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권 20장. 참된 중보자(uerus mediator), 하나님과 사람의 중보자는 오직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homo Christus Iesus)이시다. 성부께서는 아들과 연합하여 제사를 받으시고, 예수의 백성들은 구주와 연합하여 제사를 드린다. 중보자는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시며 제물이시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제사는 중보자의 몸(제물)이 있는 것이며, 교회는 그의 몸, 그를 통해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교회의 참된 제사의 모습이 거짓 제사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21장. 하나님께서는 마귀(demons)들도 위임하여 제한된 기간에 활동하도록 하셨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성에 대항하여 싸우는데, 거짓제사를 충동하여 착취하며 교회를 박해한다. 그러나 성도를 전혀 해를 입히지 못하며 순교자를 숫자를 채워줄 뿐이다. 하나님의 도성은 불경건한 자들을 대항한 순교자의 피로 싸웠기에 영광스럽고 명예롭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도성”과 “교회”를 교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세상에서는 악력의 종들을 영웅이라고 부르지만, 교회는 순교자들을 영웅이라고 부른다. 악한 신을 달래서 자신의 일을 하는 방식은 악령과 타협하는 것이다. 악한 신을 달래어 자리를 양보 받아 선한 일을 한다는 방식은 바르지 않다. 순교자들은 경건한 자를 시기하는 공중권세에 정복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제압하였다. 로마의 스키피오는 아프리카를 무력으로 정복하여 ‘아프리카누스’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가 선물로 적들을 달래어 적들에게 자비를 얻었다면 그런 호칭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22장. 하나님의 사람의 참된 경건(Vera pietate homines Dei)이 경건한 일을 반대하는 공중권세에 대항해서 축출시킬 수 있다. 그들을 달래는 방법이 아닌 몰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세력에게 대항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긴다. 인간의 힘으로 귀신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의 속죄의 효력으로 죄사함을 얻어 하나님과 화목하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중보자께서 주신 사죄와 그 확신에서 육의 싸움이 아닌 영적 전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중보자를 통해서 육신이 정결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Dei gratia)에서, 믿음으로 인내하며 영생의 확실한 약속에서 불변하는 진리를(incommutabilis ueritatis) 완성해 간다.
칼빈의 경건(pieta)은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를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다. 즉 죄와 싸움에서 이기고, 인내 중에 믿음의 정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중보자, 하나님의 은혜를 제시한다고 볼 수 있다.
23장. 포르피리도 태양신이나 달신에게 제사하여서 정결하게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포르피리는 정결하는 원리(principles)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정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있다. 플라톤주의자의 원리에 대해서 알 수 있다. 그들은 최고선으로 유일자를 아버지로, 둘째, 지성 혹은 말씀을 아들로, 셋째, 생의 보편 원리를 혼으로 원리를 세웠다. 이 원리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아테네까지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그들은 차서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비록 그들은 정결의 원리를 세우기는 했지만 설명을 하지 못하며, 서로 이해하는 내용도 다르다. 철학자들은 정결을 주장하여도 정결을 시작할 수도 없다.
고경태 목사(한국성경연구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