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람 성경

데살로니가전서 1 장.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된 데살로니가 교회

형람서원 2014. 7. 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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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살로니가전서 1 장

모든 믿는 자에게 본이 된 데살로니가 교회

 

[데살로니가전서 1:1-3. 사도 바울의 인사] 사도 바울은 실라와 디모데와 함께 데살로니가 교회에 편지를 한다. 즉 사도의 고백은 사도 개인의 고백이 아니라, 사도단의 공동 고백이다. 사도 바울은 개인의 권위가 아니라, 모두의 권위로 편지합니다. 그런데 간혹 사도 바울은 독자적 권위로도 복음을 제시할 때도 있다(롬 2:16, 16:25).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편지할 때에 “사도”라고 자신을 소개 않았다. 이것은 갈라디아서와 대조적이다(갈 2장). 그것은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바울의 사도 권위에 대해서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개척자로서 항상 감사와 기도를 하며(2절), 데살로니가의 교우들을 항상 기억하고 있었다(3절).

 

1절. “은혜”는 불쌍한 죄인들에게 베푸시는 사랑과 호의이고, “평강”은 죄사함 받은 자들이 누리는 마음의 안정과 고요다(서철원). 은혜와 평강은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다. 하늘에서 온 평강만이 인간에게 참된 평강을 줄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은혜와 평강을 선언하는 것을 처음과 마지막에 위치시킨다. 사도적 전통을 잇는 교회는 구약 민수기 6:24-26과 신약 고후 13:13 문장으로 처음과 끝에 축복을 선언한다.

 

2절.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3주의 짧은 기간에 형성된 기적적인 교회임에도 믿음이 바르게 형성되어가는 교회였다. 그럼에도 연약한 모습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감사하며 기도했다.

 

3절.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3절). 믿음, 사랑, 소망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믿음에서 비롯되고 연결된 한 인격에 여러 모습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의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하나님께 기도(기억)했다. 고린도전서 13장에서는 믿음, 소망, 사랑에서 사랑을 제일로 말씀했다(고전 13:13).

 

[데살로니가전서 1:4-10.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방에서 본이 되는 교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음을 안다고 위로했다. 바울과 사역단의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능력과 성령을 받은 것이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에게 하나님의 택함을 확정하는 것은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문제가 많은 고린도 교회 교우들에게 “성도”라고 불렀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환난 중에 믿음에 굳건하기 때문에 바울은 감사와 기쁨으로 하나님의 택함을 선언했다.

5절.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했다. 사도 바울은 “우리 복음”으로 고백하여, 비록 자신이 전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교회의 복음임을 제시한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전해진 복음을 받은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환란 중에도 성령의 기쁨으로 믿음의 도리를 받았다. 그래서 전하는 사도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다. 이러한 믿음의 모습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ensample, model)이 되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환난에서 성령의 기쁨으로 사도들과 주님을 본 받는 사람(fellow, imitation)이 되었다(6절). 칼빈은 출 14:31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믿었다는 말과 동일한 의미로 주석했다. 즉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사도 바울(사도단)을 모세처럼 믿었다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은 환난 중에 기쁨이 넘치게 생활하고, 연보(捐補)를 넘치게 한다(참고 고후 8:1-2).

 

9절. 데살로니가 교우들은 바울에게 복음을 받았을 때, 습관적인 옛 습관(생활)과 우상의 버리고, 하나님만을 섬겼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로 오셔서 죽음과 부활하신 구주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가능했다. 그들은 유대인의 회당에 다니는 사람들이었지만 습관을 따라서 우상을 섬기는 형태를 갖고 있었음을 인식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이나 다른 대상 다른 내용을 숭상하면 우상숭배가 된다. 우상을 거부하는 회당의 가르침으로는 우상 숭배를 분별할 수 없었으나, 복음을 접하면서 명확하게 우상적인 행동을 분별했다. 복음을 영접한 후로는 우상을 버리고 참된 하나님을 섬김을 기뻐했다. 이것은 회당 종교와 현재 기독교와 다른 믿음의 구도가 있다. 회당에서는 구약성경을 읽고 강해하며 메시야 현현을 기다리는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이방인들이 있었다. 그들은 메시야 출현의 소식, 복음을 듣고서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동일한 것은 구원은 구주의 은혜와 아버지의 사랑과 성령의 능력으로 만 된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변화하여 환란 중에 교회를 사도의 가르침대로 섬기는 모범이 되었다.

 

10절. 데살로니가 교회는 복음의 부활과 재림에 중점을 두어 불균형적인 믿음의 형태를 갖았다. 좋은 것도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복음은 한 요소가 아닌 다양한 지식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십자가”에 중점을 두는 형태도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으로 그리스도인이 복음의 총체를 기쁨으로 수납하고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성경연구원] 고경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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