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권 8장. 창조주 하나님께서 7일째에 ‘안식’하시며 거룩하게 하셨다(창 2:2).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구절을 쉽게 구절로 생각하지 않도록 권고한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순간적으로 이루어졌다. 말씀은 들을 수 있거나 순간이 아니며, 지성적이고 연속되는 것이다(qui dixit et facta sunt uerbo intellegibili et sempiterno(영역. spiritual and eternal), non sonabili et temporali). ‘안식’이라는 단어에서 창조 사역에서 하나님의 수고를 느끼는 바람직하지 않다. 하나님의 안식은 창조주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사람의 안식을 의미한다(히 4:4-11). 이것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창조의 집에서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들의 기쁨을 의미한다. 이것은 “극장이 갈채를 보낸다”는 표현으로, 극장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박수를 하는 것으로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극장’을 칼빈이 창조주 하나님의 세계를 무대로 제시한 것으로 연결할 수 있겠다(Inst., I,5,14). 창 2:2에서 하나님의 ‘안식’은 하나님 안에서 백성들이 안식하며 즐거워함을 의미한다.
9장.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de sanctae ciuitatis)을 말할 때 천사의 기원에 대해서 제시하는 것을 시도한다. 그것은 천사가 거룩한 도성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천사에 대해서는 성경에서도 풍성한 근거한 있다.
먼저 세계 창조에서 천사의 역할에 대해서는 명확한 제시가 없다. 창세기 1:1에서 ‘하늘들’에서 천사들이 지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초에 하늘들과 땅을 만들 때에, 어둠이었기 때문에 땅은 볼 수 없었고 질서가 없었다(창 1:2). 그리고 빛을 배치하면서 6일 창조를 진행하였다. 이 때 천사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시 148:1-5, 단 3:57-58에서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역할이었다. 별이 생겨났을 때도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양하였다(욥 38:7). 천사들은 4째날 이전에 있었고, 창세 전에는 없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2, 3째 날에 천사를 창조하시 않았다고 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의 한 날을 강조하면서 “첫째 날(first day)”이라고 하지 않고 “한 날(one day)”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6일이 모두 동일한 날임을 제시한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 1:3의 “빛”에 대해서 깊은 이해를 제시한다. “빛”을 하나님의 독생자로, 천사를 하나님 안에서 빛으로 제시한다. ‘빛(lux)’과 ‘영원한 빛(lucis aeternae)’을 구분할 수 있다. “Et in unum Dominum Jesum Christum, Filium Dei [unigenitum], natum ex Patre ante omnia saecula, Deum de Deo, [Lumen de Lumine], Deum verum de Deo vero, natum [genitum], non factum, onsubstantialem Patri;”(Symbolum Nicaeno 중에서, 325년) 천사들은 ‘창조의 빛’이고, 아들은 ‘빛 중의(에서 나온) 빛’이다. 천사는 하나님 안에서 빛이고, 아들은 빛 그 자체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제시한 ‘지혜’가 창조하여도, ‘지혜기독론’이 되지 않은 것은, 아들이 “불변한 지혜(ipsa incommutabilis sapientia Dei)”로, 아버지와 아들이 ‘동일실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반역한 천사는 빛이 아닌 어둠, 영원한 빛에 참여하는 것이 박탈됨으로 제시한다. 그리고 악한 자(천사)들은 본성의 악함이 아니라, 선의 상실로 악을 얻은 것이다(Mali enim nulla natura est; sed amissio boni mali nomen accepi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