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은
고대 근동 정복자들이 왕래하는 중간에 있다. 고대
근동의 역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 왕이 요시아 왕이다. 역사는
애굽(이집트
문명)과
바벨론(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세력 대결에서, 바벨론
시대 그리고 파사(페르시아) 시대로
전이되었다. 애굽이
패배한 장소는 갈그미스 전투였고, 그
패배의 역할에 요시아와 애굽 바로느고의 므깃도 전투(Megiddo, 왕하
9:27, 대하
35:20-27, BC 609)가
있었다. 요시야는
전사하였고(투투모스
3세의
승전 기록) 바로
느고는 약화되었다. 요시아의
아들은 요하난(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시드기야, 살룸(대상
3:15)이고,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이 왕이 된 후, 시드기야가
마지막 왕직을 수행하였다. 메시아
계보는 ‘요시아’와
포로로 간 ‘여호야김’이다.
BC 605년에
두 세력이 갈그미스에서 격돌하였다. 앗수르와
애굽이 연합군을 이루어 바벨론에 대항하려 하였는데 요시아가 애굽의 전력을 심각하게 약화시켰다. 결국
앗수르는 중동의 패권을 빼앗겼고, 바벨론은
애굽까지 통치 영역을 확대하였다. 유대도
멸망하였다(BC 587, 344년간
왕 20명). 후에
바벨론을 점령한 바사는 통치 영역을 서쪽까지 확장하려다 그리스 세력에 부딪혀 좌절하였다.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33세
나이에 바사 지역을 점령하였고, 갠지스
강 문명까지 통합한 헬레니즘을 형성하였다.
이사야는
고레스를 예언하였고, 예레미야는
70년
뒤에 귀환을 예언하였다. 상상
못 할 강국인 바벨론이 멸망한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내용이었다. 바벨론이
유대를 정복한 50년
뒤에 바벨론의 벨사살이 고레스에 의해서 멸망(BC 539, 단
5:30)하고
말았다. 70년은
유대 멸망을 시작으로 성전재건(515)까지
하거나, 므깃도를
시작으로 바벨론 멸망으로 제안하는 두 경우가 있다. 70년
기간에 세계 역사는 대변혁이 일어났다. 페르시아가
유럽을 보았고 확장에 실패한 것이다. 성경은
놀라운 사건을 기록하지 않았다. 가장
큰 세계 역사는 하나님의 성육신이고, 그에
견줄 수 있는 세상의 사건은 없다. 그럼에도
세계사에서 예수의 위치는 빈약하거나 없다. 철학자나
종교지도자 보다 정복자 중심으로 전개하기 때문이다. 철학자나
종교지도자는 세계 역사에 내면적으로 영향력만 주었고 결정적인 역할을 못하였지만, 예수
종교는 세계 역사에 대전환을 이룬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페르시아
전쟁(Greco-Persian Wars, BC 490-448)은
다리오(다리우스
2세)와
아하수에로(Xerxes, BC 485-464)가
세 차례 유럽으로 진격하였지만 실패하였다. 다리오는
마라톤에서 패배하였고(BC 490, 아하수에로는
테르모필래에서(BC 480), 살라미스
해전(BC 480)에서
심각하게 패배하였다. 바사는
서진정책을 포기하였고 평안하였지만 발칸 반도에서는 주도권 싸움이 심각하게 일어났다.
세계
전쟁에서 승리한 연맹이 분할하여, 그리스
연맹과 스파르타 연맹으로 전쟁한 것이다(펠로폰네소스
전쟁, BC 431- BC 404). 승리한
스파르타 연맹은 다시 코린토스 전쟁을 진행하였다(BC 395- BC 387). 결국
스파르타는 패배하였고, 발칸
반도는 누가 와도 점령할 수 있는 빈약한 지역이 되었다. 이들을
보고 있던 사람은 마케도니아의 빌립, 알렉산더의
아버지였다. 결국
빌립에 의해서 발칸 지역은 통일되었다. 빌립은
BC 358-354에
금은 광산이 있는 이 지역에 도시를 자기 이름으로(빌립보) 건설하였고, 로마가
BC 168에
점령하여 퇴역 군인을 이주시켰다. 빌립의
뒤를 이는 알렉산더는 페르시아를 정복하였고 대제국, 세계문화(헬레니즘)를
형성하였다. 그런데
알렉산더는 33세의
나이로 페르시아에서 풍토병으로 죽었다.
알렉산더가
죽자 제국은 부하들에 의해서 4등분되었다. 유대
지역은 프톨레미 왕조와 셀류커스 왕조의 접경 지역으로 프톨레미에서 셀류커스로 통치가 변화하였다. 마키비
혁명으로 하스몬 왕조(BC 164-BC 63)로
독립하였지만, 로마
장군 폼페이가 이두메 사람 헤롯의 도움으로 유다를 정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