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목사 수필

+ 북경을 다녀와서.... +

형람서원 2008. 6. 28.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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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경을 다녀와서.... +

 

북경을 다녀왔습니다. 오래 전부터 계획되었고 진행되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못해서 빈번히 가지 못했었습니다. 여권이 만료가 되는 시점에서 되어 무조건 여행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해외여행을 한지 10여 년이 지나 설렘을 갖고서 출발하였지만 북경에 도착해서 둘러보니 전혀 이국적이지 않는 공항의 모습에 세계화를 실감했습니다. 우리 공항과 북경의 공항(3rd)이 별반 차이가 없었습니다.

북경에서 숙소까지 가는 북경의 거리는 이국적인 모습이라기보다 몇 년전의 한국의 모습이라고 생각된 것은 많은 포플러 나무였습니다. 이젠 볼 수 없는 포플러 나무는 옛 향수가 아닌 답답함을 주었습니다. 들어서는 도심에서 북경의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북경의 건물들은 ‘크다’라는 느낌이 있었고, 에어컨 실외기가 아파트마다 촘촘히 걸어져 있었습니다. 북경의 건물(大廈)들이 대형 직육면체로 크고 놀라움보다 답답함이 느껴졌습니다. 대륙의 커다란 느낌을 주었지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건물이 사회주의의 단순함을 느끼게 하였습니다.

북경에서 만난 그리스도인은 조선족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보안문제 때문에 선교사들 간에 연락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만난 선교사님과는 밤이 새도록 대화를 하면서 회포를 풀기도 하였습니다. 선교사나 목사의 공통점은 오랜 사역에서 오는 침체가 있다는 것입니다. 침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조선족들은 연길에 많이 사는 것으로 알았는데 북경에도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조선족은 중국에서 소수 민족인데, 한족이 될 수 없는 독특함을 갖고 있었습니다. 한 국가의 민족인데 왜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지만 한족과 조선족은 하나가 될 수 없는 특성을 갖고 있었습니다. 조선족들이 갖는 아픔을 복음으로 회복하려는 교회 지도자(북경 사범 대학 교수)의 몸부림은 가슴이 저미는 복음의 열정이었습니다. 우수한 두뇌를 갖고서도 한족 사회에서 여전히 소수 민족으로 외면을 받는 조선족들이 복음으로 바로 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가 만난 조선족 사역자(합동신대원 졸업)는 조선족 대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복음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정이 오히려 우리를 압도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복음은 이 땅 뿐만 아니라 중국에서도 동일하게 역사하고 위로하고 인도하였습니다. 순수한 신앙이 시련과 유혹을 받고 있지만, 복음의 확장은 중국에 서 중앙, 동남아시아로 확장되어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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