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성경] 이사야 2 장 여호와의 심판의 날을 사모하며 그의 이름을 높이라
1-4절, 산 위에 뛰어난 여호와의 집
[사 2:1-3절]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가 받은 바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라 말일(末日, the last days)에 여호와의 전의 산(the mountain of the LORD’s temple)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모든 작은 산 위에 뛰어나리니 만방이 그리로 모여들 것이라 많은 백성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the mountain of the LORD)에 오르며 야곱의 하나님의 전(the temple of the God of Jacob)에 이르자. 그가 그 도(道, his ways)로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라. 우리가 그 길로 행하리라(we may walk in his paths) 하리니 이는 율법이 시온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임이니라(The law will go out from Zion, the word of the LORD from Jerusalem)
이사야는 아모스의 아들이다(사 1:1). 이사야 선지자에게 여호와께서 주신 계시는 유다(猶大)와 예루살렘에 관한 말씀이다.
사 2:2-4절은 미가 4:1-3도 본문과 똑같은 내용이 나온다. 이사야와 미가는 같은 시대에 사역한 선지자이다. 여호와께서 두 선지자에게 같은 내용의 말씀을 주셨다. 여호와께서 주신 내용은 “말일(末日)” 즉 “세상의 마지막 날에” 되어질 일에 관한 것이다. “말일(the last days)”, “종말”이 복수형이다. 즉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시작된 여러 사안들이 종말론적 사건이 된다. 그것은 신약시대에 관한 것이다. 세례 요한의 사역부터 말세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사도 베드로는 그의 서신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말하였고(벧전 4:7), 사도 요한도 그의 서신에서 “이것이 마지막 때라”고 말했다(요일 2:18).
김효성 박사는 지구 역사를 6,000년으로 제시하면서, 그 기간을 매우 긴 시간으로 제시한 것은 재미있는 제시이다. 그 시간의 종말이 메시아의 오심으로 시작된다. 메시아께서 오신 이후에 인류 역사는 2,000년이 지나고 있다. 그 중 주후 500년부터 1500년까지 천년 동안은 서방교회가 매우 부패하고 변질된 기간이었다. 첫 조상 아담부터 반역과 부패 속에서도 하나님의 섭리는 끊어지지 않았고, 교회의 심각한 부패에도 진리는 그 교회 안에서 보존되었다. 말일에는 말일을 시작하신 이의 이름이 산 꼭대기에 뛰어날 것이다(2절).
‘여호와의 전의 산(the mountain of the house of the LORD)’은 시온산으로서 신약교회를 가리킨다(김효성). 전(殿) temple인데, 히브리어는 ‘베트’여서 ESV에서는 house, 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여호와의 집이 ‘모든 산꼭대기’와 ‘모든 작은 산’ 위에 서며 뛰어날 것은 이방 나라들과 이방 종교들에 세워질 것을 가리킨다(김효성).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모든 나라들과 이방 종교들 위에 뛰어날 것이다. 이 일은 역사상 충분히 증거되었다.
만방이 그리로 모여든다는 것은 세계복음화를 말한다. 모든 나라, 모든 민족에게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이 신약교회 안으로 모여들며 강물처럼 흘러 들어올 것이다. 이것이 세계복음화이다. 이것은 성경에 밝히 계시된 바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라”고 말씀하셨고(창 22:18), 시편에는,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67:3), “해 돋는 데서부터 해 지는 데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113:3), 또 “너희 모든 나라들아, 여호와를 찬양하며 너희 모든 백성들아, 저를 칭송할지어다”(117:1)라고 말했다.
주께서는 제자들에게 세계복음화의 사명을 엄숙히 명령하셨다. 예수께서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 28:19-20),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셨다. 세계복음화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대의 임무와 사명이다. 주의 이름은 세상에서 세워지고 높아지도록 행동해야 한다.
복음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주께서는 “그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해서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다”라고 하셨고(눅 24:47),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태(猶太)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다(행 1:8).
많은 사람들이 그 산 아래에서 모여서 말하기를, 우리가 여호와의 산, 야곱의 하나님의 집(벧엘)에 오르자고 말할 것이다. 그 이유는 거기에서 그 집의 주인께서 길(데레크)을 가르쳐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집의 주인께서 길을 함께 걸어주실 때에, 그 집에서 율법(The law, 토라)과 여호와의 말씀(the word of the LORD)이 나온다. 그 집의 이름은 시온이고 예루살렘이다.
[사 2:4절] 그가 열방(列邦) 사이에 판단(判斷)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判決)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그 창(槍)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지 아니하리라. ※ 창검(槍劍), 刀打成犁頭、把槍打成鐮刀, 보습(犁頭), 쟁기의 아래가 보습이고, 위부분이 볏이다. 낫(鐮刀)
여호와께서 마지막 날 세상 만국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이 있은 후에 세상에는 더 이상 전쟁이 없을 것이다. 칼로 쟁기를 만들고 창으로 낫을 만들 것이다. 나라와 나라 간의 전쟁이 없을 것이며 전쟁을 위한 연습이나 훈련도 없을 것이다. 평화로운 나라가 올 것이다. 천국은 의와 평안이 충만한 세계일 것이다. 호세아 선지자도, “그 날에는 . . . 이 땅에서 활과 칼을 꺾어 전쟁을 없이 하고 저희로 평안히 눕게 하리라”고 예언하였다(호 2:18). 재세례파 계열은 이러한 이상향이 현세에 이루어질 것으로 판단하고 진행했다. 재세례파들은 그러한 평화의 이상공동체를 이 땅위에 만들기 위해서 칼과 창을 높이들 때도 있었다. 재세례파의 맹점 중 하나는 목표를 위해서 수단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이다. 진리 훈련은 목표와 수단(과정) 모두가 선하고 정당해야 한다. 진리 훈련이 가장 드러나는 것은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이다. 스포츠맨십의 근간은 중세 기사도 정신이라고 한다.
구약시대에 바라보는 이상(vision)은 중첩(重疊, overlapping)해서 이중 혹은 다중으로 보이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5-11절, 하나님께서 버리심
[사 2:5-6절] 야곱 족속아,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빛에 행하자 주께서 주의 백성 야곱 족속을 버리셨음은 그들에게 동방 풍속이 가득하며 그들이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術客)이 되며 이방인으로 더불어 손을 잡아 언약(言約)하였음이라.
‘빛’은 지식과 진리와 기쁨을 상징한다. ‘여호와의 빛’은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 그리고 기쁨을 가리킬 것이다(김효성). 우리는 하나님의 지식과 진리 안에 행해야 하며, 그의 의를 준행함으로 기뻐하는 삶은 산다. 그것이 구원이며 영생이며, 사람의 참 행복이 거기에 있다(참고 요 17: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인 야곱 족속을 버리셨다(3절). 그들을 버리신 이유는 그들의 죄악, 동방풍속이 가득하며 이방인과 언약함 때문이었다(3절). 유다 땅에서 이루어진 동방 풍속(full of things from the east)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풍속으로, 강대국에 대한 열망으로 그들의 풍속이 가득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블레셋 사람같이 술객(fortune-tellers)이 되었다. 이스라엘과 유다는 동방과 블레셋 중간에 있기 때문에, 제사장 나라가 되던지, 열방보다 더 타락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유다는 동방의 풍속과 블레셋의 술객 그리고 그들과 언약하면서 이방보다 더 타락했다.
[사 2:7-9절] 그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그 땅에는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하며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공경하여 천한 자도 절하며 귀한 자도 굴복하오니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
타락의 결과 은금과 재화가 가득했다. 이스라엘 땅에는 은금이 가득하고 보화가 무한하며 마필이 가득하고 병거가 무수했다. 그들의 경제력은 컸고 군사력은 강했다. 그런데 그 땅에 우상도 가득했다. 그들은 하나님 대신 자신들이 만든 우상을 공경하며 절하며 굴복했다. 유다에서 우상숭배에서는 천한 자나 귀한 자에 차이가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다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종교개혁시기까지 교회지도자들은 위정자들에게 우상숭배를 배격해줄 것을 간청했다. 국가의 위정자들이 행하는 우상숭배는 사회를 급격하게 우상숭배로 오염시킨다. 성령이 오심으로 주의 영이 남종과 여종에게 내주하심으로 왕과 관련하지 않고 스스로 거룩을 지킬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지도자의 범죄는 심각한 오염을 낳는다. 세계 역사에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에 시대정신은 정교 분리로 체계화 되었다. 지금은 누구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거룩을 유지하는 주의 자녀가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주의 성산을 사모하며 주의 이름을 성산 높은 곳에 위치시킨다.
선지자 이사야는 패역한 유다와 예루살렘을 보면서 여호와께 “그들을 용서하지 마옵소서”라는 신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전쟁 영화에서 브로큰애로우(broken arrow)와 같은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유다가 돌이킬 수 없는 수준이 되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도 요한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고 말했다(요일 5:16). 이스라엘 백성은 용서받지 못할 심각한 죄악의 자리에 떨어지고 있었다. 주의 성령이 오신 뒤로 마지막, 회복될 수 없는 상황은 없다. 그리스도인이 선 그 자리에서(Sitz im Leben) 복음을 전하며 주를 증거함으로 완전하다. 자유주의는 삶의 정황에서 삶의 정황을 이해하려고 하였지만, 우리는 삶의 자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을 추구한다.
[사 2:10-11절] 너희는 바위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 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그 날에 사람의 교만한 눈이 낮아지며 사람들의 높은 마음이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선지자 이사야는 여호와께 징계의 무서움을 제시하는데, 놀라운 것은 그들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높임이 되는 여호와를 증거하고 있다(10-11절). 여호와의 심판으로 유다 백성들은 진토에 숨어야 하였다. 그들이 낮아지고 피한 상황에서 놀랍게도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신다.
간혹 교만하고 무지한 자들은 자기가 없으면 여호와께서 영광을 받지 못할 것으로 착각한 부류가 있다. 오직 여호와의 성전이 예루살렘에 있기 때문에 결코 여호와께서 떠나지 않을 것으로 확신했지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에서 그들을 추방시켜 버렸다. 주의 교회의 복된 자리를 차지한 무리들이 미사(Mass)에 전념하면서 자기 배만 불릴 때에, 주께서 그들에게서 거룩한 이름을 금지시키고, 살아계신 주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를 유지하셨다. 이 땅에서 주 예수의 이름이 홀로 높임을 받아야 한다(the LORD alone will be exalted in that day, 11절).
12-22절, 여호와의 날
[사 2:12-18절] 대저(大抵)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또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와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과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과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에 임하리니. 그 날에 자고한 자는 굴복되며 교만한 자는 낮아지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실 것이요 우상들은 온전히 없어질 것이며. ※ “대저/大抵”(대체로 보아서, 무릇, for)으로, 주기도문에서 ‘대개’라고 번역한 어휘와 동일하다. 역접(逆接, Adversative, 거꾸로 잇기)과 순접(順接, Additive, 차례로 잇기)이 있는데, 사 2:12에서 대저는 순접으로 이해할 수 있다.
유다의 반역과 부패로 이사야의 신원이 있었고(11절), 여호와께서 한 날에 그들을 꺾으실 것을 선언하셨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한 날이 모든 교만한 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자고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군의 여호와(the LORD of hosts)”는 하늘의 군대인 천군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시는 여호와, 전능자이심을 선언하시는 것이다. 천사들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피조물이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종자들이었다. 지금은 천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메시지가 전달되지 않고, 주의 사역자로만 전달되기 때문에 주의 사역자들을 주의 사자(messenger)라고 규정한다.
그 날은 모든 교만한 자들과 거만한 자들과 자고한 자들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할 것이다. 교만은 인간의 가장 큰 죄이며 가장 근본적인 죄악이다. 하나님 없는 세상 사람들의 특징은 교만이다. 그들은 사람을 만물의 척도로 본다. 그들의 삶에는 하나님이 기준이 아니고 사람이 기준이다.
교만은 하나님 대신 자신 혹은 사람을 높이는 것이다. 교만한 자는 자기 주관, 자기 주견, 자기 고집만 내세운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반역으로 나아간다. 하나님을 부정하고 대적하는 인간 중심의 사상은 사상적 교만이며, 선을 행하면서 자신만을 드러내는 것은 도덕적 교만이다. 성경을 좀 읽는 자, 기도를 좀 하는 자는 신앙적 교만, 영적 교만에 빠지기 쉽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시고 물리치시고 낮추신다. 교만(驕慢)과 기만(欺瞞)은 한 쌍이다. 천주교는 대죄(大罪)로 7가지를 제안했고, 바르트와 몰트만은 죄를 교만, 태만, 기만으로 규정했다. 7대죄(七罪宗, septem peccata capitalia, 七去之惡), 교만(Superbia, Pride)‘ 분노(Ira, Wrath), 나태(Socordia, Sloth), 질투(Invidia, Envy), 탐욕(Avaritia, Greed), 탐색(Luxuria, Lust), 탐식(Gula, Gluttony)
“레바논의 높고 높은 모든 백향목과 바산의 모든 상수리나무”는 이웃 나라의 교만한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모든 높은 산과 모든 솟아오른 작은 산”은 교만한 이웃 나라들을 가리키고, “모든 높은 망대와 견고한 성벽”은 그들의 강한 성들을 가리켰고 “다시스의 모든 배와 모든 아름다운 조각물”은 물질적 부요를 가리켰다고 본다. ‘조각물’이라는 원어(쉐키이요옷)는 ‘보물들, 조각품들’이라는 뜻이다. 사람은 어떠한 자랑이나 핑계를 들어서 자기 교만을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미워하신다. 여호와께서 홀로 영광을 받으시겠다고 선언하셨다(17절). 모든 자고한 사람들을 낮추시고 홀로 높임을 받으신다.
잠언 6:16-17,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6, 7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잠언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물리치신다. 잠언 16:18,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온 세상의 주권자와 왕이신 하나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기에 기뻐하는 족속은 그리스도인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백과 삶에서 홀로 높임을 받을 수 있도록 정진해야 한다. 우리의 원수들은 반대로 하나님께서 높아지면 자기들이 낮아지기 때문에 주의 자녀를 박해할 것이다. 또한 그들은 빛이 밝으면 바퀴벌레처럼 어둠으로 들어가지만, 빛이 어두워지면 바로 나와서 왕성하게 행동할 것이다.
[사 2:19-21절] 사람들이 암혈(巖穴)과 토굴(土窟)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 날에 두더쥐(두더지)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呼吸)은 코에 있나니 수(數)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오면, 사람들은 자기들이 섬겼던 은 우상과 금 우상이 다 쓸모없고 무가치하고 무익하고 무능한 것임이 드러났기 때문에 그것들을 던져버릴 것이다. 그들은 바위굴과 험악한 바위틈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위엄과 그 위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며 그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 떨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심판에 주의 얼굴을 피할 자는 전혀 없다.
그 피할 수 없는데도 피하려는 사람들을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21절). 의지하지 말라는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영역(英譯)에서는 Stop으로 번역하였는데, 의지하는 행위를 중단하라는 촉구이고, Put no는 의지하는 상태를 이루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월등한 사람은 지금은 너무나 당당하지만 주의 얼굴 앞에서 1초도 견딜 수 없다. 주의 얼굴 앞에서 사는 자녀들은 주의 얼굴 앞에 설 수 없는 호흡이 있는 사람을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수(數)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의역한다면 “그들의 단계를 측량해서 우선순위를 평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호흡이 있는 자는 의지할 자가 아니니 누구를 의지할지 평가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은 생존을 위한 기반이 아니라 생활을 위한 동료이다. A man is not a basis for survival, but a companion for life(Ko. K. T) HyungLam Seowon(/書院, Institute) by Is 2:21
형람서원 고경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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