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설교

[설교] 빌립보서 3 장

형람서원 2008. 10. 12. 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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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 3 장

 [주님의교회, 08, 10, 12 주일오전설교]

설교: 생명의 근원

 

빌립보서를 ‘근원의 서신’으로 정리해서 이해합니다. 기쁨의 서신으로 ‘기쁨의 근원’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의 근원’으로 3 장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명의 근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절. 그리스도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함이니라 요15:11” 그러나 기쁨을 앗아가는 요인이 있습니다. 그 기쁨을 앗아가는 요인으로 빌립보서 3장은 ‘육체’를 말씀합니다.

 

육체를 의지하고, 육체를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는 부류입니다. 사도 바울은 유대인이 갖추어야 할 육체의 모든 자랑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자랑을 제시합니다. 사도 바울이 거창하게 제시하는 육체의 자랑은 자랑이 아닙니다. (자랑인지 겸손인지를 잘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할례를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할례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유대인들이 할례를 받지 않은 경우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를 받은 진정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베냐민 지파였습니다. 베냐민 지파로 왕족이며, 순수 혈통을 가진 진정한 유대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으며, 율법에 특중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를 핍박하는 최고의 유대인이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바울처럼 특출한 육체는 없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 중에서도 바울처럼 특출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러한 육체에 대해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 안에서나 교회 밖에서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을 경계하라고 명령합니다. 그것은 모든 것을 육체에 매이게 하여 기쁨을 앗아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선물이 사람의 마음을 누그러뜨린 다고 합니다. 뇌물은 육체를 신뢰하는 선물이고, 선물은 마음을 사랑하는 선물입니다.

교회 안에 있는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을 ‘개’, ‘손할례당’이라고 매우 강도 높은 비판을 가합니다. ‘개’는 자기의 눈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몸에 있는 티를 보고 비판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벧후 2:22에서 개는 토한 것은 다시 먹는 것으로 돼지는 그 속에서 노는 것으로 즉 죄를 반복적으로 짓는 사람을 개와 돼지로 제시하였습니다.

‘손할례당’은 육체의 표시를 갖고서 자부심을 갖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육체로 기쁨을 얻을지 모르지만 심령에 기쁨이 없는 사람입니다. 자기보다 낮은 사람이 있을 때에는 기뻐하겠지만, 자기보다 나은 상황이 오면 분노하고 기쁨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개와 손할례당’을 삼가야 진정한 기쁨을 누리게 되며, 생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 육의 생각은 죽음으로 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것들, 사람들이 최고로 생각하는 것들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8절).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8절)을, 그리스도를 믿음(9절)으로 푯대를 향해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푯대(the mark)는 목표입니다. 푯대는 ‘본향’과 같습니다. 사람들의 본향은 과거이지만, 우리의 푯대는 미래입니다. 사람들은 과거를 회상하지만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꿈꾸게 됩니다. 과거의 시간을 계속 들추어내는 것은 자기 의가 드러내지만, 미래의 시간을 계획할 때에는 자기 겸손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생명은 이 땅이 아닌, 영원한 미래에 하나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the prize of the high calling of God, 14절)에 있습니다. 영원한 미래의 상급을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생명이 이루어지는 길입니다. 즉 우리의 생명의 근원은 천국에 있고, 천국은 우리의 본향이고, 천국의 상급은 우리의 푯대가 됩니다.

 

둘째, 우리의 생명의 근원은 바로 ‘하늘’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를 원수로 생각합니다. 교회에서는 십자가를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원수는 바로 ‘배(belly)’입니다. 자기 배를 배부르게 하는 행동은 부끄러움에 이르게 합니다. 배를 채우기 위해서 한 행동이 부끄러움에 이르게 한 사례는 너무도 많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마침은 바로 ‘하늘’입니다. 하늘에 연결된 백성은 영생의 백성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공급은 바로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나무로 묘사할 때에 거꾸로 자라는 나무로 묘사합니다. 우리는 뿌리는 하늘에 내리고, 그 뿌리를 깊게 내려야 하며, 시절을 쫓아 많은 과실을 맺어야 합니다. 생명은 많은 과실을 맺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가지는 나무에 붙어있으면 많은 과실을 맺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하늘의 풍성한 과일을 맺히는 하늘의 시민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육체와 이생에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생명은 하늘에 있습니다. 영생에 있습니다. 하늘의 시민으로서 하늘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백성이 되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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