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1 Peter 1:17-25

형람서원 2008. 5. 22.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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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Peter 1:17-22

17. And if ye call on the Father, who without respect of persons judgeth according to every man’s work, pass the time of your sojourning here in fear:

18. Forasmuch as ye know that ye were not redeemed with corruptible things, as silver and gold, from your vain conversation received by tradition from your fathers;

19. But with the precious blood of Christ, as of a lamb without blemish and without spot:

20. Who verily was foreordained befor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but was manifest in these last times for you,

21. Who by him do believe in God, that raised him up from the dead, and gave him glory; that your faith and hope might be in God.

22. Seeing ye have purified your souls in obeying the truth through the Spirit unto unfeigned love of the brethren, see that ye love one another with a pure heart fervently:

17. Et si Patrem invocatis, eum qui sine personae acceptione secundum cujusque opus judicat, in timore conversantes, tempus incolatus vestri transigite;

18. Scientes quòd non corruptibilibus, argento vel auro, redempti sitis à vana conversatione à patribus tradita;

19. Sed pretioso sanguine velut agni immaculati et incontaminati Christi;

20. Qui praeordinatus quidem fuerat ante conditum mundum, manifestatus autem est extremis temporibus propter vos;

21. Qui per ipsum creditis in Deum, qui eum suscitavit ex mortuis, et gloriam illi dedit, ut fides vestra et spes sit in Deum;

22. Purificantes animas vestras in obedientia veritatis per Spiritum, in fraternam charitatem non fictam, ex puro corde diligite vos mutuò impensè.

 

17 And if ye call on the Father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은 그의 자녀로 고백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부르는 아버지의 특징(the character of the Father himself)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는다. 아버지께서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으시고, 사람의 중심을 보시며(삼상 16:7), 성실을 보신다(렘 5:3).

By saying, According to every man’s work,가 사람의 공로나 상급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다는 것이며, 개인의 성과를 내세울 수 없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행위를 앞세운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지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눈은 아주 예리하시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 까지 뚫어보시므로 우리는 주의 깊고 소홀함이 없이 그와 동행해야만 한다.

 

18 Forasmuch as ye know, or, knowing. 구원, 복음의 은혜를 거부하거나 멸시하는 사람들은 구원이 무가치하고 쓸모없는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도 역시 무가치하게 여겨 거절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신성모독죄인가를 잘 안다.

Silver and gold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구원의 보증이 될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를 부르신 원인이 된다. 참된 경건은 소수의 남은 자들을 통해서 발견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의 어머니와 외할머니를 순수한 믿음으로 칭찬한다(딤후 1:3-5). 유태인이 비록 심각하게 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남은 자를 두셔서 참된 경건을 유지하셨다. 즉 중세로마의 교황주의에 어둠에서도 남은자로서 순수한 믿음을 지키는 경건한 백성들을 하나님께서 보존하셨다.

19 As of a lamb 사도는 이 유비를 통하여 비록 그가 특히 유월절 어린양을 언급하고 있으나 옛 제사들에 의해서 예표 되어 온 모든 것을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게 되었음을 뜻하고 있다. 구약의 속죄제사, 유월절 어린양을 드리는 제사는 폐지되었지만 실체를 예표와 비교하는 것은 믿음에 큰 도움이 된다.

 

20 Who verily was foreordained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그들의 때로 늦추신 것은 놀라운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영원하신 경륜 가운데서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그리스도를 세우시고 그의 정하신 때에 이 세상에 보내셨다.

아담이 창세 전에 타락한 것이 아닌데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미리 구속자로 지명되었는지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즉 치료는 병이 발생한 다음에 따르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변(칼빈)은 하나님의 예지를 제시한다. 그것은 틀림없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기 전에 사람들이 자기의 신실을 오래 지키지 못하리라는 것을 미리 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의 놀라우신 지혜와 선하심을 따라 그리스도가 잃어버린 인류를 파멸에서 구할 구속자가 되어야 할 것을 미리 정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뜻은 우리의 질병을 미리 예견하시고 치료책을 마련하셔서 첫 사람 아담이 타락하여 사망에 이르기 전에 다시 생명으로 회복시킬 대책을 정해 두신 것이다. <기독교강요>를 참조하기 바란다.

But was manifest, or manifested.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나타나심 뿐만 아니라 복음의 선포까지 포함된 나타남이다. 그리스도의 강림을 통해서 하나님의 작정을 계시하시며, 조상들에게 희미하게 계시된 것을 명확하게 제시하신 것이다. 이것은 갈라디아서 4:4과 의미가 같다.

For you 이 약속이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는 측량할 수 없다. 성경의 기록 의도는 당시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이시다.

 

21 Who believe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이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복음을 통하여 비추어진 자들에게만 속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지식이 미칠 수 없는 무한하신 분이시므로 우리의 믿음이 그리스도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면 하나님께 결코 이를 수가 없다. 그리스도께서 중보자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개입하지 아니하실 경우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 안에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은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하나님의 영광의 위대성이 고려되어야만 하고, 둘째, 우리의 수용능력에 한계가 있음이 고려되어야 한다. 우리는 감히 하나님을 헤아릴 수 없다. 하나님이 믿음의 대상이 되는 것은 여러 학파들의 공통된 원리이다(Common is that axiom of the schools, that God is the object of faith, objectum fidei). 그러나 그리스도를 무시한 행위는 사람을 현혹시키는 망상으로 들어갈 뿐이다. 두 번째 믿음은 우리를 하나님께 연합시켜야만 하기 때문에 우리를 두려움에서 구하여 주실 중보자가 오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또한 연합할 수도 없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며, 죄악으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징계로 말미암아 완전히 소멸되고 말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과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은혜를 입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의 이해에 적응시키시 위하여 어떤 의미에서 자신을 그리스도 안에서 축소시켰다(that he might accommodate himself to our comprehension; and it is Christ alone who can tranquillize consciences, so that we may dare to come in confidence to God.).

 

 

1 Peter 1:23-25

23. Being born again, not of corruptible seed, but of incorruptible, by the word of God, which liveth and abideth for ever.

24. For all flesh is as grass, and all the glory of man as the flower of grass. The grass withereth, and the flower thereof falleth away:

25. But the word of the Lord endureth for ever. And this is the word which by the gospel is preached unto you.

23. Regeniti non ex semine corruptibili, sed incorruptibili, per sermonem viventis Dei et manentis in aeternum.

24. Quandoquidem omnis caro tanquam herba, et omnis gloria ejus tanquam flos herbae; exaruit herba et flos ejus decidit:

25. Verbum autem Domini manet in aeternum; hoc autem est verbum quod annuntiatum est vobis.

 

23 Being born again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거듭난 새 사람이므로 영적으로 거듭나서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의무이다. 사람이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중생(重生, born again)을 해야 한다. 복음은 단순히 우리로 듣든 데서 그치도록 전파된 것이 아니라 썩지 아니할 생명의 씨로서 우리의 마음을 근본적으로 개혁되도록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옛 성품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됨의 차이는 너무나도 극명할 뿐만 아니라, 하늘의 새 생명으로 거듭난 백성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아간다(히 4:12-13).

 

24 For all flesh 이사야 선지자의 글을 인용하여 선지자는 백성이 풀과 같다고 선포한다.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세상적이며 쓰러질 수 밖에 없는 풀에 불과하다. 선지자는 풀을 유태인에게 비교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함을 선포한 것이다.

 

25 But the word of God 모든 육체가 마르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그러지는 육체에 새 생명을 불어 넣어 재창조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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