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신학&개혁신학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 주일(제3-5문)-고경태 목사

형람서원 2008. 6. 1. 00:52
728x90
반응형

HEIDELBERG CATECHISM. LORD's DAY 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 주일(제3-5문), 제1부 우리의 죄와 비참

 

제 3 문: 당신은 당신의 죄와 비참을 어디로부터 알 수 있습니까?

답: 하나님의 율법으로부터 알 수 있습니다.[1]

[1] 롬3:20.

 

제 4 문: 하나님의 율법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답: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2장에서 요약하여 그 율법의 요구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1]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2]

[1] 신6:5. [2] 레19:18.

 

제 5 문 : 당신은 그 모든 계명을 완전히 지킬 수 있습니까?

답: 불가능합니다.[1] 왜냐하면 나는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내 이웃을 미워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2]

[1] 롬3:10,23;요일1:8,10 [2] 창6:5;8:21;렘17:9;롬7:23;8:7;엡 2:3;딛3:3.

 

LORD'S DAY 2

3. Q. From where do you know your sins and misery?

A. From the law of God.[1]

4. Q. What does God's law require of us?

A. Christ teaches us this in a summary in Matthew 22: You shall love the LORD your God with all your heart, and with all your soul, and with all your mind.[1] This is the great and first commandment. And a second is like it, You shall love your neighbour as yourself. on these two commandments depend all the law and the prophets.[2]

5. Q. Can you keep all this perfectly?

A. No,[1] I am inclined by nature to hate God and my neighbour.[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 주일(제3-5문) 제1부 우리의 죄와 비참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1문에서 ‘위로’에서 시작합니다. 위로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백성인 것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백성으로 커다란 위로가 있게 됩니다. 그래서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라고 찬송하게 됩니다. 십자가에서 피 흘린, 그 치욕의 십자가가에 달리신 나사렛 예수의 백성으로 삼는 것은 너무나도 놀라운 역사입니다. 그 위로의 첫 부분에서 다루는 것이 “우리의 죄와 비참”입니다. 죄와 비참이 또 어떻게 우리의 위로가 되겠습니까?

먼저 자기의 질병에 대한 원인에 대해서 말씀하는 것입니다. 치료할 수 있는 의사는 질병에 대해서 정확히 제시하지만, 치료할 수 없는 경우에는 절차가 복잡하게 됩니다. 우리의 치료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완전히 치료할 수 있기에 상태를 정확하게 제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치료자 앞에서 우리의 상태에 대해서 정확하게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문답에서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알 수 있는 방편으로 “율법”으로(3문) 제시합니다. 우리가 죄를 알 수 있는 방편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은 ‘양심’입니다. 그러나 양심으로는 정확한 죄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율법이 제시됩니다. 그래서 의를 행할 수 없는 자기의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도록 율법이 우리를 인도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을 몽학선생으로 말씀합니다. 율법은 율법의 최종착지에서 서게 되어 자기의 죄와 비참함을 알 수 있게 됩니다.

 

그 비참함을 알 수 있도록 율법의 목적을 제시합니다. 율법의 총체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제시합니다. 요한복음에서는(13:44)에서는 새 계명으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여, 사랑이 바로 율법의 총 요약입니다.

율법은 우리가 알기로 10계명과 또 많은 법들이(의식법 등)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사랑으로 요약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출애굽기, 레위기를 읽을 때에 까다로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보아야 합니다. 너무나 꼬치꼬치 말하기 때문에 어렵고 짜증이 날 수 있지만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을 보아야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구약성경에서 넘쳐납니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것과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했고, 또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유대 말기에 백성들은 우상 숭배에 빠져있었고, 우상 숭배에 빠져 있을 때에 가진 자들의 강포가 커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눈물을 흘린 자들이 탄원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웃을 사랑하게 되고, 이웃을 사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백성들에게 이것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할 수 있습니까?(4문)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하나님과 이웃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가장 즐거운 일은 강 건너 불구경이며, 가장 열 받는 일은 집을 짓는 것입니다. 집을 지을 때에 싸움이 없는 경우를 보지 못했습니다. 왜 남이 즐거운 일을 바라보고 함께 즐거워할 수는 없을지라도 립서비스라도 할 수 있는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은 우리의 입술과 마음에서 너무나 쉽게 일어나는 일입니다. 비가 오지 않아도 원망, 비가 많이 와서 원망, 조그만 힘들면 원망, 조금만 알지 못하면 의심, 성경을 읽다가 막히면 의심,,,, 우리는 셀 수 없이 하나님을 미워합니다.

 

우리의 심령이 이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의 죄와 비참함, 사랑하려고 해도 사랑하지 못하는 비참함을 하나님께 고백해야 합니다. 이것을 고백하는 것이 인격과 실력에 큰 기여를 합니다. 자녀들이 공부 못하는 이유는 “너는 머리가 좋은데 공부를 하지 않아서 그래”라는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를 못하는 이유는 선생님께서 말씀할 때에 듣지 않았기 때문이며, 부모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공부를 못한 것이지, 순종하는 백성은 공부를 잘 할 밖에 없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순종할 수 있는 겸손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수 없는 죄와 무능이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고백합시다. 우리의 죄와 그 무능의 비참함을 하나님께 고백할 때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연약한 우리를 위로하셔서 강한 자로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주의 보좌 앞에 눈물을 흘리며 나아가지만, 주의 보좌를 떠나 올 때에 웃으면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사라가 웃음의 자식을 안으면서 여호와를 찬양하는 놀라운 구원의 복이 가득하기를 소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