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성탄설교] 요한복음 1:1-14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

형람서원 2008. 12. 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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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설교] 요한복음 1:1-14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

고경태 목사(주님의 교회)

 

 

  해 마다 돌아오는 성탄절기설교는 매우 어렵습니다. 동일한 설교를 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신비를 선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설교자로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을 선포하는 것은 힘이 있고 강력하지만, 알 수  없고 파악하지 못한 신앙의 내용을 선포할 때에는 오직 주를 의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성탄의 설교는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을 설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신화에 나타난 제우스가 사람이 되었는데,, 그러한 오심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우스가 사람이 된 것은 자기의 목적, 즐김의 목적을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라고 하지 않고 신화라고 하며, 사람이 자신들의 내면의 문제를 신을 들어서 설명한 소설입니다. 그러나 기독교가 믿는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은 인류의 구원, 즉 십자가에 죽으시기 위해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육신의 신비를 생각할 때에 꼭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묵상해야 합니다.

 

  십자가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지 못한 백성은 절대로 성육신의 신비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없음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알 수가 없기 때문에 더욱 믿습니다. 알 수 없는 하나님이 믿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모두 알 수 없슴은 자명한 일입니다. 그러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을 우리는 그렇게 잘 믿습니다. 그 은혜와 능력이 십자가의 구속 사역이 성취됨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이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가야 합니다. 우리가 이미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세계에 합당한 지식과 경륜을 갖아야 합니다. 그것은 성육신의 신비를 깊이 묵상할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 저는 정통 기독교와 개혁 기독교를 이렇게 구분합니다. 정통 기독교는 성육신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독교이고, 개혁 기독교는 구원의 신비를 묵상하는 기독교라고 분류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통 기독교인이 되어야 하고, 개혁 기독교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탄절에는 정통 기독교인이 되어서 성육신의 신비를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서 영원하신 구속의 경륜을 묵상할 수 있는 귀한 시간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의 성탄절은 매우 우울한 성탄절입니다. IMF시대보다 더 극심한 경제의 혼란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무겁게 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 오신 하나님.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하나님을 묵상한다면 우리의 상황을 넉넉하게 이겨 낼 것입니다. 우리의 어려운 상황을 즐기는 것은 아니지만, 어려운 상황을 답답하고 슬퍼하고 비관할 필요가 없습니다.

 

   배반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그것도 멋있는 성인이 아니라, 왕궁의 왕자가 아니라, 목수의 아들로 마굿간에 오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겸손하고 낮아지게 될 것입니다. 이 놀라움이 성탄의 은혜이기 때문에 우리의 어려운 상황에서도 감사와 기쁨이 넘쳐나게 됩니다. 육신은 어렵지만 주께서 베푸신 구원의 경륜을 묵상할 때에 놀람과 경이에 사로잡혀 기쁨과 감사로 찬양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가 외쳤던 것 처럼 우리도 외양간의 송아지가 없어도 무화과나무에 소출이 없어도 오직 구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뛰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심은 이 땅에서 가장 믿기 어려운 내용입니다. 기독교에는 많은 이적들이 있습니다. 오병이어, 치유의 기적, 등등 그리고 동정녀 탄생등 많은 믿기 어려운 항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믿기 어려운 항목이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인류가 볼랐다는 것입니다. 도저히 그것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에 낮은 자로 오신 예수,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을 믿고 경배합니다. 내가 도저히 믿을 수 없기에 믿어지는 놀라운 은혜!! 왜 내가 이 믿음에 붙들린바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나의 생명이 된 이 믿음. 이 불가해한 은혜가 우리를 사로잡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성탄절은 축제가 아니라 경배의 날이 될 것입니다. 우리 구주가 이 땅에 오심은 즐김이 아니라, 백성을 구원하여 백성들로부터 경배를 받으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 땅에 오신 하나님. 구주 예수를 찬양하고 경배하고 묵상하는 한 날이 되어지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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