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10장. 선(善, bonum), 홀로 단순하며 홀로 불변한 선은 하나님이시다. 선에서 선을 창조하였는데, 창조된 선은 출생한 것은 아니며(non genita) 단순하지 않으며 변한다. 그런데 단순한 선에서 나신 이는 낳은 이와 같다. 우리는 둘은 아버지와 아들로 부른다. 양자와 함께 성령이 한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아버지와 다르고, 아들과도 다르다(alius). 댜른 분(alius, another)과 다른 것(aliud, another thing)는 구분해야 한다. 즉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하게 단순한 선이시며 불변하시다. 삼위가 한 하나님이시다(trinitas unus est Deus). 삼위라고 해도 단순한 것이다. 사벨리안 이단은 위격에 실체가 없고 명칭만 있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아버지와 아들의 위격이 있고 동일본체로 존재하신다. 아버지는 아들을 갖고 있지만, 아들은 아니다(Pater habet Filium, nec tamen ipse est Filius). 다만 위격과 관계에 대해서는 예외를 둔다(excepto quod relatiue quaeque persona ad alteram dicitur).
삼위가 단순하여도 변화하지 않는 것은 본체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속성과 본체가 같은 경우는 없다. 인간도 영혼과 육체에서 영혼과 육체가 가변적이지만, 부활에서는 영혼과 육체가 변하지 않는 성질을 가진다. 부활체가 변하지 않아도 존재 자체는 아니다. 인간은 영생에서도 실체와 속성은 다르다. 그러나 하나님은 속성과 본체가 동일하다.
영생한 인간들도 단순하고 불변으로 신적이다. 그리고 각 인간들은 각자의 속성을 간직하고 있다. 영생한 인간들도 한 지혜에서 창조된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안다는 것의 시작이 이 세계를 존재하게 하신 ‘창조(creata esse)’와 알도록 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notus esse)’이다. 만들지 않았으면 어떻게 존재하겠으며, 알려주지 않으면 어떻게 알겠는가? 인간은 스스로 존재하는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시작이 있는 존재이기에 끝이 있다. 시작이 있기에 제한이 있고 도움이 없으면 새로움이 없다.
11장. 천사들은 빛이 생겨날 때 동시에 존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비추임을 받아야 지혜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그런데 어떤 천사들이 이 빛을 거부하였다. 그들의 어리석음은 자기 나름으로 생명을 유지하려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비록 살아있지만 영원한 생은 아니다. 생명은 본래 영원하다는 개념이 있다. 지복은 행복한 생이다. 그들은 유일한 선이신 하나님을 등졌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빛에 의존하여 생을 유지하는 상태이다. 또한 복된 천사들도 최고의 행복은 아니다.
12장. 행복은 합리적이고 지적인 피조물에게 속한 것이다. 최초의 인간도 낙원에서 행복했었다. 현세에서는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의 자비를 쉽게 얻은 사람이 행복하다고 부를 수 있다. 현재에 행복한 인간은 최초의 인간보다는 행복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세의 행복은 낙원의 저 인간보다 더 행복하다. 낙원의 인간은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상태에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는 불확실한 상태였다.
13장. 합리적인 피조물이 행복하려면 하나님의 선을 향유하는 것과 자신이 그 선에 머물 것이라는 확신이다.범죄한 천사들은 행복을 향유한 적이 없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천사들은 확정되어 악한 천사나 선한 천사가 증감하지 않는다. 예수는 사단을 처음부터 살인자라고 하셨다. 사단은 선과 행복을 맛보지 못한 불순종의 아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