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10월 첫주모임 요약 -사도 바울의 2, 3차 전도 여행. 사도행전 16-20장까지.

형람서원 2015. 10. 9.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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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첫주모임 요약 -사도 바울의 2, 3차 전도 여행. 사도행전 16-20장까지.


1) 15장에서 바울과 바나바의 심한 격돌 그리고 사울은 실라를 동반하여 아시아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갔다. 그런데 교회역사에서 중요한 도시는 알렉산드리아이고, 알렉산드리아는 마가가 전도한 지역으로 알려졌다. 바울과 마가는 동역자로 의심이 없는 관계이다(참고 딤후)


2) 바울은 디모데를 합류시켰고(그외에도 다수의 무리로 진행한 것으로 보인다) 1차 전도지역을 통해서 아시아 지역에서 사역하려고 했다. 그런데 성령이 반대했고, 바울은 힘썼다. 성령의 반대에도 바울의 진행은 성령께 불순종이 아니라 열정적인 행동이었다. 결국 주께서 환상을 보여주어 마게도냐로 방향을 바꾸었다. 토인비는 이 전환이 유럽 역사를 바꾸었다고 평가했다. 세계 역사가 바꾼 전환점이기도 하다. (드로아는    Troy, 트로이 목마가 있는 곳이다)


3) 루디아는 하나님을 섬기는(이방인 여인) 사람이었다. 여인으로 말미암아 유럽의 첫 교회이 빌립보 교회가 시작했다. 그리고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히면서 간수 가족(이방인)이 그 밤에 세례를 받고 빌립보 교회가 확장되었다. 바울은 로마 사람임을 적극적으로 밝혀 빌립보에서 안전하게 다른 도시로 이동했다.


4)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는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데살로니가에서는 3주(세 안식일) 머물렀고 교회가 이루어졌다. 대부분 이방인이었다. 참고로 데살로니가전, 후서는 초기 문서들이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문제는 재림 신앙에 대한 그릇된 적용이었다. 즉 삼주의 복음선포에서 재림의 내용까지 사도 바울이 전한 것이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전체 사역이다. 베뢰아 지역은 성경을 상고한 유명한 지역이다. 데살로니가와 베뢰아에서는 유대인들로 말미암아 추방되었다.


5) 사도 바울은 아덴에 회심차게 들어갔다. 사도 바울의 아덴 설교에 대한 평가는 긍정과 부정으로 양분된다. 긍정은 접촉점을 잘 활용했다는 평가이고, 부정은 복음의 정수(십자가)를 전파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필자는 후자의 견해를 따른다. 그 이유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십자가만 전하기로 결심했다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깎아 서원하는 모습도 나온다. 아덴 사역은 사도 바울이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신자는 세워졌다. 사도의 놀라운 권위는 교회가 순식간에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역사는 한국 교회 초기에도 발생했었다. 그러나 현재는 그런 역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기 위한 특별한 방편이지 일상적인 방편이 아니다. 일상적인 성장은 천천히 인격적이고 일상적으로 진행한다.


6) 고린도에서 하나님께서 예비한 브리길라와 아굴라를 만난다. 하나님께서 글라우디오로 로마 유대인 추방령을 내렸고, 부부가 고린도로 이주하게 되었다. 추방령은 49년에 내려졌고, 바울이 고린도에 도착할 때는 1-2년이 경과한 것으로 추측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에서 천막 만드는 일을(텐트메이커)를 한다. 그것은 회당 선교에 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사도 바울의 선교 전략은 회당 중심에서 텐트메이커와 후원으로 전환했다. 전략은 선교 대상과 재정 충당 방법이다. 회당 중심 선교 전략은 먼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고대 지중해 연안에 왜 이방인들이 유대인의 회당에 많이 갔는지 알길은 없다. 그리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은 배척했고 이방인들은 기쁘게 수용했다. 그런데 십자가 전함을 결정한 바울은 더 이상 회당 중심의 선교 전략을 포기한다. 그리고 재정확보를 위해서 텐트를 만들었고, 세운 교회의 후원을 받아 진행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사역을 2차 선교 여행을 마쳤다. 그리고 에베소로 귀환하면서 겐그리아에서 머리를 깍으며 서원했다. 바울에게 선교 대상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이 없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된다. 그 이전 유대인들은 약속한 예수를 이해하거나 믿고 구원에 이를 수 있었다. 바울의 선언으로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통해서 스스로 구원을 얻을 길은 끝났다. 바울은 이방인과 함께 성전에 들어갈 수도 있었다. 성전의 참된 참여자는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겐그리아에서 서원하고 안디옥으로 귀환하였다.


7) 아볼로는 성경박사였지만 '요한의 세례"까지만 아는 사역자였다. 고린도에서 바울 후임으로 갔는데,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주었다. 그럼에도 아굴라의 사역으로 고린도 교회는 분파 경향이 발생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복음전함과 믿음 외에 어떤 것도 우열이 없다고 강조했다. 요한의 세례는 죄사함의 세례이다. 기독교는 죄사함의 종교이지만 전부는 아니다. 기독교는 죄사함의 종교이고 성령의 종교이다. 성령이 오신 뒤로는 성령께서 죄사함을 이루시고 내주하신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죄를 사함받고 성령의 내주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오순절 이후에도 여전히 요한의 세례의 방식을 고수하는 것은 복음 교회를 이루지 못한다. 이러한 유사한 경향이 루터파에게도 나타났다. 그들은 복음 선포 앞에 반드시 율법 선포(정죄, 죄인임을 인식시킴)를 포함시키려 한다. 복음은 처음도 복음이고 나중도 복음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8)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서 요한의 세례만 아는 교회에 복음을 선포해서 성령 세례를 받도록 했다. 그리고 방언이 나왔다. 요한의 세례는 불완전하고 성령세례의 가시적인 현상이다. 즉 요한의 세례만을 지금도 고수한다면 기독교가 아니다. 성령세례를 받아야 기독교가 된다. 성령세례는 주께서 주장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주님이 직접 이루시며, 사람이 개입할 여지는 전혀 없다.


9) 바울이 진행한 에베소 사역은 회당에서 두란노서원으로 이동한다. 반복에서 회당에서 거부되자 구체적인 두란노서원으로 이동해서 사역이 진행한다. 즉 유대인이 복음을 거부하였고, 더 이상 복음 앞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순서가 무너지는 것이다. 바울의 사역으로 에베소는 우상이 제거될 정도로 부흥이 일어났다. 결국 우상장사들의 소동이 일어났지만 바울은 끝까지 버텼다. 그리고 소동이 끝난 뒤에 마게도냐로 이동해다.


10)  사도행전 20장은 바울의 3차 전도 여행이다. 1차와 2차에 설립한 교회들을 순회했다. 드로아에서 유두고를 살렸다. 성경에서는 죽은 자를 살린 역사가 구약에서 2회, 예수님 3회, 신약에서 2회가 등장한다.


11) 밀레도에서 행한 에베소 장로에게 하는 마지막 권면은 가장 감동적인 부분이고 비장하다. 필자가 좋아하는 것은 28절에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이다. 즉 교회는 하나님께서 자기 피로 사신 기관이다. 바울이 가는 예루살렘 길은 죽음을 각오한 고난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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