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편
여러 시편을 한 권으로 엮은 사람이 에스라이건 또 사람이건, 본 시편을 일종의 서문 형식으로 맨 처음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이 안에서 모든 경건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에 대해서 묵상하라는 의무를 강조한다. 이 전체의 핵심은 하늘의 지혜를 추구해 스스로의 마음을 쏟는 자들이 복이 있고, 하나님께 대한 속된 멸시자들은 비록 일시적인 행복을 보이지만 마지막에 더 비참한 결말을 갖게 된다는 내용이다.
1. Blessed is the man who walketh not in the counsel of the ungodly, nor standeth in the way of sinners, nor sitteth in the seat of the scorner.
2. But his delight is in the law of Jehovah; and in his law doth he meditate day and night.
1절.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연구하는 사람으로 하나님의 헌신된 종으로서 만사가 형통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진리를 연구에 전심전력하는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심을 확신하여 거룩한 길에 굳건히 서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는 학도(in the study of his law, the study of divine truth). 악인의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고서는 여호와의 율법을 묵상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죄의 유혹과 거짓 교사들과의 교제를 끊는 것은 진리를 추구하는 학도에게는 필연적인 것이다.
As the prophet, in the first place, enjoins the godly to beware of temptations to evil, we shall follow the same order. 그는 우리가 악인의 경륜(꾀)을 따르는 것, 죄인의 길 가운데 서는 것,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을 금하고 있다. 이것은 불경한 사람의 생활을 철저하게 혐오하는 것이다. 칼빈은 여기에서 점층법(gradation)이 사용되었다고 한다. רשעים, reshaim, חטאים, chataim, and לצים, letsim 이 죄악이 점점 악화된다는 것이다. ‘꾀’는 들어나지 않는 사악, ‘길’은 습관적인 생활, ‘자리’는 죄악스런 생활의 완고성을 지칭한다는 것이다. 죄는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는 방종과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포기된 방종이 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악인들의 타락한 행동을 본받고 모방하기 때문에 악인을 피하고 경계하는 것이 우선한다. 선은 모방이 아니라 은혜로만 가능하다.
2절. 시편 저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을 행복한 자로 선언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묵상을 경건함으로 부르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그를 정확하게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신앙의 체계는 자신의 생각이 아니라, 경건의 표준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 마지못해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기뻐하는 율법의 학도이다. 율법에 대한 강조와 애착심은 ‘묵상’함이 기쁨 가운데서 꾸준히 탐구되는 것이다.
3. He shall be like a tree planted by the rivers of waters, that bringeth his fruit in his season; whose leaf shall not wither; and whatsoever he doeth shall prosper.
시편 저자는 은유법(a metaphor)을 통해서 앞 절에서 언급된 내용을 확증한다. 본 절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척박한 땅에 심은 나무가 암시적으로 대조를 이룬다. 뿌리가 없는 나무, 양분을 먹지 못하는 나무의 아름다움은 사그라들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시냇가에 심은 나무는 수분과 양분을 충분히 공급받음(복되신 하나님, 딤전 1:11)으로 시절을 쫓아 과실을 맺는다. 이것은 어떤 일을 제 때에 잘 성취하는 형통한 인생이다. 하나님의 자녀의 성장은 하나님의 은밀한 은혜이다. 악인은 갑작스런 폭풍에 사그라들거나 없어지지만, 의인은 만사가 형통하다.
4. The ungodly are not so; but are like the chaff which the wind driveth away.
시편 저자는 예레미야의 비유인 광야에서 자란 떨기나무처럼(렘 17:6), 금방 시들어버리고 마른 나무에 비교된다. 일시적인 번성, 형통함이지만 쭉정이(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 현대인들의 공허한 심정은 쭉정이와 같다. 바람에 이리저리로 헤매는 모습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악인의 모습이다.
5. Therefore the ungodly shall not stand in the judgment, nor sinners in the congregation of the righteous.
6. For Jehovah knoweth the way of the righteous; but the way of the ungodly shall perish.
5절. 불경건한 자들이 일시적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승승장구함이 암시되고 인정된다. 여호와께서는 날마다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는 가운데 심판을 행사하신다. 죄인(sinners)이 의인의 회중에 들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악인(the ungodly)은 멸망을 받는다.
여호와의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양과 염소를 구별할 최종 계시의 날까지 인내해야 한다. 하나님만이 세상의 유일한 재판장이라는 대 원리를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인 의인들은 악인의 형통함, 세상의 행복에서 안정과 질서를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묵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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