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기록이 실제인지 이야기인지 논란이 있었다. 그러나
다양한 유물이 나오면서 구약의 역사에 대해서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대표적인 유물이 모압왕 메사의 비문(Mesha Inscription)이다. 이
비문은 성경 열왕기하 3:4-5절과
동일한 상황을 기록한 것으로 성경 기록의 역사를 증명한 유물이다. 이
유물은 1868년
독일인 의료선교사 클라인(F. A. Klein)이
발견하여 이동시키려 하였는데, 주민들이
파괴하여 탁본만 전해지고 있다.
이
석비(Moabite Stone)에는
이스라엘의 ‘오므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오므리’에
대해서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오므리는
오므리 왕조를 이룰 만큼 큰 영향력을 끼친 왕이었다. 오므리는
수도를 ‘사미라이’로
천도한 강력한 왕이었고, 모압을
정복하고 억압한 정복자 왕이었다. 모압왕
메사는 오므리가 죽자 그의 아들 아합과 전쟁을 벌려 억압에 풀려나왔다는 승전비가 모압의 석비이다. 북이스라엘에서
여로보암 다음에 강력한 왕이 오므리 그리고 여로보암 2세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서는 ‘여로보암의
죄’와
‘아합
왕’에
대한 말씀이 거의 차지하고 있다. 오므리
왕조의 뒤를 잇는 예후 왕조도 결국 ‘아합의
죄’를
심판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예후
왕조의 여로보암2세의
아들 스가랴가 즉위 6개월
만에 피살된 후에 반역이 연속되다가 결국 B.C 72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몰락하였다. 오므리가
건축한 ‘사마리아’는
부끄러움의 대명사가 되었다. 아직
이스라엘 사마리아는 약 500여명이
그리심산에 올 메시아를 기다리며 살고 있다고 한다(참고
요한 4장). 이들이
갖고 있는 사마리아 오경은 가장 오래된 사본이지만, 기독교나
유대교에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는
바벨론을 정복한 바사(페르시아)의
고레스(BC559-529)가
제정한 세계 최초의 인권선언서이다. 현재
세계인권선언의 원형이다.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하고 바벨론 정복지에 있던 관습, 종교
등에 자유를 선언하였다. 성경에는
바벨론 포로로 잡혔던 유대인들을 귀환 명령을 내렸고, 성전을
재건축하도록 명령을 내렸다(스
1:1). 문명의
총화를 이룬 제국이 페르시아이다. 사막에
인공정원, 분수와
연못을 만들어 거주하였다. 가장
적합한 거주 형태였을 것이다. 고레스의
인권정책은 세계역사에서 유일한 것이다. 피정복자의
인권과 권익을 보호하고 활성화시키는 정복자는 세계역사에 없다. 정복자는
지배계급으로 피정복자를 종을 삼아 인간 이하의 취급을 하는 것이 인간 역사이다. 그런데
고레스만 정복지에서 인권정책을 펼친 것이다. 이것이
현재 정복자의 아량으로 되었지만, 정복자의
내면은 전혀 바뀌지 않는다. 고레스는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인물로, 여호와의
목자로 지명된 인물이다(사
44:28, 45:1)
페르시아의
꿈은 서진이었고, 아테네
연합군에 막혀 중단되었고,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에 의해서 정복되고 지금의 ‘이란’이라는
나라로 전락하고 말았다. 동서의
분기점, 세계의
역사를 결정하는 마라톤 전투(BC 490), 테르모필레
전투(BC 480), 살라미스
해전(BC 480)이였다. 세계
역사의 중심축은 서양의 알렉산더로 로마로 이동하였다. 이
때 성경은 에스라, 에스더, 느헤미야
시대인데 성경에 언급이 없다. 예루살렘은
조용하였지만, 때가
차매 베들레헴에 하나님께서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다.
세계의
중심은 바벨론이다. 여호와는
갈대아(바벨론)에서
아브람을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다. 아브라함의
아들 다윗이 건축한 예루살렘, 다윗의
아들 예수가 죽은 예루살렘, 예수의
피로 세운 교회가 바벨론을 벗어난 세계의 중심이다. 예루살렘을
대적한 바벨론은 멸망하지 않고 지금도 교회를 유혹하고 박해한다. 역사에
오실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Maranat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