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설교] 창세기 2 장 존재의 목적

형람서원 2008. 11. 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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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교회 08-11-02

창세기 2 장

제목: 존재의 목적

 

창세기 1장의 존재의 근거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라고 말씀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은 세계, 보시기에 심히 좋은 인간을 볼 때 우리의 고백도 ‘좋다’는 탄식과 고백이 있어야 바른 존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존재가 복된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임으로 많은 자녀의 출산과 다산이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창세기 2 장은 1장과 관련하여 많은 논란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신학에서는 1장에 대한 자세한 설명으로 보아 ‘중조설’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중조설은 뵈레아 귀신론에서 이해하는 방식입니다. 창세기 1:1절과 2절의 간격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피조물과 육적인 피조물을 한 번 창조하셨지, 두 번 창조하시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 장을 존재의 목적으로 세 단락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존재의 근원에서 존재의 목적을 앎으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의 목적을 이루어야 하니다. ‘어떻게 살았냐’에서 ‘왜 사느냐’라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입니다.

 

첫째, 1-3절 안식을 지킴이 존재의 목적을 이룹니다.

 

인간은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창조된 완전한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창조에서는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에게 복을 주시고 번성하도록 하셨으며, 하나님께서 7째 날에 복을 주셨습니다(3절).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따라서 사는 삶이 복된 삶입니다. 그 복된 삶이 하나님께서 복으로 제정하신 일곱째 날을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쉬심은 하나님께 경배를 받으시기 위한 것입니다. 일곱째 날이 복된 것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날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말씀하시며, 안식일에 선과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즉 안식일은 지키는 것이 아니라 경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하는 행동은 예배, 선,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경배함을 목적으로 안식일이 이루어짐으로 인간의 존재의 목적이 바르게 세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는 인생은 항상 혼미한 세계에 살게 되며 바르지 못한 것을 바로 잡았다고 하는 거짓을 말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 가장 바른 삶이 되어지는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을 잘 지킴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4-18절. 언약에 순종함으로 존재의 목적을 지킵니다.

 

창세기 2 장에는 에덴 동산과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에 중점되어 있다. 4-18절에서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8-10절)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과 생명 나무가 배치되어 있다(15-18절). 에덴 동산은 아담이 사는 공간으로 최적의 공간이다. 아담을 최적의 공간에 두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언약을 체결합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사는 방법이 바로 ‘언약’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이 맺은 언약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언약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제정하신 언약은 일방적인 언약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편하게 생각하며 의심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창조주와 인간의 간격을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언약을 주신 자체도 감당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런 인간이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에 불평하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에 순종하면 생명을 갖아 존재하게 되지만, 언약에 불순종하면 정녕 죽게 되어 존재를 상실하게 됩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절대로 만족할 수 있는 상황을 주셨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가장 경미한 것을 인간에게 주었는데, 모든 것 중에 하나를 먹지말라는 금령이었습니다. 이와 반대로 새언약의 체결자이신 예수께서는 에덴과 정반대인 광야에서 40일 동안 굶주리시면서 시험을 이기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시험까지 이기셔서 언약을 성취하셨습니다. 아담이 첫언약을 성취하지 못한 인류의 조상이 되었지만, 새인류의 조상인 예수께서는 새언약을 성취하신 언약의 주가 되셔서 우리가 믿음으로 언약에 순종하도록 하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정하신 언약에 순종함으로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있습니다.

 

셋째, 19-25절. 노동과 행복함으로 존재의 목적을 영위(營爲)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아담에게 에덴을 다스리도록 하셨습니다. 다스림은 culture라는 것으로 ‘경작’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다스림은 청지기로서 사역을 의미하는 것이지, 단독적인 통치자가 아닙니다. 이 다스림이 바로 노동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모든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서 일을 해야 하는 것이 피조의 전체를 다스려야 되는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퍼져 있어야 합니다. 단 죄악을 조성하는 일들에는 있어서는 되지 않겠지만,,,, 세상에 있는 직업에 고저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있는 것입니다. 이 노동을 통해서 인간은 자기 존재의 목적을 알게 됩니다. 노동이 없으면 쾌락만 남아 방탕에 이르게 되어 자기 존재를 방탕에 있게 합니다.

사람에게는 항상 필요가 있습니다. 그 필요에 따라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모든 필요의 고백을 원하십니다. 모든 짐승들의 암수는 바로 짝지워졌지만, 아담에게는 이름을 지은 뒤에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것은 아담이 짝을 원할 때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인간이 노동을 하는 것은 필요를 채우는 것이며, 결혼을 하는 것도 필요를 채우는 것입니다. 노동과 결혼을 통해서 인간은 진정한 행복을 창출할 수 있는데, 그것은 진정한 창조의 목적에 부합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왜곡된 창조의 행위로는 고통과 불행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노동의 목적, 결혼의 목적을 바로 알아야 하며,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원리에 부합되게 행동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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