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권 성경 이야기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바울 사도의 선교 편지 (2)

형람서원 2008. 8. 9.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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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바울 사도의 선교 편지 (2)
김헌수  (대전: 성은교회 목사)

 

이 글은 필자가 독립개신교회를 대표하여 교회의 선교 사명 수행에 대한 주님의 뜻을 살피기 위해 강변교회의 정병길 목사와 함께 일주일간 연변 지역을 시찰하면서 2008년 3월 28일에 그곳에 있는 미국 정통장로교회의 선교사들과 함께 공부한 내용이다. - 필자 주


1. 서론: 빌립보서의 배경, 주제, 구조

2. 하나 됨을 호소함 (1:27-2:4)               <지난 호의 내용>

3. 그리스도의 모범 (2:5-11)

4. 하나 됨을 다시 호소함 (2:12-18)

5. 우리의 상황



3. 그리스도의 모범 (2:5-11)


빌립보서 2:5-11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절이고 암송하거나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자기를 비워서 종의 본체를 입으시고 사람과 같이 되셨고,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따라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아드님을 지극히 높여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모든 무릎으로 그의 앞에 엎드려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고백하여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지심을 노래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찬송입니다.


이 구절에는 생각할 점들이 많이 있지만, 오늘 오후에 그것들을 다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그것보다는 빌립보서의 문맥에서 이 부분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더 초점을 맞추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앞뒤의 문맥과 비교하면서 찬찬히 읽으면 중요한 단어들이 반복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습니다.


               2:2 ‘마음’을 같이하고 한 ‘마음’을 품고 (phronete) (x2) 

               2:3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김’ (hegoumenoi)         

                     ‘헛된’ [빈] 영광 (kenodoxian)      

                     겸손한 [낮춘] 마음으로 (tapeinophrosune)   

            2:5 그리스도 안에 있는 마음 (phroneite)

            2:6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hegesato) 않음

            2:7 자기를 ‘비어’ (ekenosen)

            2:8 자기를 낮추시고 (etapeinosen)

            2:8 복종하셨으니 (hypekoos)     

               2:12 항상 복종하여 (hypekousate)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이 2:5-11에 나오는 부분인데, 이 부분은 앞부분(2:2-3)과 뒷부분(2:12)과 직접적으로 연결됨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2:5-11이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분열을 치유하려고 가르치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범만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면 개인주의적이 됩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모범이 빌립보 교인들의 생활에서 교회적으로 나타나기를 원하였습니다. 먼저 2:5를 살펴본 다음에 이 문제를 다시 생각해 보겠습니다.


2:5은 짧고 우리가 대부분 암송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그렇지만 이 짧은 구절은 번역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영어 번역들을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다릅니다. 이 구절을 문자적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너희들 안에서 생각하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것을] [서 생각할 것을].


후반부에는 동사가 없기 때문에 무엇을 보충하여서 읽느냐가 해석에서 미묘한 차이를 가져옵니다. ‘있는 것’을 보충할 수도 있고 ‘생각할 것’을 보충할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너희 안에’를 ‘개인의 마음 안에’로 이해할 것인가 아니면 ‘교회로서 그들의 관계 가운데’로 이해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전통적으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마음”을 내가 품는다고 이해하였습니다. 물론 이것도 중요합니다. 개인적인 겸손이 없으면 공동체적인 겸손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그렇게만 이해하면 전체적인 문맥에 맞지 않습니다. “신자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생각하여야 할 것’을 교회 공동체에서 마땅히 생각하고 나아오라”고 이해하는 것이 전체적인 문맥에 더 잘 어울립니다. 그렇지만 다시 강조하는 것은 이러한 해석이 전통적인 해석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서 살지 않으면 교중이 전체적으로 그리스도의 모범을 구현할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전후문맥을 살펴보면 사도는 빌립보 교회 안에서 생긴 분열과 경쟁심을 해결해 주려고 그리스도의 모범을 들어서 가르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모범은 개인적인 차원으로만 국한되어서는 안 되고 빌립보 교회의 삶에서 온전히 드러나야 합니다. 사도는 ‘너희들 가운데’라고 복수로 말하면서 그리스도의 겸손과 낮아지심이 그들 가운데서 교회적으로 나타나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실제적인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간직하고 따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이겠습니까? 신자가 개인적으로 겸손한 태도를 품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 기초가 되지만, 이것을 전부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개인주의적으로 접근하면 겸손이라는 덕목을 결코 이룰 수 없습니다. 개인주의적으로 노력하면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더 겸손하다는 데로 귀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영적 자부심’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비우신 겸손과는 멀리 떨어진 것입니다. 겸손은 개인적으로 노력할 덕목이지만 개인주의적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몸에 속한 사람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교회로서 그들의 서로의 관계에서 겸손한 모습이 온전히 드러나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4. 하나 됨을 다시 호소함 (2:12-18)


12절부터 새로운 문단이 시작하는데 이 문단은 “그러므로”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 이야기한 다음에 그 사실을 빌립보 교회에 적용하려고 하면서 “그러므로”라는 말을 씁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에 대한 교훈이 빌립보 교중 가운데 적용되고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는 먼저 그리스도의 모범을 그들 앞에 생생하게 제시한 다음에 그들도 항상 주님께 복종하고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들의 구원을 이루라고 권합니다.


‘구원’(soteria)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는 ‘병이나 고통으로부터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느 경우는 육체가 잘되거나 유지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하고(행 27:34 등) 우리의 영혼의 구원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어떤 단어의 의미는 그 문맥에서 살펴보아야 하는데 12절의 “너희 구원”이라는 말은 개인적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되고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를 놓고서 하는 말씀으로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너희 구원’이라는 복수를 사용한 것은 여기에서 이야기하는 구원이 개인의 영적인 구원이 아니라 분열과 시기심이 있는 교회가 전체적으로 회복되는 것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가 시기심과 허영에서부터 벗어나서 한마음으로 서서 전진하는 것이 그들의 회복된 구원의 모습일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서도 개인적인 구원이 배제되는 것은 아닙니다. 신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면서 말씀을 순종하고 살지 않으면 교회가 전체적으로 영적인 건강함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사도의 관심사는 빌립보 교회 안에 있는 분열과 시기심이었습니다. 사도는 그것을 세 번이나 언급하면서 매우 조심스럽게 가르칩니다(1:27; 2:2-4; 4:2). 경쟁심과 시기심이 더 뿌리를 내리지 않도록 부드럽게 경고하면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5. 우리의 상황


미국의 정통장로교회와 한국의 독립개신교회가 연합하여서 연변 지역에서 선교의 일을 하려고 모색하는 이 자리에서 빌립보서의 이 말씀을 공부하였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사역의 방향과 지침을 생각하면서 이 말씀을 상고하였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실제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1) 선교의 목적


우리는 바울의 서신에서 선교의 방향과 목적이 무엇인가를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울 사도는 선교비를 받고 감사하다는 식으로 편지를 보내지 않았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약한 것을 채워 주려고 이 편지를 썼지만, 약한 것을 채워 주는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약한 것을 채워 주려는 목적은 교인들이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답게 한마음과 한뜻으로 굳게 서서 신령한 전투를 수행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로마의 군인은 ‘자만심’과 ‘헛된 영광’을 높이 세우지만, 하늘의 군대는 ‘겸손’의 깃발 아래에서 그리스도의 모범을 그들 사이에서 잘 나타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 가는 교회를 세우려고 사도는 이 편지를 썼습니다. 선교 보고를 하면서 그러한 내용을 쓴 것입니다. 우리의 선교 활동도 그러한 교회를 세우는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개인적인 전도를 하고 그들의 숫자를 세는 선교는 사도의 본을 따르는 선교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 동일한 약점들


우리는 빌립보 교회에 있는 세 가지 약한 모습이 우리들에게도 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시기심이나 헛된 영광을 추구하면서 복음 전파의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 선교사들 사이에서 혹은 선교 단체들 안에서 시기심이나 헛된 영광으로 그리스도를 전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전한다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가 다른 사람보다 위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그것을 즐기는 것이 타락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이러한 태도를 회개하고 버려야 할 것입니다. 분열이 발생하면 에너지가 자기 안에서 소모되고 세상을 향하여서는 선한 증언을 할 수 없고 빛을 비출 수도 없습니다(마 5:14-16).


둘째로, 빌립보 지역에 율법주의와 방종주의의 교훈이 있었던 것처럼 이 지역에도 율법주의적인 것과 방종주의적인 것이 있고, 여러 이단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셋째로, 선교의 자유가 없는 중국에서는 물리적인 핍박이 매우 가까이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조사를 받거나 추방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데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고 한마음과 한뜻으로 서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모범


우리에게도 빌립보 교회와 같은 세 가지 약한 점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모범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은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에서 그러한 모습이 구체적으로 나타나도록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파하여 세운 빌립보 지역 사람들은 로마 군인 출신들이 많았고 그들은 로마 민족이라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였는데, 우리가 활동하는 중국 지역도 ‘자존심’이 매우 강한 지역입니다. 유교 문화의 ‘체면’은 영어로 옮기기가 매우 힘듭니다. 정확히 일치하는 개념이 없기 때문입니다. 로마 군인들 못지않게 유교 문화권에 사는 사람도 자존심이 강하고 남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갑니다. 이러한 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모범이 잘 드러나는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하여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서 며칠 지내면서 여러분의 활동을 살펴보았는데 여러분의 모임에서는 영어, 중국어, 한국어, 러시아어를 사용합니다. 말이 다른 것처럼 문화도 다릅니다. 연변에 사는 조선족은 중국 사람도 아니고 한국 사람도 아니고, 북한 사람도 아니고 남한 사람도 아닙니다. 또한 여기에서 일하는 선교사 여러분은 서양 사람들입니다. 언어뿐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매우 다양한 곳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과 연합하여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문화적인 차이나 언어적인 차이를 넘어서서 한마음과 한 믿음으로 굳게 서서 ‘팔랑크스’처럼 견고한 전열을 갖추고서 나아가야 합니다. 정통장로교회의 선교부와 독립개신교회 선교부는 이곳에서 사역을 할 때 한마음과 한뜻으로 하고, 제도적으로도 긴밀히 협조하여서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팔랑크스’처럼 굳은 대오를 형성하여서 일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


4) 사도의 기도


바울 사도는 빌립보 교회의 약점을 조심스럽게 지적하고 가르치기 전에 먼저 기도를 드렸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선교적인 열정과 활동이 그들의 분열의 원인일 수도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열심을 내었기 때문에 문제가 생겼을 수도 있었습니다. 매우 미묘한 경우입니다. 그러한 때에 사도는 먼지를 다 털어낸다는 태도로 모든 것을 휘저어서 드러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도는 그들의 마음에 부드럽게 이야기하면서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고 간곡히 권하였습니다(2:4).


사도가 그들의 마음에 부드럽게 이야기하기 전에 행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기도입니다.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1:9-11)


사도는 주님께서 그들에게 사랑을 넘치게 하실 뿐 아니라 지식과 통찰력도 구비하여 주셔서 가장 선한 것을 식별하게 하여 주시기를 구하였습니다. 복음 사역을 하면서도 참된 동기에서 하지 않고 경쟁심으로 하는 것을 바르게 식별할 수 있게 하여 주시기를 구한 것입니다.


이 기도를 주님께서는 성경에 기록하여서 우리에게도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주님께 드려서 사랑과 분별력을 얻기를 원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도 잘 모를 뿐 아니라 우리가 일하는 현장도 잘 모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께서 사랑과 분별력을 더하여 주시기를 구하면서 이 일을 시작합니다. 우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완성하실 줄을 확신하면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1:6).


토론 문제

 

1. 빌립보서를 쓴 계기와 배경은 무엇입니까?

2. 바울 사도가 1:27-2:4에서 빌립보 교우들에게 가르치면서 사용하는 ‘표상들’은 무엇입니까? (세 가지)

3. 빌립보서 1:27-2:4, 2:5-11, 2:12-18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예수님의 본에 대한 2:5-11은 여기에서 어떤 역할을 합니까?

4. 2:5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습니까? 이 구절을 개인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교회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연결됩니까?

5. 사도가 선교 사역의 목표로 생각한 사회는 어떠한 모습입니까? 선교 사역을 개인의 구원으로 한정하는 것은 어떤 점에서 부족합니까?

6. 빌립보서 초반에 나오는 사도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떤 교훈을 깨우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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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Let this mind be in you, which was also in Christ Jesus" (KJV); "Let the same mind be in you that was in Christ Jesus" (NRSV)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as that of Christ" (NIV); "Your attitude should be the same that Christ Jesus had" (NLT); "Have this attitude in yourselves which was also in Christ Jesus" (NASB)

        "Have this mind among yourselves, which is yours in Christ Jesus" (ESV); “Let your bearing toward one another arise out of your life in Christ Jesus" (NEB); "Take to heart among yourselves what you find in Christ Jesus" (RE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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