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6일 토요일
디모데전서 1:1~11
제목: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
1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명령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2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1-2절. 인사말
1절. 바울은 자기의 사도됨을 디모데에게 소개한다. 디모데가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의 벅찬 가슴을 전하는 것이다. 본 서신에서 특징적인 것은 “우리 구주 하나님과 우리의 소망이신 그리스도by the command of God our Savior and of Christ Jesus our hope(NIV)”According to the Appointment of God our Savior, and of the Lord Jesus Christ 라는 것이다. ‘구주 하나님’은 누구이신가?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종종 구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는 뒤에 우리의 희망으로 예수가 등장함으로 아버지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칼빈).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구원 사역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고, 아들을 보내셨다. 그럼에도 ‘구주 하나님’이 되시는 것은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구원의 실현자이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소망(희망)이 되신다. 우리의 소망은 방향이며 목적이다. 우리의 방향과 목적이 상실되지 않고, 소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온전히 쫓기를 원한다.
2절. 바울은 디모데와 아들 관계처럼 긴밀한 사제관계를 형성하였다. 디모데의 연약함을 고려하며, 그의 순결한 양심을 높이 사서 교회의 거룩성을 지키는 귀한 동역자로 함께 하였다.
본 인사에서는 ‘은혜와 평강’에서 ‘긍휼(矜恤, 자비慈悲)’이 첨가된 것이 특징적이다. '긍휼'이 서신의 인사말에 언급된 경우는 본서 외에 딤후 1:2, 요이 1:3, 유 1:2에만 해당된다. '긍휼'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한없는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오기를 기원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의 근원은 아버지와 아들이다.
3 내가 마게도냐로 갈 때에 너를 권하여 에베소에 머물라 한 것은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4 신화와 족보에 끝없이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함이라 이런 것은 믿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경륜을 이룸보다 도리어 변론을 내는 것이라
5 이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6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7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
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
9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10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 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3-11절 바른 교훈과 다른 교훈
바른 교훈은 ‘이 교훈’이다. 이 교훈은 사도 바울이 전하고 교육한 교훈이며, 교회의 교훈이다. ‘교훈’이란 무엇인가? 다른 교훈(false doctrines, aliter doceant, 3절), 바른 교훈(the sound doctrine, sanae doctrinae 10절) ‘교훈’은 'doctrine' 즉 ‘교리’로 보아야 한다. 교회는 교리 위에 세워졌다. 교리가 더욱 체계화되며 구체화된 것일 뿐이지 교회는 교리 위에 세워진 것이다. 교회보다 교리가 먼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1) 다른 교훈
3절.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고 디모데를 권면한다.
4절. 신화와 족보(myths and endless genealogies)에 착념하는 것
= 변론을 발생시킴
6-10절 다른 교훈에 빠질 때에는...
6-7절. 헛된 말에 빠지게 되어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을 모름
6절. 율법의 선생이 되려하지만 율법을 알지 못함
8-10a절. 율법은 옳지 않은 죄인을 위해서 세운 것임
--> 다른 교훈에 빠질 때에는 변론을 일으키는 것을 좋아한다. 현대 교육은 토론을 통한 지식 향상이다. 그러나 정작 토론에서 정보는 유통되지만 지식은 유통되지 않는다. 교육은 도제(徒弟)교육으로 변론이 아닌 순종과 섬김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진리의 획득이 변론이 아닌, 참된 양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다른 교훈에 빠질 때에는 자기의 목적이 불분명함으로 말하는 것이나 확증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왜 변론이 일어나는지도 모르며 변론을 위한 변론을 늘어놓기 십상이다.
다른 교훈에 빠진 자는 교만하여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선생되기를 좋아한다. 율법의 선생이 율법의 목적으로 모르고 율법으로 천국 문을 닫았던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뒤를 쫓아서는 되지 않을 것이다. 율법은 불법자를 위한 것인데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의롭게 되려고 하였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선한 것이지만(8절),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것은 율법의 목적을 알지 못한 것이다.
2) 경계의 목적(5절)
“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다. The goal of this command is love, which comes from a pure heart and a good conscience and a sincere faith. ‘경계’는 ‘계명’으로 이해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계명의 목적은 사랑이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께서는 새 계명으로 ‘사랑’을 주셨다. 서기관도 율법의 총체가 ‘사랑’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어떻게 행할 줄은 몰랐다. 행동방식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이다. ‘거짓 없는 믿음’은 다른 교훈을 행하는 사람을 반대하는 것이다. 거짓 선생은 거짓 있는 믿음, 가식을 나타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3) 바른 교훈(11절)
바른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복음(the glorious gospel of the blessed God)’이다. 첫째, 바른 교훈은 하나님을 기원으로 하기 때문에 천적(天的)이다. 그래서 칼빈은 sound doctrine(바른 교훈)을 heavenly doctrine(천적 교리)라고 즐겨 사용하였다. 둘째, 바른 교훈은 복된 것이다. 본 성경에서는 복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말씀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福)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모든 것(죄용서.....)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바른 교훈은 영광스러운 것이다. 디모데는 바울이 갖는 복음의 영광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복음이 주는 성도의 유익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가슴 벅찬 것이다.
사도바울은 먼저 '이 교훈'에 위임되었다(entrusted)고 진술한다(11절). 바울은 이 교리의 창시자가 아니라, 교리의 추종자이다. 그리고 바울에게 이 교리를 위임시킨 분은 하나님과 아들이시다. 둘째 바울은 ‘이 교훈’을 따른(conforms)다고 하였다. 위임받은 바울은 이 교리를 충실하게 따라야 자신의 존재의 목적이 있다.
[기도] 소망이신 나의 주를 항상 묵상하게 하시옵소서. 오직 주님만이 나의 기쁨과 평안과 위로가 되게 하시옵소서. 거짓 교설이 난무한 교회와 사회에서 오직 생명을 살리는 바른 교리에 착념되어 변론이 아닌 진리로 이끄소서. 그래서 복되신 하나님으로부터 교리의 유익을 받게 하시옵고, 영광스런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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