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형람서원] 고린도전서 3장: 영에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전을 이루라

형람서원 2024. 5. 6. 23:59
728x90
반응형

[형람서원] 고린도전서 3장: 영에 속한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성전을 이루라

[1절]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spiritual people)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사르키코이 sarkikoiv, 육신적인 사람]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육신적인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 즉 영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어린 성도를 가리킨다. 그는 주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는 하지만 아직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육신의 죄성에 지배를 받는 자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육신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영적인 말씀으로 설득할 수 없는 아쉬움을 표현했다.

[2절]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딱딱한 음식]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갓난아기는 딱딱한 음식을 먹지 못한다. 이와 같이 영적으로 어린 성도들은 듣기 쉬운 교훈만 받고 어려운 교훈들을 받지 못한다(히 5: 12-14). 그러나 우리가 영적으로 자랄수록(엡 4:13-15; 벧전 2:1-2; 벧후 3:18)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모든 뜻을 연구하고 배우며 믿고 행하며 지식과 인격이 자라야 한다.

고린도교회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와 같은 상태라는 것은 먼저 그들도 성도인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2에서 고린도 교회의 구성원들을 성도라고 불렀다. 그럼에도 영적인 진리를 알아들을 수 없는 상태인 부적당한 상태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1년 6개월을 사역했다(행 18장). 바울이 양육한 브리스가와 아굴라는 에베소에서 온 성경박사 아볼로에게 미흡한 복음을 보완해 주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갔을 때에 에베소 교회에서는 세례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행 19장).

[3절]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you are still of the flesh).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과 분열]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 for you are still of the flesh. For while there is jealousy and strife among you, are you not of the flesh and behaving only in a human way?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해 있는데, 왜냐하면 너희 가운데 질투와 다툼이 있기 때문이다.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않다고 하고 사람의 길을 행하지 않는다고 할 수 있겠는가?

"육신에 속한 자"는 불신자가 아니라 신자이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육신에 속한 자 곧 영적 어린아이라고 취급하는 까닭은 그들 가운데 시기와 분쟁과 분열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기, 분쟁, 분열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죄악들이다(갈 5:19-21). 성도는 그런 죄들을 다 버리고 씻음 받아야 한다. 성도는 육신에 속한 행동을 하지 않아야 하고, 사람의 길을 행하지 않아야 한다. 그 중요한 표지가 시기와 분쟁(질투와 다툼)이 없는 질서 유지이다. 고린도교회에 시기와 분쟁이 발생한 것은 당파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4절] 어떤 이는 말하되 나는 바울에게라 하고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육신에 속한 자들](전통본문)이 아니리요.

고린도교회의 분쟁은 지도자들에 대한 교인들의 잘못된 태도에서 나타났다. 바울은 1년 6개월 동안 고린도 교회를 개척했고 아볼로는 그 후에 성경말씀을 가르쳤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 안에 어떤 이들은 바울을 중심으로, 다른 이들은 아볼로를 중심으로 파당을 만들었다. 그것은 그들이 아직 육신에 속한 증거이었다. 영적으로 어린 자들은 사람에게 속하려는 경향이 있다. 거기에서 파당과 분열이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교회에서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바라보면 시험에 떨어지고 범죄하기 쉽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주님만 믿고 바라며 섬기고, 오직 성경말씀만 믿고 순종하고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으로 생활하고 교회에서 일치 단합해야 한다.

바울의 가르침과 아볼로의 가르침이 일치되지 않았기 때문에 파당이 발생한 것이다. 가르침이 일치되지 않았더라도 복음,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에 일치되었더라면 교회에 분쟁은 없었을 것이다. 교회의 유일한 정진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에서 벗어나면 교회는 분쟁이 발생한다.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님을 유사한 하나님(시작이 있는 하나님)으로 믿는 아리우스는 제국 사회를 흔들정도로 분쟁을 일으켰고, 죽을 때까지 자기주장을 철회하지 않았다.

[5-7절] 그런즉 아볼로는 무엇이며 바울은 무엇이뇨? 저희는 주께서 각각 주신 대로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한 사역자들이니라.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은[께서는]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나게 하시는 하나님뿐이니라.

바울과 아볼로는 복음의 일군들이었다. 일군이 중요하지만, 하나님과 복음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일꾼은 자신을 자랑하지 말고 그를 보내신 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만 자랑해야 한다.

바울은 복음 사역을 씨 심는 것과 물 주는 것에 비유했다. 씨를 심는 것은 복음을 전해 영혼을 구원하고 교회를 세우는 것을 가리켰고, 물을 주는 것은 구원 얻은 자들을 양육하는 것 곧 목회하는 것을 가리켰다. 씨를 심는 것은 전도하는 것이요, 물을 주는 것은 양육하는 것이다. 심는 일도 가꾸는 일도 다 중요하듯이, 복음 사역에서는 전도도 목회도 다 중요하다. 그러나 씨를 자라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다. 하나님께서 하지 않으시면 우리는 한 영혼도 구원할 수 없고 한 영혼도 성장시킬 수 없다. 개인의 구원과 성장이나, 교회의 설립과 성장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하다.

그러므로 씨를 심는 이나 물을 주는 것도 중요한 과정이고 필수적인 과정이다. 그러나 복음 사역에 있어서 복음의 일군은 자신이 대단히 가치가 있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오직 하나님께서 그를 사용하셔서 영혼들을 구원하시는 도구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교인들이 복음 사역자를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복음 사역자 자신은 자신의 무능하고 무익함을 인식해야 한다(눅 17:10). 복음 사역자는 자기의 무익함을 고백하며, 교회의 지체들은 복음 사역자의 헌신과 가치를 잘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 전하는 자와 듣는 자가 함께 한 마음과 한 믿음으로 주 하나님을 기쁘게 섬긴다.

[8-10절] 심는 이와 물주는 이가 일반이나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우기를 조심할지니라. (9절) For we are co-workers in God’s service; you are God’s field, God’s building.

복음 사역자들은 각각 자기의 일한 대로 상을 받을 것이다. 상은 구원과 다르다. 구원은 죄에서 건짐을 받는 것을 말하지만, 상은 선행과 봉사, 특히 복음 사역에 대해 약속된다. 구원에 차등이 있다고 말할 것은 아니나, 상에는 차등이 있다. 상은 ‘각각 자기의 일하는 대로’ 즉 자신의 선행과 봉사와 충성의 정도에 따라서 주어질 것이다. 상이 차등으로 부여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없다.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성도들과 교회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다(9절). 이 문장을 오해해서 모두가 하나님의 동역자로 이해하는 것은 좋지 않다. 사도 바울의 무리인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이고,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다. 바울은 복음 사역을 또한 건축(하나님의 집)에 비유한다. 집을 짓기 위해서는 먼저 기초를 닦아야 한다. 바울은 터를 닦은 자요 그의 뒤에 일하는 사역자들은 그 위에 건물을 세우는 자들이다. 그들은 조심스럽게 건축해야 한다. 목회는 집을 세우는 일이다. 그것은 구원 얻은 영혼들을 말씀으로 교훈하고 훈련시키는 것이다. 중생(重生)과 칭의(稱義)는 구원의 시작이요 성화(聖化)는 구원의 진행이다. 믿는 자는 지식과 인격에 있어서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형상, 곧 거룩하고 정직하고 선하고 진실한 모습을 이루어야 한다.

[11절]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foundation)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 우리말 번역에는 터(기초)가 예수 그리스도라고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되었다. 그러나 그 번역은 좋지 않다. 좀 더 문법적으로 번역하면, "누구도 기초를 세울 수 없는데, 그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기 때문이다"로 번역할 수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초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초를 놓으시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도록 번역하는 것이다.

교회의 터(foundation)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놓으셨다. 다른 터는 없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운 터가 아닌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주께서 베드로에게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 반석은 베드로가 조금 전에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고 고백한 그의 신앙고백이다. 교회의 터와 기둥은 사도의 가르침이다(딤전 3:14-16: 진리의 기둥과 터인 교회).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 교회의 기초(터)이다. 또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사역을 믿는 속죄신앙과 영생(히 11장)은 가르침의 핵심이다.

[12절]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두 종류의 건축 자재가 있다. 하나는 금과 은과 보석 같은 내구성(耐久性)이 있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나무와 풀과 짚 같은 내구성이 없는 것이다. 두 종류의 목회가 있다. 하나는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집을 짓는 목회요, 다른 하나는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집을 짓는 목회이다. 나무와 풀과 짚으로 짓는 것은 자재 값이 비싸지 않아서 비교적 쉽게, 크게, 또 빠르게 지을 수 있으나, 금과 은과 보석으로 짓는 것은 자재 값이 비싸고 기술도 많이 필요해 집을 짓기가 힘들고 크게 짓는 일은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나 금과 은과 보석으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참 목회요 그렇게 지어진 교회가 참 교회이다(김효성).

금과 은과 보석은 바른 교훈을 가리키며, 나무와 풀과 짚은 거짓된 교훈을 가리킨다. 참 교회는 바른 교훈을 통해서 세워진다. 세상적인 생각이 섞이지 않은 바르고 순수한 설교는 바른 교회 건립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혼합된 말을 전하는 자들도 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기보다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설교를 하였다. 그들은 회개를 외치기보다 평안을 선포하기를 좋아했다. 그러나 평안은 오지 않았다. 평안은 죄를 버릴 때에만 오기 때문이다.

[13절] 각각 공력(에르곤)[일]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력[일]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일한 바]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복음 사역자들의 사역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평가하실 날이 온다. 그것은 마지막 심판의 날이나 그 전의 대환난 날이다. 그때 그들의 사역이 겉보기는 굉장했으나 열매 없는 불충성된 사역이었는지, 참으로 영혼들을 구원하고 양육한 충성된 사역이었는지 판별될 것이다.

[14-15절]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일한 바]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누구든지 공력[일한 바]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잃어버리리니] 그러나 자기는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으리라.

복음 사역자들은 자신의 일한 바가 불 시험을 통과하면 상을 받을 것이다. 즉 그가 목회했던 교인들이 불같은 환난을 잘 통과하면 그는 목회를 잘한 자일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불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록 목회자 자신이 구원을 얻는다 할지라도 그는 부끄러움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 그의 목회 사역에 대한 상은 없을 것이다.

[16절]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나오스 데우, 단수명사, God’s temple)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God’s Spirit dwells in you?)

예수님 믿고 구원 얻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도 개인도 그러하고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도 그러하다. 우리를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한 것은 우리 속에 하나님의 성령께서 거하시기 때문이다(고전 6:19).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성령께서는 성도 개개인에게도 계시고 그들의 모임인 교회 가운데도 계신다. 이것은 성도 개인과 신약교회에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다.

[17절]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은 큰 복이지만, 그 사실은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지 않고 거룩하게 보존해야 하는 의무를 보인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성전은 교회를 지시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교회와 예배당을 잘 구분하지 못해서 성전 어휘를 잘 사용하지 못한다.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지만, 교회는 성전이 된다. 그 성전을 더럽히는 것은 심각하게 범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슬러 자기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모든 것이 죄이며 그것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다. 특히 교인들 간에 서로 미워하고 분쟁하는 것은 거룩한 교회를 더럽히는 일이다. 바울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는 하나님께서 멸하시리라고 경고했다.

[18-20절]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궤휼(국한문--‘궤계’)[간교함]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또 주께서 지혜 있는 자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아신다 하셨느니라.

사람의 사상들과 철학들은 실상 자신을 속이는 것이다. 그것들은 진리 되신 하나님을 알지 못한 채 진리를 논하는 어리석은 일이다. 이 세상의 가장 지혜로운 자의 지혜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미련한 것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지혜 있는 자들을 스스로 속게 하시며 그들의 생각을 헛것으로 여기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의 지혜가 참 지혜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자기 꾀에 빠지고 자기 모순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는 헛된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참 지혜와 지식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는 지혜와 지식이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교인들 가운데 자신을 똑똑하고 지혜 있다고 생각하는 자가 있다면 오히려 어리석은 자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의 지혜는 참 지혜가 아니고 참으로 지혜로우신 분은 창조자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21-23절] 그런즉 누구든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 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바울이나 아볼로나 게바나 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고린도 교회의 문제는 사람을 자랑하는 데 있었다. 지도자 중심의 파당과 분쟁이 그들의 문제이었다. 그것이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러므로 여기에 중요한 교훈은 사람을 자랑하지 말라는 것이다. 복음 사역자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들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위해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창조자와 섭리자와 구주이신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께만 감사해야 한다.

바울도 아볼로도 게바도 다 교회를 위한 일꾼들이요 교회의 공동적 소유물과 같다. 그들은 모든 교회의 공동적 봉사자들이다. 온 세상도 교회의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속에서 우리의 모든 것은 다 교회를 위해 존재하고 다 성도들을 위해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느 한 파당에 속하지 말고 교회 전체에 속해야 한다.

본장의 교훈을 정리해보자. 첫째로, 복음 사역자들은 바르게 일해야 한다. 전도는 씨를 뿌리는 것과 같고 목회는 물을 주는 것과 같고, 전도는 터를 닦는 것과 같고 목회는 그 위에 집을 세우는 것과 같다. 전도자이든지 목회자이든지 복음 사역자들은 바르게 일해야 한다. 전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복음만 전해야 한다. 구원을 위한 다른 길은 없다. 또 목회자는 하나님의 양들을 금, 은, 보석으로, 즉 하나님의 순수한 교훈을 전하고 성경의 순수한 교훈으로 가르쳐야 한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 자신과 교회를 더럽히지 말아야 한다. 구원 얻은 성도 개인 속에는 하나님의 영, 성령께서 영원히 거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가 범죄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된다. 이와 같이,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교회에 관련하여 죄를 지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가 된다. 특히 우리가 잘못된 이단사설을 용납하거나 파당을 만들고 분쟁하고 분열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큰 죄를 짓는 자가 될 것이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는 자를 멸하실 것이라고 경고한다.

셋째로, 우리는 사람을 자랑하지 말아야 한다. 복음 사역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이지만, 실상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의 구원과 성화 즉 영적 성장은 오직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자랑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만 높이고 자랑해야 한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단합해야 한다.

형람서원 고경태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