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의 [기독교강요. 1권]
제 1 강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
(1권, 1장, 1-3)
(※ 칼빈의 글이 아는 것은 고딕체와 작은 글로 하고, 명조체는 칼빈의 글을 본인이 요약한 것)
1장.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1. 바르고 견고한 지혜는 두 지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참되며 건전한 지혜(true and solid Wisdom)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을 아는 지식이다. 두 지식은 여러 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쪽이 먼저이며, 어느 쪽의 지식이 다른 쪽의 지식을 만들어 내는가를 구별하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먼저 묵상해야 하는 이유는 우리가 한 분이신 하나님(subsistence in God alone)으로부터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슬처럼 내려주시는 유익으로 말미암아 근원으로 인도된다. 우리의 굶주린 상황에서 부족한 것을 구하게 하시고, 두려움에서 겸손을 배우게 하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의복을 벗어버리고 부끄럽고 추태를 노출시킨다. 이러한 불행, 부패와 타락에서 모든 선의 근원을 오직 주(主)만 의지하게 된다. 즉 자신에게 불만을 느낄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갈망하게 된다. 우리 자신에 대한 불만스러운 지식이 하나님을 찾도록 일깨워 준다.
[독서] 1. 하나님께서 주시는 유익의 근원(the fountain, the spring)은 주(Lord)이시다. 하늘로부터 내리는 이슬이 기초를 쌓아 쌓는 탑은 하늘에 기초를 둔 거꾸로 쌓는 탑이 된다.
2.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한 분 하나님을 묵상해야 하고, 인간을 아는 지식은 인간의 비참한 상태를 인식해야 알 수 있다. 두 지식 모두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이신 주(主)를 의지해야 한다.(2절에서 자세히 제시함)
3. 칼빈의 역설. 하나님께서 주신 의복(stript of the divine attire)을 벗어버리고 부끄러움을 옷을 입었다는 것은 배우 역설적인 지적이다. 부끄러움의 옷을 벌거벗고 하나님께서 주신 의복을 입을 때에 가장 아름다운 의복이요, 우리가 입고 뽐내는 의복은 부끄러운 의복인 것이다. 옷(인간의 외형)으로 잘남을 드러내려는 것은 내면의 죄악을 드러내는 것이 된다.
2. 하나님을 먼저 묵상해야 한다.
인간은 분명히 먼저 하나님의 얼굴을 묵상하지 않고서는 인간에 대한 참된 지식을 얻을 수 없다. 자신의 부패를 인정하기 전에는 항상 자기 의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주(主)만이 유일한 표준(He being the only standard)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속과 주위는 너무나 타락하여 오염되었기 때문에 우리의 정신이 인간 부패의 범위를 보게 되면, 적게 오염된 것을 보았을 때, 그것이 마치 가장 깨끗한 것처럼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것은 마치 검은 것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눈이 희끄무레한 것이나 검으스레한 물체를 볼 때 완전히 횐 것으로 판단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우리가 좋은 시력을 갖았다고 생각하지만, 눈을 들어 태양을 똑바로 쳐다보게 될 때, 우리의 시력은 당장 그 큰 광채로 말미암아 눈이 부시고 혼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영적으로 둔한 인간은 자신을 반신적인(半神, demigods, semidei) 존재로 착각하게 된다. 하나님의 지혜의 완전함을 인정하고 찬양해야 될 지혜가 어리석게 되어 자신을 높이게 되는 것이다.
[독서] 1. 모든 만물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먼저 묵상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1:25절.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있고,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인간에 대한 바른 지식(전적부패)은 인간을 겸손하게 하고, 인간의 가면을 벗겨 인간 자신의 상태를 바르게 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찬양하려는 오류에서 벗어나게 한다.
2. 진정한 표준은 무엇인가? Lord. 표준이 없거나 흔들 때에는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가? 완전하시고 순결하신 하나님은 사라지고, 인간의 수준을 반신적인 존재까지 높아진다. 16세기에는 그랬지만, 21세기에는 반신이 아닌 하나님과 동등된 자리까지 높이려 한다.
3. 하나님의 임재는 인간에게는 충격과 놀람에 대한 성경의 실례들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임재(the presence of God)가 나타날 때에는 충격과 놀람으로 압도됨이 성경에 보도되는 일반적인 말씀이다. 하나님의 위엄(the majesty of God)이 나타나면 인간은 죽음의 공포와 비참함에 느끼게 된다.
구약성경에서 아브라함, 엘리야, 욥, 이사야 등등 하나님의 영광을 볼 때에 자기를 티끌과 같은 모습을 인식했으며,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얼굴을 가려야만 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광채를 나타내시며 보다 더 가까이 발하실 때에는, 세상의 가장 빛나던 광채들도 그 앞에서 어두워지게 된다는 것이다(사 2:10, 19).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이 서로 한 띠(bound together by a mutual tie)로 엮어져 있다. 우리는 가르침의 순서를 전자를 논하고 후자를 다음에 전개하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요구한다.
[독서] 1. 칼빈은 두 가지 놀람을 갖는다. 첫째 하나님의 현현(임재)에서 백성들의 충격과 놀람이고, 둘째 이러한 놀라운 하나님과 죄악된 인간이 서로 한 띠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칼빈의 글을 따른다면 현대 교회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즐거워하고 반가워하는 현상은 성경적 실례와 같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의 현현을 잘 알지 못하는 처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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