고 있음을 피력했다. 메이천은 1900년대 중반에 자유주의 신학의 정점에서 자유주의를 효과적으로 변호한 유력한 연구자이다. 그 중 하나는 기독교에 대한 개념을 명료하게 세운 것이다. 계몽철학과 자유주의에서 기독교에 대한 개념을 새롭게 개념화한 것에 대한 변호이다. 포이어바흐(Ludwig Feuerbach, 1804-1872)는 기독교를 사랑으로 정의했다(<기독교의 본질>, 1841년). 메이천은 기독교가 어떤 효능에 관한 부분이 아니라 복음에 의해 세워지는 교회임을 밝혔다. 메이천은 기독교는 역사적 성격이 있으며, 기독교를 말하려는 사람은 그 자신이 그리스도인이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것은 메이천은 자유주의를 기독교가 아닌 것으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계몽철학, 자유주의 시대에 새롭게 형성된 가치가 아니라, 1세기부터 변하지 않고 유지되는 진리, 복음이다. 그래서 역사적 정통 가르침을 떠나 새롭게 형성시켜 기독교로 편재시키려는 행위에 대해서 명확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다(참고 갈라디아서 1장). 메이천은 기독교의 출발은 1세기 예루살렘,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성령을 보내신 주 예수로 말미암아 형성된 것으로 제시했다(행 2장). 메이천은 기독교 운동을 교리가 아니라 생활로 주장하며 교리의 변경을 주장하는 것을 거부했다. 오히려 반대로 기독교 운동은 종교적 경험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내세에 대한 확실한 지향성을 제언했다. 메이천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성경대로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내고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믿고 전하는 생활로 제시했다(참고 고전 15장).

그런데 우리는 기독교에 대한 개념 정의를 피하려고 한다. 그것은 사도행전에서 세워진 교회는 기독교가 아니라 교회, 집에서(오이코스) 모인 교회였기 때문이다. 교회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은 로마 제국, 유대교에 의해서 박해를 받았고, 다양한 동양 종교의(이집트 종교, 페르시아 종교 등) 적극적인 포교활동과 함께 경쟁해야 했다. 메이천 박사는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배타적 내용을 가진 복음과 포용적 교리를 가진 다양한 이방 종교가 경쟁했다고 제언했다. 그리고 유대교는 매우 적극적으로 박해했고,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는 헬라어 성경(LXX)에서 히브리어 성경(MT)로 변경하면서 복음 확장을 거부했고 교회를 박해했다. 로마의 황제는 황제숭배를 거부하는 교회를 철저하게 박해했다. 그 기간은 313년까지 유지되었다. 300년 동안 로마 제국에 기독교는 없었다. 300년 동안 로마 제국에는 박해받는 교회, 그리스도인이 있었다. 313년 교회는 제국에서 용인을 받았고, 황제의 어머니 헬레나는 중동 지역에 기념 교회를 건축하는 일을 수행했다. 그리고 380년 제국에서 교회의 종교를 로마의 국교로 변경했다. 그리고 교회의 종교는 사회의 체계로 정착하게 되었다. 교회의 종교가 사회화된 것을 기독교라고 규정하려고 한다. 현대 사회가 되면서 유럽 사회는 탈기독교 사회가 정착되었다. 이스라엘 땅에는 여전히 유대교가 정착하고 있고, 중동 지역은 이슬람에 정착하고 있다. 이제 세계에서 사회 체계화된 교회의 종교의 모습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기독교라는 낭만적인 명칭을 사용하지 말자. 이제 사도행전처럼 교회 시대가 되어야 한다. 사도행전처럼 복음을 전하며, 떡을 떼기를 기뻐하며, 모이기를 힘쓰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독교란 어휘가 아닌 교회(敎會, 영어: Christian Church)라는 어휘에 착념하도록 할 것을 제언한다.

교회는 에클레시아(ἐκκλησία)의 번역인데, 영어에서는 church를 사용한다. "교회"를 의미하는 ἐκκλησία(ἐκ(밖으로)'와 κληo(부르다)의 '합성어)는 스페인어 iglesia(f), 이탈리아어 chiesa(f), 프랑스어 église(f), 라틴어 명사 ecclesia(f) 어휘들이다. 그런데 게르만어의 kirikǭ(f)는 "하나님의 집"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kuriakón(n, κυριακόν)에서 빌려왔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일반적 견해이다. 즉 게르만어에서 교회의 의미는 "주께서 다스리다"는 의미이다. 즉 '교회'라는 어휘의 개념에서는 두 개념이 있다.

2. 정통신학이란 무엇인가?

우리말 ‘정통(正統)’은 ‘바른 계통’이란 의미이다. Orthodoxy은 'righteous/correct opinion'(바른 견해)이다. merriam-webster 사전에서 Orthodoxy는 the quality or state of being orthodox인데, orthodox는 conforming to established doctrine especially in religion이다. 그러나 정통은 바른 가르침이라는 의미보다, 그릇된 주장을 배격하여 이단으로 정죄하면서 형성된 가치이다. 그래서 교회는 정통 신앙을 고백하면서 정교회(Orthodoxy)의 교회임을 공표한다. WCC 회의에서는 사도신조가 아닌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조를 고백한다고 한다.

정통(Orthodoxy)는 교회(혹은 종교)를 세우는 교리의 내용이나 선언으로 볼 수 있다. 정통이 아니면 교회는 무너진다. 혹은 정통이 아니면 종교는 무너진다. 종교가 서고 넘어짐을 결정하는 것이 있는가? 기독교는 교회가 서고 넘어짐의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dentis ecclesiae)을 결정하였다. 다른 종교에 정통 교리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런데 기독교에 “정통 교리가 있다”는 주장과 “수정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는 정통 교리는 수정될 수 없다는 견해이다. 이것은 진리 불변설(진리상응설)에 근거한 세계관이기도 한데, 하나님의 불변성(하나님의 의지는 변하지 않는다)에 근거한 판단이다. 수정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진리가변설(진리정합설)인데 하나님의 주권(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에 강조한 개념이다.

그런데 교회 신앙의 정통주의에 대해서 명확한 규범이 없다. 기본적으로 7대 공의회를 정통으로 여기지만 그렇지 않은 규범이 존재한다. 그래서 교회는 정통의 범위에 대해서 어떻게 규정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주장하는 사람의 기독교 인식과 진리에 대한 개념을 파악할 수 있다.

우리는 정통신학 범주를 네 부류로 제언한다.

313년 밀라노 칙령. 교회 관용령

1차 325년 니케야 공의회

2차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3차 431년 에베소 공의회

4차 451년 칼케돈 공의회

5차 553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6차 680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7차 787년 니케야 공의회

보편교회의 공의회는 7회 개최되었다. 공의회는 유일한 교회(보편교회), 로마 황제가 개최한 회의이다. 325년 회의를 개최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세례를 받지 않는 사람이어서, 공의회의 성격을 의심하는 사람도 있는데 좋은 이해가 아니다. 황제는 교회에서 발생한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서 회의를 개최했고, 318명의 교부들, 박해를 이겨낸 교부들이 참석한 최초의 공의회이다. 황제가 소집한 공의회에 참석한 교부들의 믿음의 수준을 의심할 수 있는 자격은 그 후대에 없다.

우리는 공의회 7회에서 정통에 대한 규범을 정리했다.

정통 1형식. 325년, 381년

정통 2형식. 325년, 381년, 431년, 451년

정통 3형식, 7개 공의회

정통 4형식, 325, 381, 431, 451를 바른 결정으로 확정하지만, 뒤의 삼회 공의회는 adiapora로

"정통 2형식"은 칼빈파이고, "정통 4형식"은 루터파로 분류한다. "정통 3형식"은 로마 카톨릭과 정교회이니다. "정통1형식"은 단성론자(아르메니아 정교회, 콥틱정교회, 시리아 정교회 등)와 양성론자(dyophsysite)를 정통으로 인정할 수 있는 집단이다. *(IHS: Iesus (Jesus) Hominum (of humankind) Salvator (Savior)). * 2011년 6.23, 로마 카톨릭 교회는 시리아 정교회를 자매교회로 인정하고 영성체를 허용했다. 2013년 5. 10에는 콥틱 교회와 형제애를 증진하기로 했다.

교회는 한 교회, the Holy Catholic Church(카톨릭 교회, 보편 교회)이다. Unam sanctam(우나 상탐, One Holy Church)에 두 속성, cathólicam et apostólicam(카톨릭, 사도성)의 교회(Ecclésiam)이다(Εἰς μίαν, ἁγίαν, καθολικὴν καὶ ἀποστολικὴν Ἐκκλησίαν,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 이 문장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결정된 문장이다. 정통이 왜 생겨났는가? 그것은 이단 때문이다. 그래서 이단과 정통(heresy and Orthodoxy)이다. 정통신학이 있다는 것은 교회에 있는 교회를 무너뜨리려는 이단을 효과적으로 배격했다는 증거이다. 이단 가르침은 교회를 무너뜨리는 것이고, 정통 고백은 교회를 세운다.

325, 381, 431, 451, 553, 680, 787이라는 숫자가 있다. 에큐메니컬(Ecumenical) 7대 공의회가 개최된 년동이다. 에큐메니칼은 황제와 교회가 하나가 된 역사적 사건이다. 지금 우리에게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Ecumenical Movement, Ecumenism)은 한 교회 운동이 아니라-교회 일치 운동 (教會一致運動)이 아님-, 교회와 세속을 하나로 묶는 운동으로 볼 수 있다. 에큐메니컬 7대 공의회는 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 에베소 공의회(431년), 칼케돈 공의회(451년), 2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5차)(553년), 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6차)(680년), 2차 니케아 공의회(7차)(787년)이다. 교부 신학의 정점은 공의회 시대 종료라고 볼 수 있고, 476년 서로마 제국의 멸망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정통신학을 말하지만 범위에 같지 않음을 밝히려 한다.

참고로 우리는 중세 시대를 500년 경으로 생각한다. 그런데 당시 세계 주도권은 로마가 아닌 비잔티움의 콘스탄티노플이었다는 것이 중요하다. 콘스탄티노플은 1453년 멸망하기까지 기독교 중심지였다. 콘스탄티노플의 멸망은 로마 카톨릭주의 쇄퇴와 병행된다. 로마 카톨릭주의도 1517년 종교개혁으로 상당한 세력을 상실되었다. 정교회는 이슬람 세력에 의해서 침체되었고, 로마카톨릭교회는 개혁된 교회에 의해서 세력이 약화되었다. 교회의 세력은 세력의 위세에 있지 않고 오직 주의 말씀에 대한 충실함에 있다. 아무리 강력한 철옹성으로 세력을 보호해도 결국 무너지고, 아무리 멋진 건물과 예전으로 유지해도 말씀의 위력에는 견디지 못한다. 교회의 서고 넘어지는 바른 교리의 선포에 있다.

1054년에 교회는 두 진영으로 분리되어(Great Schism) 서쪽 교회는 Catholic Church로, 동쪽 교회는 Orthodoxy Church로 분리되어 상호 정죄까지 선언했다. 1999년 화해 무드를 조성했고, 2001년에 교황 바오로 2세는 로마 교회의 과오를 사죄하고 화합을 촉구했고, 2016년에 화해식을 체결했다. 그러나 두 교회는 아직까지 각각 독립된 단체로 존재하고 있다. 로마 카톨릭과 루터파, 성공회, 감리교 등이 칭의교리 화해를 채택했지만 교파 병합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교파 병합없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전개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한 교회는 교파의 장벽도 없어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희생하고 양보하고 겸손한 교회의 모습은 교회사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은 것 같다.

정통은 3 부류로 나눈다. 즉 "정통신학"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3 부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첫째 정통주의, 325년과 381년을 정통으로 세우는 부류이다.

둘째 정통주의, 325년, 381년, 431년, 451년을 세우는 부류이다.

셋째 정통주의, 7개 공의회를 모두 정통 가르침으로 인정하는 부류이다.

첫째 부류는 삼위일체 교리로만 모든 교회를 정통 교회로 인정하겠다는 성향이다. 이러한 성향을 보이는 지역은 중동 지역에 나타난다. 중동 지역에 있는 단성론자와 양성론자들은 431년, 451년 공의회에서 정죄되었다. 첫째 정통주의는 삼위일체로만 정통 교회를 이루려는 집단이다.

둘째 정통주의는 삼위일체(325, 381)와 그리스도 양성교리(431, 451)을 정통 신학으로 세우는 부류이다. 그리스도의 양성 교리는 한 위격에 두 본성 교리, 참 하나님과 참 사람의 교리이다. 431년에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는 양성론자(두 위격에 두 본성)이다. 451년 칼게돈 공의회에서 정죄된 단성론자(한 위격에 한 본성)이다.

셋째 정통주의는 7개 공의회 결정을 모두 인정하는 부류이다. 7개 공의회의 결정에는 화상 숭배 결정이 있다. 2차 니케야(7차) 공의회(787년)에서 성상 파괴 운동(Iconoclasm)과 성상숭배자들(icondules)의 격돌에서 성상숭배자들이 이겼다. 1054년에 서방과 동방 교회로 나뉘었지만, 두 교회는 7개 공의회와 연속을 주장한다. 서방과 동방 교회는 교회 전통을 강조하면서 계시가 지금도 교회에 의해서 계속되는 계시계속주의 개념이 있게 된다. 서방은 계시계속주의(성경과 교회의 권위가 동등함)와 동방은 신일합일 사상으로 형성되었다.

둘째 정통주의에 있는 부류는 서방 교회 진영에서 16세기에 개혁한 교회이다. 개혁된 교회는 계시 충족성을 견지하는 부류로, 성경 계시에 근거해서 신학하는 것을 추구한다. 개혁된 교회 진영에서 정통주의 신학을 철저하게 부인하는 부류와 정통주의 신학을 새롭게 구성한 신정통주의부류로 다시 나뉜다.

세 부류의 정통신학은 1세기 예루살렘 교회의 신학(행 15장)을 계승한다. 정통신학의 기본 문장은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작성한 문서이다(Credo 혹은 Symbolum). 우리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신경을 Nicene-Constantinople Creed(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이라는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니케야 신경(325년)과 콘스탄티노플 신경(381년)의 내용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두문서 결정으로 받아야 한다. 또 사도신경(혹은 사도신조)는 정통 신학 부류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사도신경의 내용과 콘스탄티노플 신경의 내용이 많이 일치한다. 그런데 사도신경은 공교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준한 문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통 신학은 공교회가 공식적으로 결의(채택)한 신학이다. 그럼에도 사도신경에 가치를 정통 신학과 동등한 가치로 두는 것은 정통 신학이 형성되기 전부터 교회에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된 교회는 4개의 공의회, 325, 381, 431, 451의 공의회를 정통 교리로 유지한다. 그래서 교리는 삼위일체(325, 381) 교리와 그리스도 양성교리(431,451)이다. 그리고 루터가 이신칭의를 교리로 주장함으로 이신칭의까지 교리로 삼는 것이 개혁신학이다. 그런데 이신칭의 교리(믿음으로 구원얻음)는 루터가 창안하거나 발견한 것이 아니고, 1차 예루살렘 공의회(AD 50년)에 결정된 것을 재천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필자는 공교회 회의에서 "삼위일체를 믿는다"고 결정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공교회 회의, 325년과 381년 공의회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실체(homoousion)"라고 고백했다. 차이점은 교리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유사)하나님(homoiousion)이 아닌 참 하나님(homoousion)"으로 고백하는 것을 목표한 것이라는 것이다.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믿는 고백이다. 그런데 431년과 451년에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이시다(테오도코스)"를 정통으로 결정했다. 이 결정이 "마리아 교리"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 그것을 마리아 교리라고 범주화시키면 431년, 451년 교리 결정을 의심하게 되어 그리스도 이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게 된다. 그리스도의 양성, 한 인격에 두 본성 교리(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가 "마리아 교리" 속에 포함되게 되어 무력하게 된다.

공의회 결정 과정에서 아리우스주의는 형식적으로 배격되어 형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는 유니테리언으로 변형하여 활동되고 있다. 그러나 431년과 451년에서는 양성론과 단성론의 형식이 교파를 이루고 있다. 양성론인 네스토리우스 교회가 시리아 동쪽으로 매우 소수이지만 존재하고 있다. 단성론은 이집트 등으로 상당한 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451년 칼케돈 이단이다. 그러나 381년 공의회 수준에서는 정통이다.

정통 교리는 무시하거나, 정통 교리는 수정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기독교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한다. 다른 복음은 복음이 아니듯이, 정통 신학을 수정한 다른 정통은 기독교가 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는 정통신학을 수종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참고로 정통파 개혁주의라는 범주가 있는데, 그 범주는 알미니안을 배격하는 정통파 진영이다. 즉 정통은 이단에 의해서 피동적으로 형성된 진리 체계이다. 복음과 정통은 바른 가르침(sound doctrine)에서 동의어이지만 성격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다. 복음을 선포하는 것은 곧 정통 신앙을 선포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통 신앙에는 이단이 붙을 수 없다. 그래서 교리가 선포되면 이단은 자연스럽게 척결될 수 있고, 교회는 바로 서게 된다. 이단, 삼단, 잡종이 모여 있도록 교회를 운영하는 것은 부당하다. 교회는 주의 백성이 모이는 거룩한 공동체인데, 그 방법은 유일하게 교리를 설교하는 것이다.

루터파와 칼빈파의 정통파 이해 중에서 큰 차이점은 루터는 성상숭배에 대해서 아디아포라 분야로 배치시킨 것이고, 칼빈은 성상에 대해서 금지한 것이다(이창익, "16세기 종교개혁과 성상파괴론", <종교학 연구> 18집, 1999년). 이것은 8-9세기의 성상숭배 논쟁이 공의회의 결정으로 끝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성상파괴주의와 성상옹호주의자의 격돌이 교회를 나누지 않았는데, 제국 전체에 골고루 퍼져 있었기 때문이다.

개혁된 교회는 7개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결정을 모두 수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성경으로 신학하기 때문이다. 교리와 성경의 관계에서 성상 숭배를 결정한 것은 성경 가르침을 벗어난 것으로 이해한 것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 양성 교리는 확정적 진리 체계로 수납한다. 교리를 떠나 교회를 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를 세우는 것은 교리이다. 교리는 정통신학이고, 복음이다. 그래서 교리는 삶이 될 수 없다. 교리는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고백이기 때문이다.

 

3. 16세기 종교개혁 시대: 신앙고백서와 요리 문답 시대

Creed: Credo/Credumus, 신조(信條)와 Symbol: Symbolum, 신경(信經), 두 어휘는 동의어인데, 신조는 “규범적인 믿음 문장”으로 볼 수 있고, 신경은 “교회의 상징, 혹은 깃발” 문장으로 볼 수 있다.

16세기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Creed를 사용하지 않고, Decree(Decretum)와 Canon을 사용했다. Decree는 교령(敎令)으로 번역한데, 어떤 공동체가 스스로 결정하여 발표하는 문서이다. Creed는 보편교회의 결정인데, 황제가 소집해서 결정한 문서이다. Canon은 규범으로 번역하며, Drcree에 근거해서 배격하는 세력에 대한 문장이다.

신앙고백서(confession)와 요리(혹은 교리)문답서(catechism), 신앙고백서는 공동체 이룸을 위한 공동 믿음 고백 문장이고, 요리문답서는 믿음을 고백하는 문장을 훈련하는 문답형식 교육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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