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8월 17일 일요일
디모데전서 1:12~20
제목: 바울의 고백과 선한 싸움
바울은 자기 과거를 고백하고 영광스러운 복음, 바른 교리를 지키어 전파할 것(선한 싸움)을 권면한다.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7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 지어다 아멘
12-17절. 바울의 고백 = 영광으로 끝남
바울은 먼저 자신이 죄인의 괴수였고, 박해자를 교회의 일군으로 세우신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요하심을 찬양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그 크신 긍휼을 선포하여 죄인을 구원함과 믿는 자에게 본이 되도록 하셨다.
12-13절. 그리스도 예수의 긍휼에 감사함 = 박해자에게 직분을 주심
바울은 교회의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13절)였던 자신을 교회의 직분을 맡기심에 대해서 감사함을 고백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바울이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strenght)을 주셨다. 그리고 충성되이(he considered me faithful), 여겨 직분을 주셨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신비에 감격하여 감사로 찬양한다. 바울은 예수께 충성됨을 인정받을만한 행동이나 모습이 전혀 없었다. 그는 믿지 아니 할 때에 비방자, 박해자, 폭행자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알지 못하고 행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무지를 고백하는 것이며, 주님의 기도가 응답된 것이다(눅 23:34). ‘믿지 않을 때에 행동함’과 ‘주의 긍휼하심’이 대비되어 긍휼의 풍성하심이 배가되어 선포된다.
14-15절.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 = 죄인의 괴수가 구원됨
14절. 주의 은혜의 풍성하심은 사도 바울에게 ‘믿음과 사랑의 풍성(exceeding abundant with faith and love)’으로 나타났다. 칼빈은 넘치고 풍성함이란 표현이 바울의 사도권(낮은 사도라고 생각하는 경향)을 변호하는 의도가 있다고 주석하였다.
‘주의 은혜(gratia Domini nostri)’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넘치도록 풍성하게 나타난다. (私譯) 미쁘다 이 말이여(Here is a trustworthy saying) 모든 사람이 받아야 되는 가치(deserves, 복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죄인 중에서 최악인 나 같은 사람도 구원하셨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서 믿음과 사랑의 풍성함을 모든 사람이 받아야 된다고 선포한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 죄인을 구하러 오신 구세주이시다. 즉 성육신에 대한 믿음을 근거로 죄사함이 선포되는 것이다. 죄인을 구하러 오신 성자 하나님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즉 바울이 본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있다. 하나님의 성육신은 놀라운 계시이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자신의 구원을 고백한다.
16-17절.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 = 긍휼을 입어 본이 되게 함
그리스도 예수의 은혜로 구원이 선포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인내로 긍휼이 선포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오래 참으심을 본 바울은 예수의 본을 따라 모든 사람에게 인내의 본을 보여준다. 칼빈은 ‘먼저(first)’를 “chiefly” 혹은 “above all”로 이해해도 좋다고 제시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긍휼과 인내를 고백하는 시점에서 찬양으로 마무리한다(17절). 17 Regi autem saeculorum immortali, invisibili, soli sapienti Deo, honor et gloria in saecula saeculorum. Amen. Now to the King eternal, immortal, invisible, the only God, be honor and glory for ever and ever. Amen.(NIV) Now unto the King eternal, immortal, invisible, the only wise God, be honour and glory for ever and ever. Amen(KJV).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왕국을 찬양한다. 바울은 죄인의 집단의 괴수였던 예수를 영원한 왕으로 찬양한다. 그리고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함”으로 영원, 불변, 신비를 강조한다.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Only God)”로 하나님과 동일본체(同一本體)임을 고백하여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계시와 찬양의 대상을 교훈한다. 하나님께 돌려지는 찬양은 영원토록 행해져야 한다(for ever and ever).
18 아들 디모데야 내가 네게 이 교훈으로써 명하노니 전에 너를 지도한 예언을 따라 그것으로 선한 싸움을 싸우며
19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어떤 이들은 이 양심을 버렸고 그 믿음에 관하여는 파선하였느니라
20 그 가운데 후메내오와 알렉산더가 있으니 내가 사탄에게 내준 것은 그들로 훈계를 받아 신성을 모독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18-20절. 디모데에 주는 권면 = 선한 싸움 -예언, 믿음과 선한 양심, 권징
18절. 바울은 디모데를 부드럽고 친근하게 부르지만, 매우 엄하고 장엄한 권면을 한다.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께 위임받은 것을 디모데에게 훈련시켜서 위임시킨다. 바른 교리의 파수꾼으로 위임받은 디모데는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18절). 먼저 바울이 디모데에게 지도한 예언(the prophecies, 18절)이었다. 예언은 그리스도의 계시를 명확하게 밝히는 교훈이다. 혹자들은 디모데의 미래에 대한 예언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계시의 명확한 제시가 예언이다. 둘째, 믿음과 착한 양심이다(19절). 셋째, 권징이다(20절).
18b절. 예언을 따라 선한 싸움을 싸워라!(you may fight the good fight)
19a절.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holding on to faith and a good conscience)
디모데는 바울로부터 예언의 훈련을 받아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한다. 그리고 믿음과 착한 양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믿음과 착한 양심'은 본 서신 안에서 세 번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1:5 ; 3:9) 보아 믿음과 착한 양심이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19b절. 양심을 버린 사람들과 믿음이 파선한 사람들이 있다. 양심은 사람의 최적의 경계이고, 믿음은 최고의 경계이다. 양심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고, 믿음이 없으면 신앙인이 아니다.
20절. 후메내오와 알렉산더(Hymenaeus and Alexander) 믿음이 파선당한(19절) 대표적인 두 사람을 제시한다. 그들은 에베소 교회에서 극단적인 이단자였다. '후메내오'는 딤후 2:17, 18에 의하면 이단 교사로서 부활에 관해서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하였다. '알렉산더'의 정체에 대해서는 행 19:33과 딤후 4:14에 언급된 두 사람 중 어떤 사람인지는 분명치 않다. 혹자는 행 19장의 알렉산더로 주장(Calvin)하나 그가 유대인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가 다시 이단자가 되었다는 것은 단지 추측일 따름이다. 아무튼 그들은 율법 선생이 되기를 간절히 원했던 자칭 의로운 사람들이었으나 지나친 오류에 빠져 교회를 혼란으로 빠뜨렸다. 이들은 비록 교회에 들어왔지만 믿음뿐만 아니라 양심까지 버렸다.
바울은 두 사람을 교회 밖으로 내어 버린다. 그것을 ‘사탄에 주었다(I have handed over to Satan)’라고 표현한다. 바울은 그들을 사탄에 획책에서 방어하지 않고 내버려 둠을 의미한다. 내버림으로 참람함을 가르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들은 거짓 교사로 교회 안에서 거짓 교리를 유포하였다. 바울은 그들을 버림으로써 교회의 순결을 유지시켰다. 바울의 인내의 표현은 그들을 사탄에게 내어 준 것이다. 권징의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 번째는 죄인을 위함이고, 둘째는 교회를 위함이다. 본 성경 구절에서는 교회의 성결을 위해서 죄인 두 사람은 철저하게 배격된다. 권징의 최후의 수단, 즉 인내의 한계를 넘어선 경우이다.
[기도] 나를 사역자로 세우신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를 드립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부요하심, 긍휼의 풍성하심, 인내하심으로 세워주심을 고백합니다. 주께서 감당할 힘과 능을 주셔서 주의 길을 가게 하소서. 주의 합당한 예언을 따라, 믿음과 선한 양심으로, 교회의 순결함과 성도를 안전하게 보호할 수 있는 사역자로 세워주시옵소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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