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개혁하는 교회: 개혁교회는 칼빈신학, 정통신학이다.
개혁교회란 도대체 무엇일까? 한국 장로교에서 “개혁주의”, “개혁신학”, “개혁”은 “신선하고 지적”인 세력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개혁주의란 말이 너무나 많이 난무한다. 최근 한국 교회에서는 네델란드 개혁파의 교회질서가 소개되면서, “개혁교회”라는 정체성을 도모하는 교회들이 발생했다.
개혁교회는 신앙고백서에 근거한다. 김홍전 박사는 “역사적 개혁주의”라는 말을 사용했다. 역사적 개혁주의란 현재의 자신의 가르침이 근거 없이 발생한 가르침이 아닌 역사에 근거하며, 또한 이 시대에 합당한 가르침을 구성한 것으로 이해한다. 1619년 네델란드에서는 벨직신앙고백서(1561년)와 하이델베르크요리문답(1563년)과 돌트 신경을 표준문서로 채택했다(분리와 복귀의 선언, 1834년). 스코틀랜드 교회는 스코틀랜드신앙고백서(1560년)에서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1647년)로 전환했다.
신원균("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와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의 교회론적 구조와 언약신학적 특징에 관한 연구", 2009, 칼빈대학교, Ph.D Diss)은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가 1537년 [제네바 신앙고백서]를 기원으로 제시했다.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제네바 신앙고백서의 4개 구조에서 25개 구조로 확대했다. 신원균은 제네바 신앙고백서와 도르트 신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교회관까지 연관된 사상으로 제시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신앙고백서는 교회를 3대 표지(말씀, 성례, 권징)였지만,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에서 2대 표지로 전환됨으로 제시했다.
개혁교회는 자기의 믿음의 계보(신앙고백서)를 알고 인정해야 한다. “신앙고백서”Confession이란 말 자체가 지류(支流)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교 정통 교리에 대한 존중이 전제되어야 한다. 기독교의 공인된 교리는 325년 니케야 신경, 381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431년 에베소 공회의, 451년 칼케돈 신경이다.
“사도신경”은 공인된 문서가 아닌 325년 이전부터 교회에서 사용한 전통적인 문서이다. 아타나시우스신경도 공회의에서 결의된 문서는 아니다. 가르침에 일치하는 것과 공인된 문서는 역사적 위치에서 차이가 있다.
역사적 교회를 이룰 때에는 역사적 문서에 권위를 둔다. 비록 교회에서 “사도신경‘을 예배에 고백하는 것은 서방교회 전통임을 알아야 한다. 유스티안 황제와, 서방교회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이해를 고대교회의 마지막 선으로 본다.
그 이후 동방과 서방교회는 분열되었고, 1000년 후 칼빈에 의해서 종합되었다. 그래서 개혁신학은 칼빈신학, 동방과 서방이 분리되기 이전 고대교회 신학이라고 할 수 있다. 1500년의 교회신학의 집대성이 칼빈의 [기독교강요]이고, 개혁신학은 칼빈의 신학에 근거해서 개진한다. 개혁신학은 제네바를 근원으로 하나가 될 수 있다. (참고, OPC에서는 개혁교회를 칼빈에서 시작해 카이퍼, 바빙크, 핫지, 워필드로 연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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