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 이야기

칼빈 시편 51편 주석

형람서원 2008. 4. 30.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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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편 



  “우리는 이 시편에 붙여진 제목으로부터 이 시를 쓰게 된 이유를 알게 되고 그것을 깊이 생각하게 된다.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슬픈 죄악 이후에 오랫동안 영적 혼수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단의 충고를 받고 그 혼수상태에서 깨어났을 때, 그의 마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혐오와 겸손으로 충만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의 회개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증거하고 그 회개에 관한 영속적인 증거를 후대 사람들에게 남겨주고자 애섰다.”


Psalm 51:1-2

  1절. 다윗은 하나님의 ‘인자’와 ‘많은 자비’을 의지한다. 오직 풍성한 긍휼(많은 자비)에서 죄악을 씻김을 받을 수 있다. ‘말갛게’ 씻기시는 것은 국어적 표현은 ‘깨끗하게’ 씻기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여러 번 씻으신다는 것(Multiply to wash)이다. 죄의 용서는 ‘씻음’에 비교되어 제시되었다. 죄를 씻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감동받지 않는 마음은 진실로 무감각한 마음이다.


Psalm 51:3-6

  3절. 다윗은 자기의 죄 때문에 오는 끊임없는 번민에 사로잡혀 있기에 하나님께 자기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죄 용서를 위해서는 죄 고백이 선행한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죄 아래서 만족감을 갖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더욱 큰 죄악이 된다.


  4절. 다윗의 죄는 사람에 대한 범죄이긴 하지만 모든 사람의 눈에는 숨겨지고 하나님께만 보여진 것이었다. 다윗은 자기의 충신을 죽인 사실에 대해서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였지만, 가장 큰 괴로움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이었다. 다윗은 궁궐과 자기 군대의 모든 눈은 속였지만 하나님의 눈을 속이지 못했다.

  다윗의 실족을 보면서 믿음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넘어졌을까를 상상할 수 있게 한다.

  하나님의 판단은 순전하시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심으로 죄악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인간에게 있다. 하나님의 행사를 근신과 겸손, 그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배우지 않으면 되지 않는다.


  5절. 다윗은 자기의 많은 죄악을 더불어 고백한다. “이 구절에서 아담에 의해서 인간 가족 전체 위에 임한 원죄에 대한 증거가 두드러지게 증거된다(The passage affords a striking testimony in proof of original sin entailed by Adam upon the whole human family).” 펠라기우스는 한 사람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멸망에 이른 것을 거부하고, 아담의 죄에 대한 모방의 힘으로 전해진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본 구절에서 죄는 오염되어 인간 가족 속에서 내려오는 유전임을 증거한다. 그러나 죄가 어떻게 부모로부터 아이에게 전해지는지 의문이 있다. 이 의문은 도 하나의 의문 영혼의 전달에 관한 의문으로 유도된다. 한 영혼이 본체로부터 태어난다고 간주하지 않는 한, 부패가 부모로부터 어린이에게로 옮겨진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원죄교리는 기독교강요 2권 1장에서 자세히 묘사됨).


  6절.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부패와 대립된다.


Psalm 51:7-9


  제물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보증이었다. 죄를 씻음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가능하지만, 인간은 감각적인 것에서 확신함으로 ‘우슬초’가 씻음의 상징으로 등장한다. “나는 우리 양심의 깊숙한 곳에 그리스도의 피를 뿌려 죄의식을 없앰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게 하는 것은 성령만이 하시는 일이라는 사실을 말할 필요가 없다.”


  다윗은 나단의 죄사함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간절하게 회개를 기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단이 선언해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기가 용서받았는지에 관하여 남아 잇는 혼란 혹은 불확실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먼저 겸비하도록 한다는 것이며, 둘째는 새로운 죄의식을 느낌으로 은혜의 보좌를 향하여 호소하는 것이다.” “다윗이 받은 용서에 대한 자기의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하기 위하여 용서받기 위한 기도를 거듭 반복하여 새롭게 드리고 있음에 놀랄 이유가 없다.” 우리가 드리는 주기도문에서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면서 죄의 용서를 위해서 계속해서 기도한다.


Psalm 51:10-12


   전반부(1-9절)에서는 죄의 용서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기도했다. 후반부에서는 성령의 은혜로 회복을 기도한다. 즉 죄의 용서에서 성화로 전환되는 것이다. “창조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써 그는 자기가 바꾸어지려면 참으로 기적같은 일이 일어나야 한다는 자기 확신을 표현하고 있으며, 회개는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하게 선언한다.” 회개에 대해서 헬라 철학은 영의 도움과 자유의지가 조화를 하지만, 기독교는 오직 하나님의 일에만 속한다. 하나님이 일은 새로운 피조물을 만드는 것이다.


  12절. 인간이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서는 마음 속에 있는 근심을 떠나게 할 수 없다. 다윗은 구원의 즐거움을 간청하고 있다. 주의 성령(11절)과 구원의 기쁨(12절)이 동일하다. 다윗은 죄의식 때문에 고통당함에서 마음의 자유와 자원하는 심령(a willing spirit)을 주시도록 기도한다.


Psalm 51:13-15


  13절. 다윗은 자기의 기도가 응답될 경우 감사와 모범으로 사람들이 회개하도록 하기위해 감사를 드립니다. 비록 하나님의 손으로 구원을 받지만 신자의 기도가 전혀 무가치하도록 가르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우리는 경건하지 않는 사람들을 개종시키는데 기도가 헛되고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결론을 내리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면류관을 주시고 좋은 결과를 주신다는 것을 잘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14절. 다윗은 전혀 근거없는 것으로 희망을 두지 않고, 오직 마음 속에 두려움으로 가혹하게 몸부림치고 있다. 다윗의 죄악은 ‘피’에 대한 중죄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구원에 의지하여 간절히 외치고 있다. 범죄한 다윗은 하나님께 찬양하기에 합당하지 않음으로 입술을 열어달라고 간구한다. 하나님을 찬양하기에 적합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Psalm 51:16-19


  16절. 다윗은 어떤 보상의 형태로 하나님께 드리지 않고, 오직 풍성한 하나님의 자비에 의존하여 제사를 드리려 한다. 하나님께서는 제물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성실하게 제사를 드려야하지만, 보상에 대한 기대가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의 호의를 기대해야 한다.


  17절. 죄를 뉘우치는 겸손한 마음. 하나님께서는 통회하는 마음을 받으신다.


  18절. 다윗은 예루살렘 전체를 위해서 기도한다. 자기 범죄로 말미암아 교회 전체가 망가질뻔 했기 때문이다. 다윗이 왕이 된 것은 하나님의 교회를 양육하기 위함인데, 부끄러운 행동으로 교회가 파멸의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교회의 회복에 대한 기도를 하고 있다. 이 회복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의해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교회를 세우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교회는 특별한 의미로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건물이다. 그리스도오실 때까지 교회의 보존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기도를 한다.

  다윗은 하나님과 자신이 화목함에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중보의 기도, 구속자의 영광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기도로 나아간다.


  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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