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형람성경] 고린도전서 4장: 그리스도의 일군을 존경하고 본 받으라

형람서원 2024. 5. 7.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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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람성경] 고린도전서 4장: 그리스도의 일군을 존경하고 본 받으라

그리스도의 일군(사역자)은 주께 부름을 받은 주의 사자이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소개할 때는 그리스도의 종(servant)라고 하면서도, 여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일군(officer)라고 소개한다. 그것은 교회의 합법적인 사역자로서 위치를 알리는 것이다. 교회는 주의 사역자를 기쁘게 영접하며 교회를 세워야 한다. 그런데 디모데의 목회에서 고린도교회의 혼란은 정리되지 않았다. 디모데 목사의 문제점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의 교만이었다. 바울은 자기가 직접 가지 못하니 디모데의 목양으로 질서가 유지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고린도 교회의 혼란한 문제는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니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직접 가서 해결해야 되는가?라는 고린도 교회의 수준을 다시 질책했다. 교회는 사람의 지도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는 하나님의 법이 아닌 고린도교회의 설립자의 강력한 지도력에 통제되는 수준에 불과했다.

[1-2절]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servants of Christ, ὑπηρέτας, officer, minister]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stewards of the mysteries of God, 청지기, 관리인]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청지기, 관리인]들에게 구할[필요한] 것은 충성이니라.

하나님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成肉身)과 십자가 속죄 제사, 부활 승천 보좌에 앉으심.. 재림, 영원한 통치와 영광이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관리, 사역자)들이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들이었다. 하나님의 비밀(μυστήριον)은 sceret가 아니라 mystery이다. sceret는 감춰져서 보이지 않는 것이고, mystery는 보이지만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사역자들은 밝히 보이는 주의 계시를 맡은 자로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그들은 그 복음을 충성되이 해설하고 전파했고 신약성경들에 기록했다.

신약교회는 이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또 오늘날도 하나님의 복음을 맡은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다. 충성은 하나님과 사람들 앞에서 믿을 만한 상태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충성(πιστὸς, faithful, trustworthy-신뢰할 수 있는)은 성령의 열매들 중 하나이다(갈 5:22). 오늘날 교회의 모든 직분자들에게 필요한 것도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것이다.

* πιστὸς(4103, faithful) , 피스티스(4102, 명사, faith, faithfulness); 동사, πιστεύω(4100); 4101 πιστικός(pure) 막 14:3, 요 12:3

[3-4절] 너희에게나 다른 사람에게나 판단받는 것이 내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 나도 나를 판단치 아니하노니 내가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나 그러나 이를 인하여 의롭다 함을 얻지 못하노라. 다만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바울은 사람의 판단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우리가 사람의 판단에 너무 마음을 쓰면 주의 일을 힘있게 할 수 없다. 바울은 심지어 자기 자신도 자신을 판단하지 않았고 스스로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였다. 성도는 범사에 양심적으로 살아서 자책할 것이 없어야 한다. 바울은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겼다. 사탄의 큰 전략의 하나는 하나님의 일꾼들의 힘을 빼어 하나님의 일을 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낙망은 큰 시험이다. 우리는 하나님만 바라보며 충성해야 한다.

[5절]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그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드러난 이단 사상이나 죄는 판단하고 지적하고 책망하고 그것으로부터 떠나야 한다.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는 말씀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점들, 특히 복음 사역자들의 진실성과 충성의 정도 같은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것들은 하나님만 아신다. 그러므로 그가 오셔서 모든 것을 심판하실 때까지 우리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는 뜻이다.

장차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완전하고 철저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마음의 뜻을 나타내실 것이다. 그때 주의 선하고 충성된 종들은 위로와 칭찬을 받을 것이며, 악하고 불충성된 종들은 책망과 벌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의 재림 때까지 다른 이들의 드러나지 않는 점들을 판단하거나 비난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특히 복음 사역자들의 충성의 여부와 충성의 정도를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려는 잘못을 범해서는 안 된다. 분명히 드러난 이단 사상과 오류는 지적되어야 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주님께 맡겨두면 된다. 주께서 다 아시고 판단하시고 공의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6절]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가지고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한 말씀 밖에 넘어가지 말라[말씀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라](전통사본)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먹지 말게 하려 함이라.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종들에 불과하다. 심는 이와 물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다. 물론 성도들이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을 지나치게 생각해 자랑해서도 안 된다. 하나님의 종들도 자신을 높이 평가하지 말고 자신의 무익함을 항상 인정하는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자들을 높이어 파당을 만들지 말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하고 교회의 일치와 단합을 지켜야 한다. 우리는 교만한 마음으로 남을 대적하는 자리에 떨어져서는 안 된다. 교만은 사람의 타고난 본성의 큰 결함이다. 그것은 마귀의 죄이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크게 생각하며 자기의 위치를 벗어난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은 항상 자신의 부족을 인식하고 자기 위치를 지키며 자기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한다. 참된 성도의 모습은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충성하는 것이다.

[7절] 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누가 성도를 세상 사람들 중에서 구별하였는가? 또 누가 직분자들을 성도들 가운데서 구별하였는가? 우리를 구별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선택하여 부르셨고 또 우리 가운데서 어떤 이들에게 교회의 직분까지 주셨다. 우리의 구원과 우리의 직분은 우리 스스로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의 뜻 가운데서 은혜로 주신 것들이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들이다. 우리의 육신의 생명도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세상을 떠나갈 수밖에 없다. 건강도 우리의 것 같지만 하루아침에 그것이 우리를 떠나갈 수 있다. 부모님도, 남편도, 아내도, 자녀도 다 우리의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들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고 섬기게 된 것,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 죄사함 받고 천국과 영생을 기업으로 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 성령을 받은 것 등이 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선물들이다. 생각해보면, 이 세상의 모든 영적인 것들과 육신적인 것들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왔다. 본래부터 우리의 소유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것이다. 사람은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것인 것처럼 자랑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 자랑해야 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하고 영광을 돌려야 한다. 또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서만 사용해야 한다.

[8절]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 왕노릇하였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노릇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의 왕노릇하기를 원하노라.

고린도 교인들은 물질적 부요함과 풍족함, 또 성도로서의 자유와 특권을 누리고 있었다. 물론 그 자체는 죄가 아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그들의 마음이 높아져 서로 분쟁하고 파당을 만든다면 그들의 그 부요와 풍족, 그 자유와 특권은 복이 되지 못한다. 차라리 사람을 겸손케 하는 가난과 속박이 그들에게 복이 될 것이다.

[9절] 내가 생각건대 하나님이[께서]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사도 바울의 형편은 고린도 교인들의 형편과 정반대이었다.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직접 선택하시고 복음의 말씀을 맡기시며 기적 행할 능력을 주신 자이며 교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존귀한 직분이었다. 사도들은 교회의 기초이었다(엡 2:20).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존귀한 직분자 사도 바울을 죽이기로 작정한 자같이 미말에 두셨다. 가장 존귀한 자를 가장 미천한 위치에 두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세상의 구경거리, 천사들과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셨다.

[10-13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연고로 미련하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되 우리는 비천하여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도다.

사도 바울 일행의 비천함은 전적으로 그리스도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 때문에 미련한 자가 되고 약한 자가 되고 비천한 자가 되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사도가 전한 그리스도 때문에 지혜를 얻고 힘을 얻고 존귀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참혹한 죽음이 인류의 구원이 되었듯이, 주의 종들이 비천함을 당하며 이룬 사역들이 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복에 이르게 한 것이다.

바울은 그의 일행이 지금까지 당한 고난을 증거했다. 그들은 먹을 것과 마실 것과 입을 것이 없었고 매맞았고 거처할 곳이 없었고 손으로 일했고 비방을 당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을 욕하고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 축복하였고 참았고 권면했다. 바울은 자신들이 한 마디로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같이’ 되었다고 표현했다.

하나님께서 사도들을 비천함에 두신 것은 여러 가지 목적이 있을 것이다. 첫째로, 그것은 그들로 겸손케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둘째로, 그것은 그들로 하나님과 내세에 소망을 견고히 두게 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셋째로, 그것은 복음 사역자들의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길임을 증명하기 위한 것일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의 헛되고 무가치함과 오는 세상의 참된 가치를 알고 하나님 중심, 진리 중심으로 살아야 하며, 하나님과 그의 말씀과 내세의 소망 안에서 참된 평안과 기쁨을 누려야 한다.

[14-16절]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be imitators of me).

사도 바울이 자신의 비천한 형편을 말하는 것은 고린도 교인들을 부끄럽게 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을 사랑하는 자녀들같이 권면하기 위한 것이었다. 고린도교회는 사도 바울의 전도를 통하여 설립되었다. 그는 복음으로 그들을 낳았다. 아버지는 선생들보다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자녀들을 가르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들에게 ‘나를 본받으라’고 권면했다. 그것은 그의 낮아짐, 그의 비천함, 그의 겸손을 본받으라는 것이다. 고린도교회의 첫째 문제점은 높은 마음에서 생긴 분쟁과 분열이었다. 그들은 이제 높은 마음을 버리고 자신들을 낮추는 것이 필요했다. 그들이 바울이 당한 비천함을 듣는다면 교만을 버리고 겸손해질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담대하게 고린도 교우들에게 자기를 본 받으라고 권면했다(be imitators of me). 바울에게 본 받을 것은 오직 주를 위한 충성과 인내일 것이다.

[17-21절] 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니 저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그러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의 말을 알아 볼 것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 보겠노니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바울은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로 여기는 디모데를 고린도 교회에 보냈다(17절). 디모데는 바울에게 보냄을 받아 여러 교회에 가서 복음 사역을 했다. 그러나 교회에서 바울처럼 여기지 않았고, 디모데는 교회 문제를 적절하게 해결하지 못했다. 바울은 그러한 사태에 대해서 교회가 스스로 교만해졌다고 질책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으시기에, 하나님의 교회도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않아야 한다. 그러나 연약하고 유순한 디모데의 지도를 교회들은 받지 못했다. 교회에 탁월한 리더십이 필요한 것은 교회의 세속성과 부패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교회는 순수한 복음과 순수한 인격으로 유지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러한 교회를 주의 몸된 교회와 성도로 여기며 목양했고, 인내하며 양육했다. 그 교회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돌보며 회복시키려고 노력했다.

하나님의 나라(ἡ βασιλεία τοῦ Θεοῦ)는 사람의 말에 있지 않고 영적 능력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 나라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일하신다. 주기도문에서 하늘에 이루신 것처럼 땅에서 이루어지기를 기도했다. 땅에 있지만 하늘의 법칙, 통치가 구현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 나라에는 이론에 있지 않고 또한 실재적 삶에 있다. 참된 교회에는 교인들의 바르고 선한 인격과 삶이 있고 또 그들의 거룩한 헌신과 사랑의 봉사가 있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교회는 복음 사역자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과 기독교 복음의 청지기들로 인식해야 한다. 물론, 복음 사역자들은 성경을 바르게 해석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딤후 2:15).

둘째로, 우리는 복음 사역자들과 교회 직분자들의 드러나지 않는 점들에 대해 주의 재림 때까지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로, 우리는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고 서로를 대적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들은 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교만과 자랑은 우리에게 합당하지 않다.

넷째로, 우리는 고난 중에 복음 사역을 하며 충성했던 사도 바울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그것은 주님 자신께서 가신 길이었고 또 그가 친히 교훈하신 바이었다. 주 예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다(마 16:24).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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