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권 19장. 사악한 영의 도움에 의존하는 불경건한 마술. 마술을 좋아하고 찬양하는 사람들, 누가 마술을 금하는 법을 만들었는가? 마술은 저주를 주는 기술을 가르친다. 로마법에는 마술을 행하는 자에게 형벌을 줄 것을 성문법으로 제정했다. 아풀레이우스도 마술 행위로 고소를 받았는데, 기독교 공인 이전의 일이었다. 마술을 행하는 자를 숭앙하며 존경했다. 기독교는 성실과 인내로 마술을 거부하며 결국은 마술의 법을 취소시켰다. 그런데 플라톤주의자들은 웅변적인 연설로 자신의 마술 행위를 변호하면서 무죄와 결백을 주장했다. 마술의 모든 기적은 마귀들의 능력과 가르침에 의해서 수행되는 것이다. 마술적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는다. 마귀의 중재가 어떤 효력을 내겠는가? 마귀는 회개를 말하지 않는다. 마귀는 성취와 영예를 추구하며, 올라간 자에게 혐오스러운 교만을 행사하도록 한다. 그러나 회개하며 죄사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용서받은 겸손이 있다. 교만과 겸손은 공존할 수 없다.
20장. 철학자들은 신과 마귀의 교류(intercourse)를 인정하며, 인간의 기도도 결국은 마귀를 통해서 듣게 되는 구조를 갖는다. 즉 죄사함을 구하는 인간과 교류하지 않고, 사악한 마귀와 교제하는 신이 된다. 이러한 관점은 왕권신수설과도 연결된다. 신으로 받은 왕권이기 때문에 왕은 평민보다 더 신과 가까운 존재가 된다. 그 신은 자신에게로 오는 인간을 거부하고, 자신을 속이는 마귀와 교제하는 도식이 된다.
21장. 신은 에테르(ether)에 살고, 마귀는 공중(aerial)에 살고 인간은 땅에(earth) 산다. 그래서 신은 마귀를 통해서 인간에 대한 정보를 듣는다. 신은 마귀 없이 인간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 없어 행동할 수 없는 제약을 받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왜 신들은 자신들을 모욕하는 마귀들을 벌하지 않는가? 신들은 자기를 불쾌하게 생각하는 마귀를 몰랐는가? 그러면서도 신들의 악행을 기념하는 공연장을 세움에 부끄럽지 않는가? 결국은 신들은 플라톤이 아닌 마귀와 동거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22장. 아풀레이우스는 마귀들이 신과 인간들 사이의 사자이며 통역자로 행동하는 것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기독교는 마귀들이 교활하고 교만하여 그 본성에 부합되는 감옥과 같은 공중에 거주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보다 뛰어난 능력은 있지만, 참 하나님을 그들의 도움으로 삼고 있기 때문에 훨씬 월등하다.
그러나 마귀는 참된 종교에 참여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 권세를 부린다. 그들은 거짓도니 기적들로 행동하며 자기의 신을 받아드리도록 설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신과 인간들의 사자인 척 꾸며댔다. 인간은 마귀를 믿지 않지만, 뿌리깊은 미신으로 인해 마귀들을 섬겼다.
23장. 이집트인 헤르메스(Hermes Trismegistus)는 마귀에 대해서 다른 견해를 가졌다. 헤르메스는 신들이 인간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인간은 신을 창조하는 위대한 능력이 있다고 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헤르메스가 기독교의 진리를 인간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할 수 있는 구조를 말한 것으로 제시했다. 사도 바울은 철학자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우상으로 바꿈에 대해서 지적했다. 백성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충만과 기쁨이 있었지만, 마귀들은 두려움과 괴로움이 있었다. 헤르메스는 자기종교가 소멸하리라 슬퍼했다.
고경태 목사. www.ctimes.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