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무화과나무 저주
마가복음 11:13-14
고경태(2010, 10,10)
예수님께서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셔서 이해에 어려움을 주었다. 이에 류모세는 [열린다 성경, 식물 이야기]에서 자세하게 무화과 나무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해 준다.
류모세는 슈바이처가 Quest for Historical Jesus에서 “예수가 임박한 죽음을 앞두고 이성을 잃은 행동”이라는 해석을 대표적으로 많은 오류적인 해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무화과는 4월부터 10월까지 모두 다섯 번 열매를 맺는 다는 것이 중동지방의 상황이라는 것을 제시한다. 유월절 즈음에 맺히는 열매는 히브리어로 “파게”라고 하고, 이후에 열리는 열매는 “테에나”라고 하는 것이다. 히브리어에서는 서로 다른 언어인데, 헬라어에서 무화과 한 단어로 제시함으로 엉뚱한 해석이 나왔다는 것이다. 당연히 영어 번역이나 한글 번역에서도 한 단어로 번역되어 이해의 난점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예수께서 베다니에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는데, 벳바게는 베이트(집)과 무화과 열매인 파게가 합쳐진 이름이다. 베다니는 베이트와 테에나가 합성된 베다니(무화과 동네)이다. 무화과 동네에서 무화과를 저주하신 사건은 언어유희와 함께 영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인데, 가장 자비가 없는 장소로 언어 유희가 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무화과 나무를 보았을 때에 ‘파게’가 맺혀야 하는데, ‘파게’가 없음으로 저주하신 것이다. 그것은 ‘파게’가 없을 때에는 ‘테에나’도 분명히 맺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파게’의 맛보다 ‘테에나’의 맛이 더 좋다. 파게는 상품의 값이 없기 때문에 나그네들이 취하는 것이며, ‘테에나’를 기대하도록 한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의 ‘파게’가 없다면 ‘테에나’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을 본인은 유대교와 기독교의 관계로 유비하려고 한다. 예수께서는 “파게를 맺지 못하는 유대교”에 대한 저주였다. “파게를 맺지 못한 무화과 나무”에서는 “테에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약한 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냉혹한 유대교의 형태가 바로 파게가 없는 무화과 나무의 모습이다. 예수께서 무화과 나무를 저주하시니 무화과 나무가 뿌리로부터 말라버렸다. 뿌리가 말려졌을 때에 윗부분은 마르지 않게 보인 것이다. 비록 유대교가 무성한 잎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뿌리가 마른 상태인 것을 알아야 한다. 제자들은 잎사귀가 마른 것을 본 후에야 예수께서 말씀하신 바로 무화과 나무는 마르기 시작한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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